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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5-27 03:06:23

다카하시 토오루


高橋 亨
1878년 ~ 1967년
1. 개요2. 생애3. 교수분야4. 기타

1. 개요

일본의 한문학자, 조선학자. 1926년부터 1939년까지 경성제국대학 조선어조선문학과의 조선문학분야의 교수였다.

2. 생애

1878년 니이가타 현 나카우오누마군 카와지촌[1]에서 출생하였다.1902년 도쿄제국대학 한문학과를 졸업한 후, 1903년 구한국 학부의 학정참여관이던 시데하라 타이라(幣原 坦)[2]의 후임으로 관립중학교 교사직을 맡아 조선에 건너왔다. 1910년 이후엔 경성고등보통학교 교유, 대구고등보통학교 교장, 경성전수학교/경성법학전문학교의 교수, ‘조선제국대학창설위원회’ 간사를 거쳐, 경성제대 본과가 개교한 1926년에 조선어조선문학의 조선문학분야 교수로 부임했다. 여담으로, 동 시대에 조선어조선문학으로 부임한 교수는 다카하시를 포함하여 2명으로, 또다른 교수는 오구라 신페이였다. 다카하시 교수가 조선문학분야이면, 오구라 교수는 조선어학분야를 담당하였다.

경성제대 교수 퇴임 이후인 1940년엔 사립 혜화전문학교의 교장으로 있었고, 1945년엔 경성경학원제학 및 명륜연성소장으로 있었고, 패전 이후 1949년엔 후쿠오카상과대학(현 후쿠오카대학 상학부)의 교수로 있다가, 1950년부터 텐리대학 교수로서 1964년까지 재직한다.

3. 교수분야

그가 경성제대 교수 재직시절에 적은 강의노트를 보면 그가 무엇을 연구하고 가르쳤는지를 알 수 있다. 아래는 연구노트의 주제들이다. 괄호 안은 책의 수이다. 전 110책이라고 한다(조선사상학 66 + 조선문학 44).
(참고논문: '다카하시 토오루[高橋 亨]의 경성제국대학 강의노트의 내용과 의의', 이윤석, 2016.)
즉, 다카하시의 자세한 연구분야는 조선문학과 조선사상학인 것이다. 참고로, 2014년 현재 이들 강의노트는 사이타마대학의 권순철 교수가 보관하고 있다.

4. 기타

그가 위와 같은 강의를 할 수 있었던 데는 그의 조선총독부 소속 시절에 했던 '종교조사'와 '도서조사'에서 얻은 지식들이 한 몫 했다고 본다.
1933년 한글맞춤법통일안(한글마춤법통일안) 제정 이전의 정서법(맞춤법)이던 '언문철자법' 제정에, 오구라 신페이와 함께 기여하기도 했다.
[1]토카마치시.[2] 시데하라 기주로 전 내각총리대신의 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