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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4 19:49:30

뉴올리언스 연쇄살인 사건



1. 개요2. 사건의 전개
2.1. 뉴올리언스 도끼살인마의 등장
3. 살인범의 범행일지
3.1. 1차 범행 : 1918년 5월 23일3.2. 2차 범행 : 1918년 6월 27일3.3. 3차 범행 : 1918년 8월 5일3.4. 4차 범행 : 1918년 8월 10일3.5. 5차 범행 : 1919년 3월 10일3.6. 6차 범행 : 1919년 8월 10일3.7. 7차 범행 : 1919년 9월 3일3.8. 8차 범행 : 1919년 10월 27일
4. 의심되는 희생자
4.1. 살인마에게서 온 편지4.2. 용의자 추적

1. 개요

뉴올리언스 연쇄살인 사건은 1918년 5월부터 1919년 10월까지 미국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에서 일어난 미제 사건이다.

총 6명이 살해당했고, 12명이 부상을 입었다. 범인은 현재까지 신원조차 밝혀지지 않았으며, 언론은 범인에게 '뉴올리언스의 도끼맨'이라는 별칭을 붙여주었다.

2. 사건의 전개

2.1. 뉴올리언스 도끼살인마의 등장

범인의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희생자들은 주로 도끼에 의해 살해당했다.[1] 대부분의 사건들에서 희생자의 집 뒷문에 있는 금속판은 끌에 의해 제거되었는데, 이 판과 끌 모두 뒷문 가까이에 있는 바닥에 놓여져 있었다. 범인은 이렇게 침입하여 면도칼이나 도끼로 1명 이상의 거주자를 살해했다. 희생자들 대부분은 이탈리아 출신이었다.[2] 범행들은 강도를 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범인은 항상 살해 도구들을 희생자의 집에 남겨두었다.

많은 매체에서 이 사건을 열심히 보도했고, 증거 부족의 원인이 마피아와 관련되어 있다고 암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몇몇 범죄분석가들은 살인이 성과 관련되어 있다고 추측했고, 살인마는 특히 여자들만 찾아다니는 새디스트라고 생각했다. 범죄학자 콜린과 다먼 윌슨(Damon Wilson)은 '살인마는 여성 피해자들을 살해하는 것이 방해될 때만 남성들을 살해했다'란 가설을 세웠다.[3] 또 다른 가설은 '범인은 재즈 음악을 홍보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라는 것이었다. 이 가설이 세워진 이유는 살인마가 보낸 편지에서 '집에서 재즈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살려주겠다.'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뉴올리언스 시민들 모두가 이 살인마를 두려워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무장된 시민들은 신문을 통해 살인마에게 그들의 집에 와보라는 성명을 제출하기까지 했다. 어떤 사람은 공손하게 "만약 앞문을 망가뜨리지 않는다면 (살인마를 위해) 창문을 열어둘게."라고 약속하기까지 했다.

3. 살인범의 범행일지

3.1. 1차 범행 : 1918년 5월 23일

23일 밤, 이탈리아 출신의 제이크 매지오, 앤드류 매지오 형제는 어퍼라인 스트리트(Upperline street)와 매그놀리아 스트리트(Magnolia Street) 사이 모퉁이에 살고 있었다. 옆 집은 형제의 큰형이자 식료품 상인인 조셉 매지오(Joseph Maggio)와 그의 아내 캐서린(Catherine Maggio)이 살던 곳이었다. 매지오 형제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벽 너머 형의 집에서 이상한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고, 형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공격을 받아 참혹한 상태로 쓰러져 있던 형과 형수였다.

당시 캐서린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으며 조셉은 그나마 목숨은 붙어있어 병원으로 옮겼지만 몇 분만에 숨졌다. 조사 결과, 부부는 나란히 자고 있던 사이 공격을 받았던 것으로 보였다. 캐서린은 목이 깊게 베여 머리가 어깨에서 거의 잘려나가 있었다.

