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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29 14:15:09

나카츠카와 일가족 살인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사건의 내용3. 사건의 동기4. 재판5. 유사한 사건

1. 개요

中津川市・一家6人殺傷事件

2005년일본에서 발생한 일가족 살인 사건. 정신질환을 심하게 앓던 가장에 의해 일가족이 몰살된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2. 사건의 내용

2005년 2월 27일 기후현 나카츠카와시의 시립 노인보건시설의 사무장이었던 하라 타이라[1](57세)는 아침 7시 부인을 태워 줬는데 부인은 친구들과 함께 당일치기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타이라는 그들에게 "부인을 잘 부탁한다"라고 웃으면서 당부했고 부인이나 부인의 친구들은 모두 타이라에게서 이상한 기색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타이라는 그렇게 부인을 보내고 자신이 일했던 노인보건시설을 들러서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온 후....

가족들을 차례차례 죽이기 시작했다.

첫 희생자는 33세였던 장남이었다. 장남은 자신의 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타이라는 장남의 목에 넥타이를 묶은 다음 그대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장남이 "아버지 왜?"라고 물었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대로 살해했다.

이어서 두 번째로 85세였던 모친 하라 치요코에게 다가갔는데 치요코는 쇼파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장남과 마찬가지로 치요코의 목에도 넥타이를 묶은 다음 그대로 졸라 살해했다. 목을 조르는 순간 치요코가 눈을 떴지만 한 치의 동요도 없었다.

그 다음 기르던 애완견을 끌고 시내의 산으로 올라갔다. 셰퍼드 2마리를 키우고 있던 타이라는 산 위의 나무에 셰퍼드들을 묶은 다음 칼로 목과 가슴을 찔러 살해했다.

다시 집에 돌아온 타이라는 11시쯤 딸 후지이 코즈에에게 전화를 걸었다. 코즈에는 결혼해 두 명의 아이를 낳았다. 타이라는 코즈에에게 "할머니가 손주들을 보고 싶어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차를 몰아서 코즈에와 2살, 3개월의 어린 손주들도 함께 집에 데려왔다. 집에 들어섰을 때 코즈에는 이미 죽어서 축 늘어진 할머니 치요코를 목격했다. "할머니가 뭔가 이상한 것 같아요"라고 코즈에가 치요코에게 다가간 순간 타이라는 뒤에서 넥타이로 코즈에의 목을 졸랐다. 코즈에는 뒤를 돌아보면서 "아빠"라고 소리쳤지만 타이라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코즈에를 살해한 후 타이라는 2살이었던 어린 손자와 생후 3개월이었던 손녀도 그 자리에서 목을 졸라 살해했다.

오후 1시경 타이라는 사위 후지이 타카유키를 집으로 태우고 왔다. 사위가 뒷문으로 집에 들어가려는 순간 타이라는 "제발 죽어주게"라고 말하면서 타카유키의 복부를 칼로 찔렀지만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고 부상을 입은 상태로 도망쳐 경찰에 "장인어른이 날 찔렀다"고 신고했다. 이어 직장동료에게도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타카유키의 직장동료가 타이라의 집에 와 보니 타이라의 집에서는 가족들이 여기저기 죽어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욕실에 들어가자 타이라가 자신의 목에 칼을 찌르고 피를 흘린 채로 있었다. 타카유키의 직장동료가 "누구에게 당한 겁니까?"라고 묻자 타이라는 "내가 했다...내가..."라고 말한 뒤 의식을 잃었다.

부인은 한창 여행을 즐기고 있었지만 더 이상 여행을 즐길 수 없게 되었는데 친구들의 휴대전화를 통해서 가족들이 모두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범인이 남편이라는 사실에 부인은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를 연발하며 어찌할 줄을 몰랐다고 한다.

목을 찔렀던 타이라는 3월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경찰의 심문을 받은 타이라는 "그냥 모든 게 싫어졌다"고 말할 뿐이었다고 한다.

3. 사건의 동기

끔찍한 일가족 살인사건의 동기는 가족간의 불화, 정확하게는 어머니의 치매로 인한 불화와 타이라 자신의 건강 악화와 정신적 스트레스였다.

타이라는 젊었을 때부터 30여 년간 시내의 병원에서 방사선과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2001년에 시립 노인보건시설의 사무장으로 직장을 옮겼다. 타이라에 대한 직장 동료들이나 노인보건시설의 노인들의 한결같은 증언은 온순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는 평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타이라는 지병인 신경성 두통이 악화되어 사건이 일어나기 몇 년 전부터는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는데 통증이 턱과 치아까지 퍼져서 씹는 것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탓이었다.

