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고등학교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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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고등학교 Ewha Girls' High School 梨花女子高等學校 | |
교훈 | 자유 · 사랑 · 평화 自由 · 愛情 · 平和[1] |
설립자 | <colbgcolor=#ffffff,#191919> 메리 스크랜튼 (Mary Scranton) |
국가 | 대한민국 |
분류 | 광역단위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
학교법인 | 이화학원 |
설립 | 1886년 5월 31일 이화학당 ([age(1886-05-31)]주년) |
교장 | 제15대 김혜정 |
학생 수 | 1,195명[기준] |
교직원 수 | 96명[기준] |
성별 | 여자고등학교 |
설립정신 | 기독교 정신에 기초한 전인적 인간 미래를 선도할 능력 있는 여성 지도자 양성 |
교화 | 배꽃 |
관할 교육청 | 서울특별시교육청 (중부) |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26 (정동 32-1) |
홈페이지 | 이화여자고등학교 공식 홈페이지 이화여자고등학교 총동창회 공식 홈페이지 이화여자고등학교 공식 블로그[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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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위치한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이자 여자고등학교.2. 설립 배경 및 역사
이화는 1886년 설립된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이다. 유관순 열사의 모교로 유명하다.1885년, 미국인 감리회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 부인이 조선 땅을 밟았다. 당시 그녀는 52세의 과부였으며, 의사인 아들 윌리엄 스크랜튼과 함께 선교활동을 하러 조선에 왔다. 스크랜튼 부인은 조선 여성들이 너무나도 지위가 낮고 억압받으며 사는 것을 보고, 여학교를 세우기로 하고 정동에 한옥 몇 채를 사들였다. 그러나 당시 조선인들은 낯선 서양인에 대한 경계심이 매우 강했고,[5] 이전에는 여자들이 학교를 다니며 공부하는 일도 없었기 때문에, 스크랜튼 부인은 아주 어렵고도 어렵게 여학생들을 모집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단 1명의 여학생으로 학교를 시작했을 정도.
이후로 버려진 여자아이, 도저히 부모가 기를 형편이 되지 않아 스크랜튼 부인에게 맡겨진 여자아이, 학교에서 일하는 고용인의 딸[6] 등이 스크랜튼 부인의 학생이 되었으며, 차츰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전원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미국인 여성 선교사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내외는 스크랜튼 부인의 학교에 배꽃이라는 뜻의 이화(梨花)라는 교명을 하사하며 격려했다.
스크랜튼 부인은 교장직에서 퇴임한 후 지방에서 선교활동을 펼쳤고[7], 소천 후에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묻혔다. 이후로도 미국인 여성 선교사들이 교장을 맡으며 이화학당을 발전시켰다. 차츰 교과목이 체계화되고 학년도 체계화되어 유치원, 보통과, 중등과, 고등과 등으로 나누어졌다.
1910년, 제4대 교장 룰루 프라이는 "아직 한국에서 여성의 고등교육은 시기상조"라는 주변의 만류를 물리치고 이화학당에 대학과까지 개설했다. 대학과는 1925년 이화여자전문학교로 개편되었고, 1935년 정동을 떠나 신촌으로 이전되었다. 1943년에는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의 재단(학교법인 이화학원)[8]과 이화여자전문학교의 재단(학교법인 이화학당)[9]이 분리되었다.
일제강점기부터 1974년 평준화 이전까지 관립학교(해방 후 공립학교화)인 경기여자고등학교에 버금가는 최고의 명문여학교였다.[10] 이화여대 합격자는 경기여고보다 많았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강남이 명문학군으로 부각되면서 학교의 지리적 위치상 입시성적은 많이 하락하여 지금에 이른다.
1988년에는 예술학교인 예원학교와 서울예술고등학교가 이화학원에서 분리되어 학교법인 이화예술학원으로 독립했고, 1992년에는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가 설립되었다.
3. 학교 연혁
1886년 5월 31일 |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 여사(Mrs. Mary F. Scranton)에 의해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으로 창립. |
1887 | 고종황제가 이화학당이란 교명을 하사. 한국 최초의 여성병원인 보구녀관(保救女館)[11] 설립. |
1890 | 미스 로드와일러(Miss Lousia C. Rothweiler) 학당장에 취임. |
1893 | 미스 페인(Miss Josephine O. Paine) 학당장에 취임. |
1900 | 메인홀(Main Hall, 구 교사와 기숙사 및 강당) 준공. |
1904 | 4년제 중학과 설치 |
1907 | 미스 프라이(Miss Lulu E. Frey) 학당장에 취임. |
1910 | 대학과 설치. |
1915 | 심슨기념관(Simpson Hall) 준공. |
1920 | 유관순 열사 순국. |
1921 | 미스 월터(Miss A. Jeanette Walter) 학당장에 취임. |
1922 | 미스 아펜젤러(Miss Alice R. Appenzeller)[12] 학당장에 취임. |
1923 | 프라이기념관(Frey Hall) 준공. |
