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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
러시아인이 속한 슬라브족은 게르만족이 훈족의 압박을 받아 서부로 이동한 틈을 타서 동유럽으로 들어왔다. 동유럽은 곧 슬라브족의 천하가 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조상이 되는 동슬라브족들은 대체로 현재 위치에 자리잡게 되었다. 슬라브족은 게르만족과 다름없는 유목민족이었고, 고대부터 게르만족과 전쟁이 잦았다. 그런데 스스로를 루시[1]라고 부르는 바이킹 북게르만족의 일파인 노르만족은 슬라브 지역에도 자주 출몰하였고, 이들이 동슬라브족을 지배하면서 동슬라브족의 첫번째 국가인 키예프 공국이 세워진다.[2] 키예프 공국은 대공 블라디미르가 바실리오스 2세의 누이와 결혼한 것을 계기로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동방정교회를 받아들여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2. 중세
13세기에는 서쪽으로 쳐들어온 몽골에게 대패하여 키예프 공국은 무너지고, 러시아인들은 킵차크 한국의 지배를 받았으나, 러시아는 이에 흡수되지 않고 반독립상태를 유지하였다. 오히려 알렉산드르 네프스키는 킵차크 한국에 복속하는 척 하면서, 군사적 원조를 얻어냈고, 가톨릭을 퍼트리려고 침입한 독일의 튜튼기사단을 네바강의 호수에서 패주시켰다. 이 전투에서 일반 보병들이 중무장한 기사들을 패배시켰는데, 서유럽의 보병들은 한참 후에야 중무장 기병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다.[3]이후 기술적으로 앞섰던 몽골군에게 군제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점점 힘을 길러서 도리어 몽골 제국이 붕괴한 이후에는 러시아인들이 유럽쪽의 몽골족을 흡수하게 되었다. 러시아 귀족 중의 15%는 이런 몽골 세력에서 유래한다고. 심지어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할머니도 몽골 계통인 칼미크족 출신이다. 어쨌든 몽골이 쳐들어온 경로로 초원의 존재를 알게 된 러시아인들은 16세기부터 급격히 팽창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계속 시베리아의 유목민들을 복속하고 영토를 넓히면서 동진하여, 1640년에는 태평양 연안까지 도달,[4] 현재의 거대한 영토를 이루게 되었다. 극동 방면으로의 영토 확장 과정에서 조선 효종대에 청나라의 요청으로 원군을 파병한 조선군과도 두 차례 군사적으로 충돌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나선정벌이다.
3. 근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골의 지배를 막 벗어난 러시아는 매우 후진적인 사회였다. 특히 서유럽과 교류가 단절되어 발달하는 서구의 군대와 달리 러시아는 언제까지고 중세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사정을 급진적인 서구화로 뒤바꿔버린 인물이 다름 아닌 표트르 대제(1672-1725)다. 표트르 대제는 수많은 개혁 중에서도 특히 군사개혁을 신경 써서 단행하였다. 심지어 이전에는 별 관심조차 없었던 강력한 해군까지 영국의 도움으로 만들어냈다. 영국은 러시아 해군의 성장속도가 무시무시하자 러시아를 잠재적 적국으로 여기고 군사교류를 중단했다고.표트르 대제는 스웨덴과 10여년에 걸친 북방전쟁을 벌여 승리했고[5] 그 결과 러시아 제국은 이제 발트해를 지배하게 되었다. 스웨덴을 격파한 러시아는 어느새 서유럽도 무시하지 못할 강국으로 변해 있었다. 서유럽의 국제정세에 개입하는 것도 가능해진 러시아는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와 협력하여 폴란드를 멸망시키기도 했다.
이때 알렉산드르 수보로프(1729-1800)라는 먼치킨급 명장이 튀어나와서 강대국으로 평가받던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야금야금 집어삼켰다. 무엇보다 수보로프는 생애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고 유럽 원정조차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고 러시아로 귀환하는 대전과를 올렸다.
4. 나폴레옹 전쟁과 19세기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에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저지하기 위해 유럽에 병력을 자주 파견하였는데,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은 러시아군이 당해낼 수 없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60만 대군으로 러시아 원정을 했다가 러시아군에 대패했고, 자신의 몰락을 자초하였다.이후 러시아군은 약체화된 오스만 제국과 계속 전쟁을 하며 남하했고, 크림 반도까지 먹으려 했으나, 더 이상 러시아의 팽창을 묵과하지 않는 서유럽 연합국(영국, 프랑스, 사르데냐)은 오스만 편을 들어 참전했다. 러시아군은 이들에게 떡실신당하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오스만과 전쟁을 벌여 승리했다.
5. 20세기
1904년 조선을 둘러싸고 일본군과 대결하였다. 러시아는 당시 일본보다 국력이 우세했고, 병력도 더 많았으나, 아무래도 유럽이 아니라 일본에 훨씬 가까운 만주가 주전장이다 보니 일본군에게 고전했다. 만주에서 벌어진 몇번의 대규모 회전에서 러시아군은 일본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였다. 이렇게 결판이 안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발트 함대가 지구를 반바퀴 돌아오다가 대한해협에서 일본군의 매복에 거의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는 굴욕을 당한다. 그걸로 일본에 KO패하고 조선과 만주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러시아군은 발칸 반도의 슬라브 소국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참전했다. 러시아군은 삼국동맹의 일원이던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떡실신시켰으나, 독일 제국을 침략해 들어갔다가 프로이센의 독일군에게 대패하고, 오히려 수세가 된다. 차르 니콜라이 2세가 이를 타개한답시고 자기가 총사령관이 되어 전선으로 나갔는데, 군사적 문외한인 이 사람이 전선을 지도하니 더욱 더 상황은 악화되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혁명이 일어나 제정이 폐지되고 공화국이 들어섰으나, 이 공화국 수장을 맡은 케렌스키는 당장 휴전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요청을 뿌리치고, "그동안의 희생을 무의미하게 하지 않기 위해" 전쟁을 계속한다고 했다. 문제는 러시아는 더 이상 전쟁을 할만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점. 러시아군은 계속 패하며 부대 전체가 탈영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며 순식간에 해체되었다. 이때 블라디미르 레닌의 볼셰비키당은 쿠데타를 벌여 정권을 잡았고, 동맹국과 단독강화를 맺었다. 이로서 러시아군은 모두 해체.
그러나 많은 러시아 제국군의 장교들이 자발적으로나 위협으로 공산정부의 붉은 군대에 들어가 지휘관이 되었고, 소련군은 러시아 제국군의 인적-물적 유산을 계승하며 발전했기 때문에 제정 러시아군-소련군-러시아 연방군은 사실상 후계-계승 관계로 볼 수 있다.
[1] 이 말이 "러시아"의 어원이 된다.[2] 후에 이 바이킹의 후예들은 모두 슬라브족에게 동화되었는데, 나치의 언플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이를 슬라브인이 게르만인의 지배를 받아야한다는 근거로 써먹었다. 그래서 소련시절에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하며, 현재도 러시아는 바이킹 설을 부정하는 분위기이다.[3] 이는 나치 독일의 위협이 가중되던 1930년대에 세계적 감독인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이 영화화하였고, 소련은 이를 이용하여 안보의식을 고취시켰다.[4] 아시아를 넘어 베링해협도 넘어서 아메리카 대륙에 속한 알래스카까지 손에 넣었으나 당시로서는 그다지 이득이 없어서 헐값에 미국에 팔아넘겼다. 물론 지금은 그것을 천추의 한으로 여기고 있지만(...).[5] 그러나 아직까찐 러시아의 힘이 약해서 오스만 제국에 털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