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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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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号

1. 개요2. 관련 문서

1. 개요

천하 3명창 중 하나. 훈독으로 히노모토고라고도 하며, 민요 '쿠로다부시(黒田節)'의 기원이 된 . 쿠로다부시란 후쿠오카 지방의 민요로서, 내용은 아래와 같다.
마셔라 마셔, 술로써 일본 제일의 이 창을 차지할 이야말로 진정한 쿠로다 무사로다.
(酒は呑め呑め呑むならば日本一のこの槍を呑み取るほどに呑むならばこれぞ真の黒田武士)
현재 일본에 3개 남은 오미노야리(大身の槍)[1]중 하나이자 톤보키리, 오테기네와 함께 천하 3명창으로 손꼽히던 명물(名物). 전체 길이는 321.5cm에 날의 길이는 79.2cm. 자루는 굵은 진주와 광택을 띤 조개의 나전으로 장식했고, 창날에는 섬세한 쿠리카라(倶梨伽羅)가 조각된 화려한 창이다. # 제작자는 불명이지만 카네후사파(金房派)의 작품으로 추정한다. 창을 다루는 도장(刀匠) 중에서 솜씨가 있는 자는 살면서 꼭 한번 니혼고의 사본을 만드는 것에 도전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 창신 본체뿐만이 아니라 진주 자개의 첩존(貼拵)도 사본이 많이 제작된다. 일본의 인간문화재 2대 갓산 사다카즈(月山貞一, 1907-95)가 만든 니혼고 사본이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오사카 역사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원래는 황실의 소유물로, 정 3위(正三位) 다이나곤(大納言)[2]의 벼슬을 하사하는 것에 쓰이며 '창에 정 3위 자리가 있다'고 칭송받았다. 이러한 이름값과 화려한 창의 모습 때문에 실전용도 실전용이지만 군사의 기강을 바로잡는 데 주로 쓰였다고 한다.

오기마치 덴노로부터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물려받고, 차례로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소유물이 됐다. 특히 황가에 충성심이 강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어물이었던 니혼고를 소유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서 어디를 가든 항상 니혼고의 위용을 자랑했다고 한다. 니혼고라는 이름을 붙인 것 또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덴쇼 18년(1590), 오다와라 정벌에서 니라야마성 공격에 성공한 공을 칭찬하여 후쿠시마 마사노리에게 니혼고를 하사하였고, 후에 쿠로다 칸베에의 가신인 모리 타헤에에게 전해졌다.

이때 유명한 쿠로다부시의 모티브가 되는 일이 일어났다. 평소 음주를 즐기던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쿠로다에서 보낸 사신인 모리 타헤에에게 계속해서 술을 권했다. 모리 타헤에는 술을 잘 마시지만 실수할 것을 우려해서 끝가지 거부했지만 술에 단단히 취한 마사노리는 '술도 못 마시는 쿠로다의 무사', '마시면 뭐든지 다 주겠다'며 커다란 술잔에 넘치도록 술을 따라 주었고, 결국 모리 타헤에는 마실 테니 니혼고를 달라며 그 술을 원샷 해버렸다. 마사노리는 니혼고를 매우 아꼈기에 당황했지만 물릴 수 없었다고 한다. 이후에는 대대로 모리 가에 전해져 1900년대까지 모리 가에서 소장하였다. 창의 마타베에라고 모리 타헤에의 목숨을 구한 보상으로 고토 마타베에에게 건너가 쿠로다 칸베에 사후에 고토 마타베에가 쿠로다에서 도망갈 때 노무라가로 옮겨졌다는 일화가 있으나 이는 고토 마타베에가 에도시대에 무용담의 주인공으로 인기인이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창작인 듯하다.[3]

이후 많은 주인을 전전하였다. 노무라 스케나오, 도야마 미츠루를 거쳐 결국 옛 후쿠오카 무사 출신인 야스카와 케이이치로(安川敬一郎) 남작이 "니혼고는 후쿠오카의 땅을 떠나서는 안 된다."라고 하며 1만 엔에 매입[4], 쿠로다 가문에 증여했다. 현재는 후쿠오카시 박물관[5]에서 전시 중이다.

2. 관련 문서



[1] 날만 약 70센티미터 이상인 창.[2] 율령제 하에서 다조칸(太政官)에 속했던 관직이다. 다조칸의 사등관 중 2등급인 스케(次官)로 차관에 해당한다. 모든 일에 참여하여 의논하고, 부주(敷奏, 천황에게 의견을 올리는 것)·선지(宣旨, 천황의 명령을 아래에 전하는 것)·시종(侍従, 천황 곁에서 모시는 것)·헌체(献替, 천황을 보좌하여 간하는 것)를 맡는다.[3] 모리 가에 대대로 니혼고를 소장한 사료가 있고 모리 가는 이 일화를 부정한다.[4] 당시 돈으로 1만 엔. 오늘날의 일본 엔으로는 2천만 엔 전후에 달하는 거금이다.[5] 후쿠오카 타워와 모모치 해변이 있는 곳에서 가깝다. 이것 말고도 왜노국왕 금인 등 일본사에서 중요한 국보도 있어 시 박물관 치고 잘 되어있고 입장료도 200엔으로 일본 박물관 중에서는 저렴하기 때문에 잠깐 둘러보기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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