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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22:58:20

고성 이씨

固城 李氏 (鐵城 李氏)
고성 이씨 (철성 이씨)
관향 <colbgcolor=#fff,#222>경상남도 고성군
원시조 이이 (李耳)
비조 이반 (李槃)
시조 이황 (李璜)
집성촌 경기도 의정부시·파주시·화성시
충청남도 논산시
전라남도 나주시
경상북도 안동시·성주군·청도군
경상남도 사천시·진주시·고성군·의령군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평안북도 삭주군
인구 104,768명[1](2015년)
홈페이지 대종회

1. 개요2. 역사3. 문화재4. 분파5. 항렬자
5.1. 안정공파, 병사공파, 사암공파5.2. 둔재공파5.3. 호군공파5.4. 좌윤공파5.5. 동추공파5.6. 참판공파5.7. 도촌공파5.8. 은암공파
6. 왕실과의 관계
6.1. 고려왕실6.2. 조선왕실
7. 인물8. 주요 집성촌

1. 개요

경상남도 고성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시조는 이황(李璜)이다.

2. 역사

『고성 이씨 명현 열전(名賢列傳)』에 따르면, 중국 전한 문제 때 중서사인(中書舍人)이었던 이반(李槃)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고성 이씨의 구전(口傳)에 따르면 이반은 춘추전국시대 인물인 노자(老子)의 후손이라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노자는 어머니 뱃속에서 70년을 있다가 나이 70에 오얏나무 밑에서 태어났고, 태어나면서부터 세상 만물의 이치를 모두 깨우치고 있었다고 하며, 오얏나무 밑에서 태어나 성을 이(李)씨로 정했다고 한다. 노자의 본명은 이이(李耳)이다.

기원전 109년한 무제조선을 침략할 때, 이반의 후손[2]이 도호원수(都護元帥)가 되어 우리나라에 왔다가 전쟁이 끝난 후에도 눌러 살게 되었다. 이황(李璜)은 그의 24세손이라고 하나,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고증할 수가 없다고 한다.[원문] 1세대 차이를 평균적으로 30년으로 잡으면, 전한 문제 때 사람이라는 이반과 고성 이씨 시조인 이황의 연대차가 약 720년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 시기의 차이가 무려 1,200년(40세대) 안팎이다. 이반이라는 사람이 정말로 이황의 직계 조상이라면, 사십이(42)를 이십사(24)로 잘못 적었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황은 고려 덕종 때 밀직부사(密直副使)였다고 하며, 조선 중기 성리학자인 퇴계 이황과는 동명이인이다. 덕종 2년(1033) 1월에 거란군 일부를 사로잡은 일로 1등급 진급하였으며, 문종 17년(1063) 4월에는 호부상서(戶部尙書)가 되었다. 이후 철령군(鐵嶺君)에 봉해졌다고는 하나, 밀직부사였던 일과 철령군에 봉해진 일은 정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일부 문헌에서는 이황이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했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登第隱不仕]고 하기까지 하지만, 그가 관직에 이미 있었으며 끝내 호부상서까지 이른 것은 명백한 사실로 보인다. 아니면 동명이인이거나.
좌우위(左右衛) 맹교위(猛校尉) 오행(吳幸), 이황(李璜), 신선립(申先立) 등이 거란(契丹)의 군사 7인을 사로잡아, 관직을 1급씩 하사하였다.
左右衛猛校尉吳幸·李璜·申先立等, 抄掠丹兵七人, 賜職一級.
고려사 권5 세가 권 제5, 덕종 2년(1033) 1월 28일 을미
이황(李璜)을 호부상서로, 박희중(朴希仲)을 섭(攝)공부상서로 임명하였다.
李璜爲戶部尙書, 朴希仲攝工部尙書.
고려사 권8 세가 권 제8, 문종 17년(1063) 4월 30일 신축
여하튼 이황이 철령군(鐵嶺君)에 봉해진 일을 계기로 후손들이 관향(貫鄕)으로 삼았다고 한다. '철령'은 고성(固城)의 별호이다.

3. 문화재

4. 분파

대종회에서 상계 세계도를 제공하고 있다.

