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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16:04:30

코무로 케이

코무로 케이
小室圭 | Komuro Kei
파일:kei-komuro.jpg
출생 1991년 10월 5일 ([age(1991-10-05)]세)

[[일본|]][[틀:국기|]][[틀:국기|]]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거주지 뉴욕주 뉴욕시 맨해튼 헬스키친구역 웨스트 52번가 525아파트[1]
학력 구니타치 음악대학 부속초등학교 (졸업)
캐나디안 인터내셔널 스쿨 중학부 (졸업)
캐나디안 인터내셔널 스쿨 고교부 (졸업)
국제기독교대학 (예술과학과 / 학사)
히토쓰바시대학 대학원 (국제기업전략과 / 석사)
포덤 대학교 로스쿨 (법학 / LL.M. ∙ J.D.)
소속 로웬스타인 샌들러(Lowenstein Sandler)[2]
신체 165cm / 60kg
배우자 코무로 마코[3]

1. 개요2. 가족관계3. 마코 공주와의 약혼4. 논란
4.1. 황족의 배우자로서 자질 논란4.2. 연기된 결혼4.3. 어머니 카요의 남자 문제와 돈 문제4.4. 미국 유학4.5. 과도한 특혜 논란
4.5.1. 해결되지 않은 어머니의 채무 논란4.5.2. 계속된 파혼 논란4.5.3. 코무로 문서 발표(1차)4.5.4. 코무로 카요의 의혹
4.6. 레이와 시대 이후
4.6.1. 이지메 가해자 논란4.6.2. 결혼 전 미국 생활4.6.3. 귀국, 그리고 마침내 결혼에 골인하다4.6.4. 결혼 후 미국 이민4.6.5. 재수 실패 후 3수 성공
4.7. 코무로 케이의 언행 논란
4.7.1. 코무로 문서 발표(2차)
4.8. 추측
5.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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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변호사이자 일본의 前 황족인 코무로 마코의 남편. 2017년 마코 공주와 약혼 발표 기자회견을 하였으며, 2018년 11월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코무로 가문에 대한 각종 논란과 구설수로 인해 반대 여론이 높아지는 바람에 오랫동안 결혼이 미뤄졌다. 그러다가 2021년 10월 26일에 혼인신고를 하면서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케이와 마코 두 사람의 결혼에 부정적인 의견이 적지 않다. 두 사람은 결혼식과 지참금[4]도 없이 혼인신고만으로 부부가 되었으며, 미국으로 이주하여 신접살림을 차렸다.

대한민국 언론에서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고무로 게이로 표기한다.[5]

2. 가족관계

아버지 코무로 토시카츠(小室敏勝, 1966년생으로 메이지대학 졸업)는 케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02년 3월[6]자살했다.[7]

친할아버지는 아들 토시카츠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충격을 받았으며, 아들이 자살한 지 1주일 후에 사망했다. 친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케이는 외할아버지 카쿠다 쿠니미츠(角田國光), 어머니 코무로 카요(小室佳代)[8]와 함께 살았다.

3. 마코 공주와의 약혼

2017년 5월 16일, "아키히토 덴노의 차남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의 장녀 마코 공주가 조만간 동갑내기 남자친구 코무로 케이와 약혼하여 2018년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케이는 마코 공주와 국제기독교대학 동창으로(캠퍼스 커플), 당시에는 도쿄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동시에 히토츠바시대학 대학원에 다니며 경영법무 공부도 하고 있었다. 미국 어학연수 경험이 있고 토익이 950점일 정도로[9] 영어도 잘 한다고 한다. 카나가와현에 있는 관광지 쇼난(湘南) 에노시마에서 '바다의 왕자'라는 이름으로 홍보대사 활동을 한 경력도 있어서, 일본 언론에서는 "마코 공주가 '바다의 왕자'와 약혼한다."라고도 보도했다.

마코 공주의 아버지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과 어머니 키코 비는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했고, 이후 조부모 아키히토 덴노와 미치코 황후도 손녀의 결혼을 허락했다. 일본의 민간에서는 데릴사위도 가능하지만 황실에서는 불가능하며, 황실전범에 의하면 평민 남성과 결혼한 공주는 결혼 후 무조건 황족의 신분을 잃고 남편을 따라 평민이 된다.[10] 따라서 결혼 후 마코 공주의 이름도 '코무로 마코'로 바뀌었고, 남편을 따라 평민이 되었다.

코무로 마코는 시집간 후로도 일본테니스협회 총재 활동은 계속할 예정이었다.[11] 그러나 2021년 혼인신고 후 미국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총재직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4. 논란

4.1. 황족의 배우자로서 자질 논란

상류층 출신이 아닌 코무로 케이를 두고 일본 여론은 처음부터 나빴다. '좋은 가문도 부자도 아니고, 게다가 직장도 뚜렷하지 않은 비정규직인데 결혼해도 괜찮을까?'하는 반응. 또한 케이가 뭔가 수상한 면모가 있는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음을 문제 삼았다. 단순히 한부모 가정이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아버지 토시카츠가 자살했는데 그 사유와 전후 사정이 영 찜찜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의 공주들도 평민과 결혼하긴 했다. 1947년에 다이쇼 덴노의 직계손들을 제외한 모든 방계 황족들과 화족들이 평민으로 강등당하고(신적강하), 1965년 11월 30일[12]부터 2006년 9월 6일[13]까지 황실에서는 줄줄이 공주들만 태어나,[14] 더 이상 황실 내부에서 끼리끼리 결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주들이 시집간 가문은 말이 평민이지, 다들 뼈대 있고 유복한 가문이었다. 옛 화족 가문이거나, 신관 가문이거나, 대대로 이어지는 유명한 가업이 있는 가문이거나, 시아버지가 고관대작 출신이거나 등이 있다.

그러나 코무로의 집안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본인들은 코무로 케이의 집안이 평범하다는 이유 하나로 그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아래 내용을 보면 당장 누구와 약혼했더라도 결혼을 망설일만한 조건이다. 오히려 사람들은 진짜 평범한 집안의 보통 남자이기만 했어도 이정도로 싫어하지는 않을거라고 말할 정도다. 실제로 유튜브트위터 등지에서는 저 정도로 수상한 배경을 가진 남자라면 일반 가정집에서도 사위로 안 받아줘라고 비난하는 일본어 댓글이 주를 이루기도 했다. 실제로 가쿠슈인 출신에 아키시노노미야 친왕과 친한 동문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배경이 없는, 평민 출신에 회사원 아버지를 둔 지극히 평범한 공무원이었던 구로다 요시키가 노리노미야 사야코 공주와 결혼한다 했을 때도 이런 반발이 나오지 않은 점을 보면 단순히 평범한 평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일본 국민들의 반발이 있었던 게 아닌 것은 확실하다.

코무로 문제가 발생한 이후에 다카마도노미야 아야코 공주와 결혼한 모리야 케이(守谷慧)도 한부모 가정 출신이긴 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모리야 키미에(守谷季美枝)는 해외에서 NGO 봉사활동을 하다 풍토병으로 현지에서 사망한 것이고, 사망한 시점도 아들이 장성하여 대기업에 취업한 뒤였다.(키미에는 아들이 아야코 공주와 결혼하기 3년 전인 2015년에 사망했다.)[15] 반면 코무로 케이의 아버지 코무로 토시카츠는 한참 젊은 나이인 38세에 죽었는데, 사인이 무려 분신자살이다. 자살 사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로부터 1주일 후에 토시카츠의 아버지, 즉 코무로 케이의 할아버지도 사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코무로 케이의 친할머니도 사망했다.

이렇게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아서 '토시카츠는 자살한 게 아니라 아내 코무로 카요에게 살해된 게 아니냐?'는 의심이 있다. 이 정도면 황실은커녕 일반 서민들이라도 결혼을 망설일 만한 뒷배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코무로 집안을 문제점이 아주 많은 가정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파일:hjkkjhjkhkhkjh.jpg
1990년 코무로 토시카츠와 카쿠다 카요의 결혼식 사진. 왼쪽의 두 사람은 카요의 아버지 카쿠다 쿠니미츠, 카요의 어머니 카쿠다 야소코(角田八十子).

일본인들이 코무로 집안을 우려한 것은 마코 공주를 걱정해서라기보다는, 평범 이하인 가정에 시집 가서 적응하지 못하고 친정(황실)에서 경제적 지원(세금)을 받는 경우를 걱정해서였던 듯하다. '일본 황실에서는 어차피 공주가 시집갈 때 지참금 약 1억 엔을 주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도 있으나, 2005년에 결혼한 고모 구로다 사야코의 사례를 보면 1억 엔 정도는 집을 사고 나면 감쪽같이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경호 등을 받기에 제법 돈이 들어간다고 한다.[16] 거기에다가 코무로 케이 본인의 이전 직장과 사생활들에 대해서도 나쁜 이야기들이 많다.

집안 문제를 접어두고 케이 본인의 행적을 따지면, 그는 과거 미쓰비시 UFJ 은행에 입사하여 마루노우치 지점에 배속되었는데, 그곳은 국제기독교대학 정도의 학력으로는 들어가기 힘들다는 평도 있을만큼 나름 좋은 직장이다.[17]

하지만 어쨌든 국제기독교대학도 은행에 입사하기엔 충분한 학력이다.(다만 내부 경쟁에서 뒤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도쿄대학, 교토대학 등 구 제국대학소케이보다 확실히 아랫 등급으로 취급받지만 (G)MARCH보다는 높다. 그럭저럭 좋은 학력, 유창한 영어, 겉치레에 능한 코무로 케이로서는 황실이 개입하지 않았어도 충분히 입사할 수 있을 것이다. 황실이 개입했다면 좀더 안정적인 다른 회사, 이를테면 재벌계 제조업이나 상사 등에 들어갔어야 그나마 수지가 맞는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후미히토 일가를 두고 여러 가지 의혹들이 많은데다가 케이가 은행에 입사하던 시기에 이미 사귀던 시기였으니 이런 말이 나온 듯하다. 그런데 케이는 입사한 후로도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켜, 결국 얼마 못 가서 퇴사했다고 한다. 당시 직장 동료들의 증언에 의하면, 케이는 거래처의 중요한 서류를 받아놓고서 실수로 그 서류를 분실[18]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의 관리부실을 시인하기는커녕 '거래처로부터 그 서류를 받은 적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며 역으로 거래처에 큰 소리를 쳤다고 한다. 물론 거래처의 담당직원은 난데없는 책임전가에 분통이 터졌고. 이후 전 직장상사의 폭로에 의하면, 이때 잃어버린 서류는 그 거래처 여직원이 울고불고하면서 찾아봤지만 결국 찾지 못해서, 은행 측에서 특수한 절차에 따라 어떻게든 해결했다고 한다.

은행에서 근무하던 2년여간 코무로 케이는 동료들과 잘 교류하지도 않았지만, 묘하게 다른 사람들을 깔보는 듯한 태도에 툭하면 멍 때리거나 사소한 실수들을 자주 저질러 동료들 사이에선 평이 안 좋았다고 한다. 그나마 친하게 지낸 동료에게는 "이러려고 은행에 입사한 게 아닌데."라거나 "나는 조금 더 큰 일을 맡고 싶다."하고 이야기하면서 불만을 늘어놨다고 한다. 참고로 법과 인연이 없던 코무로 케이가 메가뱅크를 퇴사한 후에 갑자기 변호사사무실에서 사무보조를 한 것에 대해서는, 사실상 후미히토일본 황실에 의한 낙하산 인사로 보는 시각이 기본적이다. 그 이유는, 코무로 케이를 언론에서는 '파라리걸'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일본 모두 파라리걸은 '변호사 자격이 없지만 정규 법률 과정을 이수한 자라서 제한적이나마 법률 업무를 볼 수 있는 사람'을 뜻하는 용어다. 그가 실제로 하는 업무는 서류 복사 등 비법률 업무인데, 그걸 언론들이 알고 의도적으로 파라리걸이라고 부르는 거라는 얘기다. 또한 마코 공주와 약혼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케이가 클럽에서 화려한 복장 등으로 역시 화려한 복장을 한 여자들 사이에서 즐겁게 노는 모습의 사진이 찍힌 적도 있다. 대놓고 학창시절에는 여성 아나운서를 노리고 아나운서 스쿨[19]에서 활동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사적으로도 코무로 케이가 좋은 남자가 아니라는 여러 가지 정보들이 주간지 등을 통해서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지자, 케이와 마코 공주의 결혼을 나쁘게 보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2019년 3월, 카요가 남편 코무로 토시카츠 및 시아버지의 유산을 두고 코무로 일가족들과 분쟁이 발생하자 폭력단 즉, 야쿠자 출신자를 대리인으로 내세워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고 이 사건 이후에는 코무로 가문과 카요 모자는 사실상 절연관계라는 의혹이 불거져, 일본 여론은 더욱 부정적이 되었다. 하필 이 시기에는 연예계에서 야쿠자와 연관된 스캔들이 퍼지던 시기였기에, 더더욱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그 와중에 언론 보도가 하나 더 나왔다. 코무로가 과거 음식점 체인 기업 딸(이하 C씨)와 교제하던 도중에 마코 공주와 교제를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양다리 의혹이 카요의 전 남자친구 A씨와 코무로의 국제기독교대학 동기 등의 인터뷰로 나왔기 때문에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서, 순식간에 일본 인터넷 전체에 확산되었다. 거기에 C씨가 가지고 있던 카드를 어떻게든 자기가 소지하면서 마구 쓰다가 C씨의 아버지에 의하여 강제로 관계가 끝났다는 이야기까지도 있다.

이런 코무로와 결혼하겠다고 고집을 꺾지 않는 마코 공주에 대한 일본 대중의 여론은 그야말로 최악, 바닥을 쳤다. 코무로 케이는 후술할 결혼 연기 이후 말도 안 되는 변명만 몇 번 하고는 침묵하다가 곧바로 미국으로 도망가서 그 이후부터는 언론을 피해다녔다. 문제의 시발점인 어머니 코무로 카요도, 아들이 유학 간 전후로 해결은 하지 않고 그냥 두문불출할 뿐이었다. 그래서 케이 본인이 인간으로서 문제가 많을뿐더러 '마코 공주를 사랑해서 결혼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공주의 배경, 즉 황족이라는 권력과 세금으로 운영되는 막대한 금액을 노렸을 뿐'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어 일본 국민들이 더욱 반감을 품었다.

결혼 연기 발표 직후까지만 하더라도 의혹이라고 해봐야 카요의 채무 문제뿐이었기에, 케이가 기자회견이라도 열어서 상대와 협의하여 언제라도 자력으로 갚겠다고 했다면 결혼 연기가 취소되었을지도 모른다. 경제력 부족은 죄는 아니니까, 그걸로 끝이었으면 본인들이 간절히 원하니 그냥 인정해줬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냥 입을 닫아버리고 해외로 도망치니, 카요의 보험 살인 논란이나 야쿠자 개입 논란, 코무로 케이의 왕따 가해자 논란 등이 추가로 튀어나와 결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결혼 연기 기한인 2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코무로는 줄곧 유학지인 미국에서 침묵을 지키다가 코로나 19의 영향이 미국 전역을 강타하며 큰 문제를 일으키던 2020년 6월 경에 유창한 영어로 발표하는 음성을 공개했고 이와 비슷한 시점에서 한 잡지에 기고했다. 이에 대한 일본 네티즌들의 반응은 "기고문에서 '신뢰의 중요성'을 주창하는 사람이 2년 가까이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다는 게 기가 차서 말도 안 된다"는 반응 일색이었고, 코로나 19에 묻히던 감이 있던 코무로 케이와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에 또 다시 불을 지펴버린 꼴이 나버렸다.

4.2. 연기된 결혼

결국 2018년 2월 6일, '원래 2018년 11월 4일로 예정됐던 결혼식을 2020년까지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충분히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지만, 한 번 정한 천황 일가의 결혼식 날짜를 미룬 사례는 지진 등 천재지변이 일어나 국민들과 슬픔을 함께 한다는 뜻을 보이기 위한 경우[20]밖에 없음을 생각하면, 과연 진실은…

아니나 다를까, 일각에서는 케이의 어머니 카요의 금전 문제가 불거지면서,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에서 마코 공주의 결혼에 제동을 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궁내청은 '카요에 대한 보도가 결혼 연기와 관련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보도된 것과는) 관련이 없다.", "코무로 측 이야기인 만큼 발언을 자제하겠다." 하고 즉답을 피했다.

