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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1 15:21:03

김기남(1964년 10월)

<colbgcolor=#e61e2b><colcolor=#ffffff> 김기남
金基男 | Kim Ki-nam
파일:김기남_고화질.jpg
출생 1964년 10월 30일 ([age(1964-10-31)]세)
충청남도 대전시
(現 대전광역시)
거주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신로17길
현직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글로벌창업지원센터장
유캠퍼스(주) 대표이사
유캠퍼스공무원학원(김기남공학원) 이사장
국민의힘 책임당원협의회 수석부의장
국민의힘 중앙위 정보과학위원회 부위원장
국민의힘 뉴시티 프로젝트 특별위원회 자문위원
국민희망위원회 고문
충청향우회 영등포구 연합회장
동아마이스터고등학교 총동문회장
학력 동아마이스터고등학교 (전기과)
국립목포해양대학교 (통신과)
서울산업대학교 (전자공학 / 학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전파공학 / 석사)
한국항공대학교 대학원 (정보통신공학 / 박사)
소속 정당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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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학력3. 생애
3.1. 어린 시절3.2. 영등포 생활 이전3.3. 영등포 생활
4. SNS활동5. 정치활동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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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김기남후보 영등포르네상스.png
"영등포를 진정으로 사랑해온 참신한 새 인물!"
제 22대 총선 영등포 갑 국민의힘 예비후보 김기남
세계인 모두가 가보고 싶은 서울!
서울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영등포!
세계의 길은 로마가 아니라 영등포가 될 수 있도록
"영등포 르네상스"를 함께 만들어 가겠습니다.
제 22대 총선 영등포 갑 국민의힘 예비후보 김기남

국민의힘 소속의 정당인[1]이자 김기남공학원의 이사장.

실물경제를 이해하는 4차산업 첨단화 실무전문가이다.

영등포에서만 30년 이상을 살며 영등포 발전에 절실한 필요성을 느끼고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2. 학력

대전동아공고[2] 차석 졸업 후 동아건설에 기술직으로 바로 취업[3]했다. 재직 중 학벌로 인해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많이 당해 다시 공부하여 사범대에 합격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합격한 사범대를 포기하고 국립목포해양대 통신과에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고 입학, 수석으로 졸업하여 5년간 통신국장(고급사관)으로 외항 상선에서 근무했다.

하선 후 서울산업대학교 전자공학과에 학사 편입했다. 이후 고려대학교에서 전파공학 석사, 한국항공대학교에서 정보통신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3. 생애

1964년 충청남도 대전시(現 대전광역시 대덕구)에서 아버지 김태선과 어머니 이순이 사이의 5남[4]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난과 역경을 통한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3.1. 어린 시절

어린 시절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특히 장난감이나 기계를 보면 관찰하는 버릇이 있었다. 자전거에 바람 넣는 펌프를 멋대로 분해했다가 고장 낸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아무것도 알아낸 것은 없지만 오히려 공학도의 꿈을 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대전성남국민학교[5]에 입학한 후, 친구들에게 달고나를 만들어 개당 3원에 판매한 경험이 있다.[6]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사업을 경험해본 셈

3.2. 영등포 생활 이전

고교 진학을 고민하던 시기 인문계 고등학교와 기술과학계 고등학교 중에서 고민하다, 당시 어려웠던 가정형편[7]때문에 빠르게 취업하는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장남인 본인보다도 어린 4명의 동생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는 것을 바랬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지고 대전동아공고에 진학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는 신념으로 고등학교를 차석으로 졸업 후 동아건설 기술직으로 특채 입사하였다. 재직 중 눈에 보이지 않는 학벌로 인한 차별을 뼈저리게 느끼고 야간에 노량진 정진학원을 6개월간 다녔다. 이후 사범대에 합격하였지만 역시나 동생들의 진로를 고려하여 돈벌이가 아주 좋다는 목포해양대학교로 노선을 변경하였다.[8]

해양대 통신과를 수석으로 입학하여 교육비, 피복 및 기숙사비 등을 지원받을 수 있었지만 당시 해군사관학교와 비슷했던 엄격한 학풍 때문에 초반에는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9] 수석 졸업한 후 외항 상선에서 통신국장(고급사관)으로 5년간 배를 타게 되었다. 배를 타는 도중 받았던 월급은 전부 집으로 송금했다고 한다. 사실상 4명의 동생을 위해 가장 역할을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3.3. 영등포 생활

영등포역 뒷편의 청운고시원에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지금은 없어졌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수도전기전자통신학원에서 강사를 시작했다. 강의가 입소문이 나서 대박이 났다. 수강생이 300명이 될 정도로 스타강사였다고 한다.

이럴 바에 그냥 학원을 차리자는 생각으로 영등포역 근처에서 김기남 공학원을 차렸다.

상경 다음해인 1991년 후배가 시켜준 소개팅으로 만난 이재선 여사와 결혼했다. 당시 대한적십자사 재직중이었다. 1년 연애 후 결혼해 1남 1녀를 두었다.

1998년,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했으나 IMF로 인한 환율 폭등때문에 포기했다. 그리고는 뜬금없이 『통신저널』을 당시 6,500만원에 인수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통신관련 전문 잡지가 필요하다는 사명감때문이었다. 광고수익은 거의 없고 직원 7명의 금여로 매월 2,000만원씩 빚이 늘었다고 한다.

유학 생활비를 마련하려 만든 고시원도 망하고, 학원을 차리고 잡지사를 운영하느라 약 6억원의 빚이 생겼다.[10] 빚 독촉 전화도 많이 오고 힘들었다고 한다.

