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권력에의 의지 (Der Wille zur Macht)』는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스 니체와 니체의 조수였던 하인리히 쾨젤리츠(페터 가스트)가 니체의 유고를 편집하여 작성한 책이다.원래 프리드리히 니체가 생전에 구상했지만 포기했던 책에 대한 미편집 유고인데, 이 유고의 일부를 가지고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스 니체가 하인리히 쾨젤리츠(페터 가스트)와 함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임의로 선택하고 텍스트를 변형 · 훼손하는 식으로 편집하여 1906년에 출간한 책이다. 이 책은 이후 나치 독일에서 많이 읽혀 '왜곡된 니체 사상'이 널리 퍼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방대한 문헌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현재 정본으로 평가받는 '비평판 니체 전집'에서는 이 책을 니체의 저작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2. 상세
『권력에의 의지』는 원래 프리드리히 니체가 생전에 구상하고 준비한 책의 제목이다. '권력에의 의지(힘에의 의지[1])'는 1885년 8월의 노트에 처음으로 책의 제목으로 제시되는데, 이후의 노트에는 '권력에의 의지'라는 제목으로 체계적이고 일반적인 내용을 서술하겠다는 계획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때 이것은 다른 많은 저술 계획 중 하나였으며, '권력에의 의지' 저술 계획도 '모든 생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시도', '모든 가치의 전도에 대한 시도' 등의 다른 부제들을 갖기도 하고, 때로는 제목 없이 목차들만을 가지고 등장하기도 한다.[2]그중 '1886년 여름. 질스마리아'라는 날짜가 쓰인 유고에 '권력에의 의지'를 네 개의 부분, 즉 '허무주의', '가치에 대한 비판', '가치의 전도', '영원회귀'로 구성하겠다는 계획이 새롭게 등장한다. 이후 이 네 요소들은 1887년 3월 17일에 쓰인 또다른 계획에서, '유럽 허무주의', '최고의 가치들에 대한 비판', '새로운 가치 설정의 원리', '교육과 사육'으로 제목이 바뀐다. 그리고 니체의 여동생과 쾨젤리츠는 이 1887년의 계획을 아무런 설득력 있는 논거나 정당성 없이 그들의 편집본에 가장 적합한 계획으로 삼아, 1880년대 일부 미공개 유고(1883-1888)를 임의로 편집하여 『권력에의 의지』를 정식으로 출판한다.[3]
즉, 이 책은 니체의 여동생과 쾨젤리츠가 니체의 유고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자의적으로 선택하여 만든 편집본이고, 그 와중에 텍스트의 앞뒤 맥락이 짤리고 텍스트에 대한 직접적인 왜곡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오늘날 학계에서는 이 편집본을 니체의 철학적 주저라고는 볼 수 없다고 평가한다.[4]
3. 잘못된 점
이 책을 니체의 주저로 볼 수 없다는 수많은 지적이 있어왔는데, 대표적으로 잘못된 점은 다음과 같다.[5]- 니체가 이 시기에 남긴 374개의 유고 중에서 104개는 『권력에의 의지』에 수록되지 않는다.
- 나머지 270개의 단편들 중 137개의 단편은 편집자의 의도에 의해 훼손되었다. 종종 소제목이 빠지고, 문장 전체가 빠지기도 하고 텍스트의 연관에서 빼내어져 파편화된다.
- 137개의 단편 중 36개 유고는 교정과 독해에서 실수가 범해진다.
- 니체의 여동생은 《우상의 황혼》의 핵심인 '1888년 3월 25일 니스'라고 적힌 유고를 훼손했다. 이 글은 "어떻게 '참된' 세계가 결국 꾸며낸 이야기가 되어버렸는지"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유고이다.
- 무엇보다도 니체 스스로가 자신의 작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권력에의 의지』 저술 계획을 궁극적으로 포기해버렸다는 점이다. 『권력에의 의지』를 쓰려고 남겨둔 메모의 대부분은 니체의 다른 책을 만드는데 사용된다는 점이 바로 그 증거다.
- 니체는 쾨젤리츠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이 이 책을 출판할 의도가 없음을 알린다.
- 니체는 1888년 8월 말에 이 책을 다시 준비하지만, 이때 그는 '권력에의 의지'라는 제목을 포기하고, 『가치의 전도』라는 제목으로 바꾼다.
- 1888년 9월 3일에 『가치의 전도』에 대한 서문이 작성된다. 그 1부를 별다른 고민 없이 출판하려고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니체가 쓴 후, 이것의 일부는 『우상의 황혼』이라는 책으로 출판한다.
- 나머지 내용은 『안티크리스트』, 『니체 대 바그너』,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소스 송가』가 된다. 즉, 『권력에의 의지』로 구상했던 대부분의 내용이 이미 다른 책의 내용으로 들어간 것이다.
