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보프 공방전
1. 개요
사밧 성전의 진행 중인 41천년기 778년에 벌어진 전투. 행성 류보프(Lyubov)의 해방을 목표로 약 74일간 지속되었다.2. 전략적 배경
2.1. 778년까지의 정세
마카로스의 전임자 슬레이도는 발하우트(Balhaut)라는 하나의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비록 진행은 지지부진하기 짝이 없었고 많은 위기도 있었지만, 그는 어찌됐든 발하우트에서 아르콘 나지바르와 맞붙어 승리했고, 성전의 전환점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전임자가 그랬듯이, 슬레이도 사후 그의 성직을 승계한 마카로스도 하나의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카발 항성군(Cabal Systems)이었다.카발 항성군은 너무도 무리한 작전 목표라는 지적이 성전군 고위 지휘부 내에서도 빗발쳤지만 마카로스는 어떠한 타협도 거부하고 자신의 계획을 관철하고자 했다. 물론 성전군 지휘관들의 반대는 지극히 합리적이었다. 765년의 성전군에게 있어 카발 항성군은 너무나도 먼 곳이었다. 일단 카발 항성군은 발하우트와는 달리, 항성군(Systems)이라는 말 그대로 하나의 행성이나 성계가 아니었다. 여러 항성계들이 모인 일종의 군집이었기에 단시간에 공략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게다가 발하우트에 위치한 성전군이 카발 항성군에 말 그대로 '도달하기'만 하는 것조차 아직도 광활하기만 한 뉴파운드 트레일링(Newfound Trailing)을 모두 평정하고, 칸 성계(Khan Group)까지 함락시켜야 비로소 가능할 일이었다. 특히나 칸 성계는 지세가 매우 복잡하기도 했고 이곳에 위치한 행성들이 굳건하게 방비되어있음은 물론이었다.
게다가 성전군이 처한 상황도 별로 좋지는 않았다. 성전군은 발하우트를 함락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발하우트와 파비아 주변에 우글대고 있던 카오스 군세를 제대로 섬멸할 여유가 없었고, 발하우트 공방전의 후폭풍으로 인해 온갖 악전고투를 겪어가며 함락시켰던 여러 행성을 또다시 상실하고 말았다. 이후 무려 4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상실한 행성들을 재수복하기 위해 해방 전역을 치르는 동안에도 어이없는 시행착오들이 연이어 일어나 성전군을 괴롭혔다. 결국 어찌어찌 해방 전역을 끝낸 마카로스가 다음 목표를 향해 눈을 돌릴 수 있었던 시점이 바로 770년이었다. 물론 해방 전역이 완료되자 마카로스는 누가 어떠한 반대를 하든 간에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진격을 명령했다. 막상 성전군이 워마스터의 계획대로 카발 항성군으로 진격을 시작하자 그간 성전군 내부에서 빗발치던 수많은 반대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성전군은 눈부신 기동전을 선보이며 카발 항성군까지 순조롭게 진격했다. 그리고 무려 카오스 세력의 본거지라 예상되는 카르카돈(Carcadon) 성단의 문턱까지 도달하는 기염을 토한다. 적의 심장부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성전군 내외부를 막론하고 '이제 성전의 승리가 코앞에 다가왔다' 혹은 '사밧 성전은 길어야 5년이면 끝난다'는 식의 낙관적인 분위기가 잠깐이나마 지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론은 얼마 가지도 못하고 사그라들고 말았다. 771년 중반부터 카발을 향한 모든 진격로가 교착상태에 빠져버렸고, 성전군에 쓸려나가는 것만 같았던 카오스 세력은 단순히 저항하는 것을 넘어서 야무진 반격까지 가해오고 있었다. 성전군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어떠한 저항보다도 강력한 저항에 마주했고, 블러드 팩트라는 집단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요란스레 올라오기 시작했다. 바로 새로운 아르콘, 울록 가르(Urlock Gaur)의 등장이었다. 울록 가르의 지휘 아래, 771년 말엽부터 카오스 세력의 대대적인 반격이 거의 무방비상태나 다름없던 성전군의 옆구리를 찔러들어왔고, 성전군의 진격로에 위치한 요충지들이 순식간에 함락됨과 함께 당장 보급선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결국 성전군 고휘 지휘관들의 우려가 그대로 맞아떨어져버린 것이었다. 아무리 늦어도 772년의 시점에서, 카오스 세력을 순식간에 일소하고 성전을 끝내버리겠다는 마카로스의 호언장담은 참으로 후회스러운 허풍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771년까지의 성전군의 손쉬운 승리는 마카로스가 너무나도 완벽한 작전을 펼쳤다기보다도 아르콘 나지바르(Nazybar) 사후 누가 차기 아르콘이 되느냐를 두고 벌어진 카오스 마지스터 간의 내분에 의한 것이 컸다. 성전군이 카발 항성군으로 진격해 들어가는 그 시점에도 마지스터들은 성전군과 싸우기는 커녕 자기들끼리 병력을 동원해 대규모 회전까지 벌여가며 권력투쟁에 몰두할 정도였고 이렇게 사분오열된 카오스 세력이 성전군을 제대로 막아낼 리 만무한 일이었다.
성전군이 아무리 카발 항성군으로 순조롭게 진격해 들어갔다지만 새로운 아르콘 아래 내분을 멈추고 다시금 정신을 차린 카오스 세력이 반격에 나서자마자 곧바로 삼면에서 위협받기 시작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발하우트에서부터 카발 항성군까지 숨차게 달려온 성전군의 양익에는 제2의 전선이 열려버리고 말았다. 울록 가르는 기다렸다는 듯이 성전군의 보급선과 중간 요충지들을 하나하나 끊어버리기 시작했다. 군세가 너무나도 길게 늘어져버린 상황에서 수송선단이 습격당하고, 후방 요충지들은 차례차례 카오스의 손아귀에 떨어졌지만 성전군은 이를 제대로 막을 방법이 없었다. 772년 중순이 지나는 시점까지 성전군은 측면에서 죄어오는 카오스 군세에 맞서 보급선을 지키기 위해 그야말로 처절하게 고군분투했다. 전세는 울록 가르가 마구잡이로 진격해온 마카로스를 정면에서 맞이하는 가운데, 가르의 세 마지스터, 아나콰나르 세크(Anakwanar Sek)와 에녹 인노켄티(Enok Innokenti), 붉은 손 셰볼(Shebol Red-hand)이 측면에서 성전군의 보급선과 후방 요충지를 마구 후려치는 모양새를 띠었다.
