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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1 19:51:36

요코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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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 결혼으로 인한 황적이탈
[궁]: 분가하여 새 미야케 창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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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 여왕
瑤子女王
파일:yoko3.jpg
<colbgcolor=#bd0029><colcolor=#dca600> 출생 1983년 10월 25일 ([age(1983-10-25)]세)
도쿄도 시부야구
학력 가쿠슈인 초등과 (졸업)
가쿠슈인 여자중등과 (졸업)
가쿠슈인 여자고등과 (졸업)
가쿠슈인 여자대학 국제문화학부 (일본문화학과)
아버지 토모히토 친왕
어머니 노부코 비
형제 언니 아키코 공주
오시루시
(お印)
[1]
별(星)

1. 개요2. 황실 가계도3. 외가4. 학업5. 황족으로서의 활동6. 우익7. 기타

[clearfix]

1. 개요

일본의 공주. 토모히토 친왕의 2녀 중 차녀로, 나루히토 천황과는 육촌 관계이다.

할아버지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 증조할아버지는 다이쇼 덴노이다. 1947년 개정된 황실전범에 따르면, 천황의 손주까지는 친왕/내친왕, 증손부터는 왕/여왕이라 한다.[2] 따라서 다이쇼 덴노의 증손녀인 요코 공주는 여왕 지위를 받았고, 요코 공주의 언니 아키코 공주, 사촌 여동생들인 쓰구코 공주, 노리코 공주, 아야코 공주도 여왕 지위를 받았다.[3]

2. 황실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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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쓰카사 도시미치
         
이케다 다카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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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즈 히사나가
구로다 요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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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에 다다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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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소시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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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게 구니마로
모리야 케이



3. 외가

어머니 노부코 비는 그 유명한 아소 다로의 여동생이다. 아소 다로는 총리를 지낸 정치인이고, 아내 아소 치카코(麻生ちか子) 또한 스즈키 젠코 前 총리의 딸이다. 아소 가문은 규슈에서 탄광 사업을 했는데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인들을 강제 징용하여 큰돈을 벌었다. 이러한 배경에 영향을 받아 아소 다로 또한 극우 인물로, 한국에 대한 망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래서 개혁보수 성향의 고노 다로를 본인의 파벌에서 퇴출시켜 버리려 벼르고 있다.[4]

외할머니 아소 카즈코(麻生和子)는 요시다 시게루 前 총리의 딸이며, 화족 정치인인 마키노 노부아키의 외손녀이다. 노부아키는 2.26 사건 때 카즈코와 함께 있다가 습격당해 위험에 처했는데, 카즈코가 적들과 맞서 총격전을 벌여 외할아버지를 구했다. 한편 노부아키는 본래 오쿠보 도시미치의 차남인데, 마키노 가문에 양자입양되어서 ‘마키노 노부아키’가 된 것이다.

노부아키의 며느리 마키노 스미코(牧野純子)는 화족 나베시마 가문의 딸로, 미치코 상황후의 황태자비 시절에 아카사카 동궁어소 시녀장(侍女長)을 지냈다. 오랜 관례를 깨고 평민[5] 출신인 쇼다 미치코가 황태자비가 되자, 시어머니 나가코 황후를 위시한 황족·화족들은 미치코 황태자비를 몹시 미워하여 호된 시집살이를 시켰는데, 스미코는 바로 그 나가코 황후에 의해 동궁 시녀장으로 임명된 인물이었다. 따라서 스미코 또한 나가코 황후 일파와 함께 미치코 황태자비를 괴롭혔다.

스미코의 딸 하야시 사다코(林貞子, 1919-2006)는 교육자로, 가쿠슈인 대학과 도카이대학의 명예교수였으며 유아교육 전문가였다. 사다코가 도쿄도 시부야구에 설립한 쇼토(松濤) 유치원일본에서 원비가 제일 비싼 유치원으로 손꼽혔고, 상류층·부유층·연예인의 자제들이 많이 다니며[6], 원생들을 명문 사립초등학교로 많이 진학시키기로 유명했다. 아키코 공주의 어머니 노부코 비도 쇼토유치원을 졸업했고, 결혼 전에는 쇼토유치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쇼토유치원은 2008년부터 신입생 모집을 중단했고, 2010년에 최종 폐원되었다.

