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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발트 C형


제1차 세계 대전기의 러시아 제국군 기갑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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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루소-발트 장갑차.jpg
Руссо-Балт тип С[1]


1. 개요

1914년, 러시아에서 루소-발트의 섀시를 기반으로 개발한 장갑차.

2. 제원

Руссо-Балт тип С
루소-발트 C형
전장 4.5m
전폭 1.98m
전고 2.0m
중량 2.96t
장갑 3mm~5mm
무장 7.62mm PM M1910 3정
탑승 인원 5명
엔진 루소-발트 수랭식 가솔린 직렬 4기통(40마력)
속력 20km/h (도로), 10km/h (야지)
항속거리 100km(도로 기준)

3. 개발사

러시아 제국은 세계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장갑차를 공식적으로 도입한 국가 중 하나였다. 이미 1908년, 러시아 제국 육군은 프랑스의 샤롱, 지라르도 에 부아(Charron, Girardot et Voigt)사가 제작한 나카시제-샤롱형 장갑차 10대를 도입하였다. 이 차량은 1904년 러시아군 장교 M. A. 나카시제가 설계한 매우 진보적인 전투 차량으로, 군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차량을 끝으로 전쟁 전 러시아의 장갑차 개발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그 주된 이유 중 하나는 1906년 8월 25일(구력 12일), 당시 총리 표트르 스톨리핀의 별장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M. A. 나카시제가 사망한 사건이었다. 창시자의 추진력을 잃은 장갑차 사업은 사실상 보류 상태에 들어갔고, 추가 생산 주문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 러시아 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 개전 당시 사실상 장갑차 전력이 없는 상태로 전쟁에 돌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카시제-샤롱 장갑차의 경험은 군 수뇌부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고,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장갑차의 필요성이 다시 떠올랐다. 특히 동프로이센에서 독일군이 장갑차를 운용했다는 보고가 러시아 측에 큰 자극이 되었다.

실제로 북서전선 사령관 Y. G.질린스키 기병대장은 1914년 8월 19일자 명령 제35호에서 "독일군이 장갑차에 탑재된 기관총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명시하였다. 이에 따라 러시아군은 적 장갑차의 기동을 방해하기 위한 기병 공병 분견대를 편성하였다. 다만, 당시 독일군이 정확히 어떤 종류의 장갑차를 얼마나 사용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다른 자료에서도 유사한 언급이 확인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선의 부대들은 자체적으로 장갑차 제작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1914년 9월 중순, 제5자동차 중대장 I. N. 바자노프 참모대위는 정비병들과 함께 이탈리아 SPA 트럭 섀시를 이용해 제25보병사단을 위한 장갑차 1대를 전선에서 직접 제작하였다.

그러나 러시아 장갑차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1914년 8월 17일, 러시아 제국의 군무대신 V. A. 수호믈리노프 장군이 근위 예거 연대 소속 A. N. 도브르잔스키 대령에게 '장갑 기관총 자동차 포대'를 편성할 것을 제안하면서 이루어졌다. 이는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의 요구에 따른 조치였다.

이틀 뒤인 8월 19일, 군무대신의 결의에 따라 장갑차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제1기관총 자동차 중대의 창설이 시작되었다. 도브르잔스키가 이 임무를 맡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그는 이미 1년 전 7.62mm 모신-나강 소총용 철갑탄 개발에 참여한 바 있었으며, 전쟁 발발 이후 장갑차 도입을 적극적으로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1914년 9월 초, 도브르잔스키는 40마력 엔진을 장착한 루소-발트 C24/40 섀시(아마도 XIII-bis 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장갑차의 개략 설계를 완성했다. 상세 설계도는 해군 기술장교단 소속 기계공학자 A. Y. 그라우엔 참모대위가 작성했다.