이듬해인 773년의 하반기는 사밧 성전이 시작된 이래 성전군이 가장 참혹한 시련을 겪은 시기였다. 마카로스가 이끄는 성전군의 주력이 몰론드 문턱에 묶여서 움직이지 못하는 가운데, 에녹 인노켄티와 아나콰나르 세크가 칸 성계(Khan Group)를 목표로 각자 양익에서 치고들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르콘의 의도는 명확했다. 칸 성계를 기점으로 성전군을 절반으로 양분해버린 다음, 고립된 성전군을 완전히 포위섬멸하여 완전히 성전을 끝내버리는 것이었고, 아르콘의 의도는 달성되는 듯했다. 단순한 패배를 넘어, 사밧 성전 자체의 실패가 목전에 다가온 듯했다.
허나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기적은 찾아왔다. 헤로도르(Herodor)에서 성 사밧이 부활하여 성전군을 규합하고, 에녹 인노켄티의 군세를 헤로도르에 묶어버리면서 다시 한번 성전군에 기회가 찾아왔다. 성 사밧은 몰론드 공성전에서 끝내 승리한 마카로스가 다시 칸 성계로 병력을 돌리기까지 성공적으로 카오스 군세를 붙잡아둘 수 있었다. 몰론드 공성전이 성전군의 승리로 끝나고, 마침내 마카로스의 지원군이 도착하자 카오스 군세는 성전군을 양분한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패퇴해야만 했다. 덕분에 성전군은 성전의 실패라는 최악의 구렁텅이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로부터 류보프 공방전이 시작되는 778년까지도 소위 제2 전선의 완전한 안전 확보는 여전히 요원한 상황이었다.[1] 당장 773년의 승리는 성전의 완전한 패배라는 최악의 결과에서 간신히 벗어나 성전군이 한숨 돌릴 수 있는 여유가 마련되었다는 데 그 의의가 있었을 뿐이었다. 카오스 군세는 말 그대로 패퇴했을 뿐 완벽하게 섬멸당한 것도 아니었고, 성전군 보급선 주변에 카오스가 지배하고 있는 행성들은 여전히 남아 성전군의 측면을 위협하고 있었다. 헤로도르에서 승리한 지 2년 후, 그리고 칸 성계의 공략이 어느정도 마무리되어가는 775년의 시점에서도 보급로가 아나콰나르 세크의 위협에 계속 시달리고 있다는 언급이 성전군 내부에서도 공공연히 나올 정도였다. 비록 가능성 자체는 적을지라도 만에 하나 아나콰나르 세크가 칸 성계를 기점으로 성전군을 절단내버린다면 성전의 실패가 목전으로 다가온다는, 성전군이 773년에 마주했던 문제 자체는 778년이 되어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는 성전군의 앞길에 놓여있는 행성들을 차근차근 점령하기보다는 화려한 기동전을 펼치며 카오스 세력의 심장부로 신속하게 들이친다는 마카로스식 전략이 가질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따라서 마카로스는 그 만에 하나를 대비하여 적이 다시금 반격해올 상황을 차단하는 임무를 로드 밀리턴트 사이본(Cybon)을 포함한 여러 지휘관들에게 맡겨두었다.[2] 겉으로는 꽤 그럴듯해 보이는 임무였지만 실상은 마카로스가 눈앞의 적 주력을 쫓아 신나게 달려간 발자취 주변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미수복 행성들의 탈환이라는, 일종의 뒤치다꺼리와도 같은 임무일 뿐이었다. 게다가 이런 류의 행성들은 으레 그렇듯이, 방어 태세가 충실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행성 류보프(Lyubov) 역시 그러한 행성 중 하나였다.
2.2. 류보프
행성 류보프(Lyubov)는 역사적으로 36천년기에 개척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지막지한 크기의 전력 시설과 생산 시설을 갖추고 있었고, 그에 걸맞은 엄청난 수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었고, 때문에 주요 임페리얼 가드와 PDF 연대도 여럿 주둔하고 있었다. 류보프는 41천년기부터 시작된 이른바 '사밧 침탈'의 과정 속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함락된 축에 속하는 행성이었다. 류보프는 750년에 사실상 함락되었고, 사반세기 가까이 카오스 세력의 손아귀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럼에도 당시 류보프에 위치한 하이브 대부분은 완벽하게 함락되지는 않은 상태였고 치열한 지상전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게다가 류보프는 워프 점프가 이루어지는 중요 지점이기도 했고, 그 전략적인 중요성 덕택에 카오스 세력의 연료, 탄약 등의 보급이 이루어지는 요충지로 판단되었다.이에 777년, 로드 밀리턴트 사이본은 안드레아스 칸하이드(Andreas Carnhide) 대장에게 류보프 공략을 명령했다.
2.3. 안드레아스 칸하이드
711년, 구드룬(Gudrun)에서 태어난 안드레아스 칸하이드는 임페리얼 가드에서 오랫동안 복무하며 상당한 경력과 군공을 쌓아온 유능한 장교였다. 그는 퍽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이기도 했고, 부하들에게도 신망을 널리 얻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전장에서 진정 돋보이는 임무를 수행해본 적은 없었다. 그는 쿨란(Khulan) 전역에도 종군한 바 있었고, 슬레이도[3]가 일찍이 눈여겨봤던 지휘관이기도 했다. 하지만 류보프 공방전 이전까지 그의 전공은 미미할 뿐이었는데, 이는 그가 주로 행성 수비대나 주둔군, 혹은 병력 호송부대의 지휘를 주로 맡아왔기 때문이었다.슬레이도의 죽음과 함께 발하우트 공방전이 마무리된 후, 칸하이드에게는 또다른 불행이 찾아왔다. 마카로스가 새로운 워마스터가 된 이후, 많은 수의 성전군 베테랑 지휘관들은 이 새로운 워마스터가 자신들을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고, 애석하게도 칸하이드 역시 그 중의 하나였다. 마카로스는 자기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일찍이 슬레이도의 눈에 들지 못하고 커온 사람들을 골라쓰는 것을 선호했다. 마카로스식 기준에 따르면 슬레이도 휘하에서 종군해온 베테랑 지휘관 중 다수는 뛰어난 능력, 충성심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인물들이었다. 당연히 이들은 주요 전장에서 쫓겨나 한직을 전전하고 있었다. 그 한직은 바로 성전군의 제2 전선이었고, 그 전선에 딱 걸맞은 2선급 제대를 받아들고 뒤치다꺼리나 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었다. 칸하이드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많은 동료 지휘관들처럼 자신들에게 찾아온 불행을 그저 조용히 속으로 삭이는 수밖에 없었다.
