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불교 종단 |
<colbgcolor=#8F9194> {{{+2 대한불교보문종}}} 大韓佛敎普門宗 Bomun Order of Korean Buddhism | |
종지 | 轉迷開悟의 自利修行 救世度生의 利他實踐 |
약칭 | 보문종 |
국가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창종 | 1972년 |
종조[1] | 설월당 긍탄 화상 |
중흥조 | 보암당 은영 화상 |
소의경전[2] | 묘법연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 |
종정 | 지암 대인 대종사 |
총무원장 | 인구 스님 |
위치[3] |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사길 20 (보문동) |
홈페이지 | [4] |
<colbgcolor=#ff8c00> BBS에서 제작한 보문사와 보문종 다큐멘터리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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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불교 종단 중 하나로, 대한민국의 29개 종단 가운데 유일하게 비구니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부처의 출세본회(出世本懷)를 봉체(奉體)하고 그 화신인 관세음보살의 구세원력을 성취하기 위한 전미개오(轉迷開悟)의 자리수행과 구세도생(救世度生)의 이타실천을 종지로 한다. 소의경전은 『묘법연화경』. 총본산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동에 위치한 보문사이다.2. 상세
불교 최초의 여성 출가자인 마하파자파티(大愛道. 석가모니의 이모이자 양모)를 종조로, 신라 시대의 비구니였다는 법류(法流)를 중흥조로 받들지만 실제 개조(開祖)는 일제강점기에 보문사를 중창한 비구니 긍탄(亘坦: 1885~1980)과 그 제자 보암당 은영(恩榮: 1910~1981)이다.은영은 해방 직후인 1945년부터 보문사에 주석했다. 1962년 3월 25일에 대한불교조계종 중심 통합종단이 공식 출범하면서 통합종단을 놓고 비구 측과 대처승 측의 대립이 격화되어 불교계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긍탄이나 은영은 비구 혹은 대처승 어느 쪽에도 가담하기를 거부하고 여승의 중립적 권리와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 1971년 재단법인 대한불교보문원을 설립하고 '비구니와 여성의 권익과 위상을 높여 사회발전에 공여한다'는 목적으로 1972년 3월 비구니들만으로 구성된 종단을 세웠다.
은영은 1971년에 오갈 데 없는 여신도들을 위하여 시자원(施慈院)이라는 양로원을 만들었는데, 여기서 순정효황후와 황후를 모셨던 마지막 궁녀들이 여생을 보냈다.# 다만 만년은 좋지 못했다. 사세 확장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사찰 경내에 이런저런 건물, 그 중에서도 특히 경주 석굴암을 본뜬 소형 석굴암을 사찰 안에 짓느라 당시 조흥은행은 물론 신도나 일반인들로부터 10억 원이나 되는 빚을 졌다. 빚 독촉을 감당하지 못하여 은영과 종무 계월, 행자 공순 등 세 비구니가 음독자살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5] 이후 3차례에 걸쳐 변제하여 빚은 어찌어찌 갚았다는 모양.
현재 보문종 종단 소속 사찰은 40여 곳, 소속 비구니는 약 200여 명이다. 미국과 일본 등 해외에도 국제포교를 위해 사찰 6곳을 운영한다. 월간 《보문》을 발행한다.
3. 기타
4. 보문사
자세한 내용은 보문사 문서 참고하십시오.[1] 宗祖. 종단을 처음으로 일으킨 스님.[2] 所依經典. 종단의 근본이 되는 경전.[3] 총본산 보문사[4] 보문사 홈페이지이다. 이곳으로 연결되는 이유는 보문사 문서 참고.[5] 출처: 《경향신문》 1981년 10월 9일.[6] 다른 모든 한국 종단은 비구 & 비구니가 모두 존재해서 군 입대를 하는 비구 승려들이 군종병으로 선발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