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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25:00

루이스 엔리케/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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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루이스 엔리케의 지도자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FC 바르셀로나 B 감독

2004년 은퇴 후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는 등 축구와는 거리를 두고 개인 생활을 보내다가 2007년 6월 바르셀로나 B팀의 감독으로 임명된다. 그러나 마침 지도자 수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지도자길을 택한 펩 과르디올라가 바르셀로나 B의 감독직을 원해 임명이 취소되었다.[1]

2008년 6월 바르셀로나 1군 감독으로 임명된 펩 과르디올라의 후임으로 원래 예정되어 있던 FC 바르셀로나 B의 감독을 맡게 된다. 2008-09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팀과의 연장 계약을 맺었다. 이후 2009-10 시즌 3부 리그에서 2위를 차지해 11년만에 팀의 2부 리그 승격을 이끌었으며, 2010-11 시즌에는 2부 리그에서도 3위를 차지하며 창단 이후 가장 높은 성적을 올렸다.[2]

3. AS 로마 감독

시즌 종료 이후 아직 구단과 2년 계약 기간이 남아있던 상황에서 구단과의 결별을 선언했으며, 그 해 6월 AS 로마로 팀을 옮기는 데 합의했다.[3] 계약 조건은 160만 유로의 연봉과 2년의 계약 기간이며, 자신을 보좌할 수석코치로 이반 데라페냐를 임명했다.[4] 그러나 시즌 초반 유로파 리그에서 예선 탈락을 하면서 안좋은 출발을 보인 루이스 엔리케는, AS 로마에 바르셀로나식 4-3-3을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성적이 부진하자 12시즌 종료 이후 자진 사임했다. 후임 감독으로는 즈데넥 제만이 취임했다. 로마에서의 실패는 당시 열병처럼 불었던 바르셀로나식 티키타카를 적용하는데 대한 실패였다.

4. RC 셀타 데 비고 감독

이후 한 시즌을 야인으로 보내다 13-14 시즌부터 전시즌 극적으로 라 리가 잔류에 성공한 셀타 비고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계약 기간은 2년으로 감독으로서는 라 리가 데뷔하며 바르셀로나 B 시절 호흡을 맞췄던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을 불러 모으며 명예 회복을 꾀하고 있는데 시즌 시작 직전 건강 문제로 사임한 티토 빌라노바 감독의 후임으로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갈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렇게 되면 루이스 엔리케를 믿고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을 데려온 셀타 비고로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 하지만 단지 루머였는지 바르셀로나 감독으론 타타 마르티노가 영입됐다.

그렇게 맡은 셀타 비고 감독 첫 시즌은 리그 9위를 기록. 그동안 강등권을 겨우 벗어나는 수준이었던 팀을 생각하면 괜찮은 성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5. FC 바르셀로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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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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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공백기 (2022~2023)

이후 디에고 시메오네의 뒤를 이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차기 감독으로 고려 중이라고 한다. 기존 계속해서 링크가 있어왔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고려하였으나, 이는 거절하였다고 한다. 또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도 고려 중이라고 한다.

런던에 도착해 그레이엄 포터 감독 후임을 찾는 첼시 FC의 감독직 후보 최상위로 언급되고 있으며 런던에 방문해서 PPT를 포함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공개 면접을 봤다고 한다. 실제로 다른 감독직 후보군인 율리안 나겔스만과 아이디어에서 큰 차이를 보여서 파브리지오 로마노에 의하면 이사회에서 이 아이디어를 비교 평가하고 결정을 내릴 시간이 필요했을 정도라고 한다. 다만 엔리케 본인도 여름에 부임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결국 첼시에서 램파드를 임시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시즌 중도 부임 가능성은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최종적으로 첼시는 엔리케를 후보에서 제외하게 되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엔리케의 요구 조건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었던 데다가 국가대표 감독 생활을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엔리케 사단의 코치들이 여러 클럽으로 흩어진 상태였고 이 코치들의 계약 문제로 인해 사가가 지나치게 복잡해질 수밖에 없어서 엔리케를 최종 후보에서 포기했다고 한다.

토트넘 홋스퍼 FC의 차기 감독으로도 언급되고 있다. 5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토트넘의 차기 감독 후보 1순위라고는 하지만 파리 생제르맹 FC도 엔리케를 원한다고 한다.

5월 들어 루치아노 스팔레티 감독 후임으로 SSC 나폴리가 노리고 있었으나 결국 접는 수순이며 여전히 엔리케는 토트넘이나 다른 PL 구단 진출을 더욱더 선호한다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6월 1일, PSG의 각 ITK들의 소식에 의하면 파리 생제르맹 FC의 부임이 유력하다고 하며 계약 기간은 2+1년이라고 알려졌다.

