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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5 15:33:33

구기란

구기란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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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 챔피언 결정전 우승
200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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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ce01>대회득점상공격상서브상블로킹상세터상리시브상디그상
2000 옐리치 토레스 고디나 스콧-아루다 포팡 구기란 리마
2004 가모바 장핑 바로스 가모바 펑쿤 장나 시코라
2008 로건 톰 칼데론 산투스 아라키 포팡 저우쑤홍 장나
2012 김연경 후커 카스트로 파비아나 스타르체바 가라이 까스티요
아래 연도부터 기록상 수상을 폐지하고 베스트팀 수상으로 변경되었다.
2016 주팅 주팅 라시치 라시치 글래스 포포비치 데비 스탬
2020 보스코비치 가라이 보스코비치 가타즈 오그네노비치 웡-오란테스 오지영
MVP · 기록상 · 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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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로상 1998~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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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1999 2000
이호
(현대자동차)
구기란
(흥국생명)
이호
(현대자동차)
김희경
(현대건설)
여오현
(삼성화재)
김희경
(현대건설)
2001 2002 2003
여오현
(삼성화재)
김희경
(현대건설)
이영수
(LG화재)
남지연
(LG정유)
이호
(현대자동차)
이현지
(현대건설)
2004 ※ 프로 출범 이후 수상자는 아래 링크를 참고.
V-리그 남자부 기록상
V-리그 남자부 베스트7
V-리그 여자부 기록상
V-리그 여자부 베스트7
여오현
(삼성화재)
구기란
(흥국생명)
MVP · 신인상 · 베스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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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흥국 구기란.png
<colbgcolor=#0057a2><colcolor=#fff> 구기란
具奇蘭 | Koo Ki-Lan
출생 1977년 3월 10일[1] ([age(1977-03-10)]세)
경상남도 마산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경남여자중학교
경남여자고등학교
경기대학교 체육학부
종교 불교
포지션 아웃사이드 히터 → 리베로
신체 170cm / 64kg
소속팀 흥국생명/천안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1995~2008)

1. 소개2. 선수 생활3. 개인 수상4. 여담5. 관련 문서

[clearfix]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배구선수. 선수 정보 흥국생명 전성기를 이끌었던 7공주 멤버중의 한 명인 월드클래스 리베로.

2. 선수 생활

2.1.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파일:구기란 프로필(2006-2007).jpg

초등학교 4학년때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처음 배구를 시작했으며, 배구 명문인 경남여자고등학교의 주장 출신으로 고등학교 때는 레프트 공격수였다. 1995년 슈퍼리그 여자부 신인 드래프트에서 거의 끝 순위로 간신히 흥국생명에 입단했다. 입단 당시 작은키로 사이드 공격수 자리를 맡기에는 무리라 프로에 와서는 리베로 포지션에서 자리를 잡게된다.[2] [3]

최광희김해란, 남지연 사이에 위치한 시대에 활동했고. 1998년 슈퍼리그의 리베로 상을 받았으며 2002년 세계선수권에서 리시브, 디그 최우수선수에도 선정됐다. 몸 담은 팀은 만년하위 흥국생명이었으나 선수 말년인 2006년에 김연경-황연주로 이어지는 전성기를 함께하며 꿈에 그리던 우승 트로피를 경력에 담았다.​ 2000~2006년 까지 국가대표 리베로로 활동했던 구기란은 2007, 2008년 두해 연속으로 무릎 수술을 받으면서 회복하지 못했다.# 결국 2007~2008 시즌을 마친 후, 결혼과 함께 현역에서 은퇴했다.[4]

2.2. 국가대표 경력

3. 개인 수상

4. 여담

5. 관련 문서



[1] 10월 3일로 보는 곳도 있으나 배구연맹 홈페이지나 국제스포츠 정보센터 자료에 의하면 3월 10일이 출생일로 기록돼있다.[2] 이당시 흥국 주전 레프트는 정은선이었으며, 자주 국가대표로 뽑혔었다. 입단 동기인 양숙경도 주전 레프트 한자리를 차지했고 국가대표에 간간히 이름을 올렸었다.[3] 90년대 초반 까지는 1m 70cm대의 국가대표급 사이드 공격수들이 꾀 많았다. 따라서 유소년 시절 구기란이 사이드 공격수를 했던게 무리는 아니다. 대표적인 선수로는 박인실(1.74), 황경자(1.73), 김화복(1.70), 심순옥(1.74), 지경희(1,76), 장윤희(1.70)등이 있었다.[4] 최고참인데도 약소한 은퇴식이나 구단 홈페이지에 공지 하나 없이 소리소문없이 은퇴했다. 같은 시기에 흥국에서 최효진, 이현정, 조난연도 은퇴를 했지만 이들은 구단이 공지글도 올리고 선수들이 송별회도 해주었다.# 팬들은 2008~2009 시즌을 앞두고 선수 등록 기한 마감인 7월에 KOVO의 은퇴선수 발표 명단을 보고 알았을 정도이다. 구단이 한 시즌 전에 이영주의 은퇴식을 치러준 것을 보면 참 알 수 없이 은퇴한 케이스이다.[5] 지금은 흥국생명의 숙소가 1인 1실로 바뀌었지만, 김연경이 입단할 당시에는 2인 1실로 김연경은 최고참이던 구기란과 같은 방을 쓰기도했다.[6] 당시 관행으로 선수가 개인상을 수상하고 상금을 받으면,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나눠 가지는게 일반적인 일이었다. 이런 안 좋은 관행을 구기란이 타파한 것이다. 당시 흥국생명을 맡고 있던 이정철 감독도 구기란의 의견에 찬성하기도 했다.[7] 당시 LG정유는 변변한 주전 세터가 없어 고생하던 차에 정지윤을 영입했다. 당시는 GS칼텍스가 흥국생명과 탱킹을 벌일 정도로 암흑기였고, 좋은 세터를 드래프트에서 지명하든 트레이드해오든 간에 어떻게든 견뎌야 했던 시기였다.[8] 김철용 감독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 선수들에게 예전부터 종교를 강요하는 일도 있었고, 훈련 방식이 스파르타식으로 구시대적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들로 트러블이 났던 것으로 보인다.[9] 구기란이 자신의 숙소에 달마도를 걸어놓았는데, 김철용 감독이 구기란이 아끼던 달마도를 태워 없애 버려서 이에 화가 난 구기란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계기중의 하나가 되었을 것이라는 카더라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