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혁
신라 성덕왕 16년(717년)에 당나라 조정에 들어갔던 왕자 김수충(金守忠)이 귀국하여 바친 공자(孔子)·10철·72제자의 화상을 국학에 안치시켰다.고려 현종 4년(1013년)에 최치원(崔致遠)을, 고려 현종 13년(1022년)에 설총(薛聰)을 추봉해 종사(從祀)하였으며, 그후 충숙왕 6년(1319년)에 안향(安珦. 安裕)을 종사(從祀) 하였다.
조선시대는 동방 18현(東方 十八賢)을 공자(孔子)의 72제자, 한(漢)·당(唐)·송(宋)·원대(元代)의 현인(賢人)등 총 112명의 위패 중 일부로 동서재(東西齋)에 종향(從享)하였다.
광복 후 1949년 전국 유림 대회를 열어 공자(公子)를 비롯한 4대 성인(안자·증자·자사·맹자)과 송조 2현(정호·주희) 및 동방 18현(東方 十八賢)을 대성전(大成殿)으로 승봉(承奉)하고, 공문 10철(孔門十哲)과 동·서 양무에 중국 유현 94인의 위패를 매안키로 결의하고 전국 향교에도 시행하도록 하였으나, 이 개혁안에 대해 보수 유림들의 반발로 일제히 시행되지 못하였다.
그 후 1961년 2월 23일 전국 유림대회를 다시 개최하여 매안한 공문 10철(孔門十哲)[1] 및 송조 6현[2]의 신위를 복위키로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현재 성균관 대성전에는 공자(公子)를 비롯한 4대 성인(四大 聖人)과 공문 10철(孔門十哲) 및 송조 6현(宋朝 六賢)과 그리고 우리나라 동방 18현(東方 十八賢)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2. 의의와 평가
옛말에 "정승(政丞) 10명이 죽은 대제학(大提學) 1명에 미치지 못이고, 대제학(大提學) 10명이 문묘 배향(文廟 配享) 현인(賢人) 1명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이와 같이 문묘 배향(文廟 配享) 현인(賢人)은 한국 유학사 및 학문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며, 유학자로서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이다. 따라서 정공신(正功臣)이나 종묘 배향(宗廟 配享) 공신들 보다 더 높은 명예를 누리며, 만인(萬人)의 칭송을 받는 가장 존귀(尊貴)한 위치에 있다. 그리하여 문묘(文廟) 배향 인물을 배출한 각 가문(家門)에서는 대대손손(代代孫孫) 더 없는 영예(榮譽)로 알았다.3. 현인(賢人) 목록
동방 18현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홍유후 (弘儒侯) 설총
* 문창후 (文昌侯) 최치원
* 문성공 (文成公) 안유
* 문충공 (文忠公) 정몽주
* 문경공 (文敬公) 김굉필
* 문헌공 (文憲公) 정여창
* 문정공 (文正公) 조광조
* 문원공 (文元公) 이언적
* 문순공 (文純公) 이황
* 문정공 (文正公) 김인후
* 문성공 (文成公) 이이
* 문간공 (文簡公) 성혼
* 문원공 (文元公) 김장생
* 문열공 (文烈公) 조헌
* 문경공 (文敬公) 김집
* 문정공 (文正公) 송시열
* 문정공 (文正公) 송준길
* 문순공 (文純公) 박세채
4. 각주
울산 김씨김인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