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엘리자베스 니체 Elisabeth Nietzsche | |
본명 | 엘리자베스[1] 푀르스터[2]니체 Elisabeth Förster-Nietzsche |
태어날 때 이름 | 테레제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니체 Therese Elisabeth Alexandra Nietzsche |
출생 | 1846년 7월 10일 |
독일 연방 작센 왕국 뢰켄 | |
사망 | 1935년 11월 8일 (향년 89세) |
나치 독일 바이마르 | |
국적 | [[틀:깃발| (1871-1918) [[틀:깃발| ]][[틀:깃발| ]][[바이마르 공화국| ]](1918-1933) (1933-1935) | ]][[틀:깃발| ]][[프로이센 왕국| ]](1846-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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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작가. 프리드리히 니체의 여동생. 1894년 '니체 문서 보관소'를 만들고, 니체 사후에 니체의 유고를 임의로 편집해 『권력에의 의지』를 출간했다.2. 상세
니체와는 2살 터울로 남매는 매우 친했으나, 여동생 엘리자베스가 유명한 반유대주의자 베르나르트 푀르스터와 결혼하자, 니체는 동생과의 연을 끊었다.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남편은 1887년 파라과이로 건너가 독일인 정착촌 '누에바 게르마니아'를 설립했다. 하지만 정착촌 계획은 구성원들의 불화로 인해 실패로 돌아가 남편인 베르나트르 푀르스터는 자살했고, 엘리자베스는 독일로 돌아왔다.이 무렵 니체는 광증에 완전히 지배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약삭빠른 여동생 엘리자베스는 오빠의 책에 쏟아지는 국제적 관심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집에다가 '니체 문서 보관소'를 짓는 것이었다. 니체가 죽은 이후에는 유고들을 모아 자의적으로 편집해 『권력에의 의지』를 출간했고, 이 책은 당대에 널리 알려져 니체의 사상을 대표하는 책으로 평가받았다. 니체 사상의 과격한 부분을 임의적으로 발췌하는 식으로 편집된 이 책은 나치를 옹호하는 학자들이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데에 사용되었으며, 그 공로로 엘리자베스는 노벨 문학상 후보를 4번이나 추천 받기도 했다.
1933년 히틀러가 집권했을 때 엘리자베스의 니체 문서 보관소는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았다. 히틀러가 니체 문서 보관소에 직접 오기도 했는데, 이때 엘리자베스는 히틀러에게 니체의 지팡이를 선물했다.
일찍 죽은 니체와는 다르게, 아이러니하게도 엘리자베스는 장수했다. 89살이 되던 해에 평화롭게 죽었는데, 이 또한 니체의 비참한 말년과 비교된다.[3] 장례식에는 히틀러가 참석하여 화환을 내려놓았다.
3. 저술
3.1. 권력에의 의지
4. 여담
- 엘리자베스 니체가 왜곡한 니체의 사상은 나치의 이데올로기 선전에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단, 최근에는 엘리자베스 니체의 고의적인 왜곡 때문에 나치의 선전도구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그전부터 그 시대의 학자들이 왜곡했던 것을 엘리자베스 니체가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다는 연구도 있다.[4]
[1] 외국어 표기법에 따라서 '엘리자베트'라고 표기되기도 하고, 같은 표기법에 따라서 관용어으로 쓰일 때는 '엘리자베스'로 표기되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수 권의 니체 전기(뤼디거 자프란스키의 『니체』, 수 프리도의 『니체의 삶』 등)에 따라서 관용어 '엘리자베스'로 표기한다.[2] 베르나르트 푀르스터와 결혼하여 이름에 '푀르스터'가 붙여졌다.[3] 물론, 니체는 고통이 없는 평화로운 삶을 원하진 않았을 것이다. 엘리자베스의 평화로운 삶은 니체가 그토록 싫어했던 '마지막 인간'에 해당한다. 실제로 니체는 자신의 여동생을 혐오한다고 책에다가 말하기도 했다.[4] 물론 엘리자베스가 무죄라고 하기에는 엘리자베스 본인도 반유대주의자였기 때문에, 잘못이 아예 없다고는 볼 수 없다. 또한 나치를 옹호하는 학자들이 왜곡한 것을 엘리자베스가 순진하게(?) 따른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엘리자베스에게 면죄부를 주는 근거가 될 순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