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란의 수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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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7a2><colcolor=#fff> 구기란 具奇蘭 | Koo Ki-Lan | |
출생 | 1977년 3월 10일[1] ([age(1977-03-10)]세) |
경상남도 마산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경남여자중학교 경남여자고등학교 경기대학교 체육학부 |
종교 | 불교 |
포지션 | 아웃사이드 히터 → 리베로 |
신체 | 170cm / 64kg |
소속팀 | 흥국생명/천안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1995~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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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의 前 배구선수. 선수 정보 흥국생명 전성기를 이끌었던 7공주 멤버중의 한 명인 월드클래스 리베로.2. 선수 생활
2.1.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초등학교 4학년때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처음 배구를 시작했으며, 배구 명문인 경남여자고등학교의 주장 출신으로 고등학교 때는 레프트 공격수였다. 1995년 슈퍼리그 여자부 신인 드래프트에서 거의 끝 순위로 간신히 흥국생명에 입단했다. 입단 당시 작은키로 사이드 공격수 자리를 맡기에는 무리라 프로에 와서는 리베로 포지션에서 자리를 잡게된다.[2] [3]
최광희와 김해란, 남지연 사이에 위치한 시대에 활동했고. 1998년 슈퍼리그의 리베로 상을 받았으며 2002년 세계선수권에서 리시브, 디그 최우수선수에도 선정됐다. 몸 담은 팀은 만년하위 흥국생명이었으나 선수 말년인 2006년에 김연경-황연주로 이어지는 전성기를 함께하며 꿈에 그리던 우승 트로피를 경력에 담았다. 2000~2006년 까지 국가대표 리베로로 활동했던 구기란은 2007, 2008년 두해 연속으로 무릎 수술을 받으면서 회복하지 못했다.# 결국 2007~2008 시즌을 마친 후, 결혼과 함께 현역에서 은퇴했다.[4]
2.2. 국가대표 경력
- 2000 FIVB 월드그랑프리 (5위)
- 2000 시드니 올림픽 (8위)
- 2001 FIVB 월드그랜드챔피언십 (6위)
- 2002 FIVB 세계선수권대회 (6위)
- 2002 부산 아시안게임 (준우승)
- 2003 FIVB 월드컵 (9위)
- 2004 FIVB 월드그랑프리 (11위)
- 2005 FIVB 월드그랑프리 (9위)
- 2005 아시아선수권대회 (4위)
- 2005 FIVB 월드그랜드챔피언십 (6위)
- 2006 FIVB 월드그랑프리 (9위)
3. 개인 수상
- 1998 슈퍼리그 리베로상
- 2000 시드니 올림픽 리시브 1위
- 2002 FIVB 세계선수권 리시브상, 디그상
- 2004 KT&G V-투어 리베로상
4. 여담
- 구기란의 행보를 요약하는 글이 있다.
- 김연경이 입단할 2005년 당시 구기란은 팀내 유일한 1970년대생의 최고참이었으며, 김연경이 제일 어려워했던 선배였다.[5] 신입이 당연히 기가 죽기 마련이긴 하겠지만 순해 보이는 외모와는 완전히 다른 구기란의 카리스마는 후술할 여러 사례들이 증명한 바가 있어 수긍이 갈 정도다.
- 2002 세계선수권대회 리베로상을 수상한 구기란의 상금 20만 달러를 대한민국배구협회가 갈취한 사건이 있었다. 국제관례상 국제대회 부문별 수상자는 선수 본인 60%-소속국가 협회 30%-소속팀 10%로 분배하도록 되어있는데, 구기란은 상금의 배분에 선수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음을 들어 이의를 제기했다. 구기란이 이를 공론화하자, 결국 관례대로 상금을 구기란에게 주고 거기에 약간 생색내기로 배구협회 주관으로 2003년에 특별우수선수상을 주는 선에서 마무리지었다. 참고로 상금은 구기란의 계좌에 입금된 게 아니라 배구협회의 계좌에 입금되었고, 한동안 선수에게 고지되지 않았다고 한다. ##[6]
- 흥국에서만 활약했던 180cm의 거포 양숙경(1977년생)이 2003년에 동기 구기란과 파벌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파벌 싸움의 이유로는 주장인 구기란의 억압적인 태도에 팀원들이 불만이 생겨난 것으로, 흥국생명은 '양숙경과 정지윤이 2003년 일본 전지훈련 도중 다른 선수들과 불화를 빚어 선수단 분위기를 해치고 있다는 이유로 이들을 팀에서 내보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였고 그 결과 양숙경은 은퇴를 하게 된다. 반면 정지윤은 은퇴할 뻔하다가 다시 LG정유로 이적했고[7], 이후 실업리그를 거쳐 2017년까지 선수생활을 이어나갔다. 이 파벌 싸움은 기사로 나오기도 했다. 이 사건이 끝인 줄 알았지만 다음 해에 더 큰 사건이 벌어진다.
