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113884><colcolor=#fff> 대한민국 해경 72정 침몰 사고 大韓民國 海警 七二艇 沈沒 事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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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생일 | 1980년 1월 23일 새벽 5시 20분경 | |
| 발생 위치 | 강원도 고성군 앞바다 | |
| 유형 | 침몰 | |
| 사고선박 | P-72정 | |
| 원인 | 어로보호 경비 중 기상상태 불량 등 원인으로 다른 경비함과 충돌 | |
| 탑승 인원 | 17명(경찰관 9명, 전투경찰순경 8명) | |
| 인명피해 | 승조원 전원 실종 | |
1. 개요
1980년 1월 23일 강원도 고성군 앞바다에서 해양경찰 소속 60톤 급의 72정과 200톤 급의 207함이 충돌한 사고.2. 상세
이 사고로 해경 승조원 17명이 전원 실종되었다.원인은 급격한 기상 악화로 짙은 안개에 높은 파도가 치면서 기계 고장으로 선박이 충돌하면서 침몰했다.
해경 승조원 17명이 경비정과 함께 전원 실종된 매우 큰 사건임에도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집권한 당시 신군부의 보도지침으로 인해 뉴스는 물론 신문의 단신 보도 한줄조차 내보낼 수 없었다고 한다.#
실종 해경 가족의 증언에 따르면 사고 당시 가족들에게 실종 사실을 알리는 전보도 "사고 관련 정부 관계자들이 직접 전해주지도 않고 우체국을 통해서 매우 무성의하게 던져놓는 바람에 그날 저녁이 되어서야 마당 구석에 있는 실종 전보를 확인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히나 싶었는데 2019년 KBS에서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알려졌고 유가족들은 꾸준히 시신 인양을 요구하고 있다.
3. 정부와 해경의 대응
사고 발생 39년 만인 2019년 3월 해경이 72정을 찾기 위해 정밀 수색을 시작했다. 4월 2일 72정이 침몰한 곳에서 북쪽으로 1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72정으로 추정되는 선체를 찾았는데 72정과 모습이 거의 일치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후속 조치는 없었다. 국회 예결위, 본회의에서 인양에 필요한 예산 205억 원이 모두 삭감되었기 때문이다.[1] 이에 해경은 인양을 위한 선체 부식 등을 확인하는 현장 조사 예산 45억 원을 재신청했다.이 선박은 현재도 아무런 조치 없이 방치되고 있으며, 해경 측은 예산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어서 2025년에도 인양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11월 20일 더불어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인양을 위한 예산을 어떻게든 마련해보겠다. 라고 밝혀 예산이 반영 될지는 지켜봐야 된다.#
4. 승조원
- 경감 김정곤
- 경위 박무성
- 경위 하연수
- 경사 함형원
- 경장 김삼환
- 경장 박재근
- 경장 유상준
- 경장 이오민
- 경장 조병섭
- 상경 서광섭
- 일경 강철구
- 일경 전상수
- 일경 정남교
- 일경 정영길
- 이경 천명규
- 이경 이진상
- 이경 신흥섭
5. 대중매체
- 2025년 11월 20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00회에서 방송되었다. 200회 특집으로 직접 침몰된 72정의 모습을 담는 데 성공했고, 그 모습을 방송 최초로 공개했다. 침몰 45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수중 탐사 영상 전체를 해경에 제공했다고 한다.
6. 관련문서
- 제주 C-123 추락사고: 이 사건도 신군부의 리더인 전두환 정부가 공식 출범하고 벌어진 사건이며, 전두환 정부가 특전사 대원의 시신과 잔해, 유품 등을 마대자루에 담아 폭파 및 소각 후 유가족 몰래 안장하였다.[2] 그리고 기자들의 현장 사진은 물론 사고 수습을 위해 경찰, 소방 측에서 찍은 사진들도 모조리 압수하고 경찰관들에게 이 사건에 대해 평생 발설하지 말 것을 강요하였고, 전두환 경호작전 중 일어난 사고를 대 간첩침투 훈련 중 일어난 사고로 조작하는 등 사건을 대폭 축소, 은폐 및 언론통제를 하였다는 점, 그리고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 방영되었다는 점에서 본문의 사건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3]
[1] 당시 코로나 19 창궐로 각종 비용이 상승하면서 72정 인양 관련 예산을 포함한 기타 예산이 모조리 삭감되었다고 한다.[2] # 더 참혹한 사실은 수습하기 상대적으로 용이한 시신의 큰 부위들만 대강 군 당국에서 극비 라며 마대자루에 담아 수습해 가고, 나머지 시신의 작은 조각들은 그대로 널브러져 있어 유가족들이 직접 수습하였다고 증언한다.[3] 전두환은 사건 이후 제주를 떠나기 전 분향소에 방문해서 "이번 사건은 조종사 조종 미숙으로 발생했다" 며 "인명은 재천인데 어떻게 하겠느냐" 라는 망언을 내뱉고 제주를 떠났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해당 추락사고 문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전혀 사실이 아니며 청와대에 이륙 불가를 두번이나 건의하였으나 묵살당했고, 상부로부터 악천후에 무리한 이륙을 강요당해 벌어진 사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