1925 | 이화학당 대학과를 이화여자전문학교로 개편. |
1929 |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와 이화여자보통학교의 행정을 분리하고 미스 처치(Miss E. Church) 교장에 취임. |
1935 | 이화여자보통학교를 폐지하고 이화여자전문학교를 대현동 신촌 교사로 이전. |
1938 | 신봉조[13] 교장 취임. 미스 처치 명예교장으로 추대. |
1943 |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와 이화보육학교ㆍ이화여자전문학교의 재단을 분리 |
1946 | 4년제 이화고등여학교[14]를 6년제 이화여자중학교로 학제 개편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이화여자대학교로 개편(한국 최초의 종합대학) |
1950 | 4년제 중학교와 3년제 고등학교를 병설하고 다시 3년제 중학교와 2년제 고등학교로 개편. 한국 전쟁으로 메인홀 소실. |
1951 | 부산 영도에 가교사를 설치하고 수업 재개 바뀐 교육법에 따라 3년제 이화여자중학교와 3년제 이화여자고등학교로 개편 |
1953 | 서울로 환도하여 완전 복교. 이화예술고등학교 신설. |
1954 | 교지 「거울」창간 |
1955 | 대천 해양 훈련장 개설, 순화동 1번지 대지 구입. 교지 확장. |
1956 | 석조 노천극장 준공. |
1958 | 스크랜튼 기념관 준공 재단법인 유하학원을 이화학원으로 개칭. |
1961 | 신봉조 교장 정년퇴임. 서명학 교장 취임 |
1963 | 신봉조 전 교장 학교법인 이화학원 이사장에 취임. |
1964 | 이화여자중학교 30학급, 이화여자고등학교 27학급 인가. |
1968 | 문교부 지시에 의하여 1968학년도 재학생의 최종 졸업연도인 1971년 중학교가 폐지되고[15] 고등학교가 각 학년 20학급씩 총 60학급으로 인가. |
1970 | 본관 신축교사 준공 |
1971 | 서명학 교장 정년퇴임. 정희경 교장 취임. |
1974 | 유관순기념관 준공 |
1975 | 프라이기념관 화재로 소실. |
1976 | 「이화 90년사」 간행. |
1982 | 정희경 교장 퇴임. 심치선 교장 취임. |
1986 |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 거행. 전인향동창 기념 도서관 준공. '여성 신교육의 발상지' 기념비 건립. |
1988 | 학교법인 이화학원에서 예원학교 및 서울예술고등학교 분리(학교법인 이화예술학원) |
1989 | 신봉조 이사장 퇴임. 강병훈 목사 이사장 취임 |
1990 | 싱가폴 Anglo-Chinese Junior College와 자매결연 |
1992 |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신설 고등학교 학급이 각 학년 10학급씩 30학급으로 인가 |
1994 | 「이화100년사 간행, 호주 Strathcona Baptist Grammar School과 자매결연 |
1995 | 심치선 교장 정년퇴임. 최종옥 교장 취임 |
1996 | 고등학교 학급이 각 학년 12학급씩 총 36학급으로 인가 창립 110주년 기념행사 거행 설립자 메리 스크랜톤 여사와 신봉조 명예 이사장의 흉상 건립. |
1999 | 이화 옛 정문 복원 |
2000 | 최종옥 교장 정년퇴임. 정창용 교장 취임 |
2003 | 일본 야마나시현에 있는 야마나시 에이와 고등학교와 자매결연 |
2004 | 이화 100주년 기념관 준공 |
2005 | 강병훈 이사장 퇴임, 조영준 목사 이사장 취임 |
2006 | 창립 120주년 기념행사 거행, 이화박물관 개관. 유관순 열사 동상 건립. |
2007 | 이화 체육관 준공 |
2008 | 조영준 이사장 퇴임, 김고광 목사 이사장 취임 |
2009 |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지정 정창용 교장 퇴임, 강순자 교장 취임 |
2012 | 김고광 목사 이사장 퇴임, 이기우 목사 이사장 취임 |
2013 | 이화 기숙사 김점동[16]관 준공. |
2016 | 창립 130주년 기념행사 거행 |
2021 | 정창용 이사장 취임 |
4. 교가
1. 한줄기 새 빛이 동방에 비치니 무궁화 동산에 첫봄이 왔도다.
고목에 싹 돋아 꽃이 피오니 성인이 이름해 이화라 하셨네.
2. 세뿔메 큰바위 우리의 지개요, 한가람 긴 흐름 우리의 바람이요,
반석에 터 닦고 잘 세운 우리집, 비바람 닥쳐도 겁낼 것 없도다.
3. 삼위신 우리 님 스승이 되시니 여기서 길린 자 새 생명 얻도다.
튼튼한 몸으로 지덕을 겸하여 약한 이 힘되고 어둠의 빛되자.
(후렴) 아! 이화 이화 아름다운 이름~ 함께 노래하자.
아! 이화 이화 만만세 만만세 우리 이화
고목에 싹 돋아 꽃이 피오니 성인이 이름해 이화라 하셨네.
2. 세뿔메 큰바위 우리의 지개요, 한가람 긴 흐름 우리의 바람이요,
반석에 터 닦고 잘 세운 우리집, 비바람 닥쳐도 겁낼 것 없도다.
3. 삼위신 우리 님 스승이 되시니 여기서 길린 자 새 생명 얻도다.
튼튼한 몸으로 지덕을 겸하여 약한 이 힘되고 어둠의 빛되자.
(후렴) 아! 이화 이화 아름다운 이름~ 함께 노래하자.
아! 이화 이화 만만세 만만세 우리 이화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도 같은 교가를 사용한다. 이화여자전문학교 음악과의 교수를 지낸 안기영이 작곡했다.
5. 학교 시설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와 캠퍼스를 나눠 쓰고 있다. 넓고 미관에 신경을 많이 쓴다. 학교 부지가 18,000평이나 된다. 외부인이 들어와도 넓고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어 길을 잃을 일은 거의 없다. 다만 부지 자체가 언덕이라 학교 내 오르막길이 정말 많다. 고대 로마의 양식의 노천극장[17]과 여러 동상들, 잔디밭길, 넓은 운동장, 분수대, 개울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봄에 꽃이 필 때, 가을에 단풍 떨어질 때 풍경이 아주 예쁘다.5.1. 화암 신봉조관 (본관)
지하에는 매점, 자습실이 있다.지하와 1층 사이에는 동연회실이 있다.
1층은 학생회실, 사회교육실, 생활인성부, 창의체험부, 진로진학부 교무실, 상담실, 보건실, 109호 자습실[18], 로비, 행정실, 인쇄실, 쓰레기장으로 이어지는 문이 있다.