살인범은 집에 침입한 다음 면도칼[4][5]로 부부의 목을 베었고, 그 직후에 도끼로 그들의 머리를 내리쳤는데, 이러한 행동은 진짜 사인을 숨기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집 근처에서 범인의 피 묻은 옷이 발견되었고 얼마 후엔 근처 건물의 잔디밭에서 피 묻은 면도칼이 발견되었다. 경찰은 침입자가 눈에 잘 띄는 돈과 귀중품을 훔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강도를 범행 동기에서 배제했다. 부부를 살해하는 데 쓰인 면도칼이 앤드류의 것이었다는 점에서, 앤드류 매지오는 주요 용의자로 떠올랐으나 더 이상의 증거는 없었고 며칠 후에 석방되었다. 이 사건은 뉴올리언스 도끼 살인마의 첫 번째 범행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3.2. 2차 범행 : 1918년 6월 27일

27일 오전 7시, 배달부 존 잔카(John Zanca)는 배달을 위해 식료품점[6]에 들렀다. 잔카는 식료품점 뒤쪽 숙소에서 피를 흘린 채 쓰러진 점원 루이스 베슈머(Louis Besumer)와 가게의 여주인 해리엣 로우(Harriet Lowe)를 발견한다. 베슈머와 로우 모두 손도끼에 의해 공격받은 상태였고 베슈머는 오른쪽 관자놀이에 공격을 받아 두개골이 골절된 상태였고 로우는 왼쪽 귀가 잘린 채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두 사람은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1차 범행과 다르게 두 사람 모두 살아남았다. 화장실에서는 베슈머의 도끼가 발견되었고, 베슈머는 나중에 자신이 자고 있을 때 누군가 도끼로 공격을 했다고 진술하였다. 경찰은 사건이 일어난 직후, 일주일 전 쯤 식료품점에 고용되었던 당시 41세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 루이스 우비콘(Lewis Oubicon)을 체포했다. 사실 우비콘이 유죄임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는 없었지만 경찰은 우비콘이 공격 당일 아침 그가 어디 있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못했기에 그를 체포했다. 나중에 우비콘은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된다.

사건 직 후 로우는 혼혈인처럼 보이는 남자의 공격을 받았다고 진술했으나, 당시 로우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기에 경찰은 사건의 증언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후, 베슈머의 집 트렁크에서 독일어, 러시아어, 이디시어로 쓰여진 편지가 발견되면서 경찰은 베슈머가 독일 스파이라고 의심했고, 정부 관리가 그의 잠재적 스파이 활동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몇 주 후, 해리엣 로우는 베슈머가 독일의 스파이라고 의심된다며 경찰에 증언했고, 이로 인해 베슈머는 체포되었지만, 이틀 후 석방되었고, 잘못된 체포의 책임을 물어 수사관 2명이 강등되는 일까지 있었다.

사건의 피해자 해리엣 로우는 공격 후 얼굴 마비 증세를 보였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수술을 받았다가 상태가 악화되어 1918년 8월 7일 사망한다. 루이스 베슈머는 살인 혐의로 기소되어 1919년 5월 1일 무죄 판결을 받기 전까지 9개월 동안 감옥에서 복역하였다.

3.3. 3차 범행 : 1918년 8월 5일

2차 범행이 일어나고 얼마되지 않은 8월 5일, 엘미라 스트리트(Elmira Street)에 살던 당시 28세의 8개월 차 임산부 안나 슈나이더(Anna Schneider)는 잠에서 깼을 때 검은 형상이 침대 위에 서 있는 것을 보았고, 그 직후 범인에 의해 공격받았다. 도끼로 공격당한 슈나이더는 두피가 잘려나갔고 얼굴을 구타당해 안면이 피로 덮인 상태였다. 그녀는 자정 이후 늦게 퇴근한 남편 에드 슈나이더에게 발견되었고, 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은 건졌으나 공격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였다. 다행히도 안나 슈나이더는 사건 이틀 후 무사히 딸을 출산하였다. 에드는 집에서 도난당한 것이 없다고 경찰에 증언하였다. 아파트의 창문과 문은 강제로 열리지 않은 것으로 보였으며 경찰은 침대 근처 테이블에 있던 램프로 공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찰은 이 사건의 용의자 1명을 추렸으나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이 사건 이후 경찰은 1차 사건과 2차 사건, 3차 사건이 모두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발표하면서 사건을 연쇄사건으로 판단하였다.