류보프를 공략할 지휘관으로 칸하이드가 내정된 것 역시 썩 좋은 의도에서만 이루어진 일은 아니었다. 일단 사이본이 칸하이드에게 딸려준 부대들은 제대로 편제된 부대들이 아니었다. 규모 면에서는 그럴듯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제각각의 편제에 속한 제각각의 부대를 류보프 공략 직전에 허겁지겁 긁어모아서 합쳐놓은 정도에 불과했다. 이 부대들이 손발을 맞춰본 적도 없었거니와 대다수 부대들은 류보프 공략 얼마 전까지도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있었기에 부대 해체, 혹은 재편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아마도 사이본은 칸하이드를 잠시 어디다가 조용히 처박아둬도 무탈한 지휘관 정도로 여기고 있었던 듯하다. 당시에도 칸 성계의 성전군은 세 차례의 대규모 교전에 직면한 상황이었는데, 사이본은 일단 급한 불을 끄는 동안, 그럭저럭 유능하긴 하지만 또 모나지는 않은 지휘관인 그에게 충분히 지쳐버린 병력을 딸려두고 류보프를 붙들어놓게 할 심산이었을 것이다. 즉, 칸하이드가 대충 꾸려진 부대로, 류보프를 함락하는 것도, 그렇다고 패퇴하는 것도 아닌 그저 교착상태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붙들고만 있는 것이 사이본이 원하는 그림이었다. 류보프는 당장 급한 불을 끄고 난 후에 사이본이 직접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류보프 해방의 전공도 사이본이 가져가는 것은 덤.[4]
아무튼 칸하이드로서는 이렇게 류보프의 공략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2.4. 아랙 에토가르
한편, 류보프에서 성전군을 기다리고 있는 카오스 군세의 총지휘관은 바로 아랙 에토가르(Araek Etoguar)라는 인물이었는데,[5] 아랙 에토가르는 유능하고 카리스마 있는 지휘관으로 악명이 자자했다.아랙 에토가르의 지휘 아래 류보프에 모인 카오스 군세는 상상 이상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들 중 다수는 워프에 오염돼버린 거주민들을 징집한 징집병들이었지만, 기갑 차량에서부터 항공기에 이르기까지 장비 일체를 보유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타이탄까지 있었다. 여기에 상당수의 반역자 스페이스 마린들이 가세하고 있었고, 지휘관이 에토가르인 만큼 블러드 팩트 역시 모여 있었다.
대개 이런 이질적인 집단들이 모여있는 카오스 세력은 내부에 파벌이 여럿 존재하기 마련이고, 이들 간의 관계도 썩 동등하지는 않기 마련이다. 비록 하나의 대의를 위해 모였다지만, 일관된 지휘체계가 존재하기는커녕 서로 반목하고 싸움질이나 하면서 세력 자체가 금이 가버리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서로가 서로를 죽여가며 권력투쟁에 몰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전형적인 카오스 군대와 아랙 에토가르 휘하에 있는 카오스 군대는 퍽 달랐다. 그는 완전히 이질적인 병력들을 모아 일사불란한 하나의 통일성있는 조직체계로 녹여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아랙 에토가르의 군대는 조용히 성전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3. 작전 경과
3.1. 전초전
류보프에는 광활한 하이브 밀집지대와 산업지대 다수가 모여 행성 주 대륙의 남반구 전체를 뒤덮다시피하고 있었다. 따라서, 류보프의 공략에는 이러한, 소위 '초대륙 구조체(Transcontinental Nexus)'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일단 류보프 공략에 앞서, 사이본이 서로 손발을 맞춰본 제대를 칸하이드에게 내어준 것도 아니었던 만큼, 칸하이드는 임페리얼 가드와 임페리얼 네이비의 의견을 서로 조율해볼 필요가 있었고, 각자의 주장을 들어보기로 했다.류보프 공략에 있어 첫 계획안으로는 대규모 상륙작전을 실행한 후, 스라디 만(Srady bay)[6], 징크 고지(Zinc Hill), 카젠부르크(Kazenburg)를 포함한 19곳에 전선을 형성하여 류보프 하이브에 공세를 편다는 작전안이 제출되었지만 반대 끝에 반려당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초대륙 구조체의 외곽에 있는 위성 하이브들이 공략되지 않는 이상, 류보프 하이브에 바로 공세를 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게다가 류보프에 곧바로 대규모 상륙을 강행한다는 계획부터가 지상군 지휘관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렀다. 첩보에 따르면 초대륙 구조체에는 일종의 지상 항공모함들을 주축으로 한 요격 전대가 다수 편성되어 있었고, 이 지상 항공모함들은 타격은 커녕 추적조차도 어렵기 짝이 없었다. 지상군 지휘관들은 요격기가 벌떼처럼 우글대는 곳에 상륙을 하는 일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보았거니와, 어찌어찌 지상군이 상륙을 한다손 쳐도 곧 그 수많은 요격기들이 선사할 촘촘한 화망 속에서 신속하게 전멸하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지상군 지휘관들의 주장에는 상식적으로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이런 반대에 직면한 칸하이드는 적 지상 항공모함들의 움직임을 더 정확히 탐지할 수 있도록 함선들을 류보프에 저궤도 가까이에 댈 것을 임페리얼 네이비 지휘관들에게 요구했다. 하지만 임페리얼 가드만큼이나 임페리얼 네이비 역시 그들만의 사정이 있었는데, 초대륙 구조체에는 방공포 역할을 하는 거포들이 즐비했고, 이런 거포들이 구성하는 화망 가까이에 함선들을 댄다는 것은 임페리얼 네이비로서는 또 동의하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따라서 함대 지휘관들은 그들 나름대로 어떻게 하면 칸하이드의 지시를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 거부할까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케이럴 하이둔(Karel Hydun) 중장(Flight Marshal)이 다시 칸하이드에게 작전안을 제출했다. 작전안의 요지는 상륙작전이 실행되기 전에, 임페리얼 네이비의 전투기들이 선제적으로 대기권에 내려가 제공권을 장악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함대 지휘관들이 이런 무모한 작전에 전혀 동의를 해줄 리가 없었다. 함대 지휘관들은 궤도 포격도 뭣도 없이 전투기들만 행성 대기권에 던져놓겠다는 이 계획안에 펄펄 뛰었다. 하지만 함대의 일선 항공장교들은 이런 무모한 모험과도 같은 임무에 입맛을 다시고 있었고, 각 주력함의 비행대 지휘관들도 그냥 함선 안에서 놀고 있느니 전투기들을 끌어다 모험을 한 번 해보는 쪽을 택했다. 결국 작전안은 승인되었다.
