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22 23:06:42

유리코 비

다카기 유리코에서 넘어옴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AF001F, #BD0029 20%, #BD0029 80%, #AF001F); color: #DCA600"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친왕|
친왕
]]
[[친왕비|
친왕비
]]
   
 
 
 
 
 
 
 
 
[[황적이탈|
장녀
]]
 
 
 
 
 
[[친왕|
친왕
]]
[[황적이탈|
차녀
]]
[[친왕|
친왕
]]
 
[[친왕|
친왕
]]
[[친왕비|
친왕비
]]
   
 
 
 
 
 
[[여왕(일본 황실)|
여왕
]]
[[여왕(일본 황실)|
여왕
]]
 
 
 
[혼]: 결혼으로 인한 황적이탈
[궁]: 분가하여 새 미야케 창설
}}}}}}}}}}}}

<colbgcolor=#bd0029><colcolor=#dca600> 다카히토 친왕비 유리코
崇仁親王妃百合子
파일:崇仁親王妃百合子.jpg
출생 1923년 6월 4일
일본 제국 도쿄도 미나토구
사망 2024년 11월 15일 (향년 101세)
일본 도쿄도
배우자 다카히토
자녀 장녀 고노에 야스코
장남 토모히토
차남 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
차녀 센 마사코
삼남 노리히토
부모 아버지 다카기 마사나리, 어머니 이리에 구니코
1. 개요2. 생애3. 가족관계
3.1. 황실 가계도

[clearfix]

1. 개요

일본 황실의 인물. 결혼 전 이름은 다카기 유리코(高木百合子). 다이쇼 천황의 막내아들인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의 아내(친왕비)이며 아키히토의 숙모이자 나루히토의 작은할머니이다.

2016년 남편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이 사망한 후 약 8년 간 일본 황실의 최연장자였다.

2. 생애

화족 출신으로 다카기 마사나리(高木正得) 자작과 부인 이리에 구니코(入江邦子)의 차녀로 태어났다. 외삼촌인 이리에 스게마사(入江相政)는 쇼와 천황의 시종장을 지냈다. 외할머니 이리에 노부코(入江信子)는 야나기하라 사키미쓰(柳原前光)의 딸이며 문학가 야나기하라 뱌쿠렌의 이복언니이다. 사키미쓰는 다이쇼 천황의 생모인 야나기하라 나루코의 오빠로[1], 따라서 유리코는 남편 다카히토에게 7촌 조카뻘이 된다.

여자 가쿠슈인 본과[2]를 졸업한 1941년 10월 22일 스미노미야(澄宮)[3]와 혼인해 친왕비가 되었다. 미카사노미야는 현존하는 궁가 중 구 황실전범 시대에 만들어진 유일한 궁가다.

1947년 5월 3일 신헌법 시행으로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화족들이 평민으로 내려앉았다. 이 과정에서 유리코 비의 친정인 다카기 가문도 몰락해 부친 다카기 마사나리(高木正得) 자작은 1948년에 자살했다.

손이 귀한 일본 황실에서 5명이나 되는 자식을 낳았지만, 그 때문에 한동안 생계가 어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남편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가 군인 출신이었기 때문에 전우회에서 상당한 지원을 해 줬다고 한다.

아들 셋이 모두 일찍 사망한 뒤 2016년에 남편도 사망하면서 미카사노미야 궁가의 궁주 자리를 맡았다. 장남 토모히토의 집안은 사실상 별개의 집안으로 취급되었으나 맏며느리 노부코 비와의 여러가지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토모히토의 큰딸 아키코 공주와 작은딸 요코 공주가 미카사노미야 가문으로 돌아오고[4], 아키코 공주는 "평생 독신으로 미카사노미야 가문을 유지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이후에는 할머니인 유리코 비의 보조를 어머니인 노부코 비가 대신했다.

3남 노리히토쓰구코 공주, 노리코 공주, 아야코 공주를 낳았다. 차녀 노리코 공주와 3녀 아야코 공주는 각각 혼인해서 황실을 나갔다. 장녀 쓰구코 공주는 결혼하고 싶은 남성이 있어서 오래 전에 그를 데리고 와서 보여주었으나, 할머니 유리코 비와 어머니 히사코 비는 그 남성이 격에 맞지 않다면서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2019년 1월 22일 고열에 시달린 후 공식 공무인 2019년 4월 30일 아키히토 상황의 생전 퇴위 의식 및 2019년 5월 1일 나루히토 천황의 즉위의식에서 휠체어를 탄 모습이 확인되었다. 2019년 5월 4일 일반참하에서는 휠체어를 탄 상태에서 들어왔으나 의식이 실시했을 때에는 휠체어에서 일어났다가 의식이 끝나자 다시 휠체어에 앉아서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 그 자리에서 서는 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9년 7월 7일, 1살 위의 친언니 다카기 키누코(高木衣子)[5]가 사망했다. 유리코 비가 30일간 추모에 돌입한다고 8일 궁내청이 밝혔다.

2019년 9월 5일 황실회의에 참여하는 황족의원을 뽑는 선거 결과 예비의원으로 키코 비와 함께 유리코 비가 선정되었다고 한다. 고령에 건강이 나쁜 유리코 비가 예비의원을 맡아야 할 정도로 황실 사정이 말이 아니라는 평가가 나왔다. 참고로 투표로 인하여 결정된 황족의원은 후미히토하나코 비로 사실상 인원 문제로 인해 연임 중이다.

2020년 9월 24일, 폐렴으로 입원하였다.# 9월 28일 만일을 위하여 병원에서 PCR 검사를 한 결과 음성이었으나 정밀검사 결과 심부전 증상도 있었기 때문에 입원 기한이 연장되었다가 10월 8일 무사히 퇴원하였다.

2022년 7월 13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확진되었다.

2023년 6월 4일 100세 생일을 맞이했다.

2024년 11월 15일 폐렴이 재발해 향년 101세로 사망했다.# 이로써 다이쇼 시대 태생 황족은 모두 역사 속의 인물이 되었다.

3. 가족관계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와 혼인해서 3남 2녀가 있다.

3.1. 황실 가계도

         
 ╟─
 ╟─
 ╟─
         
         
         
다카쓰카사 도시미치
         
이케다 다카마사
 ╟─
 ╟─
 ╟─
시마즈 히사나가
구로다 요시키
 ╟─
고노에 다다테루
 ╟─
센 소시츠
 ╟─
센게 구니마로
모리야 케이




[1] 즉, 다이쇼 천황의 외삼촌[2] 오늘날의 가쿠슈인 여자 중등과+여자 고등과 과정[3] 다카히토의 아명.[4] 아키코 공주의 증언에 의하면 어머니인 노부코 비와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을 정도로 사이가 안 좋다고 한다. 아키코 공주와 요코 공주가 미카사노미야 가문에 돌아온 것도 (할머니 유리코 비를 보필하기 위함도 있지만) 어머니가 당주가 되는 것이 싫어서 그런 듯하다고.[5] 다카기 집안에는 딸밖에 없어서 장녀 키누코의 남편인 키고시 마사요리(木越正順)가 데릴사위로 들어와 성씨를 다카기로 바꾸고 처가의 대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