2층은 3학년 교무실, 본부 교무실, 연구부 교무실, 교장실, 방송실
3층에는 교목실, 여사님 휴게소
3층부터는 교실. 1학년은 3~4층, 2학년은 4~5층, 3학년은 5~6층을 사용한다. 사이사이에 교과 교실이 있다.
기도실은 3층, 5층에 하나씩 있다.
7층에는 학생 식당, 8층에는 교직원 식당이 있다. 건물 부지 자체가 높아[19] 학생 식당에서도 서울 도심 전체가 많이 보인다.
출구가 2층에 있는 서문 쪽으로 1개, 1층 로비 앞과 지하에 있는 동문 쪽으로 2개, 총 3개가 있다.[20] 이렇게 모두 층이 달라 길을 잃기 쉽다.[21]
5.2. 백주년기념관
구름다리로 이곳의 3층과 본관의 1.5층이 이어져 있다. 1, 2학년들은 이동수업이 잦은 편이라 이 구름다리를 이용할 때가 많은데, 1.5층에서 갑자기 3층으로 이동하는데다가 백주년기념관은 층마다 구조가 달라서 신입생들이 자주 길을 잃는다. 입학한 지 꽤 됐어도 다니다 보면 이곳이 몇 층인지 헷갈리기 쉽다. 구름다리로 백주년 기념관 들어가면 3층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쉽다.백주년기념관 주차장 입구 옆에는 대한제국 시기 서구식 호텔이었던 손탁호텔의 터였음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손탁호텔은 1917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는데 이를 이화학당에서 구매해서 학교 기숙사로 활용하다가 1922년 철거하였다.
5.2.1. 지하1층
이화 아트 갤러리가 있다.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나 미술 교사, 미술 관련 동아리의 전시회가 열린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서 철문 두 개를 열면 갤러리로 이어진다.이곳에서 교복 공동 구매를 진행한다.
5.2.2. 1층
1층부터 2층까지 이어져 있는 화암홀과 카페(La green)[22]가 있다. 화암홀은 정동길 쪽으로 나 있는 동문 바로 앞이라 찾아오기도 쉽고 시설이 꽤 괜찮아서 가끔 외부에서 이곳을 대관해 영화 시사회나 공연, 팬미팅을 하기도 한다. 한 학년이 앉으면 딱 맞을 정도의 크기. 신입생OT나 한 학년끼리만 모이는 행사를 이곳에서 진행한다.2023년부터 이화교회에서 진행하는 이화의 밤 행사도 이곳에서 진행한다.
5.2.3. 2층
음악실1, 음악실2, 개인연습실, 기도실이 있다. 음악 수업 때는 주로 음악실1을 이용하고, 조별 활동을 해야 할 때 음악실2를 사용한다. 개인연습실은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주로 이용한다.5.2.4. 3층
컴퓨터실[23] DSD[24]교실, 시청각실, 프라이홀[25], 그리고 본관으로 이어지는 구름다리가 있다.5.2.5. 4층
물리실, 화학실, 생물실, 지구과학실(이라 쓰고 박물관이라 읽는다), 교사연구실, 거울 동아리실이 있다.정말 이과스러운 층이라서 실험이나, 몇몇 선생님들의 수업을 제외하고는 갈 일이 별로 없다. 이 곳에서부터 이과생이 생활하는 본관 5층까지는 평보로 약 4분이 소요된다.
4층으로 향하는 계단에는 way to be a scientist, the way my dream comes true라는 글자가 붙여져 있는데 교사들이 기획하고 붙인 스티커라고 한다.
5.2.6. 5층
영어교과실, 예절실, 가정과학실, 회화실, 공동작업실, 도예실로 이루어져 있다.영어교과실은 1학년과 2학년 문과 과목에 있는 영어 회화 시간에 이용한다.
예절실은 종교 시간에 가끔 조별 작업을 할 때 이용한다. 뷰가 아주 끝내준다. 바닥에 열선이 깔려있어 따뜻하다.
가정과학실은 1학년 때 들어있는 가정 시간에 실습을 할 때나 가끔 이용한다. 오븐도 있고, 여러 가지 시설이 괜찮다.
공동작업실은 평소에는 학생들이 잘 이용하지 않으나 가끔 교과수업이나 외부 프로그램을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미술실은 2개가 있어 하나는 교과 미술 수업용으로, 하나는 전공 수업용으로 사용한다.
미술실에는 정말 가마가 있다. 전통적인 형태가 아니라 열선이 깔려 있는 기계다. 때문에 학생들은 봐도 가마인 줄 모른다. 실제로 가마에서 도자기를 구울 수 있다.
5.3. 심슨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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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박물관. 주말에는 외부인이 자주 들어온다. 주중에도 관람객이 꽤 있다. 가끔 구름다리를 지날 때 손을 흔들면 같이 인사해 준다.
옛 이화학당 건물이었기 때문에 국가등록문화재 제3호로 지정돼 있다. 때문에 문을 수리할 때도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지하 1층과 3층은 자습실이다. 지하 1층에는 인강실도 마련되어 있다. 2층도 원래는 자습실이었지만 창립 130주년을 맞아 자습실을 없애고 박물관을 2층까지로 넓혔다.
5.4. 도서관
- 1층: 학교법인사무실[26]
- 2층: 누리터[27] (자료열람실)
- 3층: 자율학습실. 심화반 학생들이 이곳에서 자습한다. 2016년부터는 심화반이 없어지고 3학년들이 쓴다. 그리고 토론방[28](사랑방, 평화방)도 있다. 2층 자료열람실에서 책 읽다가 간혹 물 뜨러 본관까지 가는 이화인들이 있는데, 3층 자율학습실 앞에 정수기 있다.
원래 거울 동아리방이 이 건물에 있었는데, 백주년기념관으로 이사 갔다.
5.5. 체육관
무용실, 체육실(헬스장), 골프연습실, 실내체육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화외고와 함께 쓴다.5.6. 운동장
본관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고, 이화외고 바로 앞에 있다. 기숙사 입사/퇴사날이나 교내행사가 있을 때 주차장으로 쓰인다.3년에 한번 크게 전학년 운동회를 운동장에서 한다.