작전 개시 첫날, 총 8파로 구성된 대규모 전투기대가 일제히 작전 구역에 돌입했다. 공격대 대부분이 선더볼트 전투기로 구성되어 있었고 드문드문 라이트닝도 섞여 있었는데, 약 3만여 대의 전투기가 대기권에서 항공전에 돌입했다. 돌입해오는 성전군 전투기대에 맞서 날아오른 적 전투기의 수는 약 4만 5천여 대로 추산되었다. 작전 전체를 통틀어 약 6만 3천여 대에 달하는 성전군 전투기가 출격했고, 카오스 측 전투기의 수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대략 14만여 대로 추산되었다.
성전군의 주요 공격은 스라디 만, 벌크 클리프 하이브(Balk Cliff Hive), 징크 고지(Zinc Hill)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대규모 항공전이 가장 많이 벌어졌던 곳은 스라디 만으로, 작전 개시 첫날과 3일에 특히 엄청난 규모의 항공전이 벌어졌고, 4일 째에는 징크 고지 상공에서 대규모 항공전이 벌어졌다. 작전 개시 2주차에 접어들자 벌크 클리프 하이브의 해안에서 9시간에 걸친 대규모 항공전이 벌어졌다. 작전 개시 2주차가 지나는 동안 스라디 만의 북쪽을 쭉 가로지르며 항공전이 벌어졌고, 작전 개시 3주차, 15일이 되는 날에는 류보프 하이브의 상공에서 대규모 항공전이 마지막으로 벌어졌다. 하여튼 작전 개시 3주차가 되자, 류보프의 상공은 꽤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적 항공 전력은 약 1/3로 줄어들었고, 성전군의 상륙을 효과적으로 막지 못할 것이었다.
따라서 이제 상륙 작전만이 남은 듯 했지만 지상군 지휘관들은 또다시 상륙에 반대하고 나섰다. 항공전을 벌이면서 적 항공세력을 소탕하는 데 들어간 이 3주라는 시간은 적이 상륙에 대비함에 있어 아주 차고 넘칠 정도로 충분한 시간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놀랍게도 칸하이드는 이러한 반발을 이해해 주었고 상륙 작전을 원안대로 밀어붙이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그는 조금 새로운 답을 찾아볼 요량이었다.[7] 그가 찾은 새로운 답은 바로 아뎁투스 메카니쿠스였다. 칸하이드의 휘하에는 약 130여기의 타이탄이 있었는데 칸하이드는 아뎁투스 메카니쿠스가 성공적인 상륙전을 열어줄 힘과 지구력을 모두 갖췄다고 판단했다.
임페리얼 가드도, 임페리얼 네이비도 제각기 사정이 있듯 아뎁투스 메카니쿠스도 마찬가지로 자신들만의 사정이 있었다. 아뎁투스 메카니쿠스는 그 옛날, 슬레이도와의 협정에 따라 성전에 협력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성전에 끌려다니고 있다 생각했고 날이 갈수록 막대한 차량, 물자 등의 제공을 요구받는 것에 대해 대단히 불만스러워하고 있었다. [8]게다가 전임자 슬레이도와 달리, 마카로스는 이 화성의 사제단을 썩 회유하려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고 있었고, 영광스러운 전장에도 배치하지도 않고 있었다.
칸하이드는 조심스레 사제단을 설득하여 아뎁투스 메카니쿠스의 타이탄이 상륙작전의 선봉에 서게끔 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어떤 커다란 약속도, 무리한 약속도 하지 않았다. 그저 워마스터 마카로스는 눈에 불을 켜고 승리의 영광을 쫓아다니는 인물이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만일 아뎁투스 메카니쿠스가 충분히 괄목할 만한 활약을 보여준다면, 마카로스는 당연히 영광스러운 전장에 아뎁투스 메카니쿠스를 배치시킬 것이었다. 그는 류보프에서 아뎁투스 메카니쿠스의 전력이 충분히 활약해준다면, 그 뛰어난 활약상을 반드시 워마스터에게 상신하겠노라 약속했다.
이튿날, 임페리얼 네이비 함선들의 궤도 포격과 함재기들의 엄호 아래, 아뎁투스 메카니쿠스의 타이탄들이 선봉에 섰다.
세 곳의 공략 지점으로, 스라디 만, 벌크 클리프 하이브, 징크 고지가 선정되었다. 타이탄이 교전하는 동안, 6백만에 달하는 지상군 병력이 강하하여 상륙 거점에 모여들었고, 각자 정해진 대로 세 공략 지점을 향해 산개하여 진격하기 시작했다.