어느날 잡지사를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 장비까지 포함해 공짜로 회사를 넘겨주었다. 비슷한 시기에 학원에 수강생도 점점 많아져 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김기남공학원, 유캠퍼스 공무원 학원을 운영중이다.

4. SNS활동

2024년 1월, 2030세대들과 소통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스타그램 릴스를 업로드하였다. 첫 릴스가 조회수 220만을 달성하였고, 뒤이어 업로드한 릴스들은 조회수 각각 11만, 580만, 170만을 달성했다.[11] 도합 조회수가 1000만 이상으로 당선된 적도 없는 정치신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숏 폼 콘텐츠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셈.

주로 정치에 관련한 내용을 올리기보다는 댄스 챌린지

영등포구민의 머릿속이 궁금해
내가 정치인 친구 사귀는 방법

혹은 패러디 위주의 유머 게시물을 업로드한다.

영등포에 뭘 바라? 다줄게
고려대 공학석사가 풀어보는 24학년도 수능 미적 1번[12]

"정치색을 떠나 일단 웃기다"라는 반응과 "MZ보다 더 MZ다"등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그 외에도 네이버 블로그나 유튜브 "척척박사 기남TV"를 운영하고 있다.

5. 정치활동

제 22대 국회의원선거 영등포 갑 지역에 출마했다. 국민의힘 예비후보.

김기남 김기남공학원 이사장, 제22대 총선 영등포갑 예비후보 등록
김기남 영등포갑 예비후보, “영등포 르네상스 만들어 갈 것”
김기남 국민의힘 영등포갑 국회의원 예비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 통해 세몰이

아래는 출마선언
영등포를 진정으로 사랑해온 참신한, 새 인물!
"영등포 르네상스" 를 만들 수 있는 4차 산업 전문가!

최근 영등포 구민들은 기존 정치인들에게 실망과 식상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역 기반 없이 여의도 입성만을 노리고 출마하는 후보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영등포 구민들은 지역에 기반을 둔 참신하고 능력 있는 새로운 인물을 원합니다.

그래서, 저 김기남은 세 가지 희망을 가지고 총선 승리를 위한 담대한 도전을 시작합니다.

첫째, 김기남은 33년동안 지역민들과 삶을 함께 해 온 유일한 후보입니다.
저는 33년 전 청운의 꿈을 지니고 상경해 영등포역사 부근 고시원에서 영등포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밑바닥부터 다져진 삶을 통해 기득권층이 아닌 사람의 아픔을 깊게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데 자신이 있습니다. 또한 영등포 지역민들과 동고동락하며 삶을 함께 해온 덕택으로 지역실정을 누구보다 속속들이 잘 알고 있으며 영등포 지역민들의 숙원사업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입니다.

둘째, 김기남은 글로벌 기술경쟁시대에 가장 잘 준비된 4차 산업 전문가입니다.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기술사 자격을 갖춘 저는 4차 산업 전문가로서, 글로벌 창업허브와 문화예술 및 의료관광 클러스터를 조성하여 민생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주도할 수 있는 후보입니다. 또한 정부 여당의 강력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이끌어 내 발전이 정체된 영등포를 첨단산업과 문화가 어우러진 명품 주거지역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후보입니다.

셋째, 김기남은 공감과 이해의 자세로 모든 세대와 소통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인스타그램 릴스를 통해 정치인으로서 이례적으로 조회수 800만회를 달성한 인플루언서로, 1030세대와도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으며, 젊은 청년들이 먼저 다가와 사진 촬영을 요청하는 인기 있는 후보입니다. 청년들이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하며, 중장년층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나고, 신혼부부와 아이가 행복한, 남 부럽지 않은 영등포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후보입니다.

발전이 정체된 영등포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후보는 저 김기남뿐입니다.

영등포 구민의 보다 나은 삶을 약속 드리며, 영등포에 사는 것이 자부심이 될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세계인 모두가 가보고 싶은 서울!
서울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영등포!
세계의 길은 로마가 아니라 영등포가 될 수 있도록 "영등포 르네상스"를 함께 만들어 가겠습니다.

6. 기타

5형제 중 장남이다. 다른 형제들은 경찰이 되었거나, 육사를 졸업하고 군인이 되었다고 한다.

정치인으로서는 특이하게 정보통신분야로 빠삭하다. 미국 전기 기술사, 1급 통신사 (해운항만청), 전기분야 국가기술자격 2종 (한국산업인력공단), 정보통신분야 국가기술자격 4종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이 있다. 또 문체부가 발행하는 한국어 교원자격증도 있다.

정보통신기술 분야로 책도 많이 냈다. 『네트워크구축론』, 『ICT기술사업 길라잡이』, 『무선통신공학』, 『전기이론』, 『정보보호론』, 『전기자기학』, 『전력공학』, 『정보통신시스템』 등
[1] 우연하게도 같은 국민의힘 소속에 이름과 생년까지 같은 정치인이 있다.[2] 현재는 동아마이스터고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3] 당시 과 수석과 차석만 특채로 들어갈 수 있었다.[4] 무려 아들만 5명이다.[5] 현재는 대전성남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6] 10개를 팔면 20원이 마진이었다[7] 식사 때 반찬은 오직 콩나물 뿐이었을 정도.[8] 당시 3년만 배를 타면 서울에 아파트를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9] 내륙지방인 대전에만 살아봐서 해양대에서 처음 산낙지를 먹어보고 신기했다고 한다.(산낙지가 산에 사는 낙지인 줄 알았다고 한다.)[10] 당시 짜장면 1500원, 대기업 과장 월급이 150만원 수준.[11] 2024년 2월 19일 기준[12] 영상 설명란에 영등포 알파메일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