5.7. 이화교회
유관순기념관 1층에 있다. 체육관 바로 옆에 있는데, 교내에서 유일하게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이라 데이터를 다 쓴 기숙사생들이 모인다.2022년 시작된 “이화의 밤” 행사를 맡고 있으며, 이로 인해 학생들 사이에서 이화교회의 인지도가 올라가고 있다. 찬양팀 네로웨이(Narrowway)가 행사를 주도적으로 진행한다.
자세한 내용은 이화교회 문서 참고하십시오.
5.8. 이화학사(김점동관, 기숙사)
2013년 완공되어 5월부터 사생을 받았다. 총 수용인원은 450명이며 한 학년당 140명 선발한다.특별사유를 작성한 학생들중 교사들의 회의를 통해 선별된 학생들을 우선 선발 후 거리가 먼 순으로, 성적이 높은 순으로 줄을 세워 선발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매학기 유동적으로 선발한다고 한다.[29][30] 성적은 신입생의 경우 2월 말에 치르는 반배치고사로, 재학생은 전 학기 성적을 기준으로 뽑는다. 2021년 기준 신입생은 거리, 성적을 따지지 않고 입사동기 신청서와 학업계획서를 써 내게 했다. 2023년 기준 신입생은 거리, 반배치고사, 입사동기 신청서, 학업계획서를 모두 고려하여 뽑았다. 거리 사유 신청은 네이버 지도 기준으로 집에서 본교까지 걸리는 시간을 최단 시간 기준으로 적어내면 된다. 보통 1시간 이후면 대부분 선발된다는 듯. 또한 입사생들은 매 학기마다 결핵, 코로나 19 검사 결과지를 제출해야 한다. 2인 1실, 4인 1호실이며 룸메이트는 1, 2학년은 임의 배정되어지고 3학년은 선택이 가능하다. 호실마다 2개의 방과 2개의 샤워실, 2개의 화장실이 있다. 예외적으로 6호실들은 2인 1실 한 방만 있다.
이화외고와 함께 쓴다는 오해를 사기도 하는데, 이화학사는 여고만 사용한다. 여고 학생들끼리 외고와 기숙사를 같이 쓸까 하는 문제에 대해 투표를 했는데 부결되었다고 한다.
처음 입학한 신입생들 중 기숙사를 이용하는 학생들은, 자습과 잠 때문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곤 한다. 적응하지 못하고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BCR[31]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방이 더러우면 도장 못 받는다. BCR목록에는 계절별로 창문 열고 닫기가 정해져 있고 블라인드의 올라감, 이불정리, 신발장 정리, 문 열림 문 닫힘, 화장실과 호실 소등, 호실 책상의 정리 유무 등을 본다. 1주일에 도장이 3개 이하면 벌점, 또 1주일 내내 도장을 모아 5개가 있으면 상점. 정말 사소한데 정신 차려 보면 경고까지 간다. BCR은 룸메를 잘만나자, 룸메가 더러우면 같이 벌점받는다.
주중에만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 있으며, 금요일 방과후에 퇴사해 일요일에 귀사해야 한다. 금요일 귀사는 4시 10분부터 5시까지. 금요일 조기 귀사를 신청하면 학교가 끝난 후 바로 나갈 수 있다. 지방 학생의 경우 입학할 수는 있으나 주말마다 지낼 곳이 없는 기이한 시스템이다. 그래서 학교 근처의 바비엥에서 주말마다 지내는 학생들이 꽤 있다. 학원이나 병원에 가기 위한 외출/외박은 신청하면 주 1회 가능하다. 학기 초, 시험 후 정기 외출 신청을 받는데, 이 시기에 신청하지 못하면 학원 외출이 불가능하다.
시험 당일부터 시험 마지막 날 까지는 정기 학원외출이 있더라도 외출할 수 없다. 시험 기간 외박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시험 외박을 하게 되면 시험 전 날 퇴소를 해 시험 마지막 날 시험이 끝나자마자 입소해야 한다. 학원을 가기 위해 시험 외박을 신청했지만 집이 멀어 학교 앞 바비엥이나 신라스테이에서 지내는 학생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지하에는 자습실이 있다. 원래는 학생들을 위한 탁구대같은 여가 물품들이 있던 장소라고 한다. 하지만 기숙사생들의 성적 하락에 학부모들의 민원으로 인해 급조한 자습실이어서 조금 좁다. 시설은 꽤나 좋은 편. 1층에는 컴퓨터로 인강을 듣거나 테이블에서 자습을 할 수 있는 다목적실이 있고, 1층부터 7층까지 숙소가 있다. 5~7층 기숙사생들은 한번 올라가거나 내려갈 때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꽤 시간을 보내게 된다.
통학을 하는 학생에게 방을 보여주겠다며 이화학사 안으로 데려오면 퇴사해야 한다.
아침 6시 20분부터 7시까지 아침 노래가 울리는데 이 노래는 6시부터 등교 전까지 1층에 내려가면 신청할 수 있다. 신청한 노래는 다음 날 기상송이 된다. 기말고사를 볼 때 트러블메이커의 <내일은 없어>가 나오기도 하고, 만우절이면 <오빠는 풍각쟁이야> 같은 노래가 나오기도 한다. 학생들이 신청하기 때문에 시즌별로 유행하는 노래가 매일 반복해 나온다. 스밍기간이 되면 신청하려고 5시 30분 즈음부터 서 있는 사람들도 있다...