3.2. 카젠부르크
카젠부르크는 초대륙 구조체 동부에 위치한 하이브로, 규모로만 치면 류보프하이브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류보프에 상륙한 지상군은 카젠부르크를 공략 지점으로 선정하지는 않았다. 대신 카넬리아 출신 경보병 연대들로 구성된 공수부대가 하이브 첨탑에 침투하여 하이브를 장악한다는 계획이었다. 계획은 매우 순조로웠다. 하이브 첨탑으로 침투한 공수부대는 손쉽게 적진을 휘젓고 큰 피해 없이 하이브의 자동 방어 시스템까지 순조롭게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카젠부르크는 성전군의 손에 거의 온전한 상태로 수복되었고, 이렇게 수복된 카젠부르크의 대규모 산업시설, 발전시설들은 훗날 류보프의 재건에 큰 역할을 했다.3.3. 징크 고지
징크 고지는 초대륙 구조체 남부에 위치한 하이브였는데, 3주 가까운 항공전에도 나름 항공력을 온존하는 데 성공했고, 아뎁투스 메카니쿠스 타이탄들의 공세도 꽤 잘 버텨낸 지역이었다. 임페리얼 가드 제2파 공격대는 징크 고지 근처에 강하했고, 강하하자마자 신속히 하이브를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임페리얼 가드 부대가 하이브에 침입을 개시하자 하이브의 서부 옹벽을 따라 대규모의 전투가 벌어졌다. 카오스는 여기에 이동식 망루, 중(重)자주박격포 등의 기괴한 무기들을 배치해두고 있었다. 특히 자주박격포는 아뎁투스 메카니쿠스조차도 어떻게 만들어진 물건인지 도통 알 수가 없을 정도로 희한한 물건이었다. 한 번 발사하면 포신에서 칼날 뭉치 같은 것들이 고속으로 쏟아져 나왔고, 이 칼날들은 사람이건 기계건 가릴 것 없이 능히 찢어버릴 수 있었다. 다행인 점이라면 이 무기들은 방어력이 딱히 좋지는 못했다는 것이었고, 임페리얼 가드 측은 야포들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포격을 때림으로써 방어선을 무력화하는 데 성공했다.3일 간의 전투 후, 둥글게 둘러쳐진 외곽 옹벽은 성공적으로 함락당했다. 옹벽 안쪽에는 광대한 농업 시설이 위치해 있었는데, 적들은 참호를 촘촘하게 파두고 성전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상군의 손실은 상당한 수준이었고, 타이탄이 앞장서서 전선의 돌파에 나서자 그제야 진격로가 열릴 수 있었다. 그렇게 하이브 내부로 들어서자 이번에는 카오스 광신도로 변해버린 하이브 거주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이들은 무장 자체는 빈약했으나 하이브 내부에서 거리낌없이 난전을 걸고 자살공격을 해대는 통에 전황은 자주 변하곤 했고, 성전군 병력은 크나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일련의 조사를 통해, 징크 고지에서의 전투가 왜이리 격렬했는지가 밝혀졌다. 징크 고지는 바로 아랙 에토가르의 본거지였다. 성전군 측의 대다수가 아랙 에토가르는 류보프하이브에 본거지를 차리고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아랙 에토가르의 본거지는 실은 징크 고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징크 고지는 아무래도 광신적인 제례나 의식이 이루어지거나 일종의 성지 역할을 하는 지역이었고, 따라서 적이 징크 고지에서 상상 이상의 저항을 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당시, 아랙 에토가르가 징크 고지에 머무르고 있었을 가능성 역시 높았던 것으로 판단되었다. 아마 적의 격렬한 저항은 아랙 에토가르가 류보프하이브로 달아나는 동안 얼마간의 시간을 벌어주는 목적 또한 있었을 것이었다. 아무튼 징크 고지의 함락으로 초대륙 구조체의 남부는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게 되었다.
이제 칸하이드의 관심은 초대륙 구조체에서도 가장 광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류보프하이브로 향했다.
3.4. 류보프하이브
3.4.1.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
본격적인 공략에 들어가기에 앞서, 류보프하이브의 공략에는 몇 가지 난점이 있었다.첫 번째로, 가장 우선적인 문제는 바로 류보프하이브 바로 그 자체였다. 카오스 군세가 류보프를 손에 넣고 있었던 몇 년 동안 류보프하이브는 요새 그 자체로 탈바꿈해 있었다. 하이브 외곽 구조물에는 수도 없이 많은 포좌, 총좌가 아주 도배가 되어 있었다. 두 번째 문제로 류보프하이브 서쪽에 위치한, 류보프하이브의 위성 하이브인 제닉(Zenic)과 제빈(Zevin) 하이브의 존재였다. 당연히 두 하이브 역시 적의 손아귀에 있었다. 서부 해안가에 위치한 동력시설에서 생산되는 동력이 두 하이브를 가로질러 류보프하이브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류보프하이브의 남부, 남서부에는 총연장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무수한 배수로, 대전차 장애물, 참호선이 그야말로 초승달 모양으로 촘촘하게 중첩되어 있었다. 물론 이 곳에 지뢰가 매설되어있지 않을 리가 없었다.
따라서 칸하이드 휘하 장교들은 어떻게 류보프하이브를 공략할 것인가에 대해 격론을 벌였고, 세 가지의 제안이 나왔다. 첫째는 류보프 하이브 정면에 그대로 들이받아 뚝심있게 공성전을 벌이는 것이었고, 둘째는 류보프하이브의 서쪽을 향해 쭉 치달은 다음 두 위성 하이브부터 먼저 공략하는 것이었다. 셋째는 류보프 하이브의 북동방면을 향해 쭉 우회한 다음 하이브를 공략하는 것이었다.
칸하이드는 여기서 놀라운 결정을 한다. 어떤 작전도 기각하지 않고, 세 가지의 작전을 동시에 실행한다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 칸하이드는 휘하 지상군을 여섯 갈래로 나누었다.
1군은 아르콜 소장 휘하에 배치되었다. 그는 하이브에 진을 치고 있는 적이 튀어나올 때까지 뚝심있게 기다리는 공성전을 제안한 바 있었는데, 이는 곧 지상군이 점령지의 방어를 굳건히 함과 동시에 신중하게 대기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2군은 햐크(Hjak) 대령 휘하에 배치되었다. 햐크는 아르콜의 제안을 지지한 바 있었는데, 그는 이 계획에 따라 스라드하이브 외곽에서 대기하면서, 증원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아르콜의 계획에 힘을 보탤 것이었다.