토트넘은 엔지 포스테코글루마르코 실바를 엔리케보다는 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고 한다. 이후 토트넘은 엔지 포스테코글루를 선임하였고 PSG도 나겔스만과 합의가 가까워졌으나 협상에서의 이견 차이로 인하여 결국 나겔스만이 PSG와의 협상이 최종 결렬되면서 토니 후안마르티의 언급에 따르면 엔리케와 티아고 모타 중 한 명이 PSG의 감독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PSG 관련 1티어급 기자인 로익 탄지가 PSG는 엔리케를 선임할 것이라는 보도를 했고 파브리지오 로마노도 PSG와 엔리케가 협상 중이라는 보도를 하면서 엔리케의 PSG행이 기정사실화됐다. 현재 PSG는 미켈 아르테타, 샤비 알론소 등의 옵션들도 검토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위에 언급된 감독은 모두 소속팀이 있기 때문에 부임이 어려워 보인다.

결국 6월 19일 르퀴프에 따르면 PSG 감독 부임이 사실상 확정되었다고 한다.

6월 30일 파브리지오 로마노HERE WE GO를 띄우며 PSG 부임이 거의 확정되었다. 2년 계약. 파리 보드진이 영입한 밀란 슈크리니아르, 마르코 아센시오, 뤼카 에르난데스, 이강인, 셰르 은두르, 마누엘 우가르테를 잘 사용해서 챔스 우승에 성공하는것이 관건이다.

8. 파리 생제르맹 FC 감독

파일:F0SOLuQXgAAu8O6.jpg

2023년 7월 5일, PSG 감독 부임 오피셜이 떴다. 계약 기간은 2025년까지.

8.1. 2023-24 시즌

8.1.1. 프리시즌

부임 전, 리오넬 메시가 인터 마이에미로 이적하였지만, 여러 선수들이 영입되었다. 밀란 슈크리니아르, 마르코 아센시오, 이강인, 마누엘 우가르테, 뤼카 에르난데스가 영입 되었고, 추가적으로 셰르 은두르가브리 베이가의 영입도 유럭한 상황이다. 이러한 영입들로 미드필더 진과 수비진을 재개편하여 이번 시즌 과연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성공 할 수 있을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프리시즌 경기에서는 전반적으로 엔리케의 단점들이 더 많이 드러나는 아쉬운 모습이 연이어 벌어졌고, 결국 4경기에서 단 1승[5]만 거두면서 걱정거리를 낳고 있다. 그래도 네이마르까지 나온 전북 현대 모터스전은 3:0 승리를 거뒀다.

이후 우스만 뎀벨레를 50m, 곤살루 하무스를 80m에 영입한다는 로마노의 보도가 떴다. 비록 음바페의 이적이 유력하긴 하지만 이 정도 금액을 쓰고도 챔스 우승에 실패한다면 파리 감독으로써의 위기에 놓일것으로 보인다.

8월 4일 파리가 루이스 캄포스와 엔리케 등 보드진을 자를것이라는 몇몇 보도가 있었으나 본인이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8월 8일 프리시즌까지의 모습을 보면 한쪽 측면은 직선적인 윙어를 배치하고 반대쪽은 풀백이 높게 올라오고 윙어는 안쪽으로 들어와서 하프 스페이스에서 플레이하는데 이 때 직선적인 윙어를 배치한 쪽의 풀백이 좁혀 들어오면서 변형 백3를 만든다. 문제는 가장 공격적인 풀백인 하키미는 오른쪽에서 뛰고 하프스페이스에서 플레이를 하는 롤에 가장 어울리는 네이마르는 왼쪽에서 뛰는데 이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였는데 결국 그냥 단순하게 하키미를 왼쪽에 배치했다. 좋게 말하면 굉장히 강한 전술적인 신념을 보여준 것이고 나쁘게 보면 굉장히 고집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것.

8월 9일 곤살루 하무스의 영입 오피셜이 떴다. FFP 때문에 1년 임대 이후 80m 필수 바이옵션을 통해 이적한다. 또한 아르나우 테나스사비 시몬스[6]를 영입하면서 미래를 대비했다.

8.1.2. 전반기

그리고 1R FC 로리앙와의 경기에서도 이러한 고집스러운 모습이 또 나타나며 의미없는 패스만 하다가 공격 찬스도 제대로 못 만드는 상황이 또 발생했고, 결국 그렇게 90분을 내내 허비하다가 홈에서 0:0 무승부를 거두는 졸전을 펼쳤다. 감독으로서 전성기였던 바르셀로나 시절에도 세부 전술에는 약점이 있다는 평가였는데 세부 전술의 중요도가 더 커진 현재에 와서는 그 단점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 전형적인 옛날 감독 테크를 타고 있는 걸로 보인다.

