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피 총알 발전사 | |||||
12사도/종이포 | 핀파이어/종이탄피 | 림파이어/ 후장식 종이포 | 센터파이어 | 무연화약 | 림리스 |
? | 1830년대 후반 | 1850년대 중반 | 1860년대 후반 | 1880년대 후반 | 1890년대 초반 |
1. 개요
남북 전쟁시기 사용된 콜트 아미 M1860 .44 구경 리볼버의 종이탄피 | 노르웨이에서 만든 캄메라더(Kammerlader) M1849/55 소총과 다양한 종이탄피들. 맨 왼쪽이 일반 쇠구슬 탄두이고, 나머지 3개의 종이탄은 뾰족한 탄두(Conical-ball)이다. |
.44 구경 종이탄 리볼버 장전과 사격영상 |
종이로 만든 탄피 및 탄약통. 시대에 따라 그 형태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종이에 왁스나 밀랍 등을 먹여서 빳빳하게 만든 후, 화약과 총알을 같이 넣고 묶어서 고정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2. 상세
엄밀히 따지면 그 역사가 1586년까지도 올라가는 물건이지만, 흔히 아는 종이탄피 디자인의 시작은 1859년에 영국 엔필드 조병창에서 만든 종이탄을 그 시작으로 본다.탄피가 없던 시기의 총기들은 사용자가 직접 화약을 계량하여 총기에 넣어야 했으며, 많이 넣거나 적게 넣으면 명중률과 총기에 좋지 않으며, 심하면 총이 폭발할 위험도 있었다. 이 때문에 전투 전에 미리 적정량의 화약을 계량하고 총알과 함께 포장해놓아 명중률과 장전속도를 높이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초기 금속 탄피의 문제점들로 인해 센터파이어 탄약이 완성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흥미롭게도 기술의 발전이나 현대의 탄피 구조와의 구조적 유사성이 페이퍼 카트리지의 변화와 일치하지 않는다. 페이퍼 카트리지는 활강총용 페이퍼 카트리지→ 금속/종이탄피 → 후장식/미니에 라이플용 페이퍼 카트리지 순으로 발전되었다.
3. 종류
3.1. 전장식
3.1.1. 활강총
머스킷은 장전에 점화 화약, 총알추진용 화약, 총알, 총알을 감쌀 헝겊이 필요한데 이중 추진용 화약, 총알을 종이로 포장한 것으로 등장 시기는 알 수 없다. 헝겊은 필수가 아니지만 많이 쓰였다. 총알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하는 이유도 있지만 발사되면서 총열을 닦아주는 역할도 했기 때문이다.장전순서는 총알을 감싼 종이 부분을 총알과 함께 뜯어내고,[1][2][3] 화약을 총에 넣은 후, 종이에 싸인 총알을 그대로[4] 총에 넣고 꼬질대로 쑤시고, 점화 화약을 따로 넣은 후 발사하면 된다.[5] 그러나 장전 중 납탄두를 삼킬 수 있다는 중대한 문제[6]로 인해 이후 개정된 장전 방식으론 종이의 화약 부분을 먼저 뜯어 점화 화약용으로 화약 접시에 소량 부은 뒤 나머지를 총구에 붓고 총알을 종이 탄피 일부와 함께 넣도록 수정되었다.[7]
3.1.2. 미니에 라이플
활강총용 페이퍼 카트리지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총알의 앞뒤가 생겼다는 것과 퍼커션 캡을 사용하게 된 것의 차이점이 있다. 등장 시기는 1852년경 미니에 라이플의 완성과 함께 등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장전 역시 활강총과 거의 같은데, 미니에 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총알을 감싼 종이는 버리고, 장전이 완료되면 점화 화약 대신 퍼커션 캡을 사용하여 발사하면 된다.
센터파이어 탄약이 개발된 후 각국은 제대로 된 금속 탄피 후장식 단발 소총을 만들 때까지 땜빵으로 이 전장식 소총을 개조하여 후장식 소총을 만들었다.