즉 니체는 해당 유고의 부분을 생전에 자신의 책으로 다 출간해버렸으므로, 그 유고를 가지고 니체의 여동생과 쾨젤리츠가 다시 임의로 편집하여 출간해버린 『권력에의 의지』는 니체의 책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1960년 대까지 니체의 사상을 가장 잘 표현한 책이라고 연구되어왔으며, 하이데거도 이 책에 근거하여 니체를 잘못 해석한 바 있다. 예를 들면, 하이데거는 『권력에의 의지』 617번의 '요약(Rekapitulation)'을 인용하면서, 해당 내용이 니체 사상의 요약이자 정수라고 생각하고 니체의 사상이 의도하는 바가 '서양 형이상학의 종말'인 것이라고 해석했는데, 사실 '요약(Rekapitulation)'이라는 말은 쾨젤리츠가 삽입한 것이다.[6] 또한 알프레드 바움러도 『권력에의 의지』 95번의 내용을 "탁월한 묘사"라고 극찬한 바 있으나, 그 글은 니체의 주장이 아니라 페르디낭 브뤼느티에르가 1887년에 쓴 《프랑스 문학사 비판 연구》에서 발췌한 내용을 니체가 단지 독일어로 의역한 메모에 불과하다.
4. 기타
- 『권력에의 의지』는 나치선동가들에게 악용되었는데, 니체 전집의 편집자 발터 카우프만(Walter Kaufmann)은 엘리자베스가 인종차별주의적이고 우생학적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니체의 유고를 자의적으로 편집하여 『권력에의 의지』를 작성했기 때문이라고 지적을 하기도 했다. 다만 최근(2015년)에는, 엘리자베스가 주도적으로 왜곡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학자들이 니체의 사상을 왜곡해왔던 것이 널리 퍼져 있었고 이에 영향을 받아 엘리자베스가 그런 주제를 강조하는 쪽으로 편집하게 되었던 것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즉, 이 책의 선택적 독해와 왜곡된 편집은 엘리자베스 탓이 아니라 그런 영향을 준 그 시대 학자들의 탓이 더 크다는 주장이다.[7]
[1] 힘에의 의지라고도 한다. 권력과 힘 모두 영어로 power이고 독일어로는 Macht이다. 협의의 정치용어로 오해가 있는 권력보다는 넓은 의미에서 생(生)의 의지를 추동시키는 것으로서의 Macht, 힘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실제로 책세상 니체 전집에서는 '힘에의 의지'로 번역했다. 하지만 그동안 이 책은 일본어 중역에 영향을 받아 '권력에의 의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이후 계속해서 이 이름으로 굳어졌다. 한국에서 이 책을 말할 때 보통 '권력에의 의지'로 통한다. 오역이라고 보기에는 힘든데, 권력에 가까운 뜻인 Macht와 힘에 해당하는 Kraft를 니체가 평소 철저히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았다.[2]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전집 21(KGW ⅤⅢ₃) 유고(1884년 초~1889년 1월 초)』 백승영 옮김, 서울, 책세상, 2013, p.574~575[3]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전집 21(KGW ⅤⅢ₃) 유고(1884년 초~1889년 1월 초)』 백승영 옮김, 서울, 책세상, 2013, p.575~576[4] 《힘에의 의지(권력에의 의지)》란 1885~1888년에 니체가 남긴 유고들을 편집해 만든 책(1906)을 말한다. 즉, 하인리히 쾨젤리츠와 니체의 여동생인 엘리자베스 니체가 이 유고들을 고의적으로 훼손하고 자의적으로 삭감하면서 편집한 책인 것이다. 그런데도 이 편집본은 소위 니체의 '주저' 혹은 '필생의 사업'이라고 오랫동안 이해되어왔으며, 이 편집본의 탄생과 사용이 니체 철학에 대한 오랜 기간에 걸친 오해의 외적 조건을 형성했다. 이 편집본을 니체의 철학적 주저로 보는 것이 학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은 오늘날 다행스럽게도 학계에서는 인정되고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전집 21(KGW ⅤⅢ₃) 유고(1884년 초~1889년 1월 초)』 백승영 옮김, 서울, 책세상, 2013, p.574)[5]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전집 21(KGW ⅤⅢ₃) 유고(1884년 초~1889년 1월 초)』 백승영 옮김, 서울, 책세상, 2013, p.576~579[6] 이는 1911년판의 전집에서 이미 언급된 바 있다.[7] 『권력에의 의지』를 국역한 이진우 교수도 이 연구를 보고 엘리자베스 니체를 재평가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상하게도 이진우 교수는 더 나아가 『권력에의 의지』 텍스트 자체도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면서 마치 이 책이 니체의 사상을 대표할 수 있는 책이라는 듯이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권력에의 의지』가 니체의 의도를 제대로 대변하고 있다는 논문은 하나도 나온 적이 없다. (이진우 교수가 자신의 국역본에서 해당 내용의 논문을 레퍼런스로 제시하지 않고 있는 점으로 볼 때, 엘리자베스 니체에 대한 연구를 오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책을 더 팔기 위한 상술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