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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1 21:42:29

구미시/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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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 행정구역 변천사
일선군
(一善郡, 삼국)
숭선군
(嵩善郡, 757)
선산군
(善山郡, 1895)
선산군
(1914)
선산군 선산군
(1978)
구미시
(1995)
선산군 구미읍
(1963)
구미시
(龜尾市, 1978)
사동화현
(斯同火縣, 삼국)
인동현
(仁同縣, 757)
인동군
(仁同郡, 1895)
칠곡군 인동면
(1914)
칠곡군 인동면


1. 삼국시대 ~ 후삼국시대

백제신라의 영토 확장으로 인한 각축장이 되었다가 점차 신라의 영역에 편입되었다. 신라 초기에는 일선군(一善郡)이었고 616년(진평왕 38) 일선군은 일선주로 승격하였다. 통일신라 때인 757년(경덕왕 16)에 일선주는 숭선군(嵩善郡)으로, 사동화현은 인동현(仁同縣)으로 개칭되었다. 9주 5소경상주에 속했다.

후삼국 시대에는 이 일대에서 고려와 후백제가 삼국통일 운명을 건 마지막 전투인 일리천 전투를 펼쳤다.

고려가 삼국을 통일한 뒤에는 1914년까지의 선산군 지역인 일선군(一善郡)과 1914년까지의 인동군(특히 구 인동면) 지역의 사동화현(斯同火縣)이 있었다.

2. 고려

995년(성종 14)에 숭선군이 선주(善州)로 승격하였다. 그러다가 1143년(인종 21)에 일선현으로 강등되었다.

3. 조선

1413년(태종 13)에 일선현에서 선산군(善山郡)으로 승격됐다. 이 때 선산군의 중심지가 현재의 선기동(선주원남동)[1]에서 선산읍 동부리, 서부리로 이동하였다. 선산군으로 승격되고 2년 뒤에는 선산도호부로 승격됐다.

1895년 23부제선산군, 인동군은 대구부에 속하였다. 그러다가 1896년 선산군, 인동군은 다시 경상북도에 속하였다.

4. 일제강점기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인동군이 폐지되어 칠곡군에 병합되었고 선산군은 존속되었다. 당시 선산의 일본어 독음은 ぜんさん. 구미는 きび였다.

5. 대한민국



[1] '선기(善基, 일선 고을의 터)', '선주(善州)'라는 동명을 통해 알 수 있다.[2] 신평3동에는 신부동(현 공단동 북부)과 칠곡군 북삼면 낙계동(현 공단동 남부) 주민들이 이주해 왔다.[3] 낙계동, 신부동, 광평동(일부), 비산동(일부), 사곡동(일부), 임은동(일부)를 조합하여 신설되었다.[4] 신평1동과 신평2동을 신평1동으로 합병하고, 신평3동을 신평2동으로 개칭했다.[5] 원평1~5동을 재조합해서 원평1동과 원평2·3동으로 개편했다. 원평6동은 원남동에 편입되었다.[6] 이 해부터 경상북도 읍·면에 있는 '동'이 '리'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