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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5:50

노선영의 김보름에 대한 폭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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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선영의 김보름에 대한 폭언 논란
<colbgcolor=#bc002d,#222222><colcolor=white> 발생일시 2010년~2017년 12월
유형 민사상 불법행위, 폭언
원고 김보름
피고 노선영
청구취지 금원 2억 원
청구원인 불법행위, 명예훼손(민법 제750조, 제756조)
재판선고
제1심
원고 청구 일부 인용[1]
항소심
항소기각
1. 개요2. 김보름의 폭로 및 노선영의 반응3. 재판
3.1. 제1심
3.1.1. 변론 과정3.1.2. 재판 선고
3.2. 항소심
4. 특징

[clearfix]

1. 개요

노선영김보름을 비롯한 동료들에게 폭언을 가했다는 의혹이다. 이에 2021년 노선영은 이 사건과 노선영의 인터뷰가 허위사실을 적시한 민사상 명예훼손이라며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제기했고, 법정 다툼 중에 있다. 발생 시점 상으로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한민국 여자 팀추월 대표팀 논란의 배경이 되는 논란이며, 다툼이 수면 위로 올라간 것은 팀추월 논란 이후 3년 뒤인 2021년 일이다.

2. 김보름의 폭로 및 노선영의 반응

2019년 1월 11일 채널A '뉴스A LIVE'를 통해 김보름은 "2010년부터 지난해 올림픽 시즌까지 노선영에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심석희의 피해 사실 주장 3일 후에 이루어진 (팀추월 논란 이후 약 1년 만에) 갑작스러운 김보름의 주장에 "빙상계가 김보름의 주장을 통해 여론을 전환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있었다. 그러나 김보름 측은 심석희의 폭로가 나오기 이전에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강조했으나, 전명규는 이전에도 심석희가 언제 기자회견을 할 것을 미리 알고 이를 막고자 새벽 1시까지 이야기 했다며 말하는 녹취[2]가 공개됐던 바 있으며, 이미 앞서 심석희의 폭로가 나온 이후였기에 기사 발표 시기를 조정을 통해 늦출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노선영은 심석희 일이 더 중요하다면서 본인이 이에 대응하면 사람들의 이목이 분산 될 것을 우려하였다.

2019년 2월 20일 기사에 의하면, 노선영은 이에 대해, "할 말이 없다. 경기에 집중하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2019년 2월 21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 100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여자 일반부 3000m 경기를 치른 뒤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노선영으로부터 7년 넘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한 김보름은 인터뷰 내내 울먹이며 ‘왕따 주행 논란’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했다. 인터뷰에서 김보름은 노선영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폭언을 했으며, 처음엔 그게 괴롭힘이냐고 말했다가 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말을 바꿨다고 주장했다. 또한 동료들의 증언도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노선영은 사실무근이며 다시 대응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3년 10월 24일 손담비의 영상을 통해서 김보름이 당시를 회상했는데, 남들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라 더욱 힘들었고, 당시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고 밝혔다.

3. 재판

3.1. 제1심

2021년 1월 19일, 김보름이 노선영을 상대로 2억 원의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노선영의 발언 때문에 큰 피해를 봤다고 주장을 했다. 노선영 선수로 인해 발생한 "왕따 논란" 때문에 피해를 입어 광고 수주를 하지 못하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

3.1.1. 변론 과정

그에 이어서 새 증언이 재판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확인서에는 당시의 동료들의 '노선영이 김보름에게 욕하는 것을 봤다'거나 '나도 노선영으로부터 욕을 들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노선영 측의 대리인은 '폭언과 폭행이 운동선수들 사이에서 불법행위가 성립하는지 판단을 따라야겠지만, 피고[3]는 원고[4]보다 한국체육대학교 4년 선배이고 법적으로 사회상규를 위반하지 않은 정도였다'고 말했다.