4. 학업

아키코 공주와 요코 공주는 쇼토유치원[7]에 다니다가 가쿠슈인 유치원으로 옮겼다. 일본 황족들이 다니는 학교는 가쿠슈인이라는 것이 암묵의 룰[8]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요코 공주는 가쿠슈인 유치원, 가쿠슈인 초등과, 가쿠슈인 여자중등과, 가쿠슈인 여자고등과를 거쳐, 2002년 4월 가쿠슈인여자대학 국제문화교류학부 일본문화학과에 진학했다.

5. 황족으로서의 활동

2003년 10월 25일에 성년(만 20세)이 되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황족으로서의 공무 및 황실 행사와 제사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2006년 가쿠슈인여대를 졸업한 후로는 일본적십자사에서 2012년까지 근무했다. 또한 건강이 좋지 않았던 아버지 토모히토 친왕과 어머니 노부코 비, 영국 유학 중이던 언니 아키코 공주의 몫까지 공무도 수행했다.

파일:attachment/토모히토/ayo.jpg
2012년,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언니 아키코 공주(좌)와 함께.

2012년에는 아버지 토모히토 친왕이, 2016년에는 할아버지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이 사망했다. 황실 가족들과 사이가 나쁜 노부코 비는 남편과 시아버지의 장례 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013년 8월에는 재단법인 국제유니버설디자인협의회의 총재로 취임했고, 2014년 1월에는 사회복지법인인 유아이주지카이(우애십자회)의 총재로 취임했다.

언니 아키코 공주와 함께 공무를 하지만, 궁내청과 언론에서는 그에 대해 별로 보도하지 않는다. 때문에 매년 열리는 신년참하 외에는 언론에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2019년에는 아키히토 천황이 생전퇴위식과 나루히토 황태자의 즉위식이 있었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언론에 많이 노출되었다.

2019년 12월 11일~17일에는 미얀마를 방문했는데, 이는 나루히토 천황의 즉위식에 참석하러 방일했던 아웅산 수지 여사가 직접 요청한 것이라고 한다. 다만 궁내청의 발표에 의하면, 요코 공주의 미얀마 방문은 '사적 여행'으로 처리될 것이라고 한다.

한편 몸이 좋은 편은 아닌지 자주 공무에 불참하여, 일각에서는 요코 공주의 건강에 대해서 걱정의 소리도 들리고 있다. 기본적으로 위장이 좋지 않아서 2013년 언니 아키코 공주가 공항에서 쓰러진[9] 그날 밤에 심한 복통을 호소하면서 응급실에 간 적도 있었다. 2022년 3월에는 자신이 명예회장으로 있는 청각장애인 단체의 행사에 참석해서 연설했는데, 여기서 “나는 20대 무렵부터 감음성 난청을 앓기 시작해서 이런저런 고생을 했다”고 깜짝 고백하기도 했다.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명예총재로 있는 모터쇼 연맹의 행사에는 매년 참석하며, 아버지 토모히토 친왕의 공무를 일부 물려받은 것은 최대한 참석한다고 한다. 관계자의 발언에 의하면, 아버지를 많이 닮아서 상당히 유머러스하다고 한다.

6. 우익

일본 우익사관 채널과 블로그에서는 언니 아키코 공주와 함께 인기가 높다. 아버지 토모히토 친왕과 외삼촌 아소 다로가 극우이며, 무엇보다도 토모히토 친왕 사후인 2013년부터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있기 때문이다.[10] 현재 일본 황실에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황족은 아키코 공주와 요코 공주뿐이기 때문에, 모든 황족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극우들로서는 두 공주를 우호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작 두 자매의 외삼촌인 아소 다로는 통일교 게이트에 가장 깊게 연루되면서 혐한 극우들에게 비난받고 있다.