3.2. 후장식
3.2.1. 퍼커션 캡
후장용 페이퍼 카트리지부터는 제법 탄피의 모양새가 나오기 시작한다.[8] 실제로 당시 탄피들의 문제점 때문에 같이 쓰였다. 1852년에 콜트사에서 개발 되었다.미니에 라이플용과의 차이점은 탄두가 화약의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으며, 탄두가 노출되어 있다. 장전은 후장식 총기의 약실을 열고, 카트리지를 통으로 넣은 후, 약실을 닫고,[9] 퍼커션 캡을 사용하여 발사하면 된다.
이를 사용하는 소총들은 테이프 프라이머라는 특이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뇌홍을 뽁뽁이처럼 한 줄로 포장하고 사용하기 쉽도록 길게 이어서 돌돌 말아 총의 빈 공간에 넣어 놓고, 해머를 코킹할 때 새로운 뇌홍이 딸려 나오게 되어있다.
후장용 페이퍼 카트리지는 주로 장거리 사격에 특화된 총기들이 많이 사용 하였는데,[10] 그중 유명한 샤프스 소총[11]이 이 방식을 사용하였으며, 중절식 소총과, 리볼버에도 적용되었다.
이후 센터파이어 탄약의 사용이 보편적이 되었을 때 후장용 페이퍼 카트리지를 사용하던 총기들은 구조적으로 유사하였기 때문에, 탄피를 사용하는 총기들로 개량 생산되었다.
3.2.2. 종이탄피
드라이제 소총 |
여기서부터는 재질이 종이일 뿐, 뇌관을 갖춘 완전한 탄피이다.[12] 하지만 개발의 순서가 이 구성의 차이점 순으로 일치하지 않는데, 이는 최초의 종이 탄피인 니들 건이 문제가 많았기 때문으로 대중적으로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13]
대표적으로 드라이제 니들건과 샤스포용 종이탄피가 있다. 자세한 사항은 탄피 문서 참조.
[1] 보통 이 종이를 입으로 뜯어 물어서 뜯는다. 왜냐하면, 한 손은 총을 잡고 한 손은 화약을 총에 넣어야 하니까. 이렇게 입으로 뜯어 물고 있으면 화약 내의 염분을 섭취하게 돼서 사수는 심각한 갈증을 느꼈다고 한다.[2] 이걸 쓰던 시대 징병 기피자들의 수단 중 하나가 앞니를 뽑는 거였다. 앞니가 없으면 종이포를 뜯는게 어려워지기 때문이다.[3] 영국에서는 화약의 보관과 총열의 윤활을 위해 동물 기름으로 코팅하기도 했는데, 이것 때문에 세포이 항쟁이 발생하게 된다. 특히 대부분이 힌두교도나 이슬람인 인도인 용병들에게 소 또는 돼지기름으로 코팅한 종이포를 사용하게 했기 때문이다.[4] 헝겊 대용.[5] 그냥 장전도중 일반 화약을 좀 덜어서 넣는경우가 더 많았다. 어차피 일반화약이 점화가 안될정도면 점화용 화약도 불 안붙는다.[6] 당시의 인식으론 건강 문제보단 단위 화력 감소 문제로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7] 영국 레드 코트들의 장전 방식이었으며, 이후 나폴레옹 전쟁기에는 프랑스도 이와 같은 방식을 선택한다. 미니에 계통 탄환들은 특유의 형상 때문에 이 방법이 표준 장전 방식이었다.[8] 사실 등장은 금속탄피보다 나중에 나왔는데, 당시 금속탄피의 특허권을 스미스 & 웨슨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콜트사는 그 대신 리볼버용 페이퍼 카트리지를 만들었다.[9] 폴링블록식 등의 방식은 이때 카트리지의 꽁무니가 잘려나가 화약이 노출된다.[10] 덕분에 가격이 비싸서 남북 전쟁때 전장식 미니에 라이플이 주력이였다.[11] 서부극에서 장거리 사격을 하면 십중팔구 이 총이다. 단 대부분 1874년 이후 버전의 탄피식을 사용하며, 그 이전 시기를 배경으로 하면 탄피와 장전을 보여주지 않는다.[12] 영어로 똑같은 페이퍼 카트리지이기 때문에 이곳에 언급.[13] 금속탄피는 대중적으로 쓰였지만, 보조화기나 카빈급의 총에만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