5. 항렬자

대동항렬자가 없고 각 파마다 따로 항렬자를 사용하며, 대략 27세 정도까지는 항렬자를 쓰지 않거나 다른 파의 항렬자를 쓰는 일이 잦았다. 그나마 28세부터 32세까지는 항렬자를 쓴 경우가 많지만, 약 33세부터는 거의 대부분이 항렬자를 사용하지 않는다. 항렬자의 위치(이름의 앞부분인지 뒷부분인지)가 파마다 다르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2001년 간행된 『고성 이씨 세보』 43~44쪽에 항렬자가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이 책에는 둔재공파를 제외하면 항렬자의 위치가 거꾸로 뒤집혀 있다. 예컨대 은암공파 31세의 실제 항렬자는 '◯영(永)'인데, 세보에는 '영(永)◯'이라고 잘못 나와 있다.

5.1. 안정공파, 병사공파, 사암공파

24 25 26 27 28
항렬자 불명 ◯수(壽) 선(善)◯ ◯연(淵) 종(種)◯
29 30 31 32 33
항렬자 ◯렬(烈) 기(基)◯ ◯흠(欽) 영(永)◯ ◯식(植)
34 35 36 37 38
항렬자 병(炳)◯ ◯규(圭) 진(鎭)◯ ◯준(準) 동(東)◯
39 40 41 42 43
항렬자 ◯찬(燦) 재(在)◯ ◯용(鏞) 낙(洛)◯ ◯영(榮)
44 45 46 47 48
항렬자 현(炫)◯ ◯균(均) 철(鐵)◯ ◯우(雨) 정(楨)◯

5.2. 둔재공파

24 25 26 27 28
항렬자 불명
29 30 31 32 33
항렬자 불명 종(鍾)◯
석(錫)◯
◯수(洙)
◯호(浩)
근(根)◯
상(相)◯
동(棟)◯
34 35 36 37 38
항렬자 ◯현(炫)
◯섭(燮)
기(基)◯
증(增)◯
◯호(鎬)
◯현(鉉)
순(淳)◯
홍(洪)◯
◯모(模)
◯권(權)
◯병(柄)
39 40 41 42 43
항렬자 환(煥)◯
병(炳)◯
◯배(培)
◯재(在)
녹(錄)◯
용(鎔)◯
진(鎭)
◯택(澤)
◯원(源)
식(植)◯
영(榮)◯
환(桓)◯
44 45 46 47 48
항렬자 ◯훈(勳)
◯희(熙)
곤(坤)◯
준(埈)◯
미정

5.3. 호군공파

24 25 26 27 28
항렬자 혁(爀)◯
시(時)◯
재(栽)◯
언(彦)◯
현(鉉)◯ ◯원(原) 동(東)◯
29 30 31 32 33
항렬자 ◯렬(烈) 기(基)◯ ◯호(鎬)
◯흠(欽)
영(永)◯
영(泳)◯
◯근(根)
◯환(桓)
34 35 36 37 38
항렬자 경(炅)◯
형(炯)◯
◯규(圭)
◯균(均)
종(鍾)◯
강(鋼)◯
◯구(求)
◯수(洙)
주(柱)◯
영(榮)◯
39 40 41 42 43
항렬자 ◯휴(烋)
◯희(熙)
경(坰)◯
재(在)◯
미정

5.4. 좌윤공파

24 25 26 27 28
항렬자 불명
29 30 31 32 33
항렬자 불명 병(柄)◯
형(衡)◯
◯재(在)
◯중(重)
호(鎬)◯
진(鎭)◯
34 35 36 37 38
항렬자 ◯해(海)
◯하(河)
상(相)◯
영(榮)◯
◯돈(燉)
◯환(煥)
은(垠)◯
규(奎)◯
◯수(銖)
◯흠(欽)
39 40 41 42 43
항렬자 한(漢)◯
영(泳)◯
◯병(秉)
◯식(植)
미정