3.4. 4차 범행 : 1918년 8월 10일

그러나 4차 범행은 고작 5일만에 발생했다. 피해자는 80세의 노인 조셉 로마노(Joseph Romano)였다. 8월 10일 밤, 로마노와 함께 살던 조카 파울린 로마노(Pauline Romano)과 메리 브루노(Mary Bruno) 자매는 옆방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방에 들어선 자매들은 누군가 삼촌을 공격하고 있던 현장을 발견했다. 범인은 자매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달아나고 있었지만 메리는 그가 검은색 양복을 입고 구부정한 모자를 쓴 짙은 피부색의 뚱뚱한 남자였다고 증언했다. 로마노는 심각한 두부 외상으로 이틀 후에 사망했다. 다른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사라진 물건은 없었으며 경찰은 뒷마당에서 피 묻은 도끼를 발견했다. 이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연쇄살인 사건임을 확실시했고, 뉴올리언스 시민들에게는 도끼맨(axeman)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었고 그에 따라 허위나 오인신고도 빗발쳤다.

3.5. 5차 범행 : 1919년 3월 10일

이탈리아 이민자였던 찰리 코르티밀리아(Charles Cortimiglia)는 아내 로시 코르티밀리아(Rosie Cortimiglia)와 2살 난 어린 딸 메리(Mary Cortimiglia)와 함께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 교외[7]에서 살고있었다. 3월 10일 밤, 코르티밀리아의 집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고, 근처에 살던 이올랜도 조르다노(Iorlando Jordano)가 코르티밀리아의 집으로 달려갔을 때, 문 앞에서 아내 로시가 머리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채 딸을 안고 출입구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남편 찰리는 바닥에 쓰러진 채 피를 흘리고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가족은 모두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도끼로 목 뒤를 공격당한 딸 메리는 결국 사망했다. 집에서 도난당한 것은 없었지만 뒷문의 판넬이 잘려나갔고 집 뒷문 현관에서 피 묻은 도끼가 발견되었다.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한 로시는 최초 발견자인 이올랜도 조르다노와 그의 18세 아들 프랭크가 자신들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69세였던 이올랜도는 범죄를 저지르기에는 건강이 너무 나빴으며 키가 6피트(182cm) 이상이고 무게가 200파운드(90kg)가 넘는 프랭크 조르다노는 뒷문의 패널을 통과하기에는 너무 컸다. 남편 찰리는 아내의 주장을 강력히 부인했지만 경찰은 두 사람을 체포하고 살인 혐의로 기소하였다. 프랭크는 교수형을 선고받았고 이올랜도는 종신형에 처해졌으며 프랭크는 사형이 집행되었다. 후에 로시는 개인적 원한 때문에 두 사람을 거짓으로 고발하였다고 발표했으며 그 이후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다.

3.6. 6차 범행 : 1919년 8월 10일

경찰이 잘못된 용의자만 조사하는 사이, 범인은 6차 범행을 저질렀다. 피해자는 잡화점을 운영하던 스티브 보카(Steve Boca)였다. 보카는 밤에 잠에서 깼을 때 침대 위로 어렴풋이 보이는 어두운 형체를 발견했고, 곧바로 범인에게 도끼로 공격당했다고 진술했다. 의식을 되찾은 보카는 거리로 나가 이웃의 집 앞에서 의식을 잃었다. 보카는 부상에서 회복되었지만 후유증을 가지게 되었고,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집에서 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다른 범행에서도 있었던 깎여나간 뒷문의 패널 자국이 보카의 집에서도 발견되었다.

