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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 계준호(桂埈昊) |
출생 | 1899년 5월 1일 |
함경남도 안변군 | |
사망 | 1985년 6월 25일 |
인천광역시 | |
묘소 |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
서훈 |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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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이명은 계준호(桂埈昊)이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1899년 5월 1일 함경남도 안변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시영 재무총장으로부터 남북 만주 지방의 군자금모집책으로 임명되어 하얼빈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했다. 또한 1920년 11월에는 조소앙과 함께 베이징을 경유하여 모스크바를 순방하고 돌아왔다. 1921년 12월에는 조응순과 함께 일본인이나 기타 조선의 독립을 반대하는 자들을 제거하기 위한 상해암살단을 조직하여 항일 투쟁 활동을 전개했다. 특히 군자금수집을 위하여 김명옥(金明玉) 등에게 군자금을 모아 상해를 출발하던 중 1922년 1월 4일에 상해 일본영사관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그후 본국으로 압송되어 경성복심법원에서 재판을 받아 정치에 관한 범죄처벌령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청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4년 5월 3일 출옥했다.이후 안변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8.15 해방 후 인천으로 이주했다. 이화여자고등학교 이사, 서울상과대학 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말년에는 농장경영에 전념하다 1985년 6월 25일에 사망했다.
한편 정치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1960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김상돈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추풍회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정당 김재광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의당] 후보로 서대문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당 김재광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중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당 김상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계성범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5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