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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12 23:25:33

김익순

김익순
金益淳
<colbgcolor=#94153e'><colcolor=#ffc224,#db9e00> 출생 1764년
사망 1812년 (향년 59세)
본관 안동 김씨
가족 관계 증조부 - 김시태(金時泰)
조부 - 김관행(金觀行)
부 - 김이환(金履煥)
아들 - 김안근
손자 - 김병연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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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의 무관.

2. 생애

경원부사를 지내는 김이환의 아들로 무과에 급제 후 중군을 지내다가 홍경래의 난 당시엔 선천부사로 재임하고 있었다. 홍경래군과 전투를 치렀으나 패배했고 가족들을 살리기위해 투항했다.

이후 관군이 반군을 패퇴시키고 정주성으로 몰아넣으며 전세가 역전되었다. 홍경래의 참모 김창시의 수급을 갖고 관군으로 돌아갔다. 이에 투항 혐의로 잠시 가뒀다가 정상참작으로 석방될 예정이였으나 실제로 김창시의 목을 벤 인물은 농부 조문형이였고 김익순은 조문형에게 수급을 샀다. 하지만 약속했던 대금을 주지 않자 조문형은 사실을 고발했고 기군망상(欺君罔上)의 죄로 참수에 처해졌다. 다행히 안동 김씨이고 죄를 면하게 하려는 목적이 정상참작되어 가문이 멸문지화까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아들인 김안근은 홧병으로 30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손자 김병연은 과거 시험 당시 김익순을 비판하는 글을 썼지만 진실을 알게되어 충격을 받고 관직을 그만둬 삿갓을 쓰고 전국을 방랑하는 김삿갓이 되었다.

사안이 심각해서 안동 김씨 정권 당시에도 복권 시도가 없었으나 1908년 이완용의 건의로 복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