5.5. 동추공파

24 25 26 27 28
항렬자 불명
29 30 31 32 33
항렬자 불명 ◯식(植) 희(熙)◯
병(炳)◯
◯기(基)
◯재(在)
◯곤(坤)
34 35 36 37 38
항렬자 진(鎭)◯
은(銀)◯
용(鏞)◯
◯영(永)
◯구(求)
◯홍(洪)
근(根)◯
영(榮)◯
정(楨)◯
◯환(煥)
◯형(炯)
◯섭(燮)
규(圭)◯
원(垣)◯
준(埈)◯
39 40 41 42 43
항렬자 ◯호(鎬)
◯탁(鐸)
◯용(鎔)
태(泰)◯
원(源)◯
문(汶)◯
◯표(杓)
◯왕(枉)
◯수(秀)
용(容)◯
연(然)◯
현(炫)◯
◯균(均)
◯배(培)
◯교(敎)
44 45 46 47 48
항렬자 선(銑)◯
현(鉉)◯
종(鍾)◯
◯수(洙)
◯한(漢)
◯철(澈)
미정

5.6. 참판공파

24 25 26 27 28
항렬자 주(周)◯
◯묵(默)
◯선(善) 정(庭)◯ ◯기(基) 종(鍾)◯
29 30 31 32 33
항렬자 승(承)◯ ◯희(羲)
동(東)◯
형(衡)◯
병(炳)◯
열(烈)◯
홍(烘)◯
영(煐)◯
광(炚)◯
◯재(載)
◯중(重)
◯규(圭)
◯배(培)
◯균(均)
◯격(垎)
호(鎬)◯
진(鎭)◯
석(錫)◯
용(鎔)◯
박(鉑)◯
주(鉒)◯
34 35 36 37 38
항렬자 ◯해(海)
◯하(河)
◯옥(沃)
◯유(洧)
◯홍(洪)
◯숙(淑)
상(相)◯
영(榮)◯
계(桂)◯
정(楨)◯
백(栢)◯
창(椙)◯
◯현(炫)
◯환(煥)
◯황(煌)
◯희(熙)
◯정(炡)
◯훈(熏)
은(垠)◯
준(埈)◯
지(址)◯
완(埦)◯
보(堡)◯
제(堤)◯
◯수(銖)
◯흠(欽)
◯공(釭)
◯륜(錀)
◯결(釨)
◯련(鍊)
39 40 41 42 43
항렬자 순(淳)◯
태(泰)◯
명(洺)◯
호(浩)◯
연(演)◯
유(洧)◯
◯모(模)
◯식(植)
◯두(杜)
◯군(桾)
◯표(標)
◯강(杠)
미정

5.7. 도촌공파

24 25 26 27 28
항렬자 선(宣)◯
◯춘(春)
◯증(曾)
득(得)◯
하(夏)◯
◯도(道)
◯인(寅)
행(行)◯
종(種)◯
29 30 31 32 33
항렬자 ◯렬(烈) 기(基)◯ ◯호(鎬)
◯흠(欽)
한(漢)◯
순(淳)◯
◯정(楨)
◯모(模)
◯식(植)
34 35 36 37 38
항렬자 현(炫)◯
희(熙)◯
병(炳)◯
◯곤(坤)
◯재(在)
◯규(圭)
은(銀)◯
용(鎔)◯
진(鎭)◯
◯구(求)
◯영(永)
◯홍(洪)
정(楨)◯
근(根)◯
영(榮)◯
39 40 41 42 43
항렬자 ◯환(煥)
◯형(炯)
◯섭(燮)
주(周)◯
원(垣)◯
준(埈)◯
◯석(錫)
◯탁(鐸)
◯용(鎔)
태(泰)◯
원(源)◯
문(汶)◯
◯수(秀)
◯주(柱)
◯표(杓)
44 45 46 47 48
항렬자 용(容)◯
연(然)◯
희(熹)◯
◯교(敎)
◯배(培)
◯균(均)
미정

5.8. 은암공파

24 25 26 27 28
항렬자 ◯록(祿) 현(賢)◯ 운(雲)◯ ◯모(模) 태(泰)◯
29 30 31 32 33
항렬자 ◯기(基) 종(鍾)◯ ◯영(永) 상(相)◯ ◯휴(烋)
34 35 36 37 38
항렬자 재(在)◯ ◯현(鉉) 하(河)◯ ◯율(栗) 형(炯)◯
39 40 41 42 43
항렬자 ◯규(圭) 은(銀)◯ ◯수(洙) 서(棲)◯ ◯엽(燁)
44 45 46 47 48
항렬자 준(埈)◯ ◯호(鎬) 홍(泓)◯ ◯환(桓) 경(炅)◯

