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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29:09

남만귀

<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영양 남씨[1]
출생 1877년
경상도 문경현 가동면 작천리
(현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작천리)
사망 몰년 미상
미상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의병장.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남만귀는 1877년 경상도 문경현 가동면 작천리(현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작천리)에서 아버지 남대환(南玳煥)과 어머니 전주 이씨 이해두(李海斗)의 딸 사이의 1남 1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07년 음력 8월에 이인영의 의병대에 가담했고, 동료 의병 100명과 함께 총 수십정, 군도 1자루를 휴대하고 경북 문경, 충북 괴산군 등지에서 활동했으며, 8월 9일 괴산군 내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했다. 그러나 곧 체포된 그는 1909년 5월 11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남만귀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회령공파(會寧公派) 15대손 만(萬) 항렬. 영양 남씨 23세. 남씨대동보 5권 밀직공파(영양 본관)-회령공파 280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