7. 기타

7.1. 코로나19 확진

2022년 2월 8일, 궁내청은 요코 공주가 일본 황족 최초로 코로나19 확진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요코 공주는 2월 7일 목의 통증을 느끼고 검사를 받은 결과 코로나19 양성으로 판단되어 궁내청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확진받기 전에 언니 아키코 공주[11]를 만났기에, 아키코 공주도 만일을 대비하여 PCR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요코 공주는 목 통증 이외에는 별 다른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2월 9일 검진 결과 폐렴이 확인되어 곧바로 궁내청병원에서 도쿄대학병원으로 이동하였다고 한다. 일반인들보다 여러 모로 엄격한 통제를 받으며 무엇보다 24시간 경호를 받는 황족마저도 코로나19에 걸렸는데도 불구하고 감염경로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본인들은 상당히 놀라워했다. 2월 16일, 요코 공주는 회복되어 퇴원했다.#

이후 보도에 의하면 요코 공주를 사적으로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는 시종으로부터 감염된 것으로 보이며, 해당 시종과 요코 공주 이외에 다른 사람들의 확진은 없었다고 한다.

참고로 궁내청에서 미카사노미야 가문에 보내준 시종들이 있음에도 사적으로 또 시종을 고용한 것을 보면, 미카사노미야 가문에는 이제 남성 황족이 없어 다른 미야케[12]에 비하여 적은 수의 시종을 받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리고 그나마 궁내청에서 파견된 시종들도, 고령에 건강도 나쁜 할머니 유리코 비의 시중에 집중하고 있다고. 실제로 과거에 할아버지 다카히토 친왕이 생존해있을 때부터, 다카히토 친왕의 막내인 다카마도노미야 가문은 황족인 자신들이 처리하기 힘든 부분에만 사적 인원을 고용하는 등, 황족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황족비를 최대한 아껴쓴다고 보도된 바 있다.

[1] 일본 황실의 황족들에게 주어지는 개인 표식. 사용하는 물건 등에 붙는다. 주로 식물 등이 많지만, 요코 공주나 그녀의 언니 아키코 공주처럼 예외도 있다. 아키코 공주의 오시루시는 눈(雪).[2] 1947년 이전에는 4대손까지를 친왕/내친왕, 5대손부터를 왕/여왕이라 했다.[3] 반면 아키히토 덴노의 손녀로 태어난 마코 공주, 카코 공주, 아이코 공주는 내친왕 지위를 받았다.[4] 벼르고는 있지만 실제 실행에는 옮기고 있지 못하다. 아소 다로가 회장으로 있는 파벌의 시조가, 다름아닌 고노 다로의 아버지 고노 요헤이이기 때문이다. 파벌 창립자의 아들을 쫓아내는 후폭풍은 천하의 아소조차 감당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5] 말이 평민이지, 미치코 상황후의 친가인 쇼다(正田) 가문은 재벌이고 외가인 소에지마(副島) 가문은 옛 화족(백작)이다.[6] 롯데그룹 신동주, 신동빈 형제도 쇼토유치원에 다녔다.[7] 아키코 공주와 요코 공주의 사촌 여동생들인 쓰구코 공주, 센게 노리코, 모리야 아야코가쿠슈인 유치원을 다니지 않고, 쇼토유치원을 졸업한 후 가쿠슈인 초등과에 입학했다.[8] 패전 이전에는 ‘황족이 다니는 학교는 가쿠슈인’이라고 아예 법으로 제정되어 있었다. 패전 이후 이 법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황족들은 모두 가쿠슈인을 다녔다. 이 암묵의 룰이 깨진 것은, 2008년 9월 쓰구코 공주와세다대학 국제교양학부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9] 해외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아키히토 당시 천황과 미치코 황후 내외를 마중하러 갔다가 쓰러진 것이었다. 원인은 비공개이나 ‘과로로 쓰러진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10] 2019년 4월에도 아키코 공주와 함께 봄 대제를 지내고 있던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 가을 대제 참석 여부는 미확인.[11] 교토에서 지내다가 도쿄로 올라와서 요코 공주를 만났다.[12] 방계 황족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