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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론파 기독교 |
국기.
1. 개요
근대 시기 레바논 일대에 있었던 오스만 제국의 제후국. 1516년부터 1840년까지 존재했으며, 1697년을 기점으로 마안 가문과 (마안 가문과 인척을 맺은) 쉬하브 가문으로 나뉜다. 전자는 드루즈교를, 후자는 수니파 이슬람과 마론파 기독교를 신봉하였다. 주요 군주로 파크르 앗 딘 2세와 바쉬르 2세가 있다. 종종 명목상 주군인 오스만 술탄에게 반기를 들었으며, 파크렛딘 2세의 경우 유럽 세력과 독자적으로 교섭하며 완전 독립을 꾀하기도 하였다. 바쉬르 2세는 이집트의 메흐메드 알리와 동맹하여 자립했으나, 오스만-이집트 전쟁 후 오스만 당국에 의해 폐위된다.2. 상세
레바논 아미르국은 오스만 제국의 봉신국이었으며, 대대로 드루즈교 신자 가문에서 레바논의 아미르를 배출하였다. 그에 따라 드루즈교가 사실상 국교 수준의 지위에 있는 나라였다. 그러나 레바논은 전통적으로 마론파 기독교인이 대다수이다 보니 마론파를 믿는 평민들이 드루즈교를 믿는 상류층과 갈등하는 경우가 많았다.특히 1831 ~ 1840년간 메흐메드 알리의 아들이자 시리아 총독인 이브라힘 파샤가 마론파를 우대하자 양측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1840년, 시리아를 수복한 오스만 제국은 시하브 가문의 레바논 아미르국 체제를 인정했다. 하지만 1842년, 드루즈 인들의 대대적인 봉기로 바시르 시하브 3세가 축출되며 레바논 아미르국은 완전히 멸망한다.
이후 오스만 제국이 레바논을 직할령으로 다스리다가 1860년, 드루즈 인들이 재차 봉기하여 마론파를 학살하는 대혼란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자 프랑스 왕국과 메흐메드 알리가 개입했다. 그 결과, 1861년 레바논 주요부는 레바논 자치령(무타사리피야트)으로서 마론파 주도 하의 자치 지역이 되었다. 이로써 근대 레바논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일대는 반세기 가량 안정을 유지했다.
3. 기타
레바논 아미르국의 수도였던 데이르 카마르 전경
현대 레바논에서는 종교에 따라 레바논 아미르국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특히 초반 마안 가문 시기에 대해 드루즈교 신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전성기로, 마론파 신자들에게는 소수의 드루즈교 신자들에게 휘둘리다시피 한 굴욕적인 역사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레바논 아미르국 시기에는 드루즈교도, 기독교도, 무슬림 모두가 나름 존중을 받으며 레바논의 정체성이 형성된 시기로 평가된다. 따라서 레바논 역사 교육 과정에서 자세히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