3.7. 7차 범행 : 1919년 9월 3일

당시 19세의 사라 라우만(Sarah Laumann)은 7차 범행의 피해자였다. 사라 라우만은 이웃 주민들과 교류가 활발한 편이었다. 9월 3일, 혼자 사는 젊은 여성이 집에 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8]이웃 사람들이 찾아왔으나 라우만은 대답하지 않았고, 이에 불안해진 이웃들이 을 열고 들어갔을 때, 의식을 잃은 라우만을 발견했다. 라우만은 머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여러 개의 치아가 빠진 상태였다. 침입자는 열린 창문을 통해 아파트에 들어와 둔기로 공격했다고 추정되었다. 건물 앞 잔디밭에서는 피 묻은 도끼가 발견되었다. 라우만은 생존하였으나 사건 당시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3.8. 8차 범행 : 1919년 10월 27일

마이크 페피톤(Mike Pepitone)은 6남매의 아버지이자 마지막 희생자였다. 27일 밤, 마이크 페피톤의 아내 에스더 페피톤(Esther Pepitone)은 밤중에 소음에 깨어났고, 남편의 방 앞으로 다다른 순간 도끼를 든 뚱뚱한 남자가 현장에서 달아나는 것을 목격하였다. 마이크 페피톤은 머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고 현장에서 사망한 상태였다. 범인은 앞선 두 차례의 미수 사건으로 인해 피해자를 꼭 죽여야겠다고 다짐했는지 범행 과정이 매우 잔혹해졌고, 침대 옆 그림이 피로 물들 정도로 도끼를 세게 휘둘렀음이 밝혀졌다. 에스더 페피톤 부인은 범인이 큰 체구를 가진 남자라는 것 외에는 범인에 대해 증언하지 못했으며, 8차 범행을 마지막으로 뉴올리언스 도끼 살인마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4. 의심되는 희생자

사건이 일어나기 6~8년 전, 뉴올리언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 몇건 있었는데,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한 후 이 사건들이 범인과 연관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분석이 나왔다.

4.1. 살인마에게서 온 편지

1919년 3월 15일[9], 지역 신문들에 살인마가 쓴 편지가 실렸다. 편지에서 살인마는 '3월 19일 밤 자정 15분 후에 살인을 하겠다. 다만 재즈 음악이 연주되고 있는 곳에 있는 사람들은 살려두겠다.'라고 썼는데, 그 날 밤 뉴올리언스 시내의 댄스홀들은 만석이 되었으며, 수백개의 마을에서 열린 파티에서는 전문적인 재즈 밴드들과 아마추어 재즈 밴드들이 재즈 음악을 연주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날 밤은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다.

(살인마가 보낸 편지 해석)
지옥, 3월 13일, 1919년

뉴올리언스의 존경받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날 절대 붙잡지 못했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거야. 사람들은 날 보지 못했지, 왜냐면 난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마치 너희들의 땅을 둘러싸는 에테르처럼 말이야. 난 인간이 아니야, 하지만 가장 뜨거운 지옥으로부터 온 영혼과 악마지. 내가 바로 너희 시민들과 멍청한 너희들의 경찰들이 '도끼 살인마'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내가 봐서 적합하다면, 난 와서 다른 희생자를 요구하겠지. 그들이 어떻게 될지는 나밖에 모르고. 난 증거를 남겨놓지 않아, 내 회사를 지키기 위해 보냈던 사람의 피와 뇌로 범벅이 된 그 도끼 말고는.

만약 네가 원한다면 넌 경찰한테 날 귀찮게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어. 물론, 난 합리적인 영혼이야. 난 그들이 과거에 조사했던 방법에 대해 불쾌하지 않아. 사실, 경찰들은 너무 멍청해서 나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탄같은 우두머리 프란시스 조세프(Francis Josef)도 웃게하지. 하지만 그들에게 알고 있으라고 전해. 그들한테 내가 누군지 알아내려고 하지 말라고. 왜냐면 이 도끼 살인마의 진노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는 그들이 태어나지 않는게 더 좋으니까.

의심할 여지도 없이, 너희 시민들은 날 가장 끔찍한 살인마라고 여기겠지, 내가 누구건, 난 내가 원한다면 더 심해질 수 있어.
만약 내가 바란다면, 난 매일 밤 너희들의 도시에 올 수 있지. 내가 죽음의 천사와 깊은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난 수천 명의 가장 특권층의 시민(그리고 가장 비참한 시민)을 죽일 수 있어.