한편 카요가 예비 사돈인 일본 황실에 금전적 지원을 대놓고 요청한다는 이야기, 코무로 일가가 신흥종교인지 사이비종교인지를 믿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때문에 '특수한 환경에서 자라 대인관계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는 공주가 결혼상대를 잘못 선택했다.'면서 '결혼을 재고해야 한다.'는 여론이 인터넷에 팽배해졌다.

4.3. 어머니 카요의 남자 문제와 돈 문제

파일:kayokomuro.jpg

카요는 케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02년 3월 남편 토시카츠와 사별했다. 이후 카요는 홀로 케이를 키워오다가,[21] 한 남성(이하 A씨)을 만나 깊이 사귀었다. 케이가 국제기독교대학에 입학한 2010년에는 A씨와 재혼할 계획까지 세웠다. 교제하는 중에 A씨는 카요에게 몇 차례씩 돈을 건넸고, 카요는 이 돈을 생활비 및 아들 케이의 학비로 사용했다.

그러나 카요는 A씨와 재혼하지 않았고, 두 사람은 2012년에 헤어졌다. 헤어진 후 A씨는 차와 집도 팔아버릴 정도로 금전적으로 문제가 생기자 곤궁을 해결하기 위하여 '그 돈은 빌려준 돈이니 갚으라.'고 요구했으나, 카요와 케이는 '그 돈은 빌려준 돈이 아니고 증여받은 돈이니, 돌려줄 이유가 없다.'고 반박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사태를 보고 원조교제라고 표현하는 일본인들도 있다고 한다.

참고로 A씨는 '코무로 집안에 금전적인 여유가 없음을 잘 알기에, 내가 카요에게 준 420만 엔 중에서 생활비를 제외한 비용[22]만 돌려줘도 무방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9년 2월에는 '카요에 대한 폭로책을 작성할 것'이라는 소문이 언론사들을 중심으로 나왔다. 2019년 3월에 들어서 A씨의 대리인으로 변호사가 아니라 프리랜서 기자를 선임[23]하는 등, 향후 A씨를 둘러싸고 추가의혹들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앞으로 나올 폭로에 따라서 코무로 케이와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가 계속 커질 여지가 높다고 한다.

여담으로 남자친구 A씨의 증언에 의하면, 카요와 사귈 당시에 카요로부터 '나를 수급자로 하는 생명보험을 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결혼 약속을 파기하고 헤어질 때는 카요로부터 "케이를 양자로 들여 달라"는 부탁도 받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코무로 케이는 달관했는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이런 정황을 두고 '카요가 남자친구 A씨에게 보험사기 살인을 해서 보험금을 받으려 한 게 아니냐.'는 소리가 나왔다. 이러한 수법들은 보험금을 노린 살인사건에 전형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2019년 6월 기점으로 약혼자 A씨의 대변인 주장으로는 여전히 변호인과 접촉 중이라는 소리만 나오자,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는 의혹이 더욱 깊어졌다. 특히 A씨의 대변인이 변호사가 아니라 언론인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A씨가 해결하고 싶어하는데, 누군가의 압력으로 방해받는 것 아니냐"는 등 뒷말이 나왔다.

4.4. 미국 유학

2018년 6월 29일, 케이의 미국 유학 계획이 발표되었다. 그해 여름부터 근무하는 회사의 지원으로 포덤 대학교 로스쿨로 유학을 떠나 3년간 공부할 계획이다. 미국 변호사 자격 취득을 목표로 한다고. 이에 따라 결혼을 더 미룰 수도 있다.

일본 황실궁내청은 '두 사람의 결혼 의사는 변함이 없다.'고 공식적으로는 밝혔지만, '말이 많은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해서 적당한 파혼 구실을 만들기 위해, 혹은 마코 공주의 결혼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인 시선을 피하기 위해 유학을 가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돌았다.

참고로 케이의 미국 로스쿨 입학이라는 것도 어딘가 석연치 않다. 변호사 자격 취득을 위한 미국 로스쿨 입학이라면 당연히 LSAT[24]를 쳐서 합격해야 하는데, 이러한 시험을 쳤다는 소식이 없이 정식으로 결혼 연기가 나오자마자 갑작스럽게 미국 로스쿨에 유학 가겠다는 선언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그 이후인 2019년 5월 5일 현재까지도 케이가 이러한 시험을 쳤다는 보도는 일절 없어서, 사실상 로스쿨 유학은 황실을 이용해서 얻어낸 특혜입학이 거의 확실하다. 참고로 미국은 명문대도 기부입학과는 별개로 오로지 학생의 유명세나 집안 배경만 보고 점수나 다른 조건과 무관하게 입학시켜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25]

애초에 코무로 케이의 미국 로스쿨 유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특혜로 점철되어 있었다. 법학부를 졸업한 사람도 아니고 변호사도 아니면서 해외 법조인들이 주로 가는 1년 로스쿨 과정인 LL.M.에 입학한 것도 이상하고, LL.M. 수료 후 J.D.로 그대로 편입하는 것도 특혜를 봐준 것이다. LSAT이 필요없는 전형으로 입학하게 한 뒤 비정상적인 학사 특혜를 제공한 것이다.

2018년 8월 4일 오후에는 코무로 케이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아키시노노미야 궁저를 방문해서, 브라질 순방에서 8월 2일 돌아온 마코 공주를 비롯한 아키시노노미야 일가[26]와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고 한다. 마코 공주는 무려 2주간이나 브라질과 남미 지역 순방을 다녀왔는데, 이를 두고도 '말이 해외순방이지, 사실 파혼하고 머리 식히러 다녀온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사흘 뒤인 8월 7일에 케이는 유학을 떠났다.

2019년 2월 15일 <직격 라이브 구티!>라는 방송에 의하면 케이는 별다른 문제 없이 로스쿨 수업에 잘 따라가고, 특히 발표 수업 때는 자신감 넘치고 상당히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보도에 대해서도 일본 국민들의 반응은 여전히 "이미지 세탁 아니냐"는 의구심이 가득하다. 참고로 코무로는 단년 과정을 수료하고 있어서 2019년 5월에 과정이 끝나고, 이후 시험은 2019년 7월에 치른다. 이 2개월 동안은 로스쿨 다닐 때보다 더 빡신 공부를 하고도 외국인은 뉴욕주 사법시험 합격율이 40% 이하일 정도로, 상당히 난이도가 높다고 한다. 2019년 3월 7일자 보도에 의하면, 코무로의 대리 변호인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언론 등을 통해서 '코무로 케이가 올해 7월 미국 뉴욕주 사법시험을 치른다.'는 말이 나왔지만, 케이는 올해 사법시험을 치르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 그는 심화과정을 듣고 있고, 이것을 끝낸 다음 기초과정으로 전환해서 수강할 것입니다.

해당 보도에 의하면, 뉴욕주 사법시험을 외국 유학생이 치루기 위해서는 사전심사를 통과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모국에서 법학 과정을 2년 이상 수학하거나, 미국 대학 로스쿨에서 기초 과정을 일정기간 이상 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코무로는 일본에서는 법학 과정을 들은 적이 없고, 단지 변호사 사무실에서 파트타임으로 사무보조나 하던 사람이다. 결국 미국에서 일정기간 동안 전문교육을 받아야만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것이다.

2019년 4월 보도에 의하면, 코무로는 다음 학기에도 상환 없는 학교 장학금을 받는다고 한다. 대변인 측은 "코무로가 자발적으로 장학금을 취득했다"고 설명했지만, 일본 여론은 '황실을 팔아서 능력도 없는 기둥서방이 또 다시 특혜를 받았다!'고 상당히 분노했다. 보도에 따르면 장학금 이외에도 유학 전 근무하던 변호사 사무소에서도 케이에게 500만 엔 정도를 지원했으므로, 케이는 대략 1,100만 엔가량 돈을 받아 부족함 없이 미국에서 지낸다.

2019년 4월 15일 테레비 아사히 모닝쇼는 코무로 케이의 장학금 수여를 두고 특집방송을 했다. 이 방송에는 야마구치 마유[27] 변호사의 사연이 소개되었는데 케이와는 여러모로 대조적이었다. 야마구치는 도쿄대학 법학부 수석 출신으로, 대학 졸업 후 재무성에서 관료로 일하다가 관료를 그만두고 변호사로 일하던 중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나 로스쿨에서 공부한 다음 뉴욕 변호사 자격을 취득해서 일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정말로 그림 같은 경력의 산 증인이다.[28]

그러나 야마구치는 경력이 이처럼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현지 로스쿨에서 장학금을 일절 받지 못했다. 그녀는 공부하느라 아르바이트를 할 시간도 없어서,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생활했으나 나중에는 썩기 일보 직전인 야채초콜릿 따위로 끼니를 때워야 할 정도로 금전적으로 상당히 고생했다고 한다.

그러나 코무로는 2,500엔짜리 도시락을 사는 등 상당히 여유로웠고, 포덤 대학교는 본디 장학금 대상자를 2~3주간 조사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과정 없이 장학금 신청기간이 끝나자마자 바로 코무로에게 통보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을 소개하며 방송은 의혹을 제기했다.
포덤 대학교 로스쿨이 자격도 부족한 코무로 케이에게 장학금을 준 이유는, (낮은 대학 순위를 높일 필요가 있었던) 포덤 대학교가 '황실 관계자' 상태인 코무로를 이용해 학교를 홍보해서 순위를 올리려고 하는 수작이 아닌가?? 해당 보도 이후 한동안 야후재팬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락내렸으며, 분노한 일본 국민들이 궁내청에 항의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이 와중에 2019년 5월 7일자로 방영된 후지 TV 계열 <바이킹>이라는 방송도 코무로 케이 관련사항을 보도했다. 코무로 케이가 미국에 간 것은 사실상 도피유학이고, 장래계획이 없이 여전히 미래를 고민하며, 변호사가 될 마음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 때문에 일본 국민들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유례 없이 세금을 낭비하면서 한다는 것이 '나를 찾기 위한 여행'이나 다름없는, 목적이 불분명한 유학이기 때문이다. 이 보도 이후 '후미히토 일가도 결국 정식으로 파혼을 공표하진 않았으나, 암묵적으로 코무로 일가를 완전한 타인으로 취급한다.'는 투로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4.5. 과도한 특혜 논란

코무로 케이가 미국으로 출국하는 과정에서 황실 경호원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나타나 취재진들을 제지한 것도 문제가 되었다. 이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자 '왜 고작 혼약 예정자에게 굳이 국민의 세금으로 경호원을 붙여야 하는가?' 하는 반발이 나왔다. 비판은 당연히 이러한 말도 안 되는 특혜[29]를 베풀었을 아키시노노미야 가문, 정확하게는 키코 비를 향했다.

참고로 비난이 왜 후미히토가 아니라 키코 비를 향하는 거냐면 일본 황실의 뿌리 깊은 남존여비와 연결되는 문제이다. 남편 후미히토가 받아야 할 비난까지 아내인 키코가 떠안는 형국이라 이해하면 쉽다.[30]

2018년 8월 8일, 코무로 케이가 미국으로 출국하자마자[31] 일본 언론들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아키시노미야 부부가 "현 상황에서 납채 의식을 진행하기에는 문제가 있다"면서, 카요와 케이 모자(母子)에게 연기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궁내청 장관 야마모토 신이치로(山本信一郎)는 9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해당 보도에 대해서는 사실 확인 중입니다. 필요한 지원은 실시할 것이며, 향후 일정은 양가가 대화를 통해서 결정할 것입니다.

궁내청 장관의 해명을 두고 많은 일본인들은 상당히 불만스러워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 유독 궁내청 차원에서 제대로 된 의견도 못 내는 주제에, 일개 '약혼할 예정인 남자친구'에겐 과도한 대우를 계속하며 사건을 키웠기 때문이다.

코무로 케이와 그 집을 경호/경비하는 데에는 기존의 전례보다 많은 인력들을 투입했다.[32] 비슷한 시기 아야코 공주와 혼약을 발표한 모리야 케이[33]도 황실로부터 경호를 받긴 했지만, 경호원은 1~2명 수준이었고 그마저도 간접경호인지 겉으로는 코빼기도 안 보였다.

반면 코무로 케이는 일본에서만 경호원 최소 4명으로부터 대놓고 경호를 받았고, 유학처 미국에서도 받는다고 확인되었다. 게다가 한 일간지의 보도에 의하면 "코무로 케이가 미국에서 공부하는 3년 동안, 그의 경호 비용으로 총 약 2억 5천만 엔 이상 거액이 추가적으로 들 것"이라고 한다. 당연히 일본인들은 불만스러워한다.[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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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간으로 8월 13일, 코무로 케이가 포덤 대학교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서 시설관람 등을 하였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동안의 비판 여론을 감안해서인지, 보도 영상에는 코무로 케이가 대학 관계자로 보이는 미국인 1명과 함께 걸으며 직원이 열어준 문을 통해 대학 내부로 들어가는 장면만 나왔다. 그러나 동시에 포덤대학 주변에는 현지 경찰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일본 언론들은 "코무로 케이가 미국 로스쿨 동료들에게 키홀더 같은 소소한 선물을 주었다.", "코무로 케이를 두고 핸섬가이라고 평가했다."라는 보도나 하며, 애써 별 일 없었던 것처럼 취급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워낙 코무로 케이의 이미지가 나빠서 이러한 보도를 두고도 '궁내청이나 후미히토 일가가 여론을 조작하려는 것 아니냐.'는 투로 부정적인 반응들이 대부분이다.

한 일간지의 보도에 의하면 이런 일도 있었다. 코무로 케이가 8월 4일 아키시노노미야 궁저를 방문했을 때, 케이가 궁저를 방문할 예정이라는 사실이 사전에 노출되어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기자들은 궁저가 있는 도쿄고쇼를 방문하는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타츠미문으로 몰려들었는데, 후미히토는 더 이상의 관심을 피하기 위하여 기자들이 대기하는 타츠미문이 아닌 아카사카 어소 정문[35]을 통해서 케이가 들어오도록 했다. 문제는 이러한 것을 나루히토 황태자에게 일절 알리지 않고 무단으로 진행했다는 점이었다. 아카사카 어소 정문으로 일반인이 들어가는 것은 천황 내외나 황태자 내외가 초대했을 때나 가능하다. 이들 이외의 황족이 초대한 일반인이 들어갈 수 있긴 하지만, 사전에 황태자 내외나 천황 내외 등에게 허가를 받아야 한다. 후미히토가 허가를 받았다는 소리는 없다. 하지만 이때 당시 황태자 내외는 고시엔 개회식 참석 차 지방으로 출타했고, 황태자의 무남독녀인 아이코 공주영국 단기유학 중이었기에, 허가를 바로 받을 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어떤 일간지는 '동궁고쇼 정문이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사메가하시문을 이용했다.'고 보도했다. 사메가하시 문은 궁내청 직원 등이 사용하는 문이다.

하지만 이후 '이러한 일을 한 사람은 후미히토가 아니라 마코 공주'라고 보도되었다. 기자들이 타츠미문에 집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코 공주는 도쿄고쇼 정문 경비원에게 사적으로 부탁하여 코무로 케이를 아카사카 어소 정문으로 보냈다고 한다. 황태자 내외와 후미히토 내외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침묵하였으나, 할머니 미치코 황후는 우회적으로 맏손녀 마코 공주를 힐난했다고 한다.