3군은 칸하이드 본인이 직접 지휘할 참이었다. 그는 3군을 이끌고 방어시스템을 정면돌파하여 류보프하이브에 직공할 생각이었고 그만큼 3군은 수적으로도 가장 대규모로 편성되었다.
4군은 도셴(Doshen) 대장 휘하에 배치되었다. 그는 4군을 이끌고 류보프 하이브의 동부 외곽에서 우회기동을 실시한 후 북동 방면에서 공격을 개시할 참이었다. 물론 도셴은 이 계획을 제안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5군과 6군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대신 기계화 비율이 매우 높게 편성되어 있었다. 이는 각자 파퀸(paquin), 반세터(Varnsetter) 대령 휘하에 배치되었는데, 5군이 류보프하이브와의 전력선을 장악하는 동안 6군은 제빈, 제닉 하이브에 직접 들이칠 계획이었다.
여기까지 진행되자, 칸하이드는 다시 임페리얼 네이비와 아뎁투스 메카니쿠스의 손을 빌렸다. 칸하이드는 류보프는 곧 함락될 것이며 이 작전 성공이라는 대단원의 순간을 임페리얼 가드만 독차지하는 장면을 보는 것이 썩 달가운 일은 아니라고 그들에게 넌지시 이야기했다. 어느 정도 입발린 찬사와 함께 이런 이야기를 들은 기계교단은 지체없이 타이탄을 비롯한 장비 일체를 3군과 4군에 파견시켜 힘을 보탰다. 임페리얼 네이비는 서부 해안지대를 타격함과 동시에 5군과 6군을 공중에서 엄호할 참이었다.
2주 동안의 재보급과 휴식이 끝나자,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3.4.2. 메인 하이브
작전이 개시되자 파퀸, 반세터가 지휘하는 고속 기동부대가 두 위성 하이브의 남쪽을 타격했고 곧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파퀸의 부대는 메인 하이브와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전력 케이블 및 부수 시설을 하루만에 모조리 파괴하는 데 성공했고, 그 후엔 곧바로 서쪽으로 기수를 돌려 제닉 하이브에 당도했다. 그때까지 임페리얼 네이비는 무지막지한 포격을 쏟아부으며 발전시설을 신나게 녹여버리고 있었는데, 덕분에 피어오른 연기는 상공에 직경 20km의 먹구름을 생성했다.그에 반해 반세터의 6군은 제빈 하이브 남쪽으로 들이치자마자 다수의 블러드 팩트와 마주했다. 곧 엄청난 저항에 부딪쳤고 진격은 지지부진했다.
도셴의 4군은 3일간 순조롭게 진격했고, 메인 하이브의 북동부 지점에 도달해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하이브를 사정권 내에 두기도 전에 대규모의 카오스 기갑 세력과 마주쳤다. 이 기갑 세력은 역시나 그 악명높은 블러드 팩트가 중핵을 이루고 있었다. 블러드 팩트의 기갑장비 다수는 노획한 임페리얼 가드 전차로 구성되어 있었다. 곧 북동부에서는 대규모 전차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가장 거대한 규모의 3군은 그동안 메인 하이브의 남서부 지역에서 조악하지만 강력한 방어시설을 뚫어가며 진격하고 있었다. 물론 공격을 개시하자마자 비처럼 쏟아지는 포격을 뒤집어썼지만, 다행히 아뎁투스 메카니쿠스의 타이탄들이 잘 버텨주고 있었다. 타이탄은 주로 대기갑전력을 타격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고, 맡은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해냈다. 하루가 지나자 하이브 외벽은 성공적으로 함락되었고, 이제 메인 하이브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메인 하이브가 눈에 들어오는 바로 이 순간, 칸하이드에게 안 좋은 소식이 날아왔다. 하나는 반세터의 6군이 제빈 하이브에서 블러드 팩트를 상대로 고전하고 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도셴의 4군이 거의 섬멸 위기에 몰린 채 패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두 지휘관은 지원 병력을 간곡하게 요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칸하이드는 지원 요청을 단칼에 거절했다. 여기에는 바로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는 메인 하이브를 곧장 치고들어갈 3군을 위한 지원병력으로 1군, 2군이 중요한 역할을 할 참이었기에 이를 따로 빼주기가 곤란했다는 점, 둘째는 바로 칸하이드가 휘하 지휘관들을 신뢰했다는 점이었다.
일찍이 그는 아래와 같이 적은 바 있었다.
무릇 지휘관은 자신이 입안한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최고최선의 노력을 다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입안한 작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하는 지휘관은 없다.
칸하이드의 이러한 생각은 일종의 신념이자 약속의 문제였다. 도셴과 반세터는 자신들이 입안한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약조했고 칸하이드는 도셴과 반세터를 믿고 병력을 내주었다. 마땅히 그 약조를 믿어야 할 일이었다.작전 개시 24시간이 경과하기 전에 칸하이드의 믿음은 마땅한 보상을 얻었다. 반세터는 휘하 병력을 추슬러 블러드 팩트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고, 제빈 하이브 내부까지 전진하는 데 성공했다. 때마침 임무를 완수한 파퀸 휘하의 병력이 제빈 하이브로 재빨리 달려와 블러드 팩트의 측면을 후려침으로써 반세터의 반격에 힘을 보탰다. 여기에 임페리얼 네이비 항공기들이 몰려와 맹공습을 퍼부었다. 전투는 9일 더 지속되었고, 성전군은 끝내 승리할 수 있었다. 반세터는 전사했지만, 그는 그의 약조를 끝내 지켰다. 아무튼 이 승리로, 블러드 팩트는 소문만큼이나 불가해한 적이 아니라는 소식이 여기저기 퍼져나갔고, 도셴 역시 여기에 고무되어 북동부 전선을 안간힘을 써서 지켜냈다. 블러드 팩트의 기갑 세력은 타이탄까지 끌고 온 성전군에게 무자비하게 난타당했고, 메인 하이브로 궤주했지만 결국은 포위섬멸당하고 말았다. 잔존 블러드 팩트 부대의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나자 도셴은 메인 하이브로의 공격을 시도했고, 이때 칸하이드의 3군 역시 메인 하이브의 방어선을 넘은 상황이었다.