이제, 정확하게, 다음 주 화요일 밤 12시 15분에, 난 이 뉴올리언스를 지나갈 예정이야. 내 무한한 자비로 난 너희들에게 매우 작은 제안을 하나 할게.

난 재즈 음악을 매우 좋아해, 그리고 내가 이 모든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모든 악마들에게 맹세하는데, 내가 방금 언급한 시간에는 재즈 밴드들이 한창 공연을 진행하고 있어. 만약에 모든 사람들이 재즈 밴드가 있다면, 그게 너희들에게 더 좋을거야.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만약에 그 화요일 밤에 재즈를 즐기지 않는 사람은 도끼로 살해당할 거라는 거지.

음, 내가 추워서 내 지옥의 따뜻함을 갈망하고 있는데, 내가 너희들의 세속적인 집을 떠날 쯤에는, 난 내 담론을 중단할거야.
네가 이걸 출판하길 바래, 그러면 잘 될 테니까. 나도 그랬거든, 그리고 사실과 공상의 영역에 존재했던 최악의 정신이 되겠지.

4.2. 용의자 추적

범죄학자 콜린 윌슨(Collin Wilson)은 그 살인마가 조세프 몸프리(Joseph Momfre)라고 추측했다. 이 사람은 1920년 12월에 LA에서 총을 맞고 사망했는데, 총을 쏜 사람은 뉴올리언스 연쇄살인 사건의 마지막 피해자 마이크 페피톤의 아내였다. 윌슨의 이 생각은 다른 범죄학 서적이나 웹사이트에서 많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범죄소설 작가 마이클 뉴턴(Michael Newton)은 신문기사는 물론 뉴올리언스와 로스앤젤레스의 공공기관, 경찰 그리고 재판 기록을 뒤져본 결과 '조세프 몸프리'라는 이름의 남자가 LA에서 살해되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뉴턴은 또한 페피톤 부인이 그러한 범죄로 체포되거나, 재판을 받거나, 심지어 캘리포니아에 거주했다는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그에 따르면, 당시 "몸프리(Momfre)"라는 성은 사건 당시 뉴올리언스에서 특이한 성이 아니었으며, 실제로 뉴올리언스의 범죄기록에 있고 조직 범죄와 관련된 사람이 'Momfre'나 'Mumfre'같은 성을 가졌을 수는 있다. 그러나 해당 사건이 벌어졌던 기간에 해당하는 기록은 사실을 확인하거나 식별할 만큼 충분히 광범위하지 않다. 윌슨의 이론은 아마도 도시 전설일 것이며, 살인마의 신원에 대한 증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학자 리처드 워너(Richard Warner)에 따르면, 주요 용의자는 '프랭크 조세프 몸프리(Frank Joseph Momfre)'라는 예명을 사용한 프랭크 독 멈프리(Frank "Doc"Mumphrey)라고 한다.
[1] 특이한 점은 도끼의 소유자가 희생자들이란 사실이다.[2] 이탈리아계 미국인은 물론 이탈리아 본토에서 이주한 이주민도 포함되어 있었다.[3] 남성의 집이 아닌 여성의 집에서 사건들이 일어났다는 점을 근거로 하였다.[4] 부부를 살해하는데 쓰인 면도칼은 이발소를 운영하던, 조셉의 형제인 앤드류 매지오의 것으로 밝혀졌다.[5] 앤드류의 이발소 직원인 에스테반 토레스는 앤드류가 사건이 발생하기 이틀 전에 면도날을 자신의 가게에서 치웠다고 증언했다.[6] 도르게노이스(Dorgenois)와 라하르페 스트리트(Laharpe Street) 모퉁이[7] 그레트나(Gretna)의 제퍼슨 애비뉴(Jefferson Avenue)와 세컨드 스트리트(Second Street) 모퉁이[8] 평소 라우만은 혼자 살았기에 근처에서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으로 불안해했고, 이에 이웃들이 주기적으로 찾아와 주었다고 한다.[9] 5차 범행이 일어나고 5일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