후미히토 내외는 궁저를 방문한 코무로 케이와 150여 분 정도 대화했으며, 마코 공주와 결혼하기 위한 조건 2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확실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것, 둘째는 어머니 코무로 카요의 채무 문제를 완전한 형태로 청산할 것이었다. 사실 키코 비가 입장을 바꾸어 마코 공주와 케이의 결혼을 반대하게 된 데에도 카요의 채무 문제 탓이 컸다.[36]

후미히토는 "현 상황을 타파하기 위하여 연말까지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혔다.[37] 후미히토의 결정에 따라 향후 진행이 달라질 것이다. 일련의 사태 때문에 후미히토 일가는 천황 내외에게 와카[38]를 제출하는 정례 행사도 빼먹었다.[39]

'이 상태라면 납채 의식을 하지 못한다.'고 코무로 모자에게 언급했다는 보도도, 궁내청포덤 대학교에 "코무로 케이는 마코 공주의 피앙세"라는 항목[40]을 삭제하라고 요구한 것도 모두 키코 비가 결정했다고 한다. 키코 비는 코무로 케이를 사윗감으로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후미히토는 큰딸 마코 공주의 편을 들어 결혼을 찬성하며 키코 비의 의견을 무시했다. 그래서 키코 비는 남편에 맞서 의견을 관철하기 위하여 언론 등에 이야기를 흘렸다고 한다.

2018년 11월 30일, 후미히토는 자신의 53세 생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지금 상황에서는 납채 의식을 하지 못하며, 국민들의 환영 없이는 결혼시키지 않겠다."하고만 밝혔다. 기자회견을 보고 파혼을 원했던 많은 일본 국민들은 후미히토의 결정에 머리를 내저었다.

참고로 미치코 황후는 '2019년 2월 24일(아키히토 덴노 즉위 30주년 기념일) 이전에 사건을 해결했으면 한다.'는 의견을 우회적으로 피로한 바 있다. 미치코 황후는 결혼 발표 당시 코무로 케이가 황족인 여자친구 마코 공주보다 자신을 더 앞세우는 등 발언을 할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예감이 적중한 이후에는 작은며느리 키코 비의 자질을 부정적으로 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코무로 일가의 금전 문제를 듣고, 미치코 황후는 이런 문제를 숨기고 공주와 결혼하려고 한 코무로 모자에게도 분노를 표시했다고 한다.

케이는 2018년 12월 중순부터 2019년 1월 중 연말연초 방학이었기에, 이때에 맞춰 일본으로 돌아와 결혼문제를 논의할 듯 보였다. 그러나 결국 케이는 이 기간에 일본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카나가와현 모처에 있는 카요[41]의 집에는 지역 경찰관들이 1시간에 1번씩 집 주변을 순회하거나 집 앞에 설치된 폴리스박스에서 대기하다가 나가는 등 행동 이외에는 별 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미치코 황후가 원하는 바와 달리, 결국 헤이세이 시대 안에 해결하지 못했다.

한 일간지 보도에 의하면 후미히토의 생일기념 기자회견 이후, 연락 두절 상태이던 코무로 카요가 갑자기 연락해서 "천황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밝혔지만 당연히 거부되었다. 카요는 해당 사건을 정면돌파하기 위해서 채무변제 등을 하는 게 아니라, 천황과 이야기해서 마코 공주를 어떻게든 며느리로 맞이하려고 하는 듯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코무로 집안을 더욱 나쁘게 볼 뿐만 아니라, 특히 극우들 사이에서는 '황실을 모욕을 하는 꼴을 보니 저치들은 재일'이라는 식으로 망언을 지껄였다.

극우들뿐 아니라 일본 대중들의 의견도 대체적으로 '카요의 행동은 황족 후미히토 내외를 무시하는 처사인 동시에, 천황을 모욕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혹자는 '미치코 황후가 맏손녀의 결혼 문제에 나서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카요의 이런 몰상식한 행동 때문이 아닌가?' 하고 평했다. 거기에 과거 후미히토키코 비의 결혼 과정이 이번 사건과 비슷한 전개[42]라는 걸 언급하면서, "그 부모의 그 딸"이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이후 언론 보도에 의하면, 마코 공주 역시도 부모의 전례를 그대로 답습하면서 국민들의 반대를 무시하고서라도 결혼을 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게 확인된 바 있다.

2019년 6월 21일 6월 말에 예정된 해외 공무를 앞둔 기자회견에서 후미히토는 기자들로부터 "작년 11월의 기자회견에서 마코 공주의 결혼에 대해 '상응하는 대응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후 그 건에 대해 반 년이 지난 동안 코무로 케이나 마코 공주로부터 무언가 이야기나 연락이 있었는가?"라고 질문을 받았지만, "그 건에 대한 것, 구체적인 것 등은 저는 알지 못합니다."라고 상당히 무책임하게 답변했다. 이 답변은 일본에서도 파문을 일으켰다. 해당 기자회견 이후 일본 여론은 더욱 후미히토 일가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이를 막기 위해서 언론들을 동원해서 후미히토 일가에 우호적인 여론을 환기하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 먹혔다.

4.5.1. 해결되지 않은 어머니의 채무 논란

2019년 1월 21일, 일본 언론은 코무로 케이가 결혼의 가장 큰 문제인 어머니 코무로 카요의 변제 문제를 두고 근시일 내에 발표를 하겠다고 보도했다.

보도 다음날인 22일, 코무로 모자 측의 변호사는 케이가 쓴 A4용지 1장 분량인 문서를 공개했다. 카요의 기존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는 등, 이전과 별 다를 바 없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문서가 공개된 후, 카요의 전 약혼자 A씨는 곧바로 코무로 모자의 주장들을 강하게 반박하였다.

한동안 일본 언론들이 코무로 모자를 보도하지 않아서 잠잠했지만 이 일을 계기로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가 다시 뜨거워졌다. 발표로부터 불과 하루가 지난 1월 23일 기준으로, 일본야후의 관련 보도 댓글난의 거의 80~90%는 비판의 목소리이다. 2019년 1월 말 기준으로 마코 공주를 '세간 물정 모르는 공주'도 아니고 '천하에 둘도 없는 멍청이'나 '바보'라는 식으로 전례 없을 만큼 강한 부정적인 단어로 표현하는 비중 역시도 높다.

일본 주류 언론들의 반응 역시, (댓글보다는 다소 완곡하지만) 기본적인 기조는 야후 댓글과 유사한 형태로,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계속 시간만 끄는 황실을 강하게 탓했다.

애시당초 이를 해결해야 할 장본인인 코무로 카요는 아들이 유학을 간 이후부터 2019년 5월 19일까지 연락두절, 행방불명이다. 코무로 모자는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할 의지가 없이 그저 시간을 끌어서 국민들의 관심이 적을 때 기습적으로 마코 공주와 결혼하기를 노리는 듯하다. 그러니 이에 대한 일본의 여론은 부정적이었다.

1월 23일 보도에 의하면, A씨는 코무로 모자의 변호사로부터 만나서 차분하게 변제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는 의향을 문서로 전달받았다고 한다. 그러한 것에 대해서 A씨도 "나도 변호사를 선임해서 도움을 받아 코무로 모자와 대화하고, 최대한 빠른 시일에 카요에게 빌려주었던 돈을 전액 변제받고 싶다." 밝혔다.

코무로 케이는 어릴 때부터 막대한 비용이 드는 사립학교에 다니거나 바이올린을 배우는 등 각종 고급 교육들을 받았고, 대학생 때는 해외유학도 다녀왔다. 여기에는 최소 수억엔은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코무로 카요는 홀어머니이고 빵집 아르바이트와 (의문 가득한 자살을 한) 남편 토시카츠의 유족연금이 주 수익원이라, A씨로부터 돈이 없다면서 주기적으로 생활비조로 돈을 받아 썼다. 코무로 케이 역시도 마코 공주와 약혼을 발표하던 날에도 '기자회견장에 갈 택시비가 없다. 궁내청에서 비용을 지불해달라.'고 징징거렸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카요가, 과연 무슨 돈으로 아들에게 막대한 학비를 들였을까?? 여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상당하다. 일본 언론들도 그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따라서 A씨와의 금전적 분쟁을 어떻게든 해결해도, 언론들에 의하여 카요의 또 다른 채무 문제들이 폭로될 것임은 사실상 확정인 상태다.

2019년 2월 11일, "코무로 카요의 이러한 행위에는 증여세 탈세 혹은 유족연금 부정수급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언론을 통해서 공식적으로 제기되었다. 언론에 등장한 법률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이러하다. A씨가 준 게 채무가 아니라 코무로 모자의 주장처럼 '증여'인 경우, 카요는 수십만 엔을 증여세로 내야 한다. 하지만 카요는 그것에 대한 신고를 일본 국세청에 하지 않았기에, 증여라고 결론이 나는 순간 국세청이 증여세 징수 기한인 2020년[43]으로 얼마 남지 않았기에 빠르게 세무조사에 돌입해서 증여세를 받아낼 것이라고 한다.

만일 이게 증여가 아니라 채무라고 하더라도, A씨와의 내연 관계를 유지하면서 유족 연금을 수급한 건 사실상 일본 유족 연금 부정수급으로 간주될 수 있어서[44] 그동안 받은 금액을 모조리 토해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즉, 코무로 일가가 어느 것을 선택해도, 코무로 집안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일본 정부에 상당한 액수의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이것이 채무라고 하면, A씨에게 받은 돈에 대해서 코무로 카요가 갚아야 하는 기한은 채무 발생으로부터 7년이 지난 2020년까지다. 2021년 이후에는 이게 채무라 하더라도 A씨는 카요로부터 채무를 받아낼 수 없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러한 일이 발생하기 전에 A씨가 카요로부터 변제를 위한 법적 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2019년 7월 8일 현재까지도 A씨가 이러한 채무 반환 소송을 하지 않았고, 일본 정부도 손을 놓았다. 이에 대해 일본에서는 "내각 등 당국이 범죄자를 처벌하지 못하고 황실의 눈치를 보고 있다"면서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4.5.2. 계속된 파혼 논란

2019년 1월 영국 타임지의 보도[45]에 의하면 "코무로 케이가 연말 방학에 일본에 오지 못한 것은, 그가 일본으로 올 경우 그나마 잠잠해져 있던 상황이 다시 폭발하기 시작할 가능성이 농후해지는 데다가, 그의 경호 문제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거기에 연초에 아키시노노미야 일가로부터 케이에게 어떠한 공식 연하장이나 공식 전화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에서 연하장을 보내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이제 인연 끊자"는 의미로, 엄청나게 심각한 일이다. 잘 오던 연하장이 올해 오지 않았다면 상대의 신변에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게 아닌 이상, 그 사람으로부터 손절당했다고 보면 좋을 정도. 특히 예비 사위에게 연하장이나 전화조차 하지 않았다는 건 그야말로 '어서 파혼했으면' 하는 심경을 공식적으로 드러냈다고 봐도 좋다. 물론 일본인인 코무로 케이가 이런 것을 모를 린 없고, 제 발로 복을 찰 수 없으니 모른 척하고 버티는 것일 확률이 높다.

2019년 들어 미치코 황후가 나서서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차기 천황 계승을 최대한 차분한 분위기에서 치르길 원하며, 첫 손주인 마코 공주의 불행한 결혼을 막고 앞으로 누군가가 또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여 황실을 악용할 가능성을 막기 위하여 나섰다고 한다. 2019년 5월 1일까지 문제를 완료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해당 보도에선 코무로 케이가 포덤 대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도 공개되었는데, 여러 가지 대단한 특혜를 받고 있었다. 왕실이 존재한 적 없었던 미국인지라 왕실에 환상도 있고, 코무로 케이의 추문에 대해서도 별로 아는 바가 없어서 그런 듯하다. 포덤 대학교 측에서는 원래대로면 법학과 출신 혹은 현지 변호사 자격 없이 미국 변호사 자격을 목표로 하는 학생인 코무로 케이가 절대로 들을 수 없는 과정[46]을 케이에게 듣게 하거나, 교수와 맨투맨으로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공부하게 해주는 등의 특혜를 제공한다고 한다.

코무로 케이와 마코 공주가 결혼하면 마코 공주는 황족 신분을 잃고 남편의 신분과 성씨를 따라 평민 코무로 마코가 되고, 코무로 본인도 쭉 평민 그대로다. 하지만 포덤 대학교 측은 이러한 일본 황실의 법(황실전범)을 모르고, 막연하게 코무로 케이가 황실의 일원이 되는 줄로 오해한다고 한다. 게다가 코무로 케이는 이를 이용하려는 듯 아무 설명도 없이 대학 측으로부터 여러 가지 특혜를 당당하게 받는다고 한다.

거기에 일본 트위터 등을 통해서 '마코 공주가 2013년 영국 유학 후 친구와 함께 수천만 엔을 들여서 유럽 여행을 갔는데, 그 친구가 바로 코무로 케이였고, 마코 공주가 일본에 도착하기 수일 전에 궁내청 직원용 ID 카드를 착용한 상태로 VIP 라운지를 빠져나왔다.'는 내용이 유포되었다. 만일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 파장은 커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해당 보도에 대해서는 증거로 제시되는 사진이 공항이 아니라 빅사이트였고, 코무로가 착용한 뱃지는 궁내청 뱃지라고 하기보다는 대학시절 유학[47]을 갔다온 UCLA 뱃지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한 반박 때문에 해당 의혹은 금세 수그러들었다.

참고로 황실전범에 의하면 상당히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남성 황족의 결혼과 달리, 여성 황족은 별 다른 조건 없이 천황에게 허가만 받으면 결혼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마코 공주궁내청으로부터 증명서류[48]를 받은 다음 그대로 황실을 이탈해서 코무로와 결혼해도, 법적인 문제는 일절 없다고 한다.

4.5.3. 코무로 문서 발표(1차)

후미히토가 한 "많은 사람이 납득하고 기뻐할 만한 상황이 되지 않는다면 결혼식을 올릴 수 없다."하는 발언이 신경 쓰였는지, 2019년 1월 22일 코무로는 하다하다 대리 변호사를 통해서 A4용지 1장 분량으로 문서를 공개했다. 내용은 이전의 주장과 비슷하게 되풀이하고 사건 수습에 노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일명 '코무로 문서'라는 이 문서 때문에 일본 사회는 2주가 지나도록 소란스러웠다.

해당 문서를 통해서 코무로는 일본 사회를 향해 '나는 이러한 논란이 있지만 마코 공주와 결혼할 것이며, 어느 누구도 우리 두 사람의 결혼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게 아니냐 것이 세간의 평가. 그동안 코무로 문제를 집중적으로 밝힌 것으로 유명한 여성 주간지 2개사도 2019년 2월 12일에 동시에 이러한 내용으로 기사를 낸 적이 있다.

4.5.4. 코무로 카요의 의혹

사실 코무로 케이의 결혼 문제를 일으킨 것은 대부분 어머니인 코무로 카요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사건이 터지고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많은 의혹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2019년 1월 22일 코무로 문서 발표로 인해 일본 사회가 뒤흔들린 이후, 주간지 등에 의하여 모친 코무로 카요의 탈세 의혹 혹은 유족 연금 부정수급까지 거론되기 시작했다.

사실 카요는 수상한 방식으로 죽은 남편 토시카츠의 유족연금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남성과 내연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만일 이러한 관계가 내연관계로 인정받을 경우, 일본 법에 의하면 더 이상 유족연금을 받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국가를 속여서 그동안 연금으로 받은 돈을 다 반환해야 한다. 만일 유족연금 부정 수급을 회피하기 위하여 A씨와의 관계가 내연관계가 아니라고 주장할 경우에는 유족연금 부정수급 혐의는 회피하겠지만, 전 약혼자 A씨에게서 받은 돈을 증여로 볼 수 있기에, 결국 약 400만 엔의 증여세로 15~20만 엔가량을 납부할 필요가 있다.(한국으로 치면 150~200만 원 정도다.)