2014년도 1학기에는 인피니트의 노래나 에디킴의 '너 사용법'이 주로 나왔는데, 안 그래도 아침인데 맨날 같은 노래가 나오니 진저리가 난다며 짜증내는 학생들이 많았다. 2017년에는 사무라이 하트가 종종 나온다. 2021년에는 엔시티 노래가 유닛별로 거의 매일 나왔다. 2023년에는 첫 날부터 부석순의 '화이팅 해야지'가 나오더니 3월 내내 나왔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부터는 클래식만 신청할 수 있다. 비-La Song, SS501-U R Man, PRODUCE101-PICK ME 등의 금지곡들이 지정되었다. 6시 20분 기상 알림과 함께 노래가 나오는데, 7시까지 노래가 재생되며 7시까지 기숙사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벌점이다.
층마다 2대씩 냉장고가 있다. 이곳에는 유제품류나 과일류만 넣을 수 있다. 훔쳐가는 학생이 있어 CCTV까지 설치했다. 그 외에 다른 음식을 소지하는 것도 벌점. 2017년 이제는 젤리 반입이 가능하다!! 다만 설탕 묻은 건 안 된다. 2023년 이제는 초코파이, 오예스, 모구모구도 가능하다.
기숙사 자습시간은 4시 20분부터 5시 20분까지 개인 재량 시간, 6시 30분까지 석식을 먹고 들어가 6시 40분부터 8시까지 야자 1교시, 8시 20분부터 10시까지 야자 2교시, 10시 15분부터 11시 15분까지 야자 3교시. 11시 40분부터 12시 10분까지 점호 후 심야 자습이 있다. 시험기간에는 심자를 4시까지도 한다. 자습 시작 5분 전 착석이 예의며 자습 시간에 지각 시 벌점이다.
지하 자습실은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는다. 2023년 기준 지하 자습실에서 휴대폰을 사용하면 벌점 3점과 함께 마음가짐을 작성하게 된다. 지하 자습실에선 인강신청도 불가하고 노트북과 키보드도 반입이 불가하기 때문에[32] 아침에 귀찮더라도 꼭 다목적실 테이블 또는 인강실(컴퓨터 좌석)을 신청하길 바란다.
자습 도중 잠들어 사감이 4번째 깨우게 되면 벌점을 받는다. 이 벌점을 받으면 당일 심야자습이 불가능하다.
1,2학년은 좌석이 번갈아 붙어있기 때문에 시험 기간이나 좌석 배정 첫 날 쯤 간식을 주고받는 일이 흔하다.[33]
야자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에는 1교시에 도서관을 신청해서 컴을 쓰고, 2, 3교시는 인강이나 다목적실을 신청하는 방법이 있다. 단, 도서관 신청은 6시 30분 전까지, 인강과 다목적 신청을 하려면 당일 아침 6시부터 6시 30분 전 까지 1층에서 신청해야 한다.
2015년 11월 19일 이화학사 제 1대 자치회 운영위원회가 출범하였다.
2016년 3월 14일 이화학사 제 2대 자치회 운영위원회가 출범하였다.
2017년에 이화학사 제 3대 자치회 운영위원회가 출범하였다.
자치위원회는 회장, 부회장, 층장 등으로 구성된다. 층장을 하면 매일 해당 층 모든 호실에 방문해 점호를 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5.9. 유관순기념관
1974년 완공 이후 여러 차례 증축을 통해 현재 1700석 규모의 강당으로 되어 있으며, 이화인의 시작과 끝인 입학식과 졸업식이 이곳에서 거행된다. 또한 유관순 상 시상식을 비롯한 각종 행사가 이곳에서 열린다. 매주 수요일 4교시에 있는 예배시간에 전교생이 모여 예배를 드린다.3층부터는 동아리방과 이화 동창회실이 있다. 2층에 선교중창단[34], 3층엔 이화 동창회실, 4층엔 성극반[35], 5층엔 한맥, Flight, AnC의 동방이 있다. 한여름엔 찜통이고 한겨울엔 바닥이 얼음장이다.
여담이지만 공연장이라 1층과 2층 사이가 넓다 보니 그 사이에 두 층 정도가 더 있는데, 이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과거의 물건들이 먼지에 둘러싸여 있다. 밑 부분이 썩은 박스에 담겨 마구잡이로 쌓여 있는 트로피, 박제되어 있는 새 두어 마리 정도, 고문서 급으로 오래 된 <거울>지 등. 그리고 성극반이 무대를 세울 때 사용하는 가벽들과 무대장치들[36]을 두는 곳이기도 하다. 무대 옆 측면에서 쏘는 조명방도 있다.
5.10. 노천극장
'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실내라는 오해를 사지만, 야외원형극장이다. 수학 교사가 설계하고 학생들이 돌을 날라 만들었다고 한다.[37]횃불예배, 창립기념식을 이곳에서 한다. 창립기념식은 2017년도 이화 131기부터는 유관순 기념관에서 시원하게 하고 창립기념 축제가 열린다. 횃불예배는 밤에 진행해서 괜찮지만, 창립기념식은 5월 말 땡볕 밑에서 진행해 학생들의 불만이 높았다.
창립 133주년 기념 체육대회 응원전과 공연이 이곳에서 진행되었다.
이곳에서 넘어지면 3수를 한다는 소문이 있다. 어차피 넘어지면 크게 다쳐서 대학 가기 힘들다. 규모 자체가 일반 3층 건물 정도의 크기라 넘어지면 사망이라고 봐도 괜찮다. 다닐 때 조심하자.
지금은 1주일에 1번 들어있는 예배를 유관순 기념관에서 진행하지만, 과거에는 이곳에서 진행했다고 한다.
5.11. 부재시설/건물
그 외에 테니스장 등의 시설과 옛날 이화학당의 교문이었던 사주문, 유관순 열사가 빨래를 했다는 유관순 우물터 연자방아 등이 있다.이외에도 기숙사 앞과 심슨홀 앞에 위치한 유관순 열사의 동상, 이화의 설립자인 메리 스크랜튼 부인의 흉상, 배구장 터에 있는 이화 역사상 최초의 한국인이자 유일한 남성 교장이었던 신봉조 전 교장의 흉상, 도서관 앞의 두 남녀 직장인 동상이 있으며 신교육 발상지 비석이 있다.
