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국의 크고 작은 산에서 자생하는 고유의 식물인 철쭉처럼 어디서든 씩씩하고 건강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구영 어린이들의 건강한 몸과 마음을 나타낸다. 산에서 잘 자라는 철쭉의 끈기는 어려움을 이겨내는 구영 어린이들의 강한 의지를, 탐스러운 꽃은 구영 어린이들의 꿈이 활짝 피어나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
상가와 빌라들에 둘러 쌓여있는 현재와 달리 과거 구영초등학교 일대는 언덕을 끼고 있는 농촌과 벌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990년대 들어서 중규모의 아파트단지가 입주면서 현재의 '구(舊) 구영지구'라고 불리는 지역이 개발되었다. 이 시기에 맞물려서 폐교가 되니마니 소리가 나오던 구영분교에 학생수가 폭증하면서 1992년에는 구영국민학교로 승격이 되었다.[4]
지금에야 구영리에 초등학교가 몇 군데가 더 있기에 먼 곳까지 통학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당시에는 구영리의 유일한 초등학교였기에[5] 구영리의 서쪽 입구인 점촌교 인근 아파트 단지나 구영리 동쪽에 중촌이나 대리마을에 사는 어린이들은 수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걸어서 등교해야 했다.
다이빙 국가대표를 다수 배출한 만큼 다이빙이 유명하다.[6] 어느정도냐면 다이빙때문에 시내에서 전학을 학생까지 있을 정도다. 한빛관을 들어가자마자 메달을 목에 건 학생들의 사진이 있으며, 학교 정문에서는 다이빙 신입선수 모집 현수막과 각종 수영대회에서 입상한 학생들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23년 6월 네이버 거리뷰를 참고하자.
[기준] 2023년[기준][3] 교원 53명, 직원 17명[4] 1990년만 해도 전교생이 100명이 안되었는데 이후 매년 2배 가까이 인원이 늘어 1994년에는 전교생이 1000명이 넘었다. 그리고 이 때부터 구영초등학교의 과밀문제는 건물 증축공사가 계속되고 울주명지초등학교(2008년)와 호연초등학교(2007년)가 개교하여 학생이 분산이 되는 15년이 넘는 기간동안 계속 빠짐없이 소개되어 나오는 단골 기삿거리가 되었다.1991년 기사[5] 운동장을 월요일 조례 때마다 가득 메울 정도로 인원 규모가 상당했다. 당시 구영리의 유일한 초등학교였기에 가능한 일. 하지만 교실부족이 심각해서 교무실을 줄여가면서 임시방편으로 교실수를 늘리고, 컴퓨터 실습실을 확보할 공간이 나지 않아서 또 그 교무실 일부를 컴퓨터 실습공간으로 두었을 정도였다. 그러고서도 한 반에 50~60명을 밀어넣어야 했을 정도라서, 학생수가 없는 시골학교가 아닌, 학급과밀이 일상이었던 시내의 국민학교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1994년 기사. 현재는 울주명지초등학교와 호연초등학교가 개교하면서 다소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관내에서 과밀학교 탑급을 찍는데다가, 구영초를 포함한 세 학교 모두 울산 내에서 과밀학교로 꼽히고 있다.2012년 기사[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