2019년 3월 일본 언론을 통해 토시카츠와 그의 부모의 연이은 죽음에 대한 추가 보도가 나왔다. 해당 보도에 의하면 토시카츠의 자살 후 2주 전후로 그의 부모가 연달아서 사망했는데, 그 이후 토시카츠의 부모 쪽 유산 상속자들에게 코무로 카요의 대리인이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유산 관련 문제를 일으켰다. 그런데 조사 결과, 그 문제를 일으킨 카요의 대리인은 조폭으로 추정되는 수상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해당 보도 직후 여론은 상당히 동요했다. 사실상 코무로 토시카츠와 그 부모가 연달아 죽은 이유가 '코무로 카요가 시가의 유산을 노리고 저지른 범행'이라고 확신하고 '만일 코무로 케이와 마코 공주가 결혼한다면, 온갖 범죄들을 태연자약하게 저지른 카요가 이번에는 황실재산을 노리고 마코 공주나 아키시노노미야 부부를 위시로 한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생명에 해를 끼칠 수 있기에, 이전보다 더 강력하게 결혼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 문제의 장본인 코무로 카요는 자신 때문에 아들의 혼삿길이 막힐지 모르니 적극적으로 나서도 모자를 판국에 아들이 유학가기 무섭게 은신했다. 항간에는 궁내청조차도 카요의 자세한 정황을 몰라서, 미치코 황후가 궁내청 직원들에게 한 마디 했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4.6. 레이와 시대 이후

2019년 5월, 일본 연호가 레이와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결혼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여전히 불만스러워하는 여론이 압도적 다수인 와중에 TV에 출연한 유명인사들 중 일부가 '코무로 케이와 마코 공주를 결혼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표하자, 일본 국민들은 이런 인사들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또한 '갑자기 코무로를 옹호하는 보도가 많아진 데엔 후미히토 일가의 의향이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말도 나왔다.

2019년 4월 한 언론사가 코무로 케이가 받는 특혜를 보도했을 때 등장해서 화제가 된 변호사 야마구치 마유는 5월 한 언론사와 인터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코무로 케이가 진짜로 국제변호사[49]로서 활동할 생각이 있다면, 로스쿨 과정을 끝내고 2년간 현지근무를 해야 한다. 그런다면 나는 케이가 마코 공주와 결혼하는 것에 찬성한다. 하지만 미국 로스쿨 생활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50] 내가 아는 동료들이 이 과정에서 여자친구와 헤어지거나 아내와 이혼하는 걸 자주 봤다.

미국 로스쿨의 여름방학 기간 중에는, 과정수료 후 활동을 위해서 현지 법률사무소에서 인턴을 해야 한다.[51]

2019년 5월 7일자 후지 테레비계 정보 프로그램 바이킹(バイキング) '코무로 케이 특집'[52] 방영분에 나온, 코무로 케이의 대리인 변호사가 한 발언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코무로는 미국 변호사가 되려고 미국으로 온 게 아니다. 언론들이 코무로가 미국에 온 이유를 '변호사가 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현재 코무로는 러브 플랜[53]을 짜고 있으며, 아직까지 어떤 일을 할지 결정하지 않았다.

해당 방송에 참여했던 패널들은 모두 기겁하였다.[54] 방송 이후 일본 내에서는 "기둥서방 놈의 자아찾기를 하려고 일본 국민들의 세금[55]이 쓰이는 것이냐?", "변호사가 될 생각이 없다는 사람에게 장학금을 주고 로스쿨에 다니게 하는 포덤 대학교는 대단하네."하는 등 안 그래도 나쁜 여론이 더욱 나빠졌다. 방송이 나간 뒤 대변인은 방송 측이 잘못 써줬다면서도 "코무로는 변호사 자격(Juris Doctor) 취득을 목표로 한다고 했지 미국 변호사가 되고자 한 게 아니다." 하고 변명했지만, 이 변명에도 일본인들은 납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국 J.D.가 있다고 일본에서 신 사법시험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리인이 된 변호사는 코무로 케이 문서 때도 그렇고, 고객 코무로를 옹호해야 할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말실수로 오히려 공격의 빌미만 주고 말았다. 그래서 '저런 멍청한 변호사를 고용하는 데 든 비용은 어디에서 나오냐?'는 조롱도 나왔다. 일본 국민들은 이러한 비용을 대주는 곳이 코무로 카요 아니면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이라고 추측하는데, 후자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56]

2019년 5월 1일 이후부터 각 주간지, 신문, 방송사에서 연일 코무로 특집으로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이지메 가해자 문제 등 코무로 관련 새로운 문제들을 계속 보도했다. 그나마 '본인이 좋아하는 남성과 결혼할 자유' 등을 이유로 다소 중립적 입장이던 사람들조차도 '도대체 이 집안은 얼마나 막장이라 문제가 계속 쏟아지냐?' 하고 경악하여 결혼 반대파로 돌아섰다.

야후재팬은 코무로의 빚이 더 늘어나리란 기사를 올렸다. 19년 하반기 장학금은 거의 모든 비용을 포함했던 저번 장학금과 달리 적용범위가 학비 한정이라 전 학기 장학금과 달리 절반 가량으로 줄어드는 데다가, 여름방학 3개월 동안은 기숙사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코무로가 이를 회피하고자 학교에 남아 하계과정을 듣는다면, 월 18만 엔 남짓한 기숙사 비용과 과정당 약 25만 엔 정도 되는 과정수료비 등을 포함하여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만일 코무로가 하계과정을 듣지 않고 기숙사에서 나온다면 3개월 동안 지낼 대체숙소를 구해야 한다.

그런데 그가 있는 곳은 뉴욕이기에 대체숙소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일본에서도 해외유학을 할 때 반드시 일정금액 이상 비용이 있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유학비자를 준다.[57] 대변인은 "코무로는 여름방학 중에 인턴을 하지 않을 것이고, 일본으로 오지도 않을 것"이라고 알렸다.

2019년 5월 16일 테레비 아사히 와이드쇼에서 100명을 대상으로 코무로 케이와 마코 공주의 결혼 찬반 여부를 묻자, 42명 가량이 찬성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키코 비 등이 사주한 조작 아니냐"고 부정적으로 보았다.

2019년 5월 20일(현지시각) 포덤 대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 코무로의 자리는 있었지만, 정작 코무로 본인은 참석하지 않았다. 아마 일본 언론들이 진을 친 상황이라 피한 듯하다.[58] 해당 보도 이후 TV 와이드쇼들이 지나친 언론취재 열기를 반성해야 한다고 했지만, 일본인들은 이런 '반성'도 누군가의 압박이 있지 않느냐 여겼다.

2019년 6월 21일, 후미히토 부부는 27일부터 떠나는 해외공무 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결혼문제를 두고 어떤 식으로든 의사를 표명하리라 여겨서 주목을 받았는데, 막상 후미히토는 '큰딸과 대화를 안 해서 잘 모르겠다.'는 헛소리를 했다. 일본에서는 "코무로 케이가 황실의 약점이라도 잡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그렇지 않고서야 황실이 왜 저러겠느냐는 것이었다.

2019년 7월, 방학이 되어 코무로 케이는 대학기숙사에서 나온 뒤 종적을 감추었다.[59] 7월 21일 공무를 마치고 귀국하는 과정에서 미국에서 하룻밤을 보낼 마코 공주와 만날 가능성이 높다.

2019년 8월, 코무로의 대리인 변호사가 모처에서 카요의 전 약혼자 및 대리인과 만났지만, 서로간 입장만 확인하고 다음 교섭 일정을 확정하지 못한 채 끝냈다.

2020년 2월 12일 주간문춘은 코무로 케이가 카요의 자금 문제에 대해서 방송한 언론사들을 상대로 사실 정정요구를 했다는 걸 보고했다. 그 요구의 이유는 바로, 문제가 된 자금은 '빚'이 아니라 '증여'라는 기존의 논리를 다시 한 번 주장하면서 빚 문제가 아니라 증여 문제로 고쳐달라는 건데, 이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지금쯤이면 변호사 시험이나 그 이후 인턴에 집중해야 할 시기임에도 태연하게 일본 TV 채널들을 돌려볼 여유가 있다는 걸 증명한 건 물론이고, 가뜩이나 아무런 사건 해결도 되지 않았음에도 아베 신조 정권이 의도적으로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을 차기 천황 가문을 만들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는 데에 대한 반감 등이 뒤섞여서 비난 일색이다.

4.6.1. 이지메 가해자 논란

2019년 5월 11일, 주간문춘에 코무로 케이의 이지메 가해로 피해를 입은 동급생 B씨의 인터뷰와 영상이 공개되었다.#

B씨의 증언에 따르면, B씨는 코무로 케이와 함께 사립 쿠니타치(国立) 음악대학 부속초등학교[60]에 다닐 때 축구부에서 같이 활동했다. 그러나 케이의 아버지 코무로 토시카츠[61]의 사망 이후부터, B씨는 케이에게 계속 놀림과 괴롭힘을 당했다.

B씨의 물건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거나, B씨에게 골키퍼를 강제로 맡게 한 다음 케이가 의도적으로 B씨의 몸을 향해 공을 차거나, 다른 급우들이 보는 앞에서 면전에 노골적으로 "학교에 오지 마!" 혹은 "기분 나빠!"라고 소리치는 식으로 괴롭혔다고 한다.[62] 코무로 케이의 사주하에 다른 반 학생들까지 가해에 동참하였고, 다른 반 담임교사가 만류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괴롭힘은 2004년 3월 케이와 B씨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B씨는 쿠니타치 음대 부속중학교로의 내부진학을 포기하고 다른 중학교로 진학했고, 시간이 지나 대학생이 되어서도 미성년자 당시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했다.

B씨는 마코 공주와 케이의 결혼 보도를 보고 케이의 연락처를 알아내서, 오랜만에 케이와 대화했다. 2018년 3월 문자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던 중, B씨가 "우리 어머니가 기자들과 (너와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 대해) 인터뷰했다"고 말하자, 케이는 그때까지의 말투를 뒤엎고 상당히 정중한 어투로 어머니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이에 B씨는 단도직입적으로 케이에게 문자로 물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네가 나에게 저지른 이지메에 대해서 지금 어떻게 생각하냐?

케이는 이 문자를 읽씹했다. 그리고 B씨는 취재진에게 다음과 같이 밝혔다.
만일 이때 코무로가 사과만 했더라면, 가만히 있으려고 했다. 그러나 코무로의 반응에 화가 나서 초등학교 시절 그가 나에게 저지른 학교폭력 사실을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취재팀은 해당 증언을 확인하고자 당시 쿠니타치 음대 부속초등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찾아가 취재했다. 그리고 일부로부터 케이가 B씨를 왕따시킨 것은 사실이란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또한 취재팀은 케이의 법률 대리인인 변호사에게도 서한을 보내서 B씨의 증언이 사실인지 확인해달라고 정식으로 요구했으나, 방송 시점까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일본 여론은 이러한 보도를 두고 당연히 맹렬하게 반응했다.
왜 그동안 코무로가 모친 부채 문제에 그런 태도를 보였는지, 왜 여러 가지 문제가 나오자 특혜성 도피를 했는지 비로소 이해된다.
타케다(타케다 츠네야스)가 자신의 SNS 계정에서 "코무로는 사이코패스다!"라고 발언한 것을 당시에는 이해 못했는데, 이번 보도를 보고 코무로가 진짜 사이코패스였음을 실감했다. 내가 그 타케다의 의견에 동조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뒤이어 2020년 12월 23일 주간지에서는 "코무로가 중학생 시절에 한 여학생을 집단으로 괴롭히는 데 참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에서도 집단괴롭힘과 학교폭력은 심각한 문제라, 유명인이 학교폭력 가해자였다는 것이 밝혀지면 맹렬하게 반응한다. 코무로 케이가 학폭 가해자였다는 것이 밝혀진 이상 마코 공주와의 결혼은 사실상 파토난 것으로 보였으나…

4.6.2. 결혼 전 미국 생활

2019년 6월 한 주간지 보도에 의하면, 코무로 케이는 대학으로부터 막대한 금액에 상환 의무 없는 장학금 특혜를 받고 가을부터 법무박사 학위를 받는 'JD과정'이라는 수업을 들을 예정인데, 해당 과정은 미리 예습을 하지않으면 못 따라갈 정도라 여유가 없어서 방학 때 귀국은 못한다 하였다.

미국에는 다른 일본인도 많아 여러 의미로 학교 내에서도 유명인인 코무로는, 학교 카페나 자취방에서 눈에 띄지 않게 지냈다. 생활비가 부족한 모양인지 밀가루로 스스로 음식을 해 먹거나, 무료 피자를 주는 수업에 참석해서 피자를 먹고 다시 사라진다고 한다.

하지만 해당 보도가 나오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변인 변호사가 직접 "코무로는 장학금이나 회사 지원금 등으로 충분한 돈을 받기에 굳이 인턴을 하거나 일본으로 돌아올 이유가 없다"고 발언했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해당 보도를 후미히토 일가가 내보낸 가짜뉴스로 취급했다.

2019년 12월 보도에 따르면, 코무로 케이 대학 특별강사로 초청된 변호사에게 강의 후 개별질문을 하는 등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강사진으로 참여한 마사코 황후의 제부 이케다 마사히사(池田祐久)[63]에게 연락처를 달라고 청했다고 한다. "코무로가 미국 변호사 자격증 취득 후 현지에서 도움받을 인맥을 위해 접촉하려는 것 같다"는 추측이 나왔다.

4.6.3. 귀국, 그리고 마침내 결혼에 골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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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코무로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2018년 8월에 미국 뉴욕으로 떠난 지 약 3년여 만인 9월 27일 오후 일본 나리타 국제공항으로 귀국했다.# 일본에 도착한 그는 약 20명의 경찰들의 경호를 받았고, 100명 이상의 매스컴들이 그를 취재하기 위해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를 길러 포니테일로 묶고 노타이 차림으로 나타난 코무로 케이는 본가인 요코하마에서 자가격리에 들어갔고, 격리가 끝나는 다음 달 11일 이후 마코 공주와의 결혼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결혼 이후 두 사람은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고 하였으며, 결혼식을 치르지 않고, 공주가 결혼하여 황적이탈을 할 때 주어지는 약 1억 5천만 엔의 지참금을 받지 않기로 했다.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과,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이 현재 일본에서 국민 여론이 그다지 좋지 않은 점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해외에 거주하게 되면서, 코무로 부부의 경호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궁내청에서도 고심하는 것으로 보인다.

2021년 10월 1일 마침내 궁내청은 결혼을 공식 선언하며 10월 26일에 혼인신고한다고 발표했다. # 기사 댓글에서 볼 수 있듯 격분하는 반응이 상당수다. 또한 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91%는 마코 공주와 코무로 케이의 결혼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10월 30일, 케이가 미국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 낙방하면서 미국 이주가 늦춰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본 현지 여론은 그야말로 격노.현지기사국내기사 뉴욕주 변호사 시험의 총 합격률은 60%이나, 외국인 합격률은 40%에 그친다고 한다.[64] 그래서 애시당초 일본인들도 코무로가 합격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는 예상하고 있었다. "학벌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황실을 팔아먹지 않았으면 로스쿨 입학조차 못 했을 놈이 과연 미국 변호사 시험을 통과할 수 있겠느냐"는 의심이 예전부터 있었기 때문.

일본인들도 아무리 코무로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공주와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한 이상 자기 나라 및 황실 체면을 위해서라도 합격하길 바랄 수밖에 없었는데, 보기좋게 떨어져 버리니 여론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합격자 발표가 나기도 전에 서둘러 혼인신고를 한 것도 아주 계산적으로 선수를 친 것으로 보고 뒤늦게 혀를 차는 중. 개중에는 극단적으로 '코무로 저 놈이 시험에 떨어진 게 아니라, 시험을 쳤다는 것 자체가 거짓말 아닐까?'라고 의심하는 일본인도 있다.