그 밖에도 별별 것들이 많다. 교사들의 표현에 따르면, 이화는 재활용을 좋아해서 누가 버리려던 것도 가져와서 쓰는 경우가 많다고... 예로 도서관 앞의 직장인 동상이나 배구장 터의 맷돌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특히 노천극장의 돌 중에는 옛 서울성곽의 돌이 섞여 있다고 한다.
기독교 미션스쿨답게 믿음, 소망, 사랑 총 3개의 바위가 교내 곳곳에 놓여 있다.
본관에서 도서관 가는 길 쪽에 방공호가 있다.[38]
6. 출신 인물
가나다순으로 정렬해주시기 바랍니다. |
나무위키에 등재될 정도의 저명성 있는 인물만 기록 가능합니다. |
- 강경화 - 외교부 장관
- 김경자(1949)
- 김금래
- 김명순
- 김모임
- 김성주(1956) - 기업인, 정치인
- 김성희(1958)
- 김연정 - 연고티비 출신 인플루언서
- 김인순
- 김일엽 (승려)
- 김주하
- 김진애
- 김홍희 - 전 서울시립미술관장
- 김활란
- 김혜순 (바둑기사) - 한국기원 여류 아마 5단
- 김효진 (배우)
- 남보라 (배우)
- 노예달 - 독립운동가
- 도영심
- 민금봉 - 독립운동가
- 박에스더 - 한국 최초의 근대 여성 의사.
- 박에스더(기업인)
- 박인덕 - 인덕공업고등학교와 인덕대학교를 설립한 교육자, 신여성.
- 박정자(교수)
- 박찬희(1971)
- 박춘호(1948)
- 방상아 - SBS 피겨 스케이팅 해설위원
- 사미자
- 서영희(정치인)
- 성혜랑 - 김정일의 부인인 성혜림의 언니.
- 손지애 - 언론인
- 송민도
- 양미강
- 오정희
- 유관순[39]
- 윤여정
- 윤정희(1939)
- 윤후정 - 한국 최초의 여성 헌법학자. 이화여자대학교 제10대 총장. 1996년 퇴임한 후로 명예총장을 맡고 있다.
- 이광자
- 이명희 - 신세계그룹 회장
- 이미경
- 이배용 - 초대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 이화여자대학교 제13대 총장
- 이순자(1938)
- 이승희
- 이애라 - 독립운동가
- 이옥주
- 이응경
- 이혜경(1963)
- 이희호 - 사망 전까지 거의 매년 창립기념식 때 경호원을 대동하고 방문하였다.
- 임순득 - 독립운동가이자 작가
- 정현백
- 정형민
- 정희경
- 정희지: KBS의 기상캐스터
- 조미령
- 지은희
- 차보석 - 독립운동가
- 최금봉 - 한국 최초의 여성 치과의사
- 최복순 - 독립운동가
- 최영숙 - 한국 최초의 스웨덴 유학생, 경제학사
- 최영희(1950)
- 피서영 - 영문학자 피천득의 딸. 바이올리닌스트 스테판 재키브의 어머니, 물리학자, 보스턴 대학교 교수.
- 하란사 - 독립운동가. 본래 김씨였으나, 서양식으로 남편의 성씨를 따랐다. '란사'는 영어 이름 Nancy를 한자로 옮긴 것. 당시 이화학당에서는 기혼 여성의 입학을 받지 않았지만, 하란사는 교장 룰루 프라이 선생에게 간곡히 매달려 입학을 허가받았다. 이화학당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한국 여성 최초로 학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친정 식구들의 청원으로 김란사로 복귀되었다.
- 한승민
- 홍옥임 - 홍난파의 조카. 졸업 후 이화여자전문학교 음악과에 진학했으나, 재학 중에 친구 김용주와 동반자살하여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홍옥임과 김용주의 슬픈 이야기는 콩칠팔 새삼륙이라는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
- 황애시덕
- 정지아 - 2024년 기준 1학년과 2학년 둘다 존재.
- 임주하 - 이화여고의 대선배인 김주하를 따라 임헌수(현재 두산 재직)가 주하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함.
- 조윤빈 - 유재순(현재 동안 유치원 원장)이 '조이풀'로 이름을 지으려 하였으나 뒤늦게 생각나 실패, 차후 개명 예정
- 조혜인 - 유서 깊은 집안의 차녀,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 2024년 sm엔터테이먼트에 연습생 지원을 하였다.
7.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7.1. 지하철
- 수도권 전철 1호선: 시청역
-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 수도권 전철 5호선: 서대문역
7.2. 버스
- 경찰청.동북아역사재단 정류장 : 103, 150(시흥대교), 700, 701, 702(용두동), 704(서울역), 705, 708, 742, 750, 752, 790(고양동), 799, 7019(서소문), 7021, 7024
- 서대문경찰서 정류장 : 101, 370, 서대문06
- 서대문역사거리.농협중앙회 정류장 : 470(내곡동), 720(답십리), 741(세곡동), 790(숭례문), 7019(은평차고지)
- 서대문경찰서.농협은행 정류장 : 703, 707, 1000(고양), 1100(고양), 1200(고양), 1900, 9709, 9710, M7119, M7129
- 서대문역사거리 정류장 : 160, 260, 270, 271, 273, 600, 602, 721, 1002(김포), 1004, 7101, 8600, 8601
- 서대문역사거리.적십자병원 정류장 : 470(상암동), 601, 704(송추), 720(진관공영차고지), 741(진관공영차고지)
8. 여담
- 고종황제가 이화(梨花, 배꽃)란 이름을 내려준 것, 그리고 유관순 열사의 모교인 것으로 유명하다.