2021년 3월 17일 두번째 변론기일에 대한 내용이 뉴스로 공개되었다. 위 논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심리하는 재판장이 양측 대리인에 “제출한 대부분의 기록이 기사인데, 재판에서는 기사로 재판하는 것이 아니지 않냐”고 지적하였다.# 이 때문에 객관적 증거를 내라고 요청하였다는 내용이다. 그외 언론사에서는 화제성이 떨어진다는 판단 때문인지 기사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

3.1.2. 재판 선고

2022년 2월 16일 김보름이 노선영을 상대로 한 2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3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받았다."
단, 김보름 측에서 주장한 노선영의 인터뷰로 인한 피해는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왕따 주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노선영이 지나치게 간격이 벌어진 이유가 김보름과 박지우의 책임이 아닌 코치진이 능력 부족으로 당시 경기 중 문제가 생겼을 때 적절한 지시를 내리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즉, 선수 문제가 아닌 코치진 무능이 당시 상황을 초래한 것으로 재판부는 판결하였다.
재판부는 김보름이 노선영을 상대로 낸 손해보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결론을 냈다. 노선영의 인터뷰로 인한 김보름 선수측의 피해는 인정되지 않았고[5], 노선영 선수로부터 김보름 선수가 폭언과 욕설을 받은 적이 있다는 내용은 사실로 확인되어 노선영 선수에게 300만원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었다.# 재판부는 김보름이 모욕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부분 중에서 '① 2017. 11. 7., ② 2017. 11. 28. 및 ③ 2017. 12. 20.' 세 차례의 폭언을 사실로 인정했다. “원고·피고와 함께 훈련한 선수들이 국가대표 훈련 당시 피고가 원고에게 화를 내며 욕설하는 것을 봤다는 사실확인서를 작성했다”며 “원고의 스케이트 속력에 관한 것으로 ‘천천히 타면 되잖아 XXX아’ 등의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2017년 11월 이전 폭언은 민법 제766조에 따라 소멸시효가 경과해, 불법행위의 성립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배상 범위에서 제외됐다. 김보름 측은 소멸시효의 기산점[6]이 2018년 3월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재판부는 그 주장을 배척했다.

3.2. 항소심


노선영측은 하루 뒤 17일 바로 항소하였다. # 이에 항소심이 열리게 되었다. 5월에는 6월에 2심 첫 재판이 열린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후 재판부는 12월에 대질신문을 하겠다고 결정하였다. #

항소심이 진행되는 가운데, 서울고등법원 민사합의부에서는 두 당사자 간의 싸움에 "빙상연맹이나 코치, 감독이 소송에서 다 뒤로 빠져있다"며 "어른들이 어린 선수들을 이렇게 가혹하게 지옥에 몰아내도 되는지 우리 사회에 묻고 싶다"고 윗선을 직격했다. 또한 당사자 간에 재판상 화해강력히 권고했다.

이들이 화해를 거부하자 2023년 1월 11일자로 강제조정(조정을 갈음하는 결정)을 내려 버렸다. 조정 내용은 비공개다. # 하지만 김보름이 강제조정에 불복하였다. #

판결 선고는 2023년 3월 10일에 있을 예정으로 알려졌으나, 사실 이 날은 사실심 변론종결일이었다. 재판부는 다시금 화해를 종용했다. 재판장은 노선영, 김보름 모두 잘못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며, 판결로 끝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을 다시금 했다. #

4월 4일, 재판선고 대신 2차로 강제조정(조정을 갈음하는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 측에서 판결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정말 지양하는 모양새이다. #

4월 21일, 1심 판결을 유지하면서 항소 비용은 각자가 부담한다는 판결이 나왔다.법률신문

노선영 측 소송대리인은 선고 후 “폭언이 있었다는 직접 증거가 없어 납득하기 어렵다"며 "상고해서 대법원 판결을 받아보겠다”며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 하지만 상고기일 내에 상고장을 접수하지 않았고, 제1심 결과대로 판결이 확정되었다. #

4. 특징

김보름은 노선영을 모욕죄명예훼손죄로 고소한 것이 아닌 불법행위(민법 제750조)에 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2017년 부분 막말이 핵심인데, 그 부분은 친고죄인 모욕죄의 고소 기간에 제한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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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구한 2억 원 중 300만원 부분만큼 인용.[2] "(심석희)가 그 다음날 기자회견 하려고 했었어 내가 그거 막은거야 새벽 1시까지 애기를 하면서"[3] 소송에서 소송을 당한 사람을 지칭하며 이 사례의 경우 노선영이 해당된다.[4] 소송을 제기하여 재판을 청구한 사람이며, 이 사례에서는 김보름이 해당된다.[5] 재판부는 "노선영의 최초 인터뷰 이전 김보름의 인터뷰 태도로 인해 왕따설이 촉발된 상태이므로 인터뷰로 인해 김보름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보기엔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6] 시작하는 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