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2월 28일, 경성부 서대문경찰서에서 촬영된 사진. | |
<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 여흥 민씨[1] |
출생 | 1913년 1월 7일 |
충청북도 청주군 남이면 양촌리 (현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양촌리)[2] | |
사망 | 미상 |
상훈 | 대통령표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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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1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독립유공자 민강(閔橿)은 9촌 삼종숙(三從叔)이다.
2. 생애
민금봉은 1913년 1월 7일 충청북도 청주군 남이면(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양촌리에서 동화약품 제2대 대표이사 사장을 지낸 아버지 민영덕(閔泳德)[3]과 어머니 이씨의 장녀로 태어났다.#[4][5] 이후 상경하여 경기도 경성부 화천정(현 서울특별시 중구 순화동)[6][7]에 거주하였으며,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梨花女子高等普通學校)[8] 재학 중이던 1930년 1월 초 광주학생항일운동 동조 시위 계획에 동참하여 1월 15일 만세시위에 참가했다.그러다가 그해 2월 21일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성부 서대문경찰서에 체포되어 취조를 받다가 3월 2일 훈계 방면 처분을 받고 석방되었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2019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1] 평의사공파 29세.[2] 여흥 민씨 평의사공파-노천파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민강(閔橿)도 이 마을 출신이다.#[3] 1887년 ~ 1959년 10월 12일.# 충청도 청주목 남이면 양촌리에서 아버지 민상현(閔相賢, 족보명 민구호(閔久鎬))과 어머니 영해 박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926년부터 수년간 극심한 가뭄과 흉년으로 남이면민들이 기아에 허덕일 때 양곡 1만석을 풀어 주민들을 구휼하였고 또한 소작료를 면제 해주고 면민 746가구에 대해 토지세와 지방세를 대신 내주는 등 은덕을 베풀었다.# 이에 1929년 6월 남이면민들에 의해 송덕비가 세워졌다. 이후 같은 평의사공파 문중 종원으로 9촌 숙부(삼종숙) 민강이 경영하는 동화약방주식회사에 소액주주로서 투자하면서 1931년 이사에 취임했다가# 그해 11월 4일 창업주 민강이 옥고의 여독으로 별세하자 제2대 사장으로 취임하여 1933년까지 역임했다.[4] 여흥민씨세보에는 무슨 연유에선지 민영덕의 부인에 이씨는 기록되어 있지 않고, 평산 신씨·보성 오씨·남원 양씨 등 3명만 등재되어 있다. 또한 민금봉도 족보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5] 추측컨대, 민금봉이 정실소생이 아닌 첩 소생 자녀였을 가능성도 있다[6] 화천정 5번지, 즉 지금의 순화동 5-1번지에 주소지를 두고 있었다. 이곳에는 현재 덕수궁 롯데캐슬 민영 주차장이 자리잡고 있는데, 본디 동화약품주식회사 본사가 창립 이래로 117년간 있었던 곳이며 일제강점기 때에는 대동단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락 거점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또한 조선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의 생가터이기도 해서 여흥 민씨 가문으로서는 꽤나 중요한 곳이라 할 수 있다.#[7] 현재 동화약품주식회사 본사는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5가 631번지 LG서울역빌딩에 있으며 2014년 5월 12일 이전했다.#[8] 현 이화여자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