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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black> 대갑서사항청사건 大甲西社抗清事件 | ||
시기 | 1731년~1732년 사이(옹정제) | |
장소 | 다안 강(大安溪), 다자시(大甲溪) 유역 | |
원인 | 청나라의 한족과 대만 원주민 간의 전쟁 | |
교전 세력 | 청나라 세력 평포족의 안리사(岸裡社) 부족 | 다두 왕국[1] |
지휘관 | 학옥린(郝玉麟) 왕군(王郡) | 린 울리(林武力)† 각각의 원주민 추장 13명† |
병력 | 6000명 이상 | 2000명 이상 |
피해규모 | 21명 사망 | 159명 사망, 남녀 포로 1000명 이상 |
결과 | 청나라의 승리 | |
영향 | 다두왕국의 멸망, 청나라의 타이완 섬 편입 및 통치, 중부 평포족의 세력 약화 및 안리사 부족의 부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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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록사 전투, 툰샤오 사 사건 다음으로 벌어진 한족과 평포족 원주민 간의 전쟁이며 대갑서사항청사건의 주모자이자 지도자였던 타오카스족(道卡斯族)의 린 울리를 중심으로 한 대만 원주민 부족들과 청나라 간의 전쟁으로 이후 한족과 평포족(平埔族)은 많은 부상자와 사상자가 생겼으며 청은 이에 평포족 민족 수비대를 강화하고 평포족 통제를 강화했다.사건이 일어난 지역의 지명(大甲, 타이중시 다자 구)을 따서 대갑서사사건(大甲西社事件)이라고도 하며 린 울리의 난(林武力之乱)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전투는 청나라에 대한 평포족의 무장항쟁 중 최대 규모의 사건으로, 당시 장화현(현재의 타이중시와 장화현 평지 부근)의 거의 모든 평포족이 참전하였다고 한다.
2. 상세
타오카스족을 비롯한 다두의 여러 원주민 부족들은 청나라 관리들의 너무 많은 과도한 노동력 배정에 착취당하고 있었고 심지어 청의 식량 수송을 돕기 위해 항복한 원주민을 참수까지 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원주민 부족들이 다두왕국을 통해 10명 이상의 원주민 관리 및 다두왕국의 후신들과 타오카스족을 중심으로 힘을 합쳐 무장하여 반공작전을 펼쳐서 장화현을 포위하는 등 청에 대항했다. 그 당시 푸젠성의 지사 대리였던 학옥린은 왕군을 직접 총통으로 파견하고 중국 본토에선 6000명 이상의 장군과 병사, 돈, 식량, 무기, 장비를 차례로 모집했으며 이윽고 이들을 태운 100척 이상의 배가 원주민 반군의 진압과 원정을 위해 타이완 섬에 보내졌다. 이후 청의 군대는 9월 초에 이이제이 전략을 채택하여 각각의 원주민 경쟁 부족들이 서로를 공격하게 만들고 파제흐족(巴宰族) 안의 세력인 안리사 부족 일부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인 군사작전을 펼쳐 여러 부족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10월 중순엔 청의 군대는 7개의 노선을 나누어서 여러 지역을 돌파했고 11월 초엔 소평산(小坪山)에 있는 원주민 반군들의 저항 요새를 공격하여 이들이 가지고 있던 1000마리 이상의 소, 8마리의 말, 수백대의 마차를 탈취하고 400개의 곡식 더미를 불태웠다. 결국 각 부족들이 군중을 이끌고 나와 청에 항복하면서 전투는 종료되었고 그렇게 평포족 부족 동맹 연합 반군의 저항은 실패로 끝났다.그렇게 전투 7개월 후 청의 군사들은 패배한 원주민 남녀 1,000명 이상을 포로로 잡고 41명을 참수, 21명을 부상입히고 18명을 살해했다. 그리고 다두왕국의 후신들 및 반란의 지도자 린 울리와 13명의 추장, 사록사의 원주민 관리는 반란의 선동 및 주모자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처형되었다.
후에 청나라는 해상 금지령을 완화시키고 한족의 군사작전 및 전투에 도움을 준 안리사 부족에게 보답으로 다두왕국의 옛 땅과 논밭, 사슴 농장 등을 인수하게 했으며 안리사 부족은 청에게 인수받은 그 영토를 넓혀 타이중 분지 전역으로 통합시켰다.
이렇게 다두 왕국은 멸망하고 그 영토는 청나라의 관할이 되었으며 청나라는 타이완 섬을 푸젠성 영토로 편입시키고 타이난을 중심으로 타이완 섬을 통치했다.
3. 관련 문서
[1] 평포족 안의 원주민 부족 동맹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