온순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그에게 가족은 오랫동안 부담과 스트레스를 안겨주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어머니의 치매 증세였다. 1999년부터 타이라는 어머니 치요코를 모셔와서 함께 살았지만 고령의 치요코는 치매기가 생기면서 며느리와 갈등이 일어났다. 자신의 물건이 없어졌다면서 며느리를 도둑 취급했고 며느리가 밉다면서 그녀가 정원에 심은 꽃과 나무를 뽑아내 버리는가 하면 심지어 며느리가 목욕하러 들어갈 욕조에 쓰레기를 집어넣는 일까지 저질렀다. 사건 직전에 이르러서는 치매 증세가 더 심해져서 밤중에 집을 뛰쳐나와 돌아다니는 일도 벌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지병으로 고통받는 차에 이런 어머니와 부인의 갈등은 타이라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렇다고 어머니에게 불평을 터트릴 수도 없었는데 타이라의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매우 엄해서 타이라는 나이가 들어서도 어머니를 어려워했다고 한다.

딸과 사위도 타이라를 힘들게 했다. 타이라는 딸과 사위, 손주들과 함께 살고 싶어했지만 딸과 사위는 나가서 사는 것을 원해서 결국 근처에서 사는 것으로 타협을 보긴 했는데 타이라는 딸과 사위가 자신과 함께 살려고 하지 않은 것을 자신을 미워한 탓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그나마 유일하게 이런 시름을 잊어보려고 경찰견 훈련소에서 훈련사로서 셰퍼드 강아지 2마리를 데려다가 집에서 기르는 걸로 낙을 삼으려고 했지만 셰퍼드가 짖는 소리에 이웃들이 항의했고 결국 강아지들을 훈련소에 데려다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사건 전날에 강아지들을 다시 집으로 데려왔고 자신의 손으로 아끼던 그 강아지들을 살해했다.

결정적으로 사건으로부터 1개월 전 치요코는 우체국에서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 일이 벌어지자 국장을 불러서 고함을 치는 일을 저질렀다. 이 일로 타이라는 결국 내부적으로 폭발해 버렸고 "이건 나 자신에 대한 폭력이다. 이제 더 이상 한계다. 이런 어머니와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고 결심하기에 이르렀다고 진술했다. 자신이 어머니를 살해하면 남은 가족들은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오명을 쓰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2]로 다른 가족들까지 모두 죽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가족 전체를 죽일 순간만을 생각하다가 부인이 여행을 떠난 날 결행하고 말았다. 부인을 여행 보내고 다른 가족들을 모두 살해한 건 "이런 어려운 중에도 잘 참아 주었기 때문에 부인은 놔둬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다고 한다.

4. 재판

2007년 7월 1일 기후현 지방법원에서 재판이 시작되었고 타이라는 자신의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2008년 1월 13일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으나 재판부는 정신적으로 심신미약에 준하는 상태라 사형을 판결하는 것까지는 무리라고 봐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에 유족들과 검찰은 반발하며 항소했고 타이라도 형이 지나치다며 항소했지만 2심과 3심에서도 똑같이 무기징역이 선고되면서 형이 확정되어 타이라는 현재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피살자가 2명 이상이면 사형이 원칙이고 3명 이상이면 무조건 사형에 처하는 일본의 사법체계를 생각한다면 이례적인 판결이다. 물론 저지른 죄가 워낙 흉악한 터라 사회 복귀는 불가능해 감옥에서 일생을 마칠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일본 전역을 큰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고 그가 가족들을 살해한 점은 명백한 악행이라서 여론의 분노가 매우 컸다. 특히 타이라처럼 흉악범죄를 저질렀고 자신의 범죄를 전혀 반성하지 않음에도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이 선고되었기 때문에 판결에 대해 비난이 많았다.

5. 유사한 사건

결론적으로 타이라가 중년 남성으로서 겪는 무력감과 정신적 위기, 치매 어머니와 아내의 고부갈등으로 인한 내적 갈등이 폭발해 일가족을 살해하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이 사건과 유사해 보이는 사건이 있는데 바로 2001년에 발생한 히로시마 일가족 실종 사건이다. 일가족이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 이 사건이 일어난 지 1년여만인 2002년에 일가족이 죽은 채로 발견된 차가 인근 댐에서 발견되었다. 경찰은 이웃의 증언을 근거로 가족의 가장이 무엇인가 심적인 갈등 때문에 가족들과 동반자살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흥미롭게도 이 사건과 히로시마 사건은 시간의 차가 있지만 비슷한 부분이 많은데 동반 자살과 일가족 살해의 주체가 모두 한 집안의 가장이었다는 점, 죽은 가족의 구성이 조금 상이하긴 하지만 모친과 자녀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 사건을 일으킨 가장들이 모두 비슷한 나이라는 점니 겹친다. 히로시마 일가족 실종 사건은 동반 자살의 동기가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는데 일본 네티즌들은 이 사건을 근거로 히로시마 사건도 가족 간의 갈등이 동기가 아닐까라고 추정하고 있다.
[1] 한자로 쓰면 原平로 두 글자라서 겐페이라고 읽는 단독 성씨나 이름으로 착각할 수도 있는데 原가 성씨고, 平가 이름인, 일본에서는 희귀한 두 글자 이름이다. 타쿠미 슈와 비슷한 케이스.[2] 일본 특유의 메이와쿠 문화로 인해 지역사회에서 가해를 하든 피해를 당하든 소란을 일으킨 사람들의 가족들은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크게 받는 일이 허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