2022년에도 또 낙방했다고 한다.#

4.6.4. 결혼 후 미국 이민

11월 12일, 갑작스레 코무로 부부가 14일 아침 미국으로 간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날 오후 코무로 마코 혼자서 택시편으로 친정 아키시노노미야 저택을 방문하여 3시간 정도 있다가 남은 짐을 들고 돌아갔는데, 이에 대해서 그동안 언론에 "아키시노노미야 부부는 큰딸과 코무로 케이의 결혼을 반대하여, 큰딸 부부와 절연에 가까운 조치를 했다"고 보도되던 것이 사실상 거짓말이라는 증거들 중 하나로 취급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부부 동반 미국행에 대해,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매우 빠른 미국비자 취득 과정 자체를 황실에 의한 특혜로 보고 있다. 현재 일본인이 미국을 방문하기 위하여 입국비자를 신청해도 최소 2달 이상이 걸리고,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서 코로나 관련 서류들이 추가되어 비자 신청 소요시간이 더 걸리는 상황인데, 코무로 마코만은 타칭 복잡성 PTSD 환자에 남편인 코무로 케이는 뉴욕주 변호사사무소에서 변호사 조수로 일하는 다소 생활 기반이 불안정한 상황임에도, 단 2주만에 비자가 허락되어 출국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11월 13일, 코무로 케이[65]는 어머니 코무로 카요의 전 약혼자 A씨와 1시간 30분간 대화한 끝에, 400만 엔의 비용을 지불하고 채무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400만 엔의 출처에 대해, 코무로 마코의 저금 1억 엔 혹은 시집가면서 비밀리에 챙겨나온 지참금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참고로 이후 A씨의 폭로에 의하면, 코무로 케이는 A씨를 사사건건 범죄자 취급하면서 어머니 카요와 자신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발언들을 1시간 30분 내내 반복했다고 한다. 따라서 "A씨와의 금전 문제 해결은 (결혼 기자회견에서 보듯) 케이나 마코는 원하지 않았으나 (아키시노노미야 부부로 추정되는) 누군가의 압박에 의하여 억지로 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A씨는 오래 전부터 코무로 일족에게 만나자고 편지 등을 보냈지만 계속 무시당하다가 겨우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코무로의 대변인 변호사의 사무소에 찾아갔고, 케이와 만나고 나올 때는 상당히 피로해보이는 모습이었다. 사무소 앞에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은 A씨 대신 코무로 측 대변인 변호사에게 달려가서 현장 인터뷰를 시도했고, 변호사도 "A씨는 케이와의 대화 내내 심하게 부들거렸다"는 등 사실상 A씨가 꾀병이 아니라 정말로 아프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그간 일본 언론들은 황실의 압박에 굴복해서 'A씨가 꾀병을 부리고 있다'고 보도했기에, 여론도 언론들에 대한 인상이 나쁘다. "왜 A씨가 변호사가 아닌 주간지 기자를 대변인으로 내세웠는지 이해가 된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2021년 11월 14일 하네다공항에 도착한 코무로 부부는 수십 명의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VIP 라운지를 거쳐 전용 게이트를 타고 ANA에 탑승했다. 기자들이 알아본 결과 원래 구매한 항공권은 이코노미석이였으나 항공사 측이 비즈니스 클래스로 한 번 업그레이드[66]했고, 이후 석연치 않은 방식으로 퍼스트 클래스로 바뀐 게 확인되었다. 이는 ANA측이 황실에 알아서 편의를 제공한 이른바 '손타쿠(忖度)'로 추정된다. 미국에 도착해서는 외교관도 아니면서 항공사 및 외무성 직원의 에스코트와 현지 경찰의 엄중 경호 속에 뉴욕 자택으로 향했고, 뉴욕 일본총영사관에는 코무로 마코 전담 직원을 채용해서 24시간 소통 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현지 경찰과 협조를 통해서 맨션 주변부 순찰 강화 등을 요청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본 국민들은 해외에 가서도 여전히 막대한 특권과 세금 낭비에 대해서 강한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그리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프가니스탄 현지 외교관들이 현지 거주 일본인들을 버려두다시피하고 해외로 도망친 전적이 있었기에, 야후재팬 코멘트도 이러한 걸 지적하는 게 많았으나 어느 순간 삭제당하고 그로부터 얼마 안 지나서 해당 기사의 댓글창 자체가 자동 폐쇄되었다. 여담으로 큰딸 마코의 결혼 확정 이전까지, 아키시노노미야 부부는 외무성[67]과 거리를 두다못해 해외 방문 일정 통보도 하지 않아 국제적 외교 결례까지 일으킬 정도였다. 그런데 큰딸의 결혼 확정 이후로, 아키시노노미야 부부는 거의 매일같이 외무성 그것도 해외 담당자와 계속 대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일본에서는 "외무성을 이용해서 시집간 큰딸을 뒷바라지하려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고, 실제로 마코의 도미 이후에 현지 영사관에 전담직원이 배치되면서 이러한 이야기가 사실임이 밝혀졌다.

아울러, 뉴욕에서 포착된 사진을 보면 경찰 말고 별도의 경호원들의 존재가 보이는 걸 봐서는 추가적으로 경호인력을 충당한 걸로 보인다. 문제는 코무로 케이의 연봉 상태로는 도저히 거주지 임대 비용과 경호 비용을 충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일본인들은 "코무로 부부의 뉴욕 생활 역시도 일본인들의 세금으로 충당되는 게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하고 있다. 게다가 얼마 후 궁내청이 "아이코 공주의 성년의식[68]에 사용할 티아라는, 고모 구로다 사야코의 티아라[69]를 빌려서 이를 약간 수정한 다음 사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일본인들은 "왜 일반인인 코무로 부부에게는 억 단위의 세금을 낭비하면서, 황족인 아이코 공주에게 세금을 쓰는 것은 아까워하냐"면서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궁내청은 "나루히토 덴노가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하여 그렇게 결정했다"고 해명했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국민들을 배려했다는 의도가 알려지면서 코무로 마코와 그 일가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다. 코무로 마코가 성년의식을 행한 2011년은 토호쿠 대지진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연이어 터지면서 일본이 어렵던 시기였는데, 이런 시기에 3,000만 엔 가량의 막대한 세금으로 화려한 티아라[70]를 만들어 썼던 일이 재조명된 것이다.

한편, 코무로 부부의 미국행 이후, 코무로 케이가 뉴욕 도착 이틀 후[71]에 회사를 방문하여 뉴욕의 한 펍에서 동료들과 웃으며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 찍혔다. 그래서 "사실상 코무로 케이는 내년 2월 변호사 시험의 결과가 어찌되었든 간에, 처가(황실)에서 제공하는 비용과 각종 혜택들을 이용하여 외국에서 유려한 기둥서방 라이프를 즐기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확신으로 바꾸어주게 만들었다.

현재 두 부부는 뉴욕 맨해튼 중심가 중 한 곳인 헬스키친 내 525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이곳은 미국 부동산회사와 일본 미츠이부동산이 세운 월세형 고급 아파트다.[72] 영국 데일리메일 보도에 따르면 코무로 부부는 침실 1개 타입의 방을 임대했고, 월세는 4,809달러다.[73] 코무로 케이가 현 거주지의 1년치 임대료보다 부족한 임금을 받고 있고, 코무로 마코가 박물관 큐레이터로 맞벌이[74]를 하더라도 주거 생활비를 감당할 수준이 안 된다. 다시 말해서 아파트를 사실상 무료로 쓰고 있다는 얘기가 되는데, 이는 미츠이부동산이 황실에 알아서 상납, 즉 '손타쿠(忖度)'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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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부부의 일상은 파파라치들의 촬영 대상이 되어 하루가 멀다하고 보도되고 있다. 다만 일본 언론에서는 애써 이를 보도하지 않고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석연치 않은 항공권 업그레이드와 사실상의 무상 거주, 댓글창 폐쇄에서 볼 수 있듯, 황실에 '알아서 기는' 일본 사회의 단면이다. 법적으로 실권이 없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권력을 지닌 일본 황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1월 26일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본 주요 언론사들은 일본 정부와 "미국에 있는 코무로 부부를 촬영하는 것을 제한한다"는 협약을 맺었다고 한다. 코무로 부부가 미국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까지만 촬영이 가능하며, 그 이후에는 촬영 불가능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회적으로 해외 파파라치들로부터 구매한 사진과 영상은 가능한지, 미국 현지 공항 도착 이후 일본에서 코무로 부부 관련 사진들은, 전부 직접 찍은 게 아니라 해외 파파라치들이 찍은 걸 구매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영국 왕실 특종보도에 특화되어 있는 영국 데일리 메일은 일본 황실에도 관심이 많은지 코무로 부부에 대하여 자주 보도하며, 사진도 주로 이 매체를 통해 전파되고 있다. 사진은 해당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청바지를 입고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부부가 함께 손을 잡고 걸어다니는 모습은 자유를 만끽하는 신혼부부의 모습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일본 정부가 의도적으로 이러한 사진을 찍게 한 다음 언론에 뿌린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만일, 코무로 케이가 2022년 2월에 있을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미국 취업비자가 만료되어 일본으로 귀국해야 하며, 현재 일하는 로펌에서도 짤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실질적으로 그 시험이 마지막 기회인데, 시험공부와 다른 생활을 어떻게 병행할지가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해외 뉴스 보도들과 일본 언론들에서 계속해서 "일본 정부, 궁내청 등이 코무로 부부의 취직자리를 알아보느라 혈안이며, 이미 케이가 일하는 변호사 사무실에 일본 내각 등의 지원이 들어갔다"는 등의 각종 미확인 정보들이 튀어나오고 있어다. 만에 하나 케이가 아내의 배경으로 들어간 변호사 사무실에서 해고되더라도, 그 기간 중에는 일본인들의 세금을 쓰면서 유유자적 놀다가 일본에서 뒷말 나오기 전에 다시 백으로 일자리를 취득할 가능성이 높고, 그때까지 비자 등 여러가지 부분도 마코가 단 2주 만에 면접없이 미국비자를 발급받았던 것처럼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여담으로 코무로 케이는 2021년 11월 14일에 일본에서 출국할 때 대놓고 일본 여권을 보여준 아내[75]와 달리 최대한 여권을 숨기다가 여권을 확인할 때만 직원에게 보여주었는데, 이에 대해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돌던 코무로 케이의 한국인[76]이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해당 사진은 원거리에서 찍은 거라 잘 안 보여서 초록색 혹은 짙은 갈색의 여권이라는 것만 파악할 수 있었는데, 이게 대한민국 여권(일반)과 비슷하고, 무엇보다도 끄트머리에 뭔가가 있는데 이게 새로 발급되는 한국 여권이 아니냐는 의구심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물론 그나마 제정신인 사람들은 코무로 부부가 일본 정부로부터 과도한 대우를 받은 걸 감안, 코무로 케이의 여권이 일반여권(10년 적색, 5년 감청색)이 아니라, 공용 여권(초록색)이거나 외교관 여권(갈색)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나 후자보다는 전자, 즉 한국인은 아니더라도 외국인일 것이라는 설이 많다.

하지만 아무리 일본황실에 손을 쓴다고 하지만 외교관[77]도 아닌 자에게 외교관 여권을 발급하는 것은 어려우므로 관용여권일 가능성이 높다.[78] 아니면 여권 커버의 색상일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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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5. 재수 실패 후 3수 성공

2022년 4월 15일, 2월에 치른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서 코무로 케이가 또 불합격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현재 고용된 법률사무소의 대응이나 차후 생활을 꾸려나갈 방식 등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코무로의 회사는 일종의 인턴인 법률보조원(Law clerk) 형태로 1년 계약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면 면접을 통해 재계약하는 식으로 신규 변호사를 영입해왔다. 그러나 코무로는 계속해서 회사에 다녔고, 회사에서도 홈페이지에 코무로의 프로필을 다시 공개했다. 이 자체로 기존에 없던 사례라 누가 봐도 특혜임이 분명했고 때문에 일본 내에서 새로운 비판으로 이어졌다. 한편 프로필에 관해서는, 코무로가 입사했을 당시부터 공개했었으나, 일본에서의 접속이 급증해서 네트워크에 문제가 생긴 데다가, 코무로의 미국에서의 수상경력 중 허위에 대한 지적을 3번이나 당해, 계속 허위사실로 수정된 이후에 갑자기 일본 IP를 차단시켰다. 공개된 이후에도 마지막으로 수정된 허위 수상경력은 유지되어 있고, 사진도 초창기 억지로 찍은 듯한 사진이 잠깐 올라왔다가 사라진 이후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논란과 별개로 프로필 마지막 문단에 "일본어가 유창하다."라는 문장이 들어가있어, 상술한 코무로의 외국인설이 더더욱 확대 생산된 바 있다.[79]

결국 코무로는 2022년 7월, 뉴욕주 변호사시험 3수에 도전하였으며 10월 결과 발표를 기다리게 되었다. 2022년 10월 19일, 데일리신쇼발 기사로 만약 코무로가 다음 변호사시험에 또 낙방하더라도 마코는 개의치 않을 것이며 오히려 자신을 지지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자신 또한 코무로를 지지할 것이라는 카더라 기사가 나왔다. 누가봐도 코무로 부부를 옹호하는 내용인 탓에, 또 코무로가 불합격할 것을 대비한 친황실 언론의 여론 관리용 기사거나 궁내청의 언론플레이란 반응이 많았다.

사실 미국 변호사 시험은 다른 나라 변호사 시험에 비하면 전혀 어려운 수준이 아니다. 아무리 외국인 입장에서 영어라는 외국어로 수험한다고는 하나, 중위권 이상 미국 로스쿨에서 착실하게 공부하고 졸업할 수준이면 합격할 수준이므로 한국이나 일본의 변호사 시험 난이도와 사뭇 다르다. 때문에 이 시험을 치면서 삼수생이 된다는 것부터가 코무로 케이의 실력이 의심스러운 수준임을 방증하는 것과 다름없다. 특히 그가 졸업한 포덤대 로스쿨은 미국 내에서 상~중상위권이고, 포덤대 로스쿨 졸업자 중에서 1수 변시 통과율은 93.7%, 졸업 이후 2년 내 통과율은 96.7%에 달하며 이는 미국 상위권 법전원에서는 매우 일반적인 수치이다. 이 수치 안에 못 든다는 것은 다시 말해 동문 중에서 최하위권에 속한 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애초에 포덤대 로스쿨에 입학할 실력 자체가 되지 않음에도 모종의 특혜를 받아 무리하게 입학을 했고, 무리하게 시험에 도전했다가 낙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와중에 2022년 10월 20일, 코무로 케이의 사진이 담긴 프로필이 그의 근무처인 로웬스타인 샌들러 홈페이지에 게시되었다.#[80] 장발의 머리를 뒤로 묶고 웃는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으로, 관련 소식을 담은 기사 댓글 반응은 좋지 않다.#

파일:코무로케이_프로필.jpg

그러나 이 프로필 갱신 때문에 다음날로 예정된 변호사시험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그가 합격한 것이 아니냐는 설이 트위터를 중심으로 나돌았으며 '축하한다', '기쁘다'는 등의 트윗이 퍼졌다. 참고로 뉴욕주 변호사시험 합격자 발표는 우선 수험생 본인에게 통지되고, 다음 날 일반에 공개되는데, 이러한 내용을 담은 기사에는 '만약 코무로가 합격했다면 진작에 스스로 합격소식을 떠들어댔을 것'이라며 비아냥대거나 더 이상 뻘짓하지말고 귀국하라는 등의 비판 댓글이 줄을 이었다.#

2022년 10월 21일, 코무로 케이가 과거 근무했던 변호사 사무소에 합격 소식을 전하면서, 뉴욕주 변호사시험 합격자명단이 일반 공개되기 전에 합격한 사실이 알려졌다.# 3수 끝에 어찌어찌 합격에 성공하기는 하면서 코무로 부부를 향한 국민적 분노는 다소 누그러질 것으로 보이며, 뉴욕 이민 생활은 지속할 수 있을 전망이다.

하지만 지금은 케이 본인은 문제가 없으나 2023년 12월 기준 아내인 마코가 취업에 실패하면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예산을 지원받아 생활하고 있어서 반응은 좋지않다.#

4.7. 코무로 케이의 언행 논란

장모님이 될 키코 비를 두고 케이는 "귀국자녀이셔서 일본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키코 비는 1살부터 7살까지 미국에서 살았고, 초등학생 때도 오스트리아 등 유럽에서 살다가 중학생 때 귀국해서 어릴 때는 일본어가 서툴러 고생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중학생 때부터 [age(1966-09-11)]세인 지금까지 줄곧 일본에서 학교도 다니고 살아온 예비 장모를 두고 사위 되겠다는 남자가 '일본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운운은 매우 무례한 행동이다. 한국에서 결혼할 여자의 집에 가서 예비 장모님께 "한국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시네요."라고 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자. 그래서 일본에서는 '저렇게 대놓고 무례한 발언들을 쏟아내는 자와 결혼할 사람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식으로 비판이 쏟아졌다.[81]

인터넷에 공개된 코무로 케이의 과거 작문[82]도 '일본인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평가가 공통적으로 나올 정도로 엉망진창인 탓에, 많은 이들이 '누가 누굴 지적하지?'라며 비꼬았다.

