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크너의 교향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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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 교향곡 제2번 C단조
(Sinfonie Nr.2 c-moll/Symphony no.2 in C minor)
오코 카무 지휘, 핀란드 국립 방송 오케스트라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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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톤 브루크너의 네 번째 교향곡. 전작인 0번과 함께 린츠에서 빈으로 옮겨가 쓴 교향곡이기도 하다. 작곡 시기는 자필보 등에 의하면 1871년 10월 11일부터 1872년 9월 11일까지. 작곡 전후에 브루크너는 오르가니스트로 해외에까지 명성이 퍼질 정도였고, 실제로 프랑스와 영국에서 파이프오르간 독주회를 열고 경연대회에 참가해 우승하는 등 나름대로 화려한 경력을 추가했다.하지만 작곡 쪽에서는 여전히 고전하고 있었는데, 이 곡도 초연 과정과 초연 무대에서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좋은 반응을 얻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브루크너가 작곡가로서 첫 성공을 거머쥔 18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점차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고, 지금은 브루크너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면서 교향곡 전문 작곡가로 발돋움하는 과도기를 상징하는 곡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2. 곡의 형태
역시 4악장 구성이고, 각각 소나타 형식(1,4악장), 론도 형식(2악장), ABA' 3부 형식 스케르초(3악장)로 되어 있다(처음 완성했을 때는 2악장과 3악장 순서가 뒤바뀐 상태였다). 하지만 이미 소나타 형식 악장들에서는 주제를 세 개 쓰는 작곡 방식이 굳어져 있고, 훨씬 주도면밀하게 곡을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자작 종교음악에서 주제를 빌어 인용하는 스킬도 0번에 이어 계속 쓰고 있는데, 특히 2악장과 4악장에서 미사 제3번의 주제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1악장에서는 브루크너가 극렬빠로 자처했던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리엔치' 에서 나오는 것과 비슷한 선율도 눈에 띈다. 브루크너가 의도적으로 그랬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바그너에게 이 곡과 후속작인 3번의 악보를 보내 평가를 부탁한 것으로 봐서는 의도적으로 인용했을 수도 있다.
이전의 세 교향곡들이 40분대라는 연주 시간이었던 것에 비해 이 곡은 50~60분대로 길이가 더 길어져 있다. 하지만 길어진 길이와는 반대로 전체적인 구조나 악상의 짜임새는 훨씬 긴밀하고 간단명료해졌고, 바이올린들의 희미한 트레몰로(빠른 연음)로 1악장을 시작하는 '브루크너 오프닝' 과 모든 악기가 일제히 다 쉬고 다음 대목으로 넘어가는 '브루크너 휴지' 스킬도 이 곡에서 제대로 입지를 굳혔다.
관현악 편성은 플루트 2/오보에 2/클라리넷 2/바순 2/호른 4/트럼펫 2/트롬본 3/팀파니/현 5부(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라는 전형적인 2관 편성 스펙. 초연판의 경우 트롬본 편성에 차이가 있다.
3. 초연과 출판
이 곡의 초연 때는 처음으로 브루크너가 그 동안 쌓은 인맥이 보탬이 됐는데, 초연을 주선한 이는 전작인 0번을 간접적으로 뻰찌먹인 지휘자 오토 데소프였다. 데소프는 자신이 상임 지휘자로 있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초연 악단으로 제공하고 연습 시간을 잡아주는 등 적극적으로 관여해 아직 '촌뜨기' 취급을 받던 브루크너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하지만 문제는 악단에서 불거졌는데, 연주용 악보(파트보)를 받아본 단원들이 연습도 하기 전에 곡의 난이도와 길이에 질려서 공연을 거부하는 등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결국 1872년으로 예정되어 있었던 초연은 보류되고 말았다. 이듬해에 가서야 다시 초연 계획이 잡혔는데, 이 때는 데소프 대신 요한 헤르베크가 나서서 고집센 빈 필 단원들을 가까스로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전곡 최초 공연: 1873년 10월 26일에 브루크너 자신의 지휘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빈에서 초연.
결론은 자기가 서툴게 지휘했던 1번과 마찬가지로 쪽박. 공연 실패와 더불어 빈 필에 곡을 헌정하려고 했던 브루크너는, 자신을 촌뜨기 취급한 단원들에게 뚜껑이 열려 헌정 의사를 철회하고 바그너의 맹우였던 프란츠 리스트에게 헌정했다.
초연 때 망한 만큼, 출판도 늦어져서 1892년에야 초판이 간행되었다. 여느 초판 악보와 마찬가지로 편집자가 악보에 다소 수정을 가한 뒤 출판되었다.
1872년 판: 최초의 형태. 2005년에 음악학자 윌리엄 캐러건의 편집으로 출판되었으며, 국제브루크너협회가 공인한 판본이다. 시모네 영, 헤르베르트 블롬스테트 등의 지휘자들이 이 판본으로 녹음하였다.
1873년 판: 초연이 이루어진 판본. 캐러건이 1990년대에 편집하였으나, 다만 2013년 현재까지 정식 출판되지 않고 있다.
1877년 판: 1938년과 1965년에 각각 브루크너 전문 연구가인 음악학자 로베르트 하스와 레오폴트 노바크의 편집으로 출판된 판본으로, 종래 약칭 '1877년판'인데, 캐러건의 1877년 판본이 등장하기 전까지 가장 많이 연주되던 판본이다.
1877년 판: 2007년에 캐러건의 편집으로 출판되었으며, 국제브루크너협회가 가장 최근에 공인한 판본이다. 기본적으로 하스와 노바크 편집의 1877년판과 틀은 같지만, 두 편집자가 1872년판을 일부 첨삭한 것을 '비학술적' 이라고 비판하며 다시 원상복구한 버전이다. 예를 들어, 1악장 마지막 총주가 마무리 되는 부분에서 트럼펫이 혼자 연주되는 악구가 있는데, 캐러건은 하스가 남긴 오류를 노바크조차 보정하지 않았다고 크게 비판하며 이를 삭제하였다. 다니엘 바렌보임, 파보 얘르비, 크리스티안 틸레만, 안드리스 넬슨스 등의 지휘자들이 이 판본으로 녹음하였다.
1892년 판: 브루크너의 제자 시릴 히나이스의 편집으로 처음 출판된 개정판(Revised version). 1877년판을 기반으로 부분적으로 첨삭함. 캐러건은 극단적으로 하스와 노바크가 남긴 판본보다 이 히나이스 개정판이 훨씬 더 작곡가의 의도에 부합한다고 평하기도 했다.
종래 가장 많이 채택되고 있는 악보는 하스와 노바크 편집의 1877년판이었으나 최근에는 캐러건의 1877년 판 채택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 몇몇 지휘자들은 1872년 미개정판이나 1873년 초연판을 택해 공연하거나 녹음하기도 한다. 미개정판은 스케르초가 2악장에, 느린 악장이 3악장에 오는 독특한 구성으로 눈에 띄고 있고, 초연판은 통상 세 대 쓰는 트롬본을 하나 늘려 네 대로 하고 있다. 브루크너가 교향곡에 트롬본 네 대를 쓴 것은 이것이 유일한 사례다. 이 초연판에 의한 연주는 쿠르트 아이히호른 지휘의 린츠 브루크너 관현악단이 일본 음반사 카메라타에 출반한 CD로 들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