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4년(중종 39) ~ 1593년(선조 26) 11월 21일
1. 개요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안동(安東)[1], 자는 사원(思遠), 호는 묵암(默菴).2. 생애
1544년(중종 39) 경상도 선산도호부 신곡면 월동(現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월림1리 월골마을)에서 아버지 월곡(月谷) 권종(權鍾)[2]과 어머니 김해 김씨 사이에서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3]임진왜란 이전의 생애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려진 게 없다. 그의 생애는 임진왜란이 시작되면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된다. 왜군이 임진왜란 초기 경상도 지역에 먼저 상륙함에 따라서 많은 경상도 지역의 성이 공격당하였는데, 김해성도 이들 중 하나였다. 당시 김해도호부사 서예원이 도망가는 바람에, 권탁이 자처하고 김해성의 수성장 역할을 맡았다. 권탁은 선조국문유서를 지니고 왜군 진영에 포로로 잡혀있는 조선 양민 100여 명을 구출하는데 성공하나, 구출 이후 김해성에서 상처가 덧나서 순국하였다.
1722년(경종 2) 1월, 장증손자 권재도(權載道) 등의 상소로 통정대부(通政大夫) 장례원 판결사(判決事, 정3품)[4]에 추증되었다.
이러한 충심을 기리고자, 조선 후기인 1870년(고종 7)에 이르러 선조어서각(宣祖御書閣)이 건립되었다. 김해시에서는 권탁 장군을 김해의 인물로 지정하는 등, 역사성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