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류비사 스테파노비치 (Љубишa Cтeвaнoвић / Ljubiša Stefanović) |
출생 | 1910년 1월 4일 |
사망 | 1978년 5월 17일 (향년 68세) |
국적 | 유고슬라비아 |
출신지 | 베오그라드 |
포지션 | 하프백 |
신체조건 | 불명 |
등번호 | -[1] |
소속팀 | 바르다르 베오그라드 (1926) 예딘츠보 베오그라드 (1927) BSK 베오그라드 (1928) FC 세트 (1929-1931) SC 님 (1931-1933) AS 생테티엔 (1933-1937) 툴루즈 FC (1937-1938) 올랭피크 아비뇽네 (1938-1939) |
감독 | FC 세트 (1943-1946) |
국가대표 | 4경기 0골 (유고슬라비아 / 1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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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
류비사 스테파노비치의 축구 인생을 시작한 곳은 고향 베오그라드의 바르다르였다. 하지만 베오그라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유학을 떠날 결심을 하였다. 처음에는 브뤼셀로 갔지만 1929년 6월, 몽펠리에로 건너가 법학을 공부하였다.그는 같은 유고 대표팀의 동료였던 이반 베크와 FC 세트에서 활약하였고, 1930년 쿠프 드 프랑스를 우승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 이후에는 님, 생테티엔 등 여러 팀에서 활약하였다. 그는 1939년 무릎 반월판 부상으로 은퇴하였다.
국가대표팀에서는 총 4경기를 뛰었는데 그 중 3경기는 초대 월드컵에서 치렀고, 나머지 1경기는 같은 해 8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치른 경기였다.
은퇴 이후에는 프랑스에 귀화하였는데 애칭인 레오로 불렸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FC 세트의 감독을 잠시 맡기도 하였다. 1975년 이후에는 니스에서 주차장 관리인으로 일했다. 1978년 봄에 가난하게 살다 죽었다고 전해진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클래식 스타일의 하프백으로 보통 체구였지만 기술이 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헤딩 능력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3. 수상
3.1. 클럽
- 쿠프 드 프랑스 우승 1회: 1930(FC 세트)
[1]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