장갑판 제작과 무장 장착은 콜피노의 이조르스키 공장 제2장갑압연 작업장에서 이루어졌다. 러시아 최초의 국산 장갑차였기 때문에, 설계 과정에서는 장갑 재질 선정, 장갑판 결합 방식, 섀시 보강 방법 등 수많은 문제를 새로 해결해야 했다. 작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포탑 설계는 포기하고, 7.62mm 맥심 기관총 3정을 차체에 고정 설치하는 방식을 채택했으며, 이 장치는 소콜로프 대령에게 개발이 맡겨졌다.

군부는 이를 위해 차대 번호 530, 532(?), 533, 534, 535, 538, 539, 542의 8개 섀시를 제공했다. 1914년 10월 초, 8대의 루소-발트 C형 장갑차 제작은 모두 완료되었다.

1914년 10월 12일, 루소-발트 C형 장갑차 8대, 만네스만-무라크 장갑차 1대, 그리고 벤츠 및 올다이스 비장갑 트럭(차량 적재식 포 장착)으로 구성된 제1자동차 기관총 중대는 차르스코예 셀로에 도착해 니콜라이 2세 황제의 사열을 받았다. 이후 10월 16일, 전송 기도식(고별 예배)을 마친 중대는 제2군 사령부의 작전 통제 하에 전선으로 이동하였다.

4. 실전

4.1. 제1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루소-발트 C형 8대가 제1 자동차 기관총 중대[2]에서 만네스만-무라크 장갑차 2대, 팩커드 장갑차 2대와 함께 운용되었다.
이 중대의 편제·조직 구조는 1914년 8월 19일, 전쟁부 장관 V. A. 수호믈리노프의 결의로 승인되었으며, 이후 소규모 변경이 몇 차례 이루어졌다.

1914년 10월 19일, 제1 자동차 기관총 중대는 페트로그라드 세묘노프 광장에서의 열병식을 마친 후 전선으로 출발하여 제2군 사령부의 작전 지휘를 받게 되었다.
중대의 실전 첫 경험은 1914년 11월 9~10일, 로지 전투에서 이루어졌다.

11월 10일, 참모대위 B. A. 슐케비치가 지휘한 기관총 장갑차 6대가 적이 점령한 스트리쿠프 시를 돌파하였고, 포 장갑차 2대는 제9·제12 투르키스탄 소총연대의 공격을 화력으로 지원하였다.
독일군은 양면 사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고 도시에서 축출되었다.
이 공로로 슐케비치는 성 스타니슬라프 3급 훈장(검과 리본 포함)을 수여받았다.

1914년 11월 20~21일 파비아니체 전투에서는 참모대위 P. V. 구르도프가 4대의 장갑차로 엄호 없이 전진하여 적 부대를 근거리에서 타격, 완전히 붕괴시켰다.
중상자 속출과 차량 손상에도 불구하고 모든 차량을 전장에서 철수시킨 공로로 그는 성 게오르기우스 4급 훈장을 받았으며, 부대 최초의 수훈자가 되었다.

이후 1915년 2월 11일, 최고사령부 명령 제7호로 '장갑차 전투 운용 지침'이 제정되었고, 장갑차의 공격·방어·추격 전술이 공식화되었다.

이후 1915년 3월, 포 장갑차 3대가 추가 도입되었고, 1916년 9월에는 제1 자동차 기관총 중대에서 제1 장갑차 대대로 개편, 1917년에는 핀란드에서 페트로그라드로 간 다음, 드빈스크로 이동했고, 1918년 봄에는 독일군 진입으로 드빈스크에 고립되었다.

4.2. 러시아 내전

내전 중, 루소-발트 C형의 행방은 불분명하나, 일부 차량은 적군에 의해 운용되었다. 엔진 번호 539번 차량은 백군과 적군 사이를 두 차례 오간 사례가 확인되었다.

5. 운용국

5.1. 러시아 제국

5.2. 백군

5.3. 적군


[1] 루소-발트 C형[2] 중대 본부와 장갑차 소대 4개, 지원 부대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