거기에 공개 기자회견에서 마코 공주를 달로, 자기를 태양으로 지칭하면서 스스로를 공주인 약혼녀보다 높다고 해석할 수 있을 만한 발언을 했다. (당시 황후였던) 미치코 상황후히사코 비 등은 이런 발언에 놀라 코무로를 부정적으로 봤을 정도이다.

코무로의 대리인 변호사도 궁내청후미히토에게 사전 조율 없이 "코무로 케이와 마코 공주는 일반 연인들처럼 자주 연락을 하는 편이고, 마코 공주는 지금도 결혼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소리를 언론에 그대로 노출하는 등, 여러 가지로 변호사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4.7.1. 코무로 문서 발표(2차)

2021년 4월 8일, 코무로는 일련의 금전 문제와 각종 논란을 해명하는 설명문을 언론을 통해 공표했다(전문). 이 설명문은 공표 직후부터 논란이 일었는데, 우선 그 분량이 무려 28장에 달하고 개요만 3페이지에 각주만 5페이지에 달하는 등, 이게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설명문인지 법정에 제출하는 변론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여러 전문가들은 황당하다는 의견을 표했고, 특히 변호사와 교수 출신 오피니언리더들은 어줍잖은 법조 문서라거나 매우 안 좋은 형태의 빵점짜리 레포트같다며 혹평을 했다.

내용을 보더라도 시종일관 유감과 이해를 구한다기보다 변명과 결혼에만 급급한 모습이 점철되어 있고, '저를 불신하는 분들이 많겠지만'과 같이 국민들은 자신을 불신하는 존재로 전제하는 표현이 여러 번 등장하는 등, 도저히 대국민 메시지라고 보기 힘든 면이 많다. 그나마 진솔한 해명을 바랐던 여론이 무너지면서, 이때를 기점으로 국민 감정에서 완전히 아웃되었다고 보는 평가가 많다.

4.8. 추측

이처럼 코무로의 처신이 워낙 상식 이하라서 궁내청 내부와 언론, 일본 국민들은 만일 코무로가 마코 공주와 파혼하면 공주와 관련된 폭로 서적을 써서 혼삿길을 막아버리거나, 아니면 일본 황실로부터 엄청난 위자료를 뜯어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한 술 더 떠 낯 뜨거운 예측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코무로 케이가 마코 공주와의 성관계 영상 혹은 사진을 소지했고, 궁내청도 이런 영상이나 사진의 존재를 경호원 등을 통해서 알아냈기 때문에, 코무로 문제를 강제로 해결하고 싶어도 영상이나 사진이 인터넷에 유포될까 우려해서 못 나서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궁내청은 코무로를 이례적으로 대했다. 일본에서 종종 연예인들의 성관계 상대가 연예인과의 잠자리 사진을 언론사에 팔아버려서 특종 보도되는 사건들이 제법 있었으므로,(일본 연예인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연예인이였던 승리도 일본에서 이런 일을 당한 적이 있었다) 이러한 주장이 아예 가능성이 없는것도 아니다.

2019년 6월 21일 후미히토가 해외 공무 전 기자회견에서 말한 내용도 있고, 이전에 주간지에서 보도한 '전 약혼자 A씨와의 불법 녹취' 등을 엮어, 코무로가 공주와의 성관계 사진 혹은 영상을 만들어 궁내청과 후미히토를 협박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퍼졌다.

5. 영향

코무로 케이와 마코 공주의 결혼 논란 때문에, 그동안 우호적이었던 후미히토 일가에 대한 여론이 매우 나빠졌다.

후미히토는 어려서부터 형인 나루히토와는 달리 태도가 불량한 난봉꾼이었으나, 결혼 후 자진해서 황실로 시집 온 아내 키코 비가 노력하여 본인은 별 다른 노력 없이 국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스스로 원하여 황실에 시집 온 키코 비는 시부모에게 싹싹하게 굴었고, 결혼 후 금방 두 딸 마코 공주와 카코 공주를 낳아 매일같이 황궁(고쿄)을 들락거리며 시부모에게 손녀들의 재롱을 보여주었으며, 황족으로서 공무도 부지런히 하고,[83] 특히 41년 만에 황위 계승자(남자) 히사히토를 낳아, 시부모와 국민들로부터 칭찬받았다. 이는 여러 모로 형님 마사코 황태자비와 대조되었다.

능력 있고 운까지 따라준 야심가 키코 비 덕분에 남편과 자녀들까지도 지금껏 분에 넘치는 고평가를 받은 것이다. 사건 전만 해도 야후재팬에 올라오는 후미히토 일가 동향을 다룬 인터넷 기사 댓글은 모조리 찬양 일색이었다. 결혼 문제가 불거진 이후로는 반전되었다.

그러나 이번 결혼 논란으로 일본 내 여론은 크게 반전되었다. 천황 내외의 첫 손주로 태어나 일본인들로부터 온갖 사랑과 관심을 한몸에 받은 마코 공주, 활달한 성격에 언니와 함께 미인이라 인기가 높던 카코 공주, 늦둥이에 남자아이라서 떠받들리던 히사히토 모두 이런저런 문제점[84]으로 부정적인 말을 듣는다.

반면 이전까지 여러 가지로 홀대받던 황태자 일가는 평가가 상당히 좋아졌다. 나루히토 일가에게 코무로는 그야말로 후미히토 일파에게 그동안 하지 못했던 역공을 가할 명분을 준 사람이다. 황태자 부부의 무남독녀 아이코 공주가쿠슈인 초등과 저학년 때 학교에서 이지메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공격을 받아 상당히 힘들어했으나, 부모가 적극적인 지원해준 덕에 별 탈없이 넘기는 데 성공했다.[85] 초등과 고학년 때부터 성적이 우수하다고 알려졌고, 중학생~고등학생이 되면서 차츰 학교에 적응도 잘 하고, 교우관계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성적도 과거 자폐설을 없애려는 듯 공개한 이후 단 한 번도 떨어뜨리지 않고 유지하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사촌형제들보다 훨씬 낫다.

오랫동안 적응장애[86]를 이유로 일본인들의 무수한 공격들을 받으면서도 남편의 철저한 보호 속[87]에서 칩거하던 마사코 황태자비도 차츰 건강을 회복해서 그동안 못하던 각종 공무에 나섰고, 시어머니 미치코 황후도 차기 황후가 될 인물로 인정하여 적극적으로 챙겼다.

2019년, 아키히토 덴노가 생전퇴위를 하고 장남 나루히토 황태자가 새 천황으로 즉위했다. 나루히토에게는 아들이 없으므로, 황실회의 등을 통하여 나루히토 다음으로는 남동생 후미히토, 후미히토 다음으로는 후미히토의 아들 히사히토가 천황직을 이어받기로 정했다. 그러나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가 불거진 뒤, 아이코 공주가 차기 덴노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본인들이 늘어났다.[88]

후미히토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2018년 11월 30일 자신의 53세 생일기념 기자회견에서 형의 천황 즉위식을 두고 세금낭비, 정교분리 원칙을 지켜야 한다[89] 등, 반대하는 말만 늘어놓았다. 이러니 후미히토 일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마코 공주와 코무로 케이의 결혼 문제로 일본 황실의 이미지가 대폭 추락하였으니, 아키히토 덴노 부부도 시간이 지날수록 차남 일가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되었다. 이는 향후 후미히토가 천황을 승계하는 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듯하다. 만일 새로 천황이 된 나루히토가 정말로 아이코 공주에게 천황직을 물려주려고 생각한다면, 부모가 남동생 일가를 안 좋게 바라봄을 이용해서 아이코 공주 한정으로 허락을 받고, '은퇴한 상황 부부도 인정했으니 너희들도 인정해라.'는 식으로 일본 정부를 우회적으로 압박해서 아키히토의 생전 퇴위 때와 비슷하게 일을 진행할 수도 있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도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로 아키시노노미야 가문 전체를 일본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감안하면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으니, 별다른 반대 없이 동의할 가능성이 높다. 2019년 기준 일본 국민들의 여론은 구 황족 복귀보다는 여성 천황이나 여성 황족 미야케 창설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쪽이다.[90]

그 동안 일본인들은 아키히토 부부의 모범적인 행보[91] 이 때문에 황실에 호감이 많았고, 황실을 비난하는 일은 삼가자는 암묵적인 여론이 있었다. 그렇기에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일왕 사과 발언 때나 2019년 문희상 국회의장의 사과 발언에 대한 일본인들이 일본 정부보다도 더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고 2019년 기준 일본 내 한류를 주도하는 10~20대조차도 해당 발언이 나오고 나서 역으로 이번 발언은 잘못된 발언이라고 화낼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통해서 황실 전체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어 황실을 대놓고 비난하는 일본인들도 상당히 많아졌다고 한다.

사실 후미히토 일가가 이번 문제를 해결하는 법은 아주 간단하다. 코무로 케이와의 혼약을 파기하고, 천황 부부의 결정을 취소한 것[92]에 대해서 후미히토가 미야케의 궁주이자 마코 공주의 아버지로서 국민들 앞에서 정식으로 사과하고, 이러한 중대한 행위를 한 것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후미히토가 2019년 5월부터 황태자에 준하는 직책으로서 받게 되는 여러가지 혜택들을 한동안 혹은 영구적으로 반납하고, 별 문제가 없는 멀쩡한 남자를 골라 마코 공주와 결혼시키면 그만이다. 좋은 집안도 아닌 '진짜로 평범한 집안의 멀쩡한 보통 남자' 수준만 되어도 코무로 케이와 비교되어 다들 환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실, 정확히는 코무로 케이와 마코 공주 외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사람인 후미히토는 '두 사람의 의지를 존중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시간을 계속 끌었다.[93] 황실 문제에 너무나도 질린 나머지, 그동안 아키히토 덴노 부부가 노력한 덕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천황제 무용론 등도 일본 내에서 다시 나왔다.[94]

결국 해당 문제는 2019년 5월 1일 이후 생전퇴위 및 새 천황 즉위로 레이와 시대가 시작되었음에도 해결될 기미를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코무로 일가를 두고 추가적인 문제들[95]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이러한 영향으로 후미히토 일가에게 천황 승계를 시키지 말고 차라리 아이코 공주를 옹립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또한 일본 여론은 여성 천황 즉위 및 여성 미야케 창설[96]에 많이 우호적이므로, 문제를 일으켜 아키히토 상황 부부가 30여년 이상 노력해 황실을 호의적으로 바라보게 만든 평판을 크게 훼손한 책임을 물어 후미히토 일가 전체가 신적강하해야 한다는 주장[97]까지 돌아다닌다.

2020년 11월에 마코 공주의 결혼을 강행하겠다는 사실상 협박에 가까운 발표, 코무로 일가의 금전 문제를 제기한 남자가 금전 문제를 포기하는 선언,[98] 11월 30일 후미히토의 사실상 마코 공주의 결혼 허용 선언 이후에 각종 주간지들은 코무로 일가에 대한 옹호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몇몇 주간지들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거나 알려졌지만 내막이 자세히 밝혀지지 않은 코무로 케이의 어머니 코무로 카요와 관련된 여러가지 의혹들을 제기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본 국민들은 코무로 카요를 거의 악질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코무로 카요의 과거 행적만 봐도 남편의 소꿉친구를 '운명의 상대'라고 부르고, 아들 코무로 케이에게 '쇼난의 파파라'고 부르라고 하거나 코무로 케이의 부친이 사망하면서 케이가 다니던 학교 자치회에서 학비를 제공하자 이걸 갚을 생각조차 안 하고 지원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나, 남편이 사망하고 나서 시어른을 향해 "너희들 때문에 남편이 죽었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등, 아무리 봐도 범죄의 냄새가 대놓고 풍기는 상황이다. 이쯤되니 범죄자 취급을 안 받는게 더 이상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각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서, 일본 국민들의 일본 황실에 대한 혐오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상태다. 정확히는 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마코 공주에게 제재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묵인을 넘어서 사실상 결혼을 용인한 후미히토 내외와 상황 내외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 오히려 조카의 결혼 소동에 휘말린 거나 다름없는 나루히토 일가는 여전히 많은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있다.

2021년 9월 1일 연내에 혼인신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원금 문제를 인식하는지, 아예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공공기관이나 후원단체에 기부할 것을 언급했다. 일본의 심각한 코로나 상황을 고려해 결혼식을 올리지 않는 걸 검토하고 있다는데, 이것이 실현되면 마코 공주는 최초로 왕실의 의식 없이 결혼한 공주가 될 것이라 한다. 코무로가 미국 뉴욕주에 위치한 로펌에 취업이 확정되면서, 연내 혼인신고 이후 여권과 비자가 나오는 즉시 코무로 마코는 미국으로 갈 예정이다. #1 #2

하지만 코무로의 이력서를 받은 미국 현지 대형 로펌 근무자의 증언에 의하면, 코무로가 수료한 LLM 코스 1년-JD 코스 2년은 사실상 미국 현지에서 변호사로 근무하기에는 어려운 이력이라고 한다. 원칙적으로 코무로는 일본에서 전문적인 법무 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미국에서 변호사를 하려면 JD 과정 3년을 받을 필요가 있다. 1학년 겨울방학 시즌에 맞춰서 로펌 인턴을 신청해서 이후 인턴 과정을 잘 마쳤다면, 해당 회사와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미국 내에서 코무로가 원하는 M&A를 전문으로 진행하는 대형 로펌들의 인턴은, 우선 미국 내 명문대학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뽑는다. 그래서 이들 명문대학들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부족한 포덤 대학교 로스쿨에 진학한 코무로는, 이러한 대형 로펌에 들어갈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코무로 케이의 이력서를 봐서는, 변호사보다는 그냥 기업가를 하는 게 나을 지도 모르겠다"고 끝을 맺는다.

참고로 해당 보도에서 코무로 케이의 이력서 중에서 그나마 특기할 점이라면, 로펌에 이력서를 보낸 코무로 측 변호사가 적은 "코무로 케이는 마코 공주의 보이프렌드"라는 점이라고 한다. 물론 미국계 로펌이나 투자은행들이 으레 그렇듯, 든든한 뒷배경을 가진 취업준비생은 실력의 유무와 무관하게 보통 추천받아 들어가거나 인맥을 확보하려는 사측의 이해관계에 따라 쉽게 취업이 되므로, 문제될 일은 아니다. 코무로의 학업 및 실무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코무로 역시 일본 공주의 예비 남편이라는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주간문춘은 코무로 케이의 이력서를 확보해 확인한 결과를 보도했다. 코무로가 2012년~2013년 UCLA 유학 당시 덴츠 아메리카 로스앤젤레스 지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했으며, 미츠비시 UFJ 2년 근무 당시에 2연속으로 우수 사원 표창을 받은 바 있는 우수한 인재라고 하면서도, 동시에 포덤 대학교 졸업시즌 여름방학 때 모 대형 로펌에서 인턴을 하려고 했으나 코로나 19의 여파로 내정 취소되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주간문춘이 덴츠, UFJ, 미국 로펌에 사실확인을 해본 결과, 모조리 이력서 내용과는 사뭇 다른 점들이 포착되었다고 한다. 우선 덴츠 아메리카에서 인턴을 한 것에 대해서, 덴츠에서는 "당시 로스앤젤레스에는 지사가 없었으며 코무로가 인턴을 한 적도 없다"고 밝혔고, UFJ 역시도 "우수사원으로 선정된 적도 없다"고 답변, 마지막으로 로펌에서는 "코로나 19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인재들이 인턴에 참여했지만, 참여 인원들 중에서 코무로 케이는 없었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이에 더해 문춘은 "코무로 케이가 포덤대학 졸업시즌 여름방학 때 인턴으로 일한 곳은 일본계 미국인 변호사가 근무하는 로펌으로, 무급으로 일했다"고 한다.