- 반 구성은 일반적인 학교처럼 숫자로 되어있지 않고 총 12반인 인, 의, 예, 지, 진, 선, 미, 신, 희, 애, 효, 제로 되어있다. 2학년 때부터는 과 선택 비율에 따라 문과, 예체능/PASCH, 이과 순으로 반이 편성된다.[40][41]
- 야간자율학습은 교실에서 진행하지 않고 심슨 기념관의 지하 1층, 3층, 매점 앞 야자실, 도서관 자습실에서 한다. 자습실 배정은 그 해마다 운영이 조금씩 다른 듯. 기숙사생들은 기숙사 지하 1층에 있는 자습실에서 자습한다.
- 다른 학교보다 이런저런 행사가 많다. 신앙부흥회, 횃불예배[42][43], 학생의 날 행사, 부활절예배, 크리스마스 기념 예배[44], 창립기념식 등.
- 2014년 봄에는 랄라스윗을 초청해서 점심시간에 유관순우물터에서 런치 콘서트를 진행했고, 그 외에도 CA시간에 여러 인디밴드를 초청해 학생들이 즐길 수 있도록 콘서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 축제가 따로 없고, '이화의 추수'라는 동아리 발표회가 있다. 그러나 교내외에서는 그냥 축제로 통한다. 동연회가 주최하며, 이것도 나름 돈 들여서 크게 하는 편.[45]
- 체육대회도 학생들끼리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찬조들을 많이 부른다. 2014년부터 매년 찬조로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학생들이 왔다. - 과거에는 종류에 상관없이 체육 쪽에 강했다. 그의 증거로 유관순기념관 1층과 2층 사이, 먼지투성이 속에서 마구잡이로 밑 부분이 썩은 박스에 담겨 있는 트로피들을 발견할 수 있다. 체육관 2층 안쪽에도 트로피들이 있다.[46]
- 교정이 넓지만 구조가 단순해 길을 잃는 일은 거의 없다. 다만 건물이 많아[47] 학교를 3년 다녀도 가보지 못 하는 곳이 수두룩하다. 학교 내에 놀리는 공간이나 쓸데없는 공간이 엄청나게 많다.[48]
- 졸업생들이 기부금을 상상 이상으로 많이 내서 학교 장학 재단에 정말 말 그대로 돈이 넘쳐난다고 카더라. 그래서 그 돈들의 이자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뿌린다는 이야기도 있다 카더라 물론 장학금을 기부하는 졸업생들이 정말 많은 것은 사실이다.
- 1학년 말에 다음 해의 자신과 같은 반, 같은 번호의 1학년에게 편지를 쓴다.[49] 보통 편지와 함께 여러 가지 선물을 같이 보내는 경우가 많다.[50] 교사들은 익명으로 하라고 하지만, 핸드폰 번호를 적거나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는 경우가 많다. 보통 짝동생, 짝언니라고 부르며 시험기간에는 서로 주전부리도 챙겨주는 등 사이가 좋은 편. 이 편지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처음 자사고로 지정되었을 당시 자사고로서의 첫 신입생들이 일반고로 재학 중이던 선배 학생들과 잘 지내지 못 하고, 공부와 경쟁에 치여 힘든 고등학교 첫 해를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학기 말, 3월에 갓 입학했던 본인에게 응원과 위로, 조언을 담은 편지를 쓰는 활동을 했었는데 이 편지를 그대로 후배들에게 전해주면 좋겠단 의견이 나왔다.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후배에게 쓰는 편지가 시작되었다. 자신들과는 달리 후배들은 외롭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내년에 본인의 학번을 쓸 신입생에게 편지를 써서 남기는 전통이 되어 계속 이어져오고 있는 것. 짝동생에게 남긴 편지는 학교에서 잘 보관하고 있다가 신입생에게 전달해준다. 새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든 신입생들에게 짝언니의 편지는 큰 위로가 된다.
- 2014년부터 학생회와 역사 동아리인 주먹도끼를 중심으로 이화외고, 성동글로벌경영고, 용산고, 한강미디어고, 이대병설미디어고, 충암고, 대신고, 중화고, 수도전기공업고, 동작고, 서서울생활과학고, 서울사대부고, 삼육고, 일산중산고 등 54개 학교와 함께 고등학생이 만드는 평화의 소녀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페이스북 페이지
- 서울 소재 여고를 소재로 할 때 가끔 '배꽃여고'나 'E여고' 등으로 이름을 살짝 가리고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아무래도 저 근처에서 이화여고 출신이라고 속이고 빵집 데이트를 하던 예전 세대의 레퍼토리가 있어서인듯. 강신재의 소설 젊은 느티나무에서 여주인공 윤숙희가 다니는 'E여고'가 여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캠퍼스 러브 스토리에서 정다영이 박남일을 불러낸 곳인 '배꽃여고 앞' 또한 여기를 기반으로 했다.
- 학교 어딘가에 있는 은행나무는 억 단위라고 한다. 반송도 천만 단위라고 한다. 나무는 오래될수록 가치가 높아지는데, 학교의 역사가 [age(1886-05-31)]년이나 되었으니까 몇십 년은 된 나무일 것이다.
- 학교가 친일을 한 전력이 있다. 전 교장이 쓴 이화백년사에서는 이 부분이 아주 적은 분량으로 얼렁뚱땅 넘어간다.
- 일제에 협력한 증거로 일본군이 만들어준 방공호가 아직 학교 본관 지하에 남아있다. 1945년 연합군이 일제치하 조선에도 본토상륙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일제가 파준 방공호로 현재는 청소도구를 보관하는 곳처럼 사용중이다. 옆 중학교, 학교 반대편(도서관 뒤)과 연결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외부인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두었다. 통로가 무너져 내려 현재는 이어져 있지 않다. 이화여고가 모교인 작가 유오디아의 소설 <조선공주실록>은 이 방공호를 소재로 쓰여졌다.
