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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2-08 09:15:29

라쇼

<colcolor=#ffffff> 라쇼
လားရှိုး
ဝဵင်းလႃႈသဵဝ်ႈ
Lashio
<colbgcolor=#34B233> 국가 파일:미얀마 국기.svg 미얀마
샨주
시간대 UTC+06:30
인구 131,000명[1]

1. 개요2. 역사

1. 개요

미얀마 중부에 위치한 샨주의 중심 도시. 해발고도 836m에 있다.

라쇼 현과 라쇼 군의 행정 중심지이며. 2010년 4월 이전에는 샨주의 행정 중심지이기도 했다. 인구는 1960년 약 5,000명에서 1983년 88,590명으로 증가했으며, 2009년에는 약 131,000명으로 추산된다. 2024년 8월 초 반군 세력에 의해 점령되었다가, 미얀마 전역에 큰 피해를 준 대지진 이후인 2025년 4월 국가행정위원회(State Administration Council)에 의해 다시 탈환되었다.

주민은 주로 샨족, 중국인, 그리고 버마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2. 역사

라쇼의 영국 식민 지배는 1887년에 시작되었으며, 만달레이에서 출발한 미얀마 철도 노선은 1903년에 라쇼에 도달하였다.

영국 지배 이전에도 라쇼는 북부 샨주들의 통치 중심지였으나, 계곡 내에 설치된 버마인의 주둔지는 남야오(Nam Yao) 인근의 구(舊) 중국식 요새 진영에 위치해 있었다. 라쇼 계곡은 과거 인구가 매우 밀집된 지역이었으나, 영국 점령 약 10년 전 센니 주(သဵၼ်ႈဝီ, Hsenwi)의 소바(ၸဝ်ႈၽႃႉ[샨어], စော်ဘွား[미얀마어], sawbwa)[4] 가 일으킨 반란으로 인해 크게 황폐화되었다.

1900년 당시 라쇼는 법원과 민정 관리 관사가 위치한 유럽인 거주지, 라쇼 군사경찰 대대 본부가 있는 군사경찰 주둔지, 그리고 샨족·버마족·힌두교도·무슬림 등 여러 민족이 구역별로 분리되어 거주하던 토착민 거주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토착민 거주지에는 북부 샨주의 다섯 소바를 위한 임시 거처와 정부 공무원을 위한 예비 부지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바자르또한 형성되어 있었다.

라쇼는 중일전쟁 및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버마 로드(Burma Road)의 미얀마 측 종점으로서 전략적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 4월 29일 일본군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1945년 3월 7일 연합군에 의해 해방되었다.

미얀마 내전 중 실시된 1027 작전 기간 동안 라쇼는 타앙민족해방군과 기타 반군 세력에 의해 포위되었으며, 이들은 라쇼 주변의 여러 도시를 점령하였다. 다만 초기에는 라쇼 시내에서 즉각적인 교전은 발생하지 않았다. 다른 지역에서의 전투를 피해 다수의 피란민이 안전을 찾아 라쇼로 유입되었다.

해당 작전을 종료시킨 휴전이 붕괴된 이후, 미얀마 민족민주연합군과 그 동맹 세력은 라쇼를 점령하기 위한 재공세를 개시하였고, 이는 라쇼 전투로 이어졌다. 이 전투에서 반군 세력이 승리를 거두었다.

2025년 1월 20일, MNDAA와 군부는 중국의 중재로 휴전에 합의하였다. 여러 소식통에 따르면, 해당 합의의 조건 중 하나로 MNDAA의 라쇼 철수가 포함되었다고 전해졌으나, 군부와 MNDAA 양측 모두 합의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후 2025년 4월 18일, MNDAA가 철수함에 따라 국가행정위원회(SAC)가 임명한 관리들, 미얀마 경찰청 소속 경찰관, 그리고 기타 공무원들이 라쇼 시내에 도착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에 의해 4월 21일까지 SAC 행정 체제가 라쇼에서 재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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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9년 기준[샨어] [미얀마어] [4] 샨어로 하늘의 주인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