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18:26

김동진(1920)

파일:김동진3.jpg
성명 김동진(金東鎭)
이명 김견목(金堅木)
생몰 1920년 12월 25일 ~ 1982년 2월 11일
출생지 중국 허난성 카이펑
사망지 중국 베이징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김동진의 본적지는 평안북도 의주군이지만 출생지는 중국 허난성 카이펑이며 1920년 12월 25일 생이다. 그는 13살 때 학업을 중단하고 카이펑의 공무기차(工茂汽車) 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중일전쟁 발발 직후인 1937년 9월 국민정부가 육군기차병단을 편성하고 신병을 모집하자 이에 입대하여 제4연대에 편입되었으며, 1940년 9월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었을 당시 중국 기계화부대 군인으로 복무하던 그는 대한광복군에 가입하기 위해 소속 부대를 정식 탈퇴하려는 의지가 담긴 편지를 <한민(韓民)> 엄대일에게 보내 알렸다.

비록 그의 시도는 실패했지만, 그대신 1941년 3월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생계부 비서로 배속되었으며, 1942년에는 임시정부 직원 겸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관병소비합작사(官兵消費合作社) 사원으로도 활동했다. 1943년 3월 30일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엄항섭이 주석 판공실 주임비서로 임명되었을 때, 그는 안우생(安偶生)과 함께 판공실 비서로 선임되어 1944년 3월 13일까지 근무했다. 또한 3월 14일 국무회의에서 생계부 비서로 선임되어 8.15 해방 때까지 활동했다.

8.15 광복 후 한국으로 돌아오려 했지만 복집한 국내 정치 상황으로 인해 끝내 귀국하지 못하고 1949년 베이징에 정착해 1982년 2월 11일 사망할 때까지 교사로 활동했다. 김동진의 딸 김연령 여사는 2000년 중국 국유기업에서 퇴직한 뒤 조부 김석과 부친의 독립운동에 관한 자료를 모아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 서훈신청서를 제출했고, 국가보훈처는 2013년에 김동진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이후 김연령 여사는 2015년 2대에 걸친 독립운동사를 담은 저서 <아리랑은 피가 뜨거운 것이다>를 출간했다. 그녀는 2018년 베이징 차오양구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광복절 행사에 참석해 “후세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바친 선조들의 헌신과 노력을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