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e Carbine 그린 카빈 | |||
<colbgcolor=#c7c7c7,#353535><colcolor=#000,#fff> 종류 | <colbgcolor=#ffffff,#121212><colcolor=#000,#fff>카빈 | ||
원산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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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7c7c7,#353535><colcolor=#000,#fff> 역사 | <colbgcolor=#ffffff,#121212><colcolor=#000,#fff>1855년~1865년 | ||
개발 | 제임스 듀렐 그린 | ||
개발년도 | 1854년 | ||
생산 | 매사추세츠 암즈 컴퍼니 | ||
생산년도 | 1855년~1857년 | ||
생산수 | 2,300정 | ||
사용국 | [[틀:깃발|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틀:깃발|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 ]]||
사용된 전쟁 | 남북 전쟁 | ||
세부사항 | |||
탄약 | .54구경 | ||
급탄 | 단발 후미장전식 | ||
작동방식 | 메이너드 테이프 방식 | ||
총열길이 | 457mm (18인치, 영국군 사양) 559mm (22인치, 미군 사양)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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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Forgotten Weapons의 리뷰 영상 |
2. 상세
1854년에 해당 카빈에 대한 특허를 취득한 후, 이듬해인 1855년부터 매사추세츠에 소재한 매사추세츠 암즈 컴퍼니에서 생산을 시작했다. 미군에서 테스트를 거친 후 그럭저럭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약 300정 정도가 미군에 현장 테스트용으로 인계되었으나 결국 미군에서 채택은 불발되었다. 그린은 해외로의 판매를 물색했고, 마침 크림 전쟁을 치르고 있던 영국군이 해당 카빈에 관심을 갖고 2,000정을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린 카빈은 크림 전쟁이 종전된 1856년까지 영국에 인도되지 않아 실전에서 사용되지 못했다. 후술할 몇 가지 문제점으로 인해 결론적으로 영국군에서도 공식적으로 채택되지 않았으며, 일부 수량은 런던 탑 창고에 보관되고, 대부분은 파기되거나 민간으로 불하되었다. 일부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남북 전쟁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그린 카빈은 당대에 등장한 실험적인 후미장전식 총기들 중 하나였다. 우선 보편적인 퍼커션 캡이 아닌 메이너드 테이프 뇌관 방식을 차용했고,[2] 그 때문에 총에도 메이너드의 특허라는 표시가 각인되었다. 방아쇠도 앞뒤로 2개가 달려 있었는데, 뒤쪽에 달린 방아쇠가 격발용이었고 앞쪽의 방아쇠는 브리치 시스템을 조작하는 데 사용되었다. 장전하기 위해서 앞쪽의 방아쇠를 누른 상태에서 총열을 반시계 방향으로 돌림으로써 총열이 앞으로 튀어나왔는데, 노출된 약실에 페이퍼 카트리지를 삽탄한 후 앞의 과정을 역순으로 진행해 약실을 폐쇄해 주면 되었다. 총열을 도로 닫으면 고정 설치되어 있던 격침이 페이퍼 카트리지를 뚫어 화약을 노출시키고, 후방 방아쇠를 당겨 해머가 뇌관을 때림으로써 발생한 폭발이 격침 내부의 튜브를 통해 약실에 전달되어 사격이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
분명 기존의 전장식 총기에 비해서는 장전 방식이 간편해졌으나 그 어느 나라의 군대에도 정식 채택되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첫번째로 이 총기가 카빈(기병총)이었다는 점에 있었다. 말 위에 타 있는 채로 총열을 잡아 돌리고 카트리지를 삽입하는 일련의 장전 과정이 불편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미군에서의 채택이 불발되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해당 문제점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럼에도 영국군이 채택을 포기하게 만든 두 번째 문제는 페이퍼 카트리지였다. 격발 불량을 막기 위해서는 격침이 확실하게 카트리지를 뚫어서 화약을 노출시켜야 했는데, 이를 위해 카트리지를 얇은 재질로 만들면 외부 환경에도 마찬가지로 잘 찢어진다는 문제가 있었다. 아프리카나 인도 같은 전세계의 오지에서 활동하던 당시 대영제국에게 이 문제는 크게 다가왔다. 그렇다고 외부 환경에도 잘 버틸 수 있게 카트리지를 잘 안 찢어지게 만들면 격침이 카트리지를 뚫지 못해 격발 불량이 난다는 딜레마가 발생했다. 영국은 1865년까지 그린 카빈에 적합한 카트리지 개발을 위한 연구를 진행했으나 큰 진전은 없었고, 결국 영국군 채택도 불발되고 말았다.
3. 참고 자료
[1] 미군 최초로 채택된 볼트액션 소총인 그린 소총을 개발하기도 했다.[2] 해당 방식은 장전 시간을 단축한다는 장점이 있었으나 습한 환경에서 불발률이 높고 가격도 비싸다는 단점 때문에 퍼커션 캡에 밀려 도태되었다. 스프링필드 M1861의 이전 모델인 스프링필드 M1855가 해당 방식을 채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