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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1-24 08:51:01

닥터 클레이튼

닥터 클레이튼
Doctor Clayton
파일:claytond.jpg
본명 피터 조 클레이튼[A]
Peter Joe Cleighton
이명 제시 클레이튼
Jesse Clayton
출생 1905년 4월 19일
미국 조지아주 아메리커스
사망 1947년 1월 7일 (향년 41세)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직업 가수, 작곡가
장르 블루스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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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가수 겸 작곡가.

2. 생애

1905년 4월 19일, 조지아주 아메리커스에서 태어났다.[2] 많은 자료들이 그가 부모님과 세인트루이스로 이주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세인트루이스에서 결혼해 4명의 자녀를 두었고, 공장 노동자로 고용되었으며 가수 경력을 시작했다.[A] 1930년 9월 9일, 시카고에서 신원불명자 2명과 2곡을 녹음했다. 이후 1935년 7월 27일, 시카고에서 비어트리스 "툿스" 윌리스와 여러 곡을 녹음했다.[B]

그러다 1937년에 집에 화재가 나서 본인을 제외한 온 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그는 평생 알코올 의존증에 시달렸고 무모하게 살기 시작했다. 이에 관해 빅 빌 브룬지는 그가 인품은 좋았으나 방을 구하지 않았고 겨울엔 테니스화를 신고 당구대, 골목, 지하실에서 잤다고 회상했다. 로버트 락우드는 "그와 녹음을 마치고 세인트루이스로 돌아오니 그는 신발이 없었다. 녹음을 마치고 그날 밤 클럽에서 온갖 사람에게 술과 음식을 사줬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의식을 잃자 사람들은 그가 가진 모든 것 (코트, 신발, 돈) 을 훔쳐갔다. 그가 일어났을 땐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고 회상했다.[C]

그는 시카고로 이사한 뒤 로버트 락우드와 음악적 파트너가 됐고 그의 음악 경력을 쫒고자 했다.[A] 1941년 및 42년, 그리고 1946년 8월 7일에 곡들을 녹음했다.[B] 1941–42년 녹음 때 이런 일화가 있었다. 데카 레코드와 연이 있던 찰리 조던이 그를 도와줬고 그와 락우드는 시카고로 떠났다. 찰리 덕분에 데카 레코드에 녹음하기로 되어있었지만 결국 블루버드 레코드의 스카우트 레스터 멜로즈 (Lester Melrose) 와 연결됐다.[C]

그는 시카고의 클럽에 정기적으로 등장했으며, 그의 음반은 큰 인기를 얻었다. 1947년 1월 7일, 시카고의 쿡 카운티 병원에서 폐결핵으로 숨졌다. 에디 보이드 (Eddie Boyd) 는 사망 당시 그가 매우 가난해 안장에도 타인의 도움이 필요했다고 말하며 그가 무식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장례식엔 빅 빌 브룬지를 포함해 10명만이 참석했다. 사후 일리노이주 알십의 레스트베일 묘지에 안장됐다.[B][C][11]


[A] Edward Komara · Peter Lee, "The Blues Encyclopedia" (Routledge · 2004.7.1.), 213쪽[2] Bob L. Eagle · Eric S. LeBlanc, "Blues: A Regional Experience" (ABC-CLIO · 2013.5.1.), 101쪽[A] [B] "Doctor Clayton discography", wirz.de, 2023년 1월 5일 확인[C] Jeff, "Big Road Blues Show 10/12/14: I Was Born In A Lion’s Den, Raised On A Smokin’ Forty Five – Doctor Clayton & His Buddies", sundayblues.org, 2014.10.12., 2023년 1월 5일 확인[A] [B] [C] [B] [C] [11] Jim O'Neal · Amy van Singel, "The Voice of the Blues: Classic Interviews from Living Blues Magazine" (Routledge · 2013.9.5.), 2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