그 다음 경기인 2R 툴루즈 FC와의 경기에서도 졸전 끝에 1:1 무승부를 거두며 PSG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초반이긴 하지만 계속해서 이런 모습들을 보여주면 전임자들이었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크리스토프 갈티에보다도 더 평가가 안 좋아질 전망이다.

그나마 이후에 2연승을 거두면서 체면치레는 했으나 5R에서 심각한 졸전 끝에 OGC 니스에게 2:3으로 패배해 벌써부터 첫 패[7]를 쌓으면서 시즌 초반부터 좋지 않은 흐름을 또 이어가기 시작했고 이 경기 후에 팀의 경기력에 만족한다는 망언을 하면서 또 까이고 있다. 그나마 이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1차전에서 2:0으로 승리를 거뒀고, 비록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는 감독이 공석인 상태이긴 했지만 6R 르 클라시크 홈 경기에서는 최전방의 개인 기량을 살려주는 방향으로 조금이나마 전술의 골자를 수정해서 4:0으로 대승을 거두는 등 시즌 초반에 비하면 급한 불을 많이 끄긴 했다.

하지만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2차전 뉴캐슬 원정에서 4-2-4 포메이션으로 중원에 미드필더 성향의 자원을 겨우 2명만 놓는 중원 삭제 축구를 함과 동시에 압박에 취약한 수비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며 졸전 끝에 4:1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뉴캐슬을 대놓고 무시해 음바페와 뎀벨레 등의 개인 기량으로 털어먹을 것을 믿고 공격적인 전술을 들고 나왔다가 안일한 수비 전술로 얻어터지고 만 셈. 감독 본인은 비판 여론에 전술 문제라기보단 아직 시즌 초라 선수들의 호흡이 제대로 맞지 않는 것 같다며 꾸준히 반복하다보면 경기력이 올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그럴지 아닐지는 지켜볼 일.

리그앙 9라운드 RC 스트라스부르 알자스와의 경기에서 3:0으로 승리했다. 다만 아직은 여전히 팀 조직력보단 몇몇 선수들의 개인기로 득점하고 있다는 인상이 남아있다. 여담으로 이강인도 국대 일정 이후 오래간만에 팀에 복귀해 선발로 나와 풀타임을 소화했다.

트로페 데 샹피옹에서 이강인과 음바페의 골에 힘입어 툴레즈를 2:0으로 꺾고 파리에서의 첫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8.1.3. 후반기

23-24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와의 경기에서 1,2차전 1:0 으로 무득점 패배하면서 결승진출에 실패하였다. 느릿느릿한 빌드업에 계속 막히기만 하는 측면 돌파를 처음부터 끝까지 고수해서 PSG 팬들한테 비판여론이 더 커지고있다. 1차전에서 교체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2차전에서도 1차전과 동일한 실패한 전술을 고집하다가 의아한 타이밍에 교체카드를 활용하는 이해하기 힘든 전술이 패배 원흉으로 꼽힌다. 골대를 6번이나 맞췄기 때문에 운만 조금 따랐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르지만 애시당초 불운으로 커버가 될 모습이 아니었다.

리그앙 우승, 컵 대회 우승, 슈퍼컵 우승으로 3관왕을 달성하였다.

8.1.4.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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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2024-25 시즌

8.2.1. 프리시즌



[1] 과르디올라의 평전 승리의 길에서 나온 내용을 요약하자면 펩이 당시 4부 리그에 있던 바르셀로나 B의 감독을 원하자 클럽의 수뇌부는 펩을 바르사B 감독으로 임명하면 바르셀로나의 레전드를 4부 리그로 보냈다고 사람들이 욕을 할 것을 우려해 펩을 만류했으나 펩의 고집대로 결국 바르셀로나 B 감독으로 활동하게 된다.[2] 3위에 올랐기 때문에 본래대로라면 1부 리그로 승격되어야 하겠지만, A팀과 B팀은 같은 리그에 소속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승격하지 못했다.[3] 당초 AS 로마는 AC 키에보 베로나의 감독인 스테파노 피올리를 선임할 예정이었으나, 그가 US 팔레르모의 지휘봉을 잡자 루이스 엔리케로 목표를 바꾸었다.[4]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데 라 페냐가 이전에 AS 로마의 더비 라이벌 팀인 SS 라치오에서 2년 동안 선수로 활약한 경력이 있다는 점이다.[5] 일본투어에서는 1무 2패로 아예 1승도 거두지 못했다.[6] 영입 이후 RB 라이프치히로 임대 이적[7] 참고로 갈티에 체제였던 지난 시즌에는 17R RC 랑스전에서야 리그에서 첫 패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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