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07-07 18:36:44

다우드(셀주크 제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Seljuqs_Eagle.svg.png
셀주크 술탄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토그릴 1세 알프 아르슬란 말리크샤 1세
마흐무드 1세 바르키야루크 말리크샤 2세
아흐마드 산자르
무함마드 타파르
마흐무드 2세 다우드
아흐마드 산자르
토그릴 2세 마수드 말리크샤 3세
아흐마드 산자르
쉴레이만샤 아르슬란샤
무함마드 2세
토그릴 3세 키질 아르슬란 토그릴 3세 }}}
역대 셀주크 술탄 · 룸 술탄국 술탄
}}}}}}

<colbgcolor=#fff><colcolor=#28b6c6> 셀주크 제국 술탄
다우드
الفارض
본명 다우드 이븐 마흐무드
شرح الخمرية ابن الفارض.‎
출생 미상
사망 1143년
재위 셀주크 제국 술탄
1131년 ~ 1133년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8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fff><colcolor=#28b6c6> 부모 아버지 마흐무드 2세 }}}}}}}}}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셀주크 제국 술탄. 형제 및 숙부들과 함께 술탄을 놓고 경쟁했으나 끝내 밀려났다.

2. 생애

서부 이란과 이라크를 통치한 술탄 마흐무드 2세와 성명 미상의 첩실 사이의 아들이다. 일찍이 아버지로부터 아제르바이잔의 통치자로 선임되었고, 1131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아버지의 가신들에 의해 새 술탄에 추대되었다. 그러나 숙부이자 파르스와 이스파한의 통치자인 기야스 앗 딘 마수드가 술탄위를 쟁취하고자 반란을 일으켰고, 호라산의 통치자 아흐마드 산자르는 카즈빈의 통치자 토그릴 2세를 지지했다.

다우드는 반란자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둬서 입지를 다지려 햇지만, 1132년 7/8월 하마단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토그릴 2세에게 완패했다. 그는 아타베그인 아크 순쿠르 알 아흐마디리와 함께 아제르바이잔으로 피신했다. 이후 아흐마드 산자르에게 패배해 복속해야 했던 마수드가 산자르가 호라산에서 벌어진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회군하자마자 복속을 철회하자, 그는 마수드에게 의탁한 뒤 산자르가 술탄으로 옹립한 토그릴 2세에 대항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토그릴 2세에게 패배한 뒤 바그다드로 도주했다.

칼리파 알 무스타르시드는 두 사람을 받아준 뒤 1133년 1월 바그다드 아미르들의 지지를 받던 마수드를 술탄으로 책봉했다. 이후 다우드와 마수드는 칼리파의 군대를 등에 업고 북상해 그 해 5월 토그릴 2세를 격파하고 하마단에 입성했다. 이후 마수드가 칼리파와의 동맹을 단절했지만, 그는 아제르바이잔에 자리를 잡고 칼리파와의 동맹을 이어갔다. 칼리파가 이란 중부에 웅거하던 토그릴과 화해한 뒤 마수드의 영역에 속한 모술을 공격할 때 함께 했지만, 마수드가 구원병을 파견하자 철수했다.

그 후 아제르바이잔에서 마수드의 봉신으로서 조용히 지내던 그는 1135년 칼리파 알 무스타르시드와 마수드가 전쟁을 벌일 때 칼리파를 지원해 , 알 무스타르시드가 케르만샤 부근에서 참패하면서 실패했다. 알 무스타르시드는 마수드에게 사로잡힌 뒤 바그다드의 궁전을 벗어나지 않는 조건으로 사면받았다. 그러나 8월에 마수드가 약속을 파기하고 알 무스타르시드의 폐위를 선포한 후 아제르바이잔으로 유배했다. 알 무스타르시드는 하마단 외곽에서 떠날 채비를 하다가 산자르의 군대가 인근에 당도하자 그에게 망명해 재기를 꾀했으나, 산자르 진영 내 막사에서 쿠란을 읽던 중 아사신 단원에게 살해당했다.

그 후 마수드에 의해 칼리파에 옹립된 알 라시드는 1135년 10월 바그다드에 도착하자마자 복수를 천명하고 마수드가 선임한 바그다드 총독 베그 아바를 추방하고 마수드가 파괴한 성벽을 재건하며 수성전을 준비했다. 이후 마수드에 대항할 동맹을 결성했는데, 다우드도 여기에 가담했다. 알 라시드는 쿠트바에서 마수드와 산자르의 이름을 삭제하고 다우드를 언급함으로써 그를 술탄으로 인정할 용의가 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1136년 8월 바그다드가 마수드의 맹공으로 함락될 위기에 몰리자, 알 라시드는 동맹을 맺은 장기가 있는 모술로 피신했다가 마수드의 압력을 받은 장기에 의해 추방당하자 다우드에게 의탁했다. 다우드는 칼리파를 앞세워 반 마수드 세력을 구축하고 술탄에 복위하려 했지만 1138년 6월 알 라시드가 아사신 자객에게 암살당하면서 실패했다.

그 후 아제르바이잔 산악 지대에서 웅거하던 그는 1143년 타브리즈에서 목욕하던 중 4명의 아사신 단원들에게 암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