작전 개시 70일, 이날 오전 칸하이드의 3군은 류보프하이브의 남서 돌출부를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성전군이 하이브에 발을 들이자마자 맹렬한 시가전이 벌어졌지만 카오스 세력은 우르르 몰려드는 임페리얼 가드 병력을 막아낼 수가 없었고, 임페리얼 가드 병력은 하이브 상층부로 진격했다.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촘촘하게 조직된 저항에 맞부딪치긴 했지만 그때마다 칸하이드는 뒤로 빠져있던 2군을 신속히 불러와 지원토록 했다. 그의 작전은 퍽 효과적이었다.
전투는 8시간동안 맹렬히 이어졌다. 그로부터 46시간 후, 칸하이드는 도셴 휘하 병력이 하이브 북동부 돌출부를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받아들 수 있었다. 또한 이들은 하이브의 최중심 구역으로 빠르게 진격하고 있었다. 내심 만족스러웠지만 그는 다시 한번 더 도셴을 재촉했다.
그로부터 85시간이 경과하자, 칸하이드는 다시 전선을 압박했는데, 그야말로 기습과도 같았다. 상처입은 하이브의 각 층에 느닷없이 강력하기 그지없는 공격이 들이쳤고, 의표를 제대로 찔린 적의 일부 군세는 패퇴하기까지 했다. 이 시점에서 적 병력의 구성은 징집병이나 광신도가 태반이었고, 블러드 팩트는 소수 섞여 있었다. 하이브에는 대규모의 화재가 발생했는데, 갈 곳 잃은 유탄들도 한 몫 했겠지만 적의 사보타주가 주된 원인일 것이 분명했다. 이제 류보프의 함락이 눈앞에 다가왔고, 칸하이드는 그의 부대를 이끌고 주저 없이 하이브의 심장부로 향했다. 칸하이드의 목표는 단 하나로 압축되어 있었다. 바로 아랙 에토가르, 류보프에서의 그 모든 저항을 구성해낸 단 하나의 구심점. 바로 그를 찾아내고 쓰러뜨리는 것이었다.
류보프 작전이 시작된 지 73일하고도 저녁, 제 82 카넬리아 경보병 연대에서 차출된 숙련병들로 이루어진 세 개의 팀이 빅토르 곤팔(Victor Gonfal) 중위의 인솔 하에 마침내 아랙 에토가르를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곤팔의 휘하에는 시가전이라면 아주 이골이 난 18명의 보병과 두 개의 경박격포 팀이 들어와 있었고, 곤팔 역시 베테랑 지휘관이었다. 전선의 선봉에 서서 한창 불타오르고 있던 류보프 하이브의 북부 거주 구역에서 전진하던 곤팔의 휘하 병력은 블러드 팩트 1개 분대의 예기치 못한 저항에 맞닥뜨렸다. 총격전 끝에 블러드 팩트 분대는 3구의 시신를 남기고 약탈당한 영묘의 경내로 피신했다.
곤팔은 시신의 생존 여부를 확인케 했는데[9], 시신을 확인한 의무병은 그에게 ‘시신은 검은 화환을 쓰고 있으며, 마스크에는 금세공된 나뭇잎 장식이 부착되어 있다’고 보고했다. 보고를 듣자마자 곤팔은 이들이 일반 병사들보다도 더욱 특별하거나, 혹은 높은 지위를 가진 자들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곧 칸하이드의 사령부에에 지원 요청을 보냈다.
하지만 적은 지원이 도착하기도 전에 재정비를 마치고 영묘 내부에서 눌러앉아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사격에 노출돼버린 이상 그는 움직이기로 결심했고, 박격포 팀에 영묘 정면 앞마당을 타격할 것을 명령했다. 포격은 20분 동안 지속되었고, 곤팔은 선두에 서서 병력을 인솔하며 경내에 진입했다. 모든 엄폐물이란 엄폐물에서 블러드 팩트 병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는데, 이들은 가진 탄약을 모조리 소진한 나머지 총검이나 도끼와 같은 냉병기, 그조차도 없는 자는 맨손으로 덤벼들었다. 곤팔의 기억에 따르면 자신은 6명을 사살했고 부하들 역시 다들 그에 비슷할 정도로 적을 사살했다고 한다. 마지막 공격에 앞서 그들은 다시금 라스 라이플을 충전했고, 블러드 팩트의 야만스런 전사들을 살육했다.
싸움은 영묘 경내를 넘어 묘소 내부에서까지 벌어졌는데, 곤팔은 아랙 에토가르라 판단되는 자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고 부하 두 명과 함께 그를 쫓았다. 묘소 아래층에서 벽면을 돌아 도주하는 척 하던 에토가르는 갑자기 뒤돌아 으르렁대는 체인소드를 치켜들고 괴성을 지르며 공격해왔다. 곤팔의 부하들은 모두 참살당하고 말았고 곤팔은 에토가르에 두 발을 발사했으나 모두 빗나갔다. 그의 라스건 파워팩에는 단 한 발 분의 용량이 남아 있었다. 곤팔은 이 마지막 한 발을 으르렁대는 에토가르의 얼굴에 정확히 꽂았다.
그리고 아랙 에토가르는 죽었다.
아랙 에토가르가 전사한 후에도 수 주간 산발적인 전투가 류보프에서 벌어지긴 했지만, 류보프의 함락 자체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류보프는 성전군의 손아귀에 떨어졌고, 칸하이드는 승리했다.