6. 왕실과의 관계

6.1. 고려왕실

6.2. 조선왕실

7. 인물

이름 생몰년도 비고
근대 이전
이암(李嵒) 1297 ~ 1364 9세, 고려의 문신
이림(李琳) ? ~ 1391 도촌공파 10세, 고려의 문신
이근(李懃) ? ~ 1398 도촌공파 11세, 조선의 문신
이원(李原) 1368 ~ 1430 11세, 조선의 문신
이맥(李陌) 1455 ~ 1528 13세, 조선의 문신
이응태(李應台) 1566 ~ 1586 참판공파 17세
이괄(李适) 1587 ~ 1624 사암공파 17세, 조선의 무신, 이괄의 난
28세
이종주(李鍾宙) 1938 ~ 2023 참판공파 정치인
이수정(李秀正) 1940 ~ 참판공파 고위공무원
이종명(李鍾明) 1959 ~ 참판공파 정치인
29세
이묵(李默) 1962 ~ 참판공파 공무원
30세
이상룡(李相龍) 1858 ~ 1932 참판공파 독립운동가
이기백(李基百) 1931 ~ 2019 사암공파 군인
이진희(李振羲) 1932 ~ 참판공파 정치인
이영창(李永昶) 1932 ~ 2008 참판공파 정치인
이기준(李基俊) 1938 ~ 도촌공파 교육인, 고위공무원
이상희(李祥羲) 1938 ~ 2023 참판공파 정치인, 고위공무원
이동흡(李東洽) 1951 ~ 참판공파 법조인
이효수(李孝秀) 1951 ~ 참판공파 경제학자
이군현(李君賢) 1952 ~ 도촌공파 정치인
이해동(李海東) 1954 ~ 참판공파 정치인
이현동(李炫東) 1956 ~ 참판공파 고위공무원
이훈기(李勳基) 1965 ~ 호군공파 언론인, 정치인
31세
이진호(李進鎬) 1925 ~ 2003 도촌공파 정치인
이호영(李浩永) 1956 ~ 은암공파 고위공무원
32세
이영진(李寧鎭) 1908 ~ 1980 사암공파 정치인
이한동(李漢東) 1934 ~ 2021 도촌공파 정치인, 고위공무원
이인용(李仁用) 1957 ~ 참판공파 아나운서, 경제인
33세
이서진(李瑞鎭) 1971 ~ 참판공파 배우
이필모(李必模) 1974 ~ 도촌공파 배우
이진우(李鎭佑) 1998 ~ 참판공파 아이돌
34세
이석제(李錫濟) 1925 ~ 2011 사암공파 군인, 정치인, 고위공무원

8. 주요 집성촌


[1] 고성 이씨(88,587명)+철성 이씨(16,181명)[2] 시기상 대략 손자, 증손, 또는 멀리 가야 현손이었을 것이다.[원문] 遺乘云, 漢文帝時, 李槃中書舍人. 漢武討朝鮮時, 槃後孫, 以都護元帥, 出來仍居焉. 槃後二十四世孫璜, 而玄遠不可考.[4] 엄밀히 말하면 고성 이씨에서 철성 이씨가 따로 분파된 것이 아니라 고성 이씨가 옛날에는 철성 이씨였다. 철성이 고성의 별호이기 때문이다. [5] 다만 계보 불명인 도촌공파 후손도 적지 않다. 도촌공파의 밑에 지파(支派)가 9파나 있다. 그리고 동명이인이 많아서 족보에서 특정인을 찾기 힘들다.[6] 인터넷족보를 기준으로 은암공파 34세 이상은 없고, 33세의 생년이 분포하는 범위가 1989년부터 2019년까지이다. 따라서 60세의 항렬자를 쓰는 인물은 서기 29세기가 되어야 나타날 것이다. 다만 은암공파에서 항렬자를 사용한 것은 32세까지이고, 33세는 아직까지 항렬자를 사용한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7] 1624년 이괄의 난으로 인해 이괄의 맏형인 진사(進士) 이적(李適)이 연좌제로 화를 입게 되자, 그의 둘째 아들 이만세(李萬世)가 제주도로 피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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