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골트브루너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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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 |
15대 |
이름 | 루트비히 골트브루너 (Ludwig Goldbrunner) |
생년월일 | 1908년 3월 5일 |
사망년월일 | 1981년 9월 26일 (향년 73세) |
국적 | 서독 |
출신지 | 독일 제국 뮌헨 |
포지션 | 풀백, 하프백 |
신체조건 | 175cm | 72kg |
소속팀 | FC 바이에른 뮌헨 (1927-1945) TSV 1860 뮌헨 (1945-1946) |
국가대표 | 39경기 (1933-1940) |
감독 | FC 바이에른 뮌헨 (1938-1943) TSV 1860 뮌헨 (1945-19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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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전 축구 감독.2. 생애[1]
2.1. 어린 시절
골트브루너는 9살부터 FC 바이에른 뮌헨의 유소년팀에 소속되어 있었다.2.2. 선수 생활
2.2.1. 클럽
1927년, 19살의 골트브루너는 꿈에 그리던 FC 바이에른 뮌헨의 성인팀에서 뛰게 되었다.골트브루너의 입단 당시에도 바이에른은 남부 독일에서 나름 인정받던 강팀이었지만 전국적인 명성을 얻지는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콘라트 하이트캄프, 지그문트 하링어 등 좋은 선수들이 영입되면서 바이에른은 독일 챔피언십 우승에 도전했고 1932년에 그 결실이 실현되었다. 결승에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 그들의 홈에서 각각 1승씩을 나눠가진 두 팀은 재경기까지 치른 끝에 바이에른이 2대0으로 승리해 우승컵을 품에 안게 되었다. 비록 이후 FC 샬케 04 등에 밀려 골트브루너와 함께하던 바이에른은 다시 독일 챔피언팀의 일원이 되지는 못했지만 현재 독일을 대표하는 강팀 바이에른의 첫 영광을 장식하는 순간이었다.
골트브루너는 1937년부터 1941년까지 주장, 1938년부터 1943년까지 선수 겸 감독을 맡았다. 1945년, 그는 바이에른 생활을 끝내고 1년간 TSV 1860 뮌헨의 선수 겸 감독으로 뛰었다.
2.2.2. 국가대표
1933년 11월 19일, 골트브루너는 에른스트 레너와 함께 스위스와의 취리히 원정 경기에서 독일 대표팀에 데뷔했고 독일은 2대0의 승리를 챙겼다.골트브루너는 1934년 5월에 있었던 월드컵 대비 독일 대표팀의 훈련 세션에도 참가해서 월드컵 출전의 가능성이 꽤 높게 점쳐졌지만 정작 참가는 불발되었다.
대신 골트브루너는 2년 후에 열린 올림픽에 참가했지만 독일은 노르웨이에 0대2로 패배했다. 하지만 독일의 올림픽에서 만난 실망스러운 결과는 11월 15일, 이탈리아를 상대로 무승부를 이끌어내며 어느 정도 씻어낼 수 있었다. 이 경기에서 골트브루너는 실비오 피올라를 잘 마크해냈다.
이후 독일은 1938년 5월에 있었던 잉글랜드전에서 3대6으로 대패한 것을 포함해도 골트브루너가 수비한 경기에서 8승 3무 1패를 기록해 1938년 월드컵의 호성적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정작 본선에서 독일은 스위스에게 발목을 잡히며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대굴욕을 당했다.
1940년 10월 20일의 불가리아전의 7대3 승리를 끝으로 골트브루너는 39경기의 대표팀 경력을 마무리했다.
2.3. 이후
TSV 1860 뮌헨 생활 이후 골트브루너는 축구 감독관 일을 하다가 뮌헨의 도축장 및 가축 사육장에서냉장 매장 관리자로 일했다.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헤더 능력이 매우 뛰어났던 수비수. 스피드에도 강점이 있었고 롱패스로 공격수들에게 어시스트도 가능했다.4. 뒷이야기
- 골트브루너는 레몽 브렌, 조지 캄셀, 이시드로 랑가라, 폴 니콜라, 페르난두 페이로테우, 실비오 피올라 등 현역 시절 당시 축구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많은 공격수들을 상대했다. 이 중 캄셀을 제외하면 아무도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5. 수상
5.1. 선수
5.1.1. 클럽
- 독일 챔피언십 우승 1회: 1932(FC 바이에른 뮌헨)
- 남부 독일 챔피언십 우승 1회: 1928(FC 바이에른 뮌헨)
- 베르치르크스리가 바이에른 우승 6회: 1927-28, 1928-29, 1929-30, 1930-31, 1931-32, 1932-33(FC 바이에른 뮌헨)
- 가우리가 남부 바이에른 우승 1회: 1943-44(FC 바이에른 뮌헨)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