[1] 1915년 이전의 교훈은 ‘모든 일을 단정히 하고 규칙 있게 행하라’였으나 1939년 ‘순결ㆍ희망ㆍ발전’으로 바뀌었다가, 광복과 더불어 온 세계 인류의 이상 그 자체를 교육이념으로 삼게 되면서 ‘자유ㆍ사랑ㆍ평화’로 정하였다.[기준] 2024년 3월 1일[기준] [4] 신입생 합격자 발표, 정기고사 기출자료가 업로드 된다.[5] 서양인들이 조선 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는 괴담마저 돌았을 정도였다.[6] 한국 최초의 근대 여의사인 박에스더(김점동). 그녀의 아버지 김씨는 이화학당에서 일하는 일꾼이었다.[7] 경기도 수원에 삼일소학당이라는 여학교도 세웠다.[8] 이화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팔렬중학교, 팔렬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9] 이화여자대학교, 이대부속유치원, 이대부속초등학교, 이대부중, 이대부고, 이대병설영란여중, 이대병설미디어고를 운영하고 있다.[10] 사립학교끼리의 선호도는 이화여자고등학교, 숙명여자고등학교, 진명여자고등학교 순[11] '여성을 보호하고 구하는 집'이라는 의미로 고종황제가 지어준 이름. 現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의 전신.[12] 헨리 아펜젤러 목사의 딸로,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13] 대한민국의 여성교육자, 친일반민족행위자[14] 일제강점기 때 여학생을 위한 중등교육기관은, 처음에는 여자고등보통학교였다가 나중에는 고등여학교로 명칭이 바뀌었다.[15] 중학교 입시가 폐지되면서 소위 '명문 중학교'들이 폐교되던 시절이었다.[16] 한국 최초의 근대 여의사[17] 수학 교사가 설계하였다.[18] 109호 자습실을 없애고 선생님 휴게실을 만들었다. 자습은 매점 옆 자습실에서 자율적으로 하거나, 도서관 또는 심슨홀에서 한다.[19] 학교 안 대부분이 오르막길이고 그 정점에 본관이 위치해있다. 서울 시내에 홍수가 나도 본관만은 잠기지 않을거라는 농담을 할 정도.[20] 앞서 언급했듯 본관은 언덕 꼭대기에 있다. 따라서 본관에 방문해야 하는데 거동이 불편하다면 동문으로 출입할 것을 권장한다. 더 가깝고 그나마 오르막 경사가 심하지 않으며, 본관 엘리베이터 사용에 용이하다. 서문으로 들어와서 본관으로 가려면 수많은 돌계단을 오르거나 어마어마한 경사의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21] 외부인의 시각으로는 지하도 1층, 1층도 1층, 2층도 1층이 되는 것.[22] 카페와 학교 건물이 이어지다보니, 안전을 위해 이화여고 학생들에게는 판매를 하지 않는다[23] 현재 ESC실로 이름이 바뀌었다.[24] 현재 PASCH로 이름이 바뀌었다.[25] 1학년 때 반별로 성화그리기 대회를 하는데, 이곳에 전시한다. 목요찬양을 이곳에서 진행한다.[26] 로비와 멀티미디어 자료실[27] 약 27,000권의 장서[28] 이곳에서도 자습 가능[29] 성적 70%, 거리 20%, 입사 계획서 10% 이 비율은 찌라시. 아무것도 밝혀진 바가 없으며 매년 바뀐다. 성적의 비율을 점차 줄이고 거리가 먼 학생을 우선으로 선발하고 있다고 한다.[30] 기숙사 신청자 중 학비 등을 지원받는 기초생활수급자 등의 차상위 계층 학생이 있다면 우선적으로 선발하는 것으로 추정된다.[31] Best Clean Room의 약자[32] 반입시 벌점을 받는다.[33] 하지만 간식 반입 금지이다.[34] 무대대기실로 사용하기도 한다[35] 이화 100주년 집필실이 같이 있다.[36] 쇼파, 책상, 전화부스, 의자, 창문, 기둥 등등 별게 다 있다.[37] 옛 서울성곽의 돌이 섞여있다.[38] 현재는 통로가 무너져 본관 아래 반대편과 이어져 있지는 않다.[39] 졸업하지 못하고 순국했으나, 1996년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40] 과거에 학생이 더 많았을 때는 한 학년 당 인, 의, 예, 지, 진, 선, 미, 신, 희, 애, 원, 형, 이, 정, 효, 제, 성, 경, 현, 숙의 총 20반이 있었다.[41] 예체능 인원이 부족해 예체능반이 따로 편성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도 PASCH는 같은 반 내에 편성된다.[42] 재학생 외에 졸업생, 외부인들도 많이 온다. 노천극장에서 열린다.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양초를 준비해 와야 하는데, 불이 다 켜지면 정말 예쁘다.[43] 안전상의 이유로 현재는 전기초로 바뀌었다. 축제 당일 교문 앞에서 500원에 판매한다.[44] 학생들이 공연을 하기도 하고, 교사들이 연극을 하기도 한다.[45] 금남의 학교라는 별칭답게 남학생들이 오지 않고 교내 학생들끼리 원래 하교 시간까지 진행한다. 찬조 공연도 오지 않는 편. 늦게까지 진행하지 않는다.[46] 지금 기숙사가 있는 자리에, 원래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쓰는 테니스장이 있었다고 한다.[47] 심슨홀, 백주년기념관, 본관, 김점동관, 유관순기념관, 체육관, 도서관. 이화여고에선 총 7개의 건물을 사용한다.[48] 학교 다니는 3년 동안 가볼 일 없는 곳이 정말 많다. 탐험을 원하는 이화인이 있다면 백주년기념관 지하와 뒤뜰, 유관순기념관 곳곳을 탐험해보라.[49] 2014년의 1학년 인반 1번 학생이 2015년의 1학년 인반 1번 학생에게 쓰는 식.[50] 교내에서 쓸 수 있는 복사 카드나 주전부리, 어떤 경우는 현금을 넣어놓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