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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y(名張市, ruby=なばりし)] 나바리시 / Nabari City | |
시기(市旗) | |
문장(紋章) | |
위치 | |
국가 | 일본 |
지방 | 간사이 지방 주부 지방 |
도도부현 | 미에현 |
면적 | 129.77km² |
인구 | 74,107명[1] |
시제 시행년도 | 1954년 |
상징 | |
시화 | 도라지(キキョウ) |
시목 | 단풍나무(モミジ) |
시조 | 휘파람새(ウグイス) |
나바리 시 홈페이지 |
▲아카메시주하치 폭포(赤目四十八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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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미에현 서부, 이가 지방에 있는 도시이다. 킨테츠 오사카선의 주변에 있으며, 오사카 도시권에서 약 1시간만 가면 도착할 수 있기 때문에 오사카와 나라현의 베드타운으로 발전하였다. 그래서 미에현은 문화권 기준으로 주로 도카이 지방으로 분류되지만 나바리는 간사이 지방으로 분류되기도 한다.[2]1980년대 전반부터 나바리토도 가(名張藤堂家)[3]의 가문의 문장이었던 도라지꽃의 이름을 딴 키쿄가오카 주택지(桔梗が丘住宅地)의 개발을 시작하여, 인구가 급증하였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부터는 나라현의 카시바시에 그 지위를 빼앗기고 인구도 주는 형편이다.
2. 역사
옛날부터 역참 마을로 번성하였다. 진신의 난(壬申の乱)[4]이 일어나 덴무 천황이 도망갈 때에도 이 지역을 경유지로 삼았다. 현재의 시가지는 오카게마이리(お蔭参り)[5]의 역참 마을이 원형이다.- 1889년 4월 1일 - 정촌제가 시행됨에 따라, 나바리 군(名張郡) 나바리 정(名張町)・다키가와 촌(滝川村)・미노와 촌(箕曲村)[A]・구니츠 촌(国津村)・구라모치 촌(蔵持村)・고모하라 촌(薦原村)이 발족한다.
- 1896년 4월 1일 - 소속 군이 나바리 군에서 나가 군(名賀郡)으로 변경되었다.
- 1930년 - 킨테츠 오사카선 전구간이 개통되었다.
- 1942년 5월 5일 - 구라모치 촌・고모하라 촌・미노와 촌을 편입하였다.
- 1949년 8월 1일 - 나바리 정의 일부[7]를 분립하여 미노와 촌[B]이 발족하였다.
- 1954년 3월 31일 - 나바리 정・타키가와 촌・구니츠 촌・미노와 촌이 합병하여 나바리 시(名張市)가 발족하였다.
- 1990년 9월 - 인구 7만을 돌파하였다.
- 1994년 10월 - 인구 8만을 돌파하였다.
- 2003년 2월 - 이가 지역 6개 시정촌과의 합병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였지만 반대표가 많아 협의회에서 탈퇴하였다.
3. 교통
3.1. 철도
3.2. 도로
- 국도 165호선
- 국도 368호선
[1] 추계인구 2023년 9월 1일 기준[2] 지리적 기준으로는 미에현 전부가 간사이와 같이 킨키 지방이다.[3] 니와 나가히데의 아들을 토도 타카토라가 양자로 들였다가 뒤늦게 친아들을 낳으면서 분가했다.[4] 672년 일어난 고대 일본 최대의 내란.[5] 60년 주기로 돌아오는 영검이 많은 해에 각 지방의 서민들이 대규모로 이세 신궁을 참배하던 일.[A] 1차[7] 나츠미(夏見)・나카(中)・세코구치(瀬古口)・쇼렌지(青蓮寺)・나카치야마(中知山)[B]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