- 2005-06시즌 일신여상 114연승과 호남정유 92연승을 만들어낸 여자배구 레전드 감독 김철용이 시즌 중에 황현주 감독을 밀어내고 흥국생명의 사령탑이 된다. 그해 9월 13일 새벽 선수 10명이 숙소를 무단이탈하는데 전날 세화여고와의 연습경기 중 김철용 감독 앞에서 수건을 내팽겨치며 자리를 떠나버렸던 최고참 구기란이 주도한 일로, 일명 '구기란의 난'으로 불린다.[8][9] 내가 책임 지겠다, 회사와는 이야기가 끝났다며 후배들 10명을 이끌고 나와 전임 단장인 오용일 당시 흥국화재 사장을 찾아가서 김철용의 해고를 이끌어냈다. 김철용 감독의 해고 사유는 선수들과 종교적 갈등을 빚으며 관리 책임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였다. 당시 김철용 감독 밑에서 코치로 있었고 호남정유 감독 시절 제자였던 이도희도 같이 짤려 나갔다.
- 프로필 사진에서 볼 수 있듯히 귀고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당시 현재보다 팀 규율이 엄격해 아무나 귀고리를 할 수 없었다. 2005년 당시 흥국생명에 귀고리를 할 수 있는 선수가 2명뿐이었다. 11년차 구기란과 8년차 이영주. 7년차 이하는 귀를 뚫을 수 없다는 내부 규율 때문이다. 머리를 기를 수 있는 연차는 3년차이고, 염색은 2년차부터 가능했으나, 구기란이 최고참이 된 이후로는 머리 염색같은 건 풀어줘서 당시 여자배구팀들 중 유일하게 신인선수가 염색을 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황연주, 김연경의 입단, 호성적과 맞물려 흥국생명은 이른바 7공주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 은퇴 후 결혼했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근황이 전해지지 않았는데, 2019년에 진주교육대학교 내에 있는 카페에서 근무 중이었던 게 목격됐다(제목: 울학교 카페에 여자배구 프로선수 출신이 커피만들어주심). 이어 2020년 초 진주교대체육과의 배구 동아리팀인 플라잉의 여자부 훈련에 참여하여 학생들을 지도했다.
- 한국 여자 배구계에 족적을 남겼는데도 은퇴 후에는 배구와 아예 담을 쌓고 살고 있다. 레전드들은 보통 은퇴를 하게 되면 유소년 감독이나 배구 교실을 하든지 관련 일에 잠시라도 종사하는 게 다반사이고 배구인들의 모임에도 나가는데, 구기란은 전혀 그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배구팬들 사이에서는 협회와의 갈등, 여러 문제들을 일으킨 선례들로 인해서 배구계에서 찍힌 거 아니냐는 말도 듣고 있다.
5. 관련 문서
[1] 10월 3일로 보는 곳도 있으나 배구연맹 홈페이지나 국제스포츠 정보센터 자료에 의하면 3월 10일이 출생일로 기록돼있다.[2] 이당시 흥국 주전 레프트는 정은선이었으며, 자주 국가대표로 뽑혔었다. 입단 동기인 양숙경도 주전 레프트 한자리를 차지했고 국가대표에 간간히 이름을 올렸었다.[3] 90년대 초반 까지는 1m 70cm대의 국가대표급 사이드 공격수들이 꾀 많았다. 따라서 유소년 시절 구기란이 사이드 공격수를 했던게 무리는 아니다. 대표적인 선수로는 박인실(1.74), 황경자(1.73), 김화복(1.70), 심순옥(1.74), 지경희(1,76), 장윤희(1.70)등이 있었다.[4] 최고참인데도 약소한 은퇴식이나 구단 홈페이지에 공지 하나 없이 소리소문없이 은퇴했다. 같은 시기에 흥국에서 최효진, 이현정, 조난연도 은퇴를 했지만 이들은 구단이 공지글도 올리고 선수들이 송별회도 해주었다.# 팬들은 2008~2009 시즌을 앞두고 선수 등록 기한 마감인 7월에 KOVO의 은퇴선수 발표 명단을 보고 알았을 정도이다. 구단이 한 시즌 전에 이영주의 은퇴식을 치러준 것을 보면 참 알 수 없이 은퇴한 케이스이다.[5] 지금은 흥국생명의 숙소가 1인 1실로 바뀌었지만, 김연경이 입단할 당시에는 2인 1실로 김연경은 최고참이던 구기란과 같은 방을 쓰기도했다.[6] 당시 관행으로 선수가 개인상을 수상하고 상금을 받으면,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나눠 가지는게 일반적인 일이었다. 이런 안 좋은 관행을 구기란이 타파한 것이다. 당시 흥국생명을 맡고 있던 이정철 감독도 구기란의 의견에 찬성하기도 했다.[7] 당시 LG정유는 변변한 주전 세터가 없어 고생하던 차에 정지윤을 영입했다. 당시는 GS칼텍스가 흥국생명과 탱킹을 벌일 정도로 암흑기였고, 좋은 세터를 드래프트에서 지명하든 트레이드해오든 간에 어떻게든 견뎌야 했던 시기였다.[8] 김철용 감독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 선수들에게 예전부터 종교를 강요하는 일도 있었고, 훈련 방식이 스파르타식으로 구시대적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들로 트러블이 났던 것으로 보인다.[9] 구기란이 자신의 숙소에 달마도를 걸어놓았는데, 김철용 감독이 구기란이 아끼던 달마도를 태워 없애 버려서 이에 화가 난 구기란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계기중의 하나가 되었을 것이라는 카더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