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태관 | |
▲ 통일뉴스 출처[1]의 사진 | |
국적 | [[북한| ]][[틀:국기| ]][[틀:국기| ]] |
거주지 | 평양시 중구역 경루동 |
직업 | 기자 |
직책 | 로동신문 논설위원 |
정당 | |
상훈 | 김일성상,(2001),[2] 김정일훈장,(2015),[3] |
1. 개요
우리 령도자의 위인세계를 알게 되면 누구든 매혹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필력이 부족하여 그 심오한 세계를 다 그리지 못하고 있다. 안타까움으로 몸부림치던 일이 여러 번 있다.
북한의 언론 로동신문의 논설위원으로, 정론[4] 분야의 기사를 주로 작성한다.
90년대부터 활동해 온 베테랑 언론인이며, 로동신문의 기자 중에서도 김정은을 찬양하는 정론을 가장 열성적으로 작성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
남한에서는 인지도가 거의 없지만, 북한에서는 리춘히와 동급의 입지를 가진 언론인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북한 당국은 동태관에게 김정일훈장을 수여할 때 동태관을 "1990년대부터 시대정신이 맥박 치는 정론들을 수많이 발표하여 일심단결 된 조선의 위력을 온 세상에 과시하고 천만군민을 당정책 관철에로 힘 있게 불러일으키는데 특출하게 공헌한 인물"로 평가했다.
출생 시기는 불명이지만 늦어도 1995년부터 논설을 쓰기 시작한 것과 경루동 입주 직후인 2022년 공개된 가족사진에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손녀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60년대 중반 이전에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2. 특징
그가 쓰는 정론은 극적이고 과장된 문체가 인상적이며, 특히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등 정세가 급박할 때 쓰는 정론은 북한 기준으로도 매우 극단적인 주장들이 특유의 문체와 어우러져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낸다.[5] 1999년 8월 발표한 정론 《심장에 불을 달라 혁명군가여! - 조선인민군 공훈합창단의 노래를 들으며》는 북한 주민들에게 선군정치와 더불어 음악정치로 승리를 안아오시는 김정일의 '위인상'을 북한 주민들에게 성공적으로 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6] 2016년 9월 26일 쓴 정론 <조선의 승리는 과학이다>를 읽은 북한 사람들은 (북한 방송에 따르면) '온 몸에 힘이 펄펄 솟구치고 우리나라가 망하기만 바라는 미국의 망상을 여지없이 짓뭉개버릴 의지로 심장이 부글부글 끓는다'는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고 한다. #[7] 북한 측 입장을 대변하는 조선신보에서도 그의 정론의 특징을 '책상머리에 앉아서는 나올수가 없는 형상적 표현들'로 꼽기도 했다. 로동신문 문서에 그가 쓴 정론들이 10개나 언급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그의 정론이 어떠한가를 제대로 엿볼 수 있다.이처럼 김정은의 대변인 수준으로 김정은 입맛에 맞는 기사들을 너무 잘 쓴 덕에 김일성상과 김정일훈장을 모두 수여받았는데, 이는 그 리춘히도 받지 못한 대기록이다. 2022년 경루동 준공식 때에도 리춘히, 최성원과 함께 '나라의 부강발전에 이바지한 공로자들'로 간주되어 경루동의 호화 주택가를 하사받았다. 기사(뉴스1)
김정일이 신년사를 공동사설로 대체했을 시절에[8] 공동사설은 김정일의 지시사항들을 놓고 로동신문 정론부서에서 작성했는데 이를 주도한 사람이 동태관이라고 한다. #
3. 기타
2015년 11월 10일 조선신보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이를 통해 그의 언론관을 엿볼 수 있다. 정론이 북한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서는 "조선이 사상강국이고 인민들이 언제나 사상적 양식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으며, 자신이 정론을 더 빨리, 더 많이 쓰지 못하고 있는 것에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정론을 쓰는 방법은 이렇다고 밝혔다.다른 방법은 없다. 인민들 속에 깊이 들어갈수록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오랜 세월 혁명을 하면서 고생도 많이 겪었던 우리 인민들의 말에는 꾸밈이 없다. 평범한 로동자, 농민들과 밤을 새워가며 마음속이야기를 다 나누고나면 새로운 발견과 감동이 있다.
김정은을 '수령'으로 호칭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정확히는 2021년 5월 14일 정론 <인민의 심부름군당>에서 김정은을 인민의 수령으로 언급했다. # 이후에도 타 로동신문 기자들과는 다르게 김정은을 늘 수령으로 호칭하고 있다.
2024년 2월 12일 정론 <이제 10년이면!>에서 지방발전 20×10 정책을 찬양하며 '김정은정치'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썼다. #
2010년 김정일이 인민들 강냉이밥 먹는 게 가슴아프다고 한 말을 언급한 것과 2019년 물과 공기로만으로 살 수 있다는 강의한 정신은 수령만이 줄 수 있다는 내용으로 한국인들에게 유명해진 로동신문 기사를 쓴 사람이다.
[1] 원 출처는 조선신보이다.[2] 2001년 12월 1일 수여받았다. #[3] 2015년 10월 7일 당창건 70주년 기념 정론 《위대한 우리 인민 - 조선로동당창건 70돐에 삼가 이 글을 드린다》을 쓴 직후인 2015년 10월 8일 수여받았다. #[4] 정론(政論)은 정치논평의 약칭이다. ‘조선말대사전’에서는 정론에 대해 “예리한 정치적 일반화나 형상적 표현 그리고 주정토로로서 사회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의 본질을 밝혀내고 그에 대한 필자의 견해와 입장을 강렬하게 표명하는 기사”라고 설명한다. 선동적인 표현과 호소, 문학작품에서 많이 사용하는 형상적 표현기법도 과감히 사용하여 주로 북 주민들의 마음을 격동시켜 신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초점을 맞춘 기사이며, 문학작품과 달리 표현만 그럴 뿐 조금의 허구나 상상도 허용되지 않고 '객관적 사실들'로만 작성된다고 한다. (출처 1) (출처 2)[5] 여러모로 남한의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의 리버스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6] 북한측 주장에 따르면 독자들은 이 글을 보풀이 일도록 읽고 또 읽었고, '한알의 낟알도 귀하던' 고난의 행군 시기 이 정론은 몇천만t의 식량을 대신하여 군인들과 인민들에게 귀중한 사상정신적힘을 안겨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7] 이 기사의 작성자는 자주민보(현 자주시보) 기자 이창기이다. 이창기는 이에 대해 "그저 방송사에서 마이크를 대니 잘 보이려고 귀맛좋게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눈에서 불이 펄펄 이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정론이 준 자극이 매우 컸던 것 같았다."고 평했으며, 김정일 시절 동태관 정론에 대해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도 함께 수행하며 취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들 정도로 북 지도자의 표정까지 생동하게 묘사한 적이 적지 않았다."고 그 생동감을 묘사했다.[8] 사실 이는 김정일이 눌변이라 공개연설을 싫어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