4. 후일담
류보프를 성공적으로 함락시킨 칸하이드는 자신의 전공에 대한 마땅한 영광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영영 그러한 대가를 얻지 못했다. 그가 보여준 지휘관으로서의 자질, 혹은 지휘관 개인의 성품에 대해 의문 삼는 정적들 탓이었다. 쏟아지는 비방에 깊이 상심한 그는 류보프에서의 기록들을 모아 출판한 후 성전에의 종군을 그만두었다. 18개월 후 칸하이드는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5. 평가
안드레아스 칸하이드가 한창 성전에 종군하던 당대에는 정치적인 이유로든 정말 전략적인 이유로든 칸하이드를 비난했던 상급 지휘관들이 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장 칸하이드 휘하의 참모들도 작전 도중에 늘상 보이던 무사태평한 듯한 그의 모습이나[10], 얼핏 보면 각자 떽떽거리며 목소리를 높이는 임페리얼 가드, 임페리얼 네이비 지휘관, 그리고 이를 한층 더 뛰어넘는 아뎁투스 메카니쿠스 사이에서 휘둘리는 것만 같은 모습에 의문의 시선을 던지기도 했고, 어떤 상급 지휘관들은 똘똘 뭉친 적을 상대로 오판만 거듭했다고 힐난하기도 했으며, 로드 밀리턴트 사이본은 아예 휘하 제대가 제멋대로 놀게 방치하는 짓이라고 대놓고 질책한 적도 있었다. 아무튼 칸하이드에 대한 당대의 평가는 공세의 초점을 이리저리 뒤섞어놓는 무능하고 결단력 없는 지휘관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하지만 사밧 성전 당대가 아닌, 후대의 평가[11]는 안드레아스 칸하이드의 손을 들어주는 편이다. 칸하이드 휘하에 들어온 부대들은 완편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손발을 같이 맞춰본 적도 없는 병력들이었다. 무장과 보급 역시 열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강력한 방어태세를 갖춘 적을 맞아 싸움에 임해야 했다.[12] 무능한 지휘관이라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바로 어택땅을 찍었다가 말아먹었을 수도 있겠지만 칸하이드는 최대한 휘하 지휘관들의 의견을 들어가면서 자신이 들고 있는 패를 적절하게 이용하려했고, 각 제대 간의 갈등도 능숙하게 다루었다.[13] 아랙 에토가르 아래 단결한 적에 마주하여 칸하이드는 아이러니하게도 임페리얼 가드, 임페리얼 네이비, 아뎁투스 메카니쿠스를 최대한 분산시켜 성공적으로 운용했고, 후대의 전사가들이나 탁티카 임페리알리스는 이에 대해 성전이 가지는 하나의 동물적인 천성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으며, 이를 응집시키기보다는 분산시켜서 성공적으로 운용했다는 평가를 내림과 동시에 그가 받는 비난이나 매도는 부당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따라서 칸하이드의 류보프 공방전은 비록 당대에는 부당하게 매도당했고 칸하이드를 자살의 구렁텅이까지 몰아넣었지만, 후대에 이르러서는 마땅한 재평가를 받고 있다 할 것이다.
[1] 심지어 778년이면 성전 반대파들조차도 제국이 사밧 성전에서 완전히 승리할 것이라는 예측을 진지하게 내놓기 시작한 시점이었다.[2] 사이본 외에도 반 보이츠(Van Voytz), 블랙우드(Blackwood), 후멜(Humel), 켈소(Kelso) 등이 이러한 임무를 받아들었다.[3] 쿨란 전역을 지휘할 당시 슬레이도는 로드 밀리턴트였다.[4] 칸하이드가 이런 사이본의 속내를 알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주어진 여건이 못내 아쉬웠는지, '공세적인 지휘를 맡은 것에는 감사할 일이지만, 류보프보다 더 나은 전장 이런 임무를 맡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투의 푸념을 일지에 적기도 했다.[5] 아랙 에토가르에서, 에토가르(Etoguar)는 일종의 계급, 직위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제국 측의 학자들은 에토가르라는 명칭이 가르(Guar)라는 직위에 준(準)하거나 어느 정도 근접한다는 의미를 가진다는 데 대체로 동의하며, 임페리얼 가드의 대령, 혹은 대장 정도의 직위에 상응할 것이라 예상한다.[6] 원문에는 스라디(Srady)로 표기되어 있고, 인접 하이브도 스라드하이브(Sradhive)로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지도에는 스프라디(Sprady)로 표기되어 있고, 하이브 역시 스프라드하이브(Spradhive)로 표기되어 있어 서로 표기가 충돌하고 있다. 하지만 원문에는 꾸준히 스프라드가 아닌 스라드(Srad)로 표기되어 있는 점을 감안하여 본문에서는 스라드- 혹은 스라디로 표기한다.[7] 류보프 공방전이 진행되는 동안 칸하이드의 리더십은 줄곧 반목하는 쌍방, 혹은 반대하는 측의 뒤로 한 발짝 물러서서, 쌍방이 각자 내놓는 결론을 여유를 가지고 지켜본 후 의견을 수용하거나 중재안을 내놓는 식이었다. 후술하겠지만 류보프에서 칸하이드의 방식은 퍽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리더십은 칸하이드가 부하들에게 휘둘리기나 하는 나약한 지휘관이라는 인상을 주기 쉬웠고 휘하 참모들도 칸하이드가 성가신 일거리만 자초한다고 여겼다. 이러한 모습은 칸하이드의 경쟁자들에게도 좋은 먹잇감이 되었음은 물론이었고, 칸하이드 개인의 정치적인 처신에도 전혀 도움이 되질 못했다.[8]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뎁투스 메카니쿠스가 딱히 성전군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 역시 성전군 지휘관의 지시를 들어먹기는커녕 독단적으로 행동하기 일쑤였다.[9] 블러드 팩트는 시신에 부비트랩을 놓거나, 아니면 직접 수류탄을 쥐고 죽은 척하고 누워있기 일쑤였다.[10] 물론 그래보였을 뿐,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칸하이드의 기록을 보면 내색하지 않았을 뿐, 그는 조바심과 걱정으로 한가득이었다.[11] 특히 전사가들이나 탁티카 임페리알리스 내부에서는[12] 사이본이나 당대 상급 지휘관들의 힐난이 부당한 이유이기도 하다. 제대로 완편된 부대라도 줘 가면서 비난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어찌보면 이를 넘어서 사이본이 칸하이드를 류보프로 보낸 의도부터가 글러먹었다고 할 수 있겠다.[13] 특히 그가 자신이 가진 권한을 절대 넘지 않는 선에서 아뎁투스 메카니쿠스를 적절히 구슬리는 협상 방식은 후대에서 특기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내리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