2021년 9월 16일, 코무로 카요의 허위 산재 신청,[99] 과거 질병수당 수령기간 중 불법으로 근무한 부정수급 사건[100]과 더불어 코무로의 변호사 사무실 입사 이후 터진 코무로의 이력서 허위사실 기재 의혹이 일본 국민들의 분노를 키우는 와중에 10월 이내에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아마 코무로가 미국 유학을 할 때처럼 일본에 올 때 VIP용 라운지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일본에 있을 때에는 치안이 확보된 고급호텔에서 격리생활&미국 출국 전까지 지낼 가능성이 크다. 일본 내에서 반 코무로-아키시노노미야 감정이 방일을 계기로 폭발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거기에다가 일본 귀국 후 2주간 자가격리 후 치루어질 예정인 기자회견궁내청이 주도로 준비하고 있으며, 회견장에는 코무로 케이와 마코 공주가 동참할 예정이라 제대로 된 기자회견보다는 정해진 대본대로 코무로 케이와 기자들이 움직이는 방식이 될 게 뻔해서, 극우 인사인 타케다 츠네야스 조차도 '제대로 된 기자회견을 안 할 거면 일본에 오질 말든지.'라고 할 정도이며, 미국 변호사 자격을 가진 사람들도 코무로의 긴급 방일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어서, 일본 국민들의 분노가 계속 쌓여가고 있다.

