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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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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김지애
金芝愛
파일:가수김지애.jpg
<colbgcolor=#283593><colcolor=#fff> 본명 동길영
출생 1962년 3월 10일 ([age(1962-03-10)]세)
서울특별시
학력 덕성여자고등학교 (졸업)
가족 슬하 1녀
종교 천주교
데뷔 1983년 <목포의 부르스>

1. 개요2. 가수 데뷔 전3. 가수 활동4. 대표곡5. 가요 프로그램 1위6. 수상 기록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트로트 가수이다.

2. 가수 데뷔 전

1962년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덕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출연했던 KBS 어린이 노래자랑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어머니의 은혜를 불러 대상을 거머쥐었다. 이때부터 남다른 노래 실력을 뽐냈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미국에서 위문공연을 다녔다.

3. 가수 활동

1983년에 다시 고국으로 귀국한 후, 당시 많은 히트곡을 만들었던 작곡가인 박춘석과 만나면서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백일희의 노래를 리메이크해 <목포의 부르스>라는 노래를 발표했으나, 그다지 흥행하지는 못했다.

1986년에 금나영 작사, 박춘석 작곡인 <물레야>가 히트를 했다. 이 곡은 가요무대 애창곡 100위권 안에 들만큼, 아주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전통 가요(트로트)라는 장르에서 머물렀고, 당시 트로트로 정상을 누리던 인물은 주현미였다.
그러므로 사실상 <얄미운 사람>을 만나기 전의 김지애는 중견 트로트 가수 정도였다.

그러다가 1989년에 전영록이 작곡한 <얄미운 사람>은 당시 군인사회를 풍자해[1] 많은 이로부터 공감을 받으며 대히트를 하며 대형 트로트 가수로 부상했다. 이 노래는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를 차지해 골든컵을 수상했다. 이후 수능 강사 정승제의 커버를 통해 적잖은 젊은 사람들도 이 곡에 익숙해졌다. <얄미운 사람>은 처음에는 주현미에게 주려고 했으나, 사정으로 인해 김지애가 불렀다.

1990년엔 이용이 작곡한 <몰래한 사랑>이 연이어 대박을 치며 흥행을 이어 나간다. 2014년에 이용이 어느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이 곡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려 주었다. 원래는 이용 본인이 컴백할 때 부를려고 만든 곡으로 녹음까지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동시에 음반사와 김지애가 자의적으로 이 곡을 녹음한 후 이용 대신 음반을 내놓게 되었다. 자신이 곡을 발표하지 못해 여전히 아쉽다는 얘기를 2014년에도 했을 정도로 이용에겐 꽤나 한이 맺힌 사건이었다. 다만 김지애가 가요톱텐에서 이 곡으로 1등을 한 후 이용에게 감사하다는 소감을 전하자 어느 정도 응어리가 풀렸다고 한다.[2]

사실 짧고 굵은 최전성기를 보냈다고 할수 있는데, 자신을 인기 가수로 만들어준 80년대 최고의 인기 가수 전영록도 골든컵은 한개뿐이고, 2개를 받은 이들도 정수라, 김범룡, 구창모, 윤수일 등 굉장한 가수들이다. 즉, 골든컵을 2개 받았다는것 자체가 1989~1991년이 김지애에게 있어 최고의 전성기였다는걸 증명한다.[3]

하여튼 이 두 곡의 연이은 히트로 1990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10대 가수로 선정되기까지 하는 인기를 얻었다.

1991년 내놓은 <미스터 유>, <남남북녀>로 각각 1991년, 1992년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을 수상하며 전성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남편 권오규와의 이혼, 추락 사고 등 온갖 여러 사건이 일어나면서 잠시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현재는 간간히 가수 활동을 한다. 딸도 하나 있는데 이름은 권누리였다.[4]
김지애 가요무대 스페셜

4. 대표곡

물레야 (1986) (1987년 12월 19일, KBS 쇼특급)[5]
얄미운 사람 (1989) (1990년 12월 30일, KBS 가요톱10 1990년 연말 결산)[6]
몰래한 사랑 (1990) (1990년 12월 29일, 1990년 KBS 가요대상)[7]
미스터 유 (1991) (1991년 12월 30일, 1991년 KBS 가요대상)
남남북녀 (1991) (1992년 8월 22일, KBS 토요대행진)

5. 가요 프로그램 1위

총 15회 1위
<rowcolor=#fff> 날짜 방송명 곡명 비고
1989년
12월 24일 KBS 가요톱텐 얄미운 사람
(1회)
1990년
1월 7일 KBS 가요톱텐 얄미운 사람
(9회)[8]
1월 14일 2주 연속
1월 17일 MBC 쇼 네트워크
1월 21일 KBS 가요톱텐
1월 24일 MBC 쇼 네트워크
1월 28일 KBS 가요톱텐 5주 연속
(골든컵)
1월 31일 MBC 쇼 네트워크
2월 7일
2월 14일 5주 연속
1991년
1월 13일 KBS 가요톱텐 몰래한 사랑
(5회)
1월 20일
1월 27일
2월 3일
2월 10일 5주 연속
(골든컵)

6. 수상 기록


[1] 링크에 걸린 노래의 원곡을 베이스로 만들었다. 잘 들어보면 김일병송과 얄미운 사랑의 첫 소절이 거의 똑같다.[2] 출처: 노사연·이성미쇼 2014년 10월 31일 방송[3] 비슷한 케이스로 김국환이 있는데, 이 쪽은 1991년 타타타의 대히트로 골든컵을 차지하며 깜짝 스타가 되었다. 그나마도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주구장창 틀어줘서 유명해진 거지, 그마저 없었으면 김국환은 만화영화 주제가만 부르다 끝난 가수로만 알려졌을 것이다. 어쨌거나 김국환도 그 노래 하나로 대히트를 쳤고, 이후 “우리도 접시를 깨뜨리자”, “아빠와 함께 뚜비뚜바”를 히트시키며 짧지만 굵은 전성기를 보냈다.[4] 그런데 이혼을 했으므로 성이 동씨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5] 이 곡으로 1986년 KBS 가요대상 여자 신인상 후보에 올랐다.[6] 1990년에 가요톱10에서 첫 골든컵을 수상한 출세작, 전영록의 작품이다.[7] 1991년에 가요톱10에서 두번째 골든컵을 수상했다. 이용의 작품.[8] 1989년부터 총 10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