[1] 일본 미츠이부동산이 세운 월세형 고급 아파트다.아파트 소개 영국 데일리메일 보도에 따르면, 코무로 부부는 침실 1개 타입의 방을 임대했고 월세는 입주 당시 기준 4,809달러다. 2022년 들어 뉴욕 지역의 부동산이 폭등하며 같은 아파트 3층의 월세가 현재 5,000달러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이들이 임차한 방의 월세는 6,000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넉넉히 예상할 수 있다. 이것은 아내 코무로 마코가 황실 이탈 지참금을 수령하지 않았고, 코무로 케이는 박봉이라 온전히 두 사람의 맞벌이로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유지 불가능한 수준이다. 즉, 미츠이부동산이 무료 또는 그에 맞먹는 염가로 제공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내 황실의 영향력은 엄청나기에 이런 손타쿠(忖度)가 자연스럽지만, 손타쿠가 당연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이들 부부는 황실에서 이탈한 상태이기에 국민적 지탄을 받을 수 밖에 없다. 2022년 10월, 코무로가 미국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면서 경제적 자립이 가능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월세 전액을 스스로 감당할 수준은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2] 기업 법률자문을 전문으로 하는 중대형 로펌으로, 코무로의 현 직책은 Law Clerk(변호사 업무보조원)이다. 포덤대 로스쿨 졸업 후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 계속해서 탈락하고 있어서 변호사가 되지 못한 채 로클럭 지위는 계속 유지 중이었다가 3수만에 뉴욕 변호사(BAR) 시험에 합격하여 정식으로 변호사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현 업무보조원 계약이 끝나면 변호사로 새로 계약할 것으로 보인다.[3] 2021년 10월 1일자로 정식적으로 결혼을 발표, 10월 26일 혼인신고서를 제출하여 수리되었다. 관련기사[4] 일본 황실에서, 공주가 시집갈 때 주는 돈이다.[5] 국내에서는 이 단어와 같은 발음 때문에 난색을 표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으며 그래서 일부 언론에서는 고무로 케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6] 일본에서는 4월에 신학기가 시작되므로, 케이는 2002년 4월에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다.[7] 분신자살을 했다고 알려졌다.[8] 1966년생. [age(1966-12-31)]~[age(1966-01-01)]세.[9] 물론 950점이 토익에서 상대적으로 만점에 가까운 고득점이지만, 토익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이 정도만으로는 절대로 미국에서 변호사 생활이 불가능함을 잘 알 것이다.[10] 반면 황족 남성은 평민 여성과 결혼해도 황족 신분을 그대로 유지한다.[11] 일본 황적에서 이탈하면 황족으로서 맡던 명예총재 자리에서도 물러나고 다른 황족이 이를 승계함이 원칙이다. 그러나 현재 황족의 수가 너무 적어서, 황족들 대부분이 이미 수 개 이상 명예총재직을 중복으로 유지한다. 그래서 또 새로운 명예총재직을 받을 여유가 없기에, 공주가 평민에게 시집가서 황적에서 이탈되더라도 결혼 전 명예총재직을 유지하기로 했다. 코무로 문제가 발생한 이후 결혼을 발표한 다카마도노미야 가문의 3녀 아야코 공주도 2018년 10월 모리야 케이와 결혼한 이후에도 여전히 명예총재직 2개를 유지 중이다. 2019년 1월에는 생전퇴위 이후 잔뜩 꼬여버린 천황 내외와 황태자 내외의 공무 그리고 후미히토 내외의 공무를 이어받을 다른 황족이 없어서, 오래 전부터 황실과 자신의 두 딸(아키코 공주, 요코 공주)과도 사이가 안 좋은 것으로도 유명한 노부코 비에게까지 공무 1개를 할당했을 정도로 황족이 부족하다. 일본 내에서 여성 미야케를 창설하잔 논의가 나오는 것도, 이러한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이다.[12] 후미히토([age(1965-11-30)]세)가 탄생.[13] 후미히토의 늦둥이 아들 히사히토([age(2006-09-06)]세)가 탄생.[14] 1969년 4월 18일 구로다 사야코([age(1969-04-18)]세), 1981년 12월 20일 미카사노미야 아키코 공주([age(1981-12-20)]세), 1983년 10월 25일 미카사노미야 요코 공주([age(1983-10-25)]세), 1986년 3월 8일 다카마도노미야 쓰구코 공주([age(1986-03-08)]세), 1988년 7월 22일 센게 노리코([age(1988-07-22)]세), 1990년 9월 15일 모리야 아야코([age(1990-09-15)]세), 1991년 10월 23일 코무로 마코([age(1991-10-23)]세), 1994년 12월 29일 카코 공주([age(1994-12-29)]세), 2001년 12월 1일 아이코 공주([age(2001-12-01)]세).[15] 사실 모리야 케이는 한부모 가정, 평민 출신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비교가 민망할 정도로 코무로 케이와의 공통점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모리야 케이는 경제산업성 고위 관료 출신 아버지와 국경없는 의사회 전무이사 출신 어머니를 둔 엄연한 상류층 자제였으며 굴지의 대기업 니폰유센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반면 코무로 케이는 후술되어 있듯 막장 콩가루 집안에서 자란, 평범에도 미달하는 수준의 집안 출신에, 미츠비시 UFJ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었다지만 직장 내에서는 인간관계에서도, 업무 능력에서도 한참 자질 미달이라는 평을 받았다.[16] 왜 시집가서 평민이 된 공주를 일본 경찰이 경호하냐면, 과거 아키히토 상황의 셋째 누나 다카쓰카사 가즈코와 여동생 시마즈 타카코가 시집간 이후 당했던 사고 때문이다. 가즈코의 남편 다카쓰카사 도시미치(鷹司平通)가 불륜을 저지르다가 내연녀와 함께 사망한 후, 가즈코는 민간에서 혼자 살던 중 1968년 강도를 당했다. 어쨌든 일반 국민들에 비하면 황실 일원들은 재산이 아주 많은 축에 들고, 그런 와중에 여자 혼자 사니 강도에게 딱 좋은 표적이 된 것.[17] 이 때문에 항간에는 '은행 입사에 황실이 개입했나?'하고 추론하지만, 미츠비시 UFJ 은행 등 일본의 메가뱅크는 대량채용 후 영업성적으로 승진을 가른다. (2015~2016년에는 일반직도 포함해서 2,800명 가량을 채용했다. 상위직종인 종합직 채용만 봐도 600명 정도는 되었다. 참고로 마루노우치 지점에서는 무능하기로 유명했다.)[18] 전 동료는 '중요한 서류들도 아무 데나 놔두는 버릇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아마 그런 식으로 하던 중 거래처 관련 서류를 분실한 모양이다.[19] 참고로 이 비용은 어머니 카요의 내연남 A씨가 전액 부담했다.[20] 코무로 마코의 증조할아버지 쇼와 덴노와 증조할머니 고준 황후는 1923년 관동대지진 때문에 결혼식을 미루었다.[21] 하지만 코무로 케이의 초등학교 동급생으로 이지메 피해를 입은 피해자 B씨가 2019년 5월에 한 증언에 의하면, 카요는 사별 얼마 후에 새로운 남자를 사귀었다고 하는데, 위에서 언급된 돈 문제가 얽힌 A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다. 카요는 토시카츠와 사별하고 몇 년 후에야 A씨와 교제를 시작하였다. 사별 직후에 카요와 사적 교류가 있었던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카요는 여러 남자들과 사귀었고, 어느 50대 남성과는 사별 반 년 만에 동거까지 했다고 한다. B씨의 증언에 나오는 남자와 동일인물일지도 모른다.[22] 여기에서 말하는 생활비를 제외한 비용이라는 것은, 코무로 케이의 대학 진학비 및 대학 재직 중 미국 유학비용, 아나운서 스쿨 비용 등을 의미한다.[23] 다만 대리인이 인터뷰할 때마다 말이 다르고, A씨가 '내가 원하는 건 변제'라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리인을 언론인을 선임한 것에 대해서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24] Law School Admission Test, 한국의 LEET의 모체에 해당.[25] 하버드 대학교에 가보면 수많은 나라에서 유학온 왕족, 특히 산유국 기름 왕자들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이 전부 실력만으로 입학했다고 보긴 힘들다. 대학 차원에서 먼 미래를 내다보고 일종의 인맥 만들기 전략투자라고 보면 된다.[26] 예비 장인 후미히토, 예비 장모 키코 비, 예비 처제 카코 공주, 예비 처남 히사히토.[27] 베스트셀러 <7번 읽기 공부법>의 저자.[28] 다만 법대 졸업 - 사법고시 패스 - 미국 로스쿨 진학 - 뉴욕 주 변호사 자격증 취득 테크를 받은 사람은 한국에서도 꽤나 흔하다. 미국 로스쿨은 크게 3년짜리 J.D와 1년짜리 LL.M으로 나뉘는데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LL.M을 선택하고 가장 범용성이 높은 뉴욕 주 변호사 자격증을 받는다. LL.M.은 등록금이 비싼 것으로 유명하다.[29] 2018년 가쿠슈인 여자고등과 2학년 여름방학 중에 영국 이튼 스쿨로 단기유학을 떠난 아이코 공주도, 차기 천황인 나루히토 황태자의 유일한 자녀인데도 근접경호 없이 다녀왔다. 마코 공주의 여동생 카코 공주도 영국 리즈 대학교 단기유학 당시(2017년 9월 ~ 2018년 6월) 근접 경호를 받지 않았다. 이처럼 황족도 특정상황이 아니면 해외에서 근접 경호를 받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직 정식 약혼자가 아니라서 고작 남자친구 정도 신분에 불과한 코무로 케이를 근접 경호 해줌은 엄청난 특혜이다.[30] 사실 왕정을 유지하는 국가들에서 혈통적 왕족, 즉 로열 블러드를 향한 날선 비판은 일본은 물론이고 영국이나 네덜란드처럼 정치적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고 공화주의자도 공개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드러낼 수 있는 국가에서마저 어느 정도 자제되는 정서가 있다. 영국 왕실만 해도 앤드류 왕자처럼 본인이 도저히 실드 불가의 초대형 사고를 친 케이스가 아니라면 왕자나 왕녀 등 왕가의 혈통을 이어받은 구성원보다는 사위나 며느리 등 외부에서 결혼으로 편입된 왕족들을 대리 욕받이로 삼는 경향이 있다. 현재 영국 왕실의 트러블메이커인 서식스 공작 헨리 왕자와 며느리 메건 마클 중 누가 더 영국인들과 영국 타블로이드 언론들에게 직접적으로 욕을 먹고 있나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부분이다.[31] 이날은 여자친구 마코 공주가 보이지 않았다. 돗토리 현에 1박 2일로 공무를 갔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서 일본에서는 "두 사람을 갈라놓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일정을 이렇게 잡은 것이 아니냐?"고 의심했다.[32] 황족과 결혼할 사람의 거처를 경비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황실이 아니라 지역 경찰이 담당한다.[33] 2018년 8월 12일 납채 의식을 치러 아야코 공주의 정식 약혼자가 되었고, 동년 10월 무사히 결혼식을 치렀다.[34] 여기에서 한 가지 간과된 것은, 바로 코무로 일거의 거처 경비 관련 비용이다. 현재 코무로 케이의 집 주변에는 거주지 카나가와현 현경 소속 경관 10여 명가량이 근무한다. 물론 여기에 들어가는 돈 역시도 세금이다. 그러니 일본 거처 주변 경호에 드는 금액까지 추가하면, 코무로 일가를 보호하는 데 최소 3년간 세금이 5억 엔 이상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35] 황태자 일가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방계 황족(미야케) 궁저들이 아카사카 어소 부지 내에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36] 카요의 채무 문제가 언론 보도를 통해서 알려지자, 키코 비는 어떻게 된 상황인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궁내청에 항의한 다음, 당사자인 카요에게 이것저것 질문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카요는 '그 돈은 채무관계가 아니라 증여받은 것이기에 하등의 문제가 없다.'고만 반복했다. 하지만 설명과 달리 사건은 계속해서 커졌다. 심지어 카요가 황실에 경제적인 지원을 요청했다고도 한다. 그래서 키코 비는 '이런 여자가 내 딸의 시어머니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 결혼반대로 입장을 바꾸었다고 한다.[37] 이는 일본 황실 내에서도 민간에서처럼 '헤이세이 시대에 벌어진 일은 헤이세이 시대에 끝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기 때문인 듯 하다고 보도 일간지는 추측했다.[38] 일본의 전통 시[39] 황족들이 제출하는 와카로 천황 내외는 황족들의 소양 등을 점검한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참고로 셋째(히사히토) 임신을 발표하기 직전, 후미히토키코 비는 노골적으로 "아기를 갖고 싶다"고 노래하는 와카를 발표했다.[40] 애시당초 포덤 대학교에서 해당 언급을 넣게 된 것도, 코무로 케이가 입학원서에다가 자신을 '혼약 내정자'라고 표기했음이 발단이었다고 한다. 물론 케이는 부인했지만 일본 언론은 케이가 입학원서에 그러한 뉘앙스로 적은 것을 확인했다.[41] 카요는 아들 케이가 미국으로 유학 간 이후 아르바이트하던 가게에도 안 나오고 두문불출해서, 한때는 '연이 있다는 캐나다나 아들 케이가 있는 미국으로 간 게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없다. 2019년 1월 22일 일본 언론 보도에 의하면, 코무로 모자의 집은 비워졌고 카요는 연락두절 상태라고 한다.[42] 문제 있는 남자와 결혼, 황족과 교제하는 입장인 상대 측 부모가 천황을 전례없이 단독 면담을 했었다.[43] 일본 법에 의하면 증여로부터 7년.[44] 실제로 카요가 약혼자였던 A씨에게 보낸 문자에서도 "우리의 관계는 유족연금 부정수급에 해당된다"고 언급하는 내용이 있었다는 게 언론을 통해서 확인된 바 있다.[45] 해당 보도의 제목은 "일본황후가 순진해 빠진 마코 공주의 연애 감정에 종지부를 찍다(Japan’s empress strikes to end romance of ‘naive’ Princess Mako)"[46] 일본 언론에 알려진 코무로 케이의 교육과정은, J.D. 코스가 아니라 LL.M. 코스라고 한다. "미국의 많은 주는 J.D. 과정을 3년 이상 수강해야 그 주의 변호사 시험 자격을 부여하나, 캘리포니아주, 뉴욕주, 워싱턴 D.C.는 LL.M.만으로도 응시가 가능하다"고 일본 언론이 언급 중이다. 참고로 코무로 케이는 LL.M. 코스를 듣고 미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이후에 JD 코스를 들을 것이라고 한다.[47] 유학비용 역시 카요의 전 약혼자인 A씨가 부담했다고 한다.[48] 일본 황족은 호적이 아예 없기에, 혼인신고시에는 반드시 필요한 증빙서류라고 한다.[49] 일본에서는 외국 변호사 자격이 있다면 보통 '국제변호사'라고 부르지만, 일본 법률상으로는 이런 용어가 없다. 대신 '외국법 사무 변호사'라는 제도가 있다. 2년 이상 외국에서 변호사로서 실무경험이 있는 사람이 등록하면 일본 내에서도 사법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 제도로 등록한 사람이 아니라면, 일본 법률사무소에서 외국 법률 문서를 번역하는 등 사무보조를 해야 한다고 한다. 외국법 사무 변호사 제도를 이용하려면, 외국에서 유효한 변호사 자격을 득함은 물론, 일본에서도 변호사나 그에 준하는 법무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참고로 한국에도 외국법자문사라는 비슷한 제도가 있다.[50] 이들의 상대는 같은 외국인들이 아니라 현지인들이기 때문에, 상상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51] 이는 졸업 후 취직처를 고르는 데에도 크게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52] 원래 특집은 아니었지만, 어쩌다보니 '코무로 특집'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방송 말에 MC가 사과했다.[53] 즉, 마코 공주와의 결혼 계획으로 보인다.[54] 참고로 그 자리에는 변호사나 후미히토와 20여 년간 친교가 있는 언론인 등이 있었는데, 이들 전부 해당 발언에 충격을 받았다.[55] 보도에 의하면 코무로가 유학과정에서 경호 등의 명목으로 사용할 비용은 대략 5천만 엔, 우리나라 돈으로 5억 원가량이라고. 물론 이 비용은 전액 일본인들이 내는 세금이다.[56] 구 황족 집안 출신 극우활동가 다케다 츠네야스트위터에서 대놓고 "무능한 변호사 고용 비용은 후미히토 일가가 지불했고, 그 지불을 명령한 건 미치코 상황후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음은 후미히토가 무능한 탓도 있지만, 미치코 상황후가 동조한 탓도 있다'고 보는 여론이 일본 극우들 사이에 있음을 보여준다. 결혼 문제가 장기화되어 후미히토의 무능이 부각되면 차기 천황 승계가 어려워지기에 극우들로서는 타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싶지만, 이 문제에서 책임이 있다고 할 만한 다른 사람은 아키히토 상황과 미치코 상황후 뿐인데, 아키히토 상황을 비난하긴 힘드니 만만한 미치코 상황후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이었다.[57] 이 때문에 코무로는 대학생 시절 1년간 미국 유학 때 어머니의 전 혼약자 A씨가 돈을 빌려줘서 해결했다.[58] '비가 오는 날에는 괜찮겠지.'하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다가, 비를 맞으면서 대기 중인 일본 취재진들을 보고 놀라서 다시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일본 언론들은 포덤 대학교 졸업식 현장에 참석해서 코무로를 기다렸고, 기자들 중 일부는 졸업 후 뒷풀이가 열리는 클럽까지 들어갔다고 한다. 물론 코무로는 클럽에도 불참했다.[59] 물론 현지에 간 기자들은 코무로의 위치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미국은 개인 사생활을 중요시하는 문화 등이 있다보니 찾는 데 애를 먹은 모양이다.[60] 쿠니타치('국립'과 한자가 같다.)는 지명으로, 국립대학이 아니라 사립대학이다. 일본 현지에서도 명칭 때문에 국립대학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61] B씨는 토시카츠가 의문스럽게 사망하기 전에 만났다고 증언했다. "오후에는 일이 있다." 하면서 급하게 빠져나간 게 토시카츠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었다고 한다.[62] 한국에서도 이 정도의 망언은 명백한 폭력이지만, 사적인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일본 정서상 이 정도의 망언은 상상도 하지 못할 모욕이다.[63] 마사코 황후의 첫째 여동생 이케다 레이코(池田禮子)의 남편. 도쿄대학, 하버드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한 후 뉴욕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며 도쿄의 법률사무소 대표로 재직 중이다. 일본 기업의 변호사 순위에서도 여러 번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능력 있는 변호사라고 한다.[64] 다만 이것은 그의 모교인 포덤 대학교 법전원을 기준으로 보면 얘기가 달라지는데, 대학 측에서 공개한 2021년 변호사 시험 통과 여부 통계에 따르면 법전원 졸업 이후 2년 이내에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는 비율이 졸업생 중 96.29%에 달한다고 한다. 사실 이상할 것도 없는게, 포덤처럼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혹은 그를 상회하는) 미국 법전원들은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절대 다수가 9할대를 찍으며 변호사 시험 정도는 당연히 붙는걸로 인식된다. 수년간이나 물을 먹었다면 같은 학우들 중 최하위권이라는 것을 시사한다.[65] 코무로 케이의 주장에 의하면, 어머니 코무로 카요의 정신병이 워낙 심해서 주치의로부터 전 약혼자와의 어떠한 방식의 연락도 금지당해 케이 본인이 직접 대리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66] 코무로 케이의 일본 입국시에도 이러한 방식을 사용했다.[67] 마사코 황후와 우호적이다. 마사코 황후는 황실로 시집오기 전에 외교관이었고, 친정아버지도 외교관이었기 때문이다.[68] 일본 황실의 공주들은 만 20세 생일에 하얀 드레스티아라 차림으로 성년식을 한다. 본래 아이코 공주의 만 20세 생일은 2021년 12월 1일인데, 4일 후인 12월 5일로 성년식이 연기되었다.[69] 친정 부모인 아키히토 상황과 미치코 상황후 내외가 사비를 들여서 구매해준 것이라 구로다 사야코의 개인재산이며, 사야코가 2005년 시집갈 때 가지고 갔다.[70] 코무로 마코가 황실을 떠나면서 궁내청에 반납되었다. 사비가 아닌 국비로 만들어진 것이므로.[71] 당시 일본에서는 코무로 대변인으로부터 전 약혼자에게 돈이 송금되었던 시기(11월 18일. 금액은 총액 409만 3,000엔이다.)[72] 아파트 소개[73] 일본에서는 월세 50만 엔이라고 처음 소개되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40만 엔으로 수정되었다.[74] "코무로 마코가 비자 종류를 바꾸어서 매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일하는 게 아닌가"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75] 일반여권 10년[76] 코무로 카요의 금전 문제가 생긴 직후, 홍콩의 한 언론사가 "'코무로 카요의 부친이 한국계"라는 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이후 "코무로 케이/카요는 한국인"이라면서 '김사랑'이라는, 남성에게 붙일 이름으로는 다소 말도 안 되는 이름이 코무로의 원래 이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나타날 정도였다.[77] 혹은 황족이나 외국을 방문하는 고위 관료(각료)[78] 관용여권도 외국에서는 일반여권 소지자보다 우대를 받는다.[79] 그러나 이건 미국계 기업에 대한 일본인들의 이해가 매우 부족한 탓이다. 해당 로펌은 미국계고 대다수의 고객들 또한 미국인이기 때문에 직원의 국적이 무엇이든 외국어 능력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이민자 출신이 많은 미국 환경 특성상 외국계 직원이라고 해서 해당 외국어를 잘할 것이라는 기대도 미국에서는 상식이 아니기 때문에 언어 능력을 별도로 언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80] 전술했듯, 일본에서의 액세스 급증때문에 일본 IP는 차단된 상태다.[81] 하지만 키코 비 역시 자신의 형님인 마사코 황후나 조카 아이코 공주에게 헤아리지 못할 망언이나 폭력 사주, 저주 혐의 등을 짙게 받고 있으니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젠 키코 비가 "아무려면 저런 어미 밑에서 자란 딸이 제대로 된 신랑감을 데려오기나 하겠냐" 하는 소리를 듣고 있는 판국이다.[82] 마코 공주와 사귀기 전 여자 아나운서 헌팅을 위해서 아나운서 학원에 들어갔을 때 제출한 것이라고 한다. 작문을 공개한 언론사는 "케이의 작문이 워낙 엉망이라, 당시 강사였던 아나운서가 코웃음을 쳤다"고 보도했다.[83] 키코 비는 몸이 아플 때조차도 쉬지 않고 공무에 나온 적이 제법 많다고 한다.[84] 아버지 후미히토부터 시작해서 고질적인 학교 문제, 특히 부정입학 의혹이 강하다. 참고로 키코 비는 남편이나 자녀들과 달리, 부정입학보다는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대학원에서의 박사학위 취득과 관련된 의혹이 있다.[85] 나루히토 황태자는 각종 공무에 사적 공부 등으로 바쁜 와중에도 적절한 훈육으로 아이코 공주가 등교하게 했고, 마사코 황태자비도 심한 적응장애로 고생하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대중 앞에 모습을 나타내서 아이코 공주의 등하교 등을 지켜보았다.[86] 마사코 황태자비는 결혼 전 유럽미국에서 오래동안 살았기 때문에, 일본의 여성관에 내성이 적었다. 그 상태에서 일본에 와서도 당시 여성우대 기조의 첫 수혜자로서 여성 외교관이 되었다. 그러니 황실에 들어와 받았을 정신적인 충격은 매우 컸을 것이다.[87] 그 점잖고 발언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선택해서 발언하는 나루히토 황태자가 천황 부부와 관계가 어색해짐은 물론 황태자 지위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은 줄 알면서도 기자회견에서 "황태자비의 인격을 부정하는 존재가 있다."하고 밝혔을 정도였다. 또한 공무로 바쁜 와중에도 아이코 공주를 자상하게 챙겨주었다. 그래서 마사코 황태자비도 기회가 될 때마다 자신과 아이코 공주를 뒤에서 받쳐주는 남편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고 있다.[88] 현 일본 황실전범상으로는 남자만 천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일본 역사에서 여성 천황은 여러 번 있었으므로, 이를 전례로 삼아 특별법을 제정하고 밀어붙일 수도 있다. 다만 아이코 공주가 천황이 되면 다음 후계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여전히 문제가 남는다. 아이코 공주를 구 황족 집안 출신 남자와 결혼시키려 하는 것도, 만약 아이코 공주가 여자 천황이 되면 생길 후계 문제를 우회적으로 해결하려는 의도가 있다.[89] 기본적으로 천황 즉위식은 신토 의식이 다수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황'이라는 자리가 신토의 최고제사장 역할도 겸하므로 즉위식에 신토 의식이 들어감은 너무나도 당연한다. 만약 천황으로부터 신토의 최고제사장 역할마저 분리시킨다면, 천황은 최소한의 명분조차 사라진 공허한 장식이 되어버린다.[90] 2019년 3월 일본 국회에서 황실 후계자 관련 질의에서 아베 신조 총리도 구 황족 복귀는 부정적이었지만, 아베의 지지세력이기도 한 자민당 내 우익 세력들은 구 황족 복귀에 상당히 긍정적이다. 아무래도 구 황족은 극히 최근(1945년)까지 황족 지위에 있었고 신적강하가 된 후에도 황실과 교류가 잦으며 구 황족들 역시도 자신들의 복귀에 적극적이라 명분이 없지는 않다. 이 문제와 대한 자세한 얘기는 일본 황실 문서로.[91] 예를 들면 아키히토 덴노가 황태자 때 오키나와에서 희생된 주민들을 추모하러 갔다가 지역 주민으로부터 화염병 테러 등을 받았지만 일절 화내지 않고 '단 한 번만에 이들의 고통이 해소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 묵묵히 다음 공무를 계속했고 이후에도 오키나와를 자주 방문해서 오키나와 전투에서 희생된 피해자들을 계속해서 추모하면서 오키나와 주민들을 위무하였으며 아키히토가 궁내청 등에 강하게 주장해서 해외 각지에 있는 희생자 추모 방문도 하기도 했다.[92] 천황의 공식 결재를 받은 사항을 취소함 자체가 일본인들에게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한다.[93] 코무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한은 연호가 바뀌는 2019년 5월 1일까지였다. 그 이후에는 지금보다 몇 배 이상으로 해결하기 어려워진다. 최악에는 마코 공주와 코무로 케이의 결혼식을 국민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진행해야 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2019년 5월부터 천황이 되는 나루히토 황태자가 사이도 좋지 않은 남동생 후미히토를 상대로 '5월 전까지 문제를 해결하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일본 황실의 관례에 따르면 미야케 내부 문제는 내부에서 해결해야지 외부인이 왈가왈부해선 안 되지만, 이런 관례를 무시하고 설득해야 할 정도로 황실도 문제를 심각하게 여겼다. 가장 좋은 것은 당연히 본인들이 스스로 결혼을 철회하기지만, 2019년 2월에 두 사람은 파혼은커녕 또 다시 큰 사고를 치기도 했다. 결국 5월 1일이 지나 연호도 바뀌었고 문제는 더욱 꼬였다.[94] 천황제 무용론은 1989년 쇼와 덴노가 사망한 이후에 꽤 많은 사람들이 주장했고, 실제로 아키히토 덴노 즉위 이후에도 정례 황족 참례식 때 황족들을 향해 빠칭코 금속볼이 날아드는 테러가 있었다. 그 외에도 박격포 투발 사건, 전국체전 기념행사 도중 반천황 단체 멤버가 조명탄을 들고 천황이 있는 단상에 이를 투발하려고 했으나 주변에 있던 경호원들이 그 행위를 제지하는 사건 등이 제법 있었다. 그러나 아키히토 덴노 내외는 국민들에게 다가가서 위무하고 과거를 반성하는 행보를 수십 년간 일관적으로 보임으로써 즉위 초 반발 여론들을 상당한 수준으로 누그러뜨렸고, 그 덕분에 천황을 노린 테러는 거의 20여 년 동안 없었다. 그런데 작은아들 일가의 추태 때문에 천황제 무용론이 다시 불거진 것이다.[95] 그동안 문제들이 코무로 케이의 모친 코무로 카요 관련이라면, 이후의 관련 문제들은 전부 코무로 케이 본인의 문제.[96] 물론 문제의 당사자인 마코 공주와 편을 드는 카코 공주를 제외한다는 조건부가 내포된 허용이다. 이를 적용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후미히토 일가에는 아들 히사히토가 있기 때문이다. '대를 이을 아들이 있으니, 미야케 유지를 위한 목적의 여성 미야케를 이들에게 굳이 허용할 필요가 없다.'는 명분으로 두 공주를 여성 미야케 적용 대상에서 배제하기는 어렵지 않다.[97] 물론 현 일본 황실의 고질적인 인력난으로 그동안 황실과 사이가 안 좋던 노부코 비를 불러서 공무를 맡길 정도인데 그러한 상황에서 4명이나 되는 성년 황족을 일거에 신적강하시킴은 황실 입장에서 절대로 반기지 않을 조치이다. 황실 관련 발언을 자제하는 일본인들의 입들에서 이런 말이 잔뜩 나올 정도로 후미히토 일가의 이미지가 최악이다.[98] 해당 남자는 코무로 카요와 케이가 과거에 자기가 살던 맨션에 찾아와서 대화를 한 내용을 공개하거나, 해당 선언을 할 때 금전문제를 제기한 이후로 수많은 협박을 받아왔다고 밝혔다. 금전 문제를 포기한 선언도 누군가가 개입한 결과라 판단해서,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해당 선언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오히려 일본 국민들은 이러한 압박을 줬을 가능성이 큰 황실에 대한 비난을 높이고 있다.[99] 15년간 근무하던 화과자점에서 "탈의실에서 아킬레스 건 절단을 당했다"면서 산재보험을 신청했는데, 이에 의아한 사장이 알아본 결과 카요가 다칠 때 어느 누구도 그 광경을 본 적 없었고, 카요는 해당 신청 때까지 조용히 지냈다고 하며, 이후 기자들에 의하여 깁스는 했지만 목발을 안 짚고 편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100] 코무로가 미국 유학을 간 이후 카요가 앞서 말한 화과자점에 정신건강을 이유로 휴직을 하면서 치료비 지원을 받는 와중에, 카루이자와에 있는 지인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