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르네 바더 (René Bader) |
생년월일 | 1922년 8월 7일 |
사망년월일 | 1995년 5월 6일 (향년 72세) |
국적 | 스위스 |
출신지 | 바젤 |
포지션 | 센터 포워드 |
신체조건 | 170cm |
소속팀 | FC 바젤 (1944-1956) |
국가대표 | 22경기 1골 (1946-1953) |
감독 | FC 바젤 (1952-1955) FC 바젤 (1958-1959) |
[clearfix]
1. 개요
스위스의 전 축구 감독.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바더는 FC 바젤에서 공격수로 선수 경력을 보냈다. 1944-45 시즌에 바더는 나티오날리가 A에서 11골을 득점, 팀의 최고 득점자가 되었지만 바젤은 그 시즌 13위에 그쳐 나티오날리가 B로 강등당했다. 그래도 바젤은 한 시즌만에 다시 나티오날리가 A에 복귀했다.1946-47 시즌, 바더는 리그에서 10골을 넣었고 그의 팀은 4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바젤은 스위스컵 결승에서 FC 로잔 스포르를 3:0으로 이겼고 바더는 1골을 넣었다.
바더는 1952-53 시즌부터 바젤의 선수 겸 감독이 되었는데 부임 첫 시즌에 나티오날리가 A 우승을 차지했다. 이 시즌에 선수로도 바더는 20경기 9득점으로 제 몫을 다했다.
바더는 1955년에 감독직에서 물러나며 선수 겸 감독직을 그만 두었고 1956년에는 축구화도 벗었다.
2.1.2. 국가대표
1946년 9월 14일, 바더는 체코슬로바키아를 상대로 스위스 대표팀에 데뷔했다.바더는 1950년 월드컵에 참가했지만 당시 스위스 대표팀의 주전 센터 포워드는 리그 득점왕 2회[2]를 차지했던 한스페터 프리드렌더였고 바더에게는 출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바더는 스위스가 이미 탈락이 확정된 마지막 경기 멕시코전에 인사이드 레프트 포워드로 출전했고 전반 10분에 득점을 올렸다. 결국 스위스 대표팀은 바더와 앙테넨의 골로 2:1 승리를 거두고 스위스로 돌아왔다.
바더의 마지막 대표팀 경기는 1953년 6월 27일에 치러진 덴마크전이었다.
2.2. 감독
바더는 1958년 12월 1일부터 한 번 더 친정팀 FC 바젤의 감독을 맡았다. 바젤은 이 시즌에 나티오날리가 A 6위의 성적을 거뒀지만 바더는 시즌을 끝내고 감독직에서 물러났다.3. 수상
3.1. 선수
3.1.1. 클럽[3]
3.2. 감독
3.2.1. 클럽
- 나티오날리가 A 우승 1회: 1952-53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2] 프리드렌더는 월드컵이 끝나고 열린 시즌에 한번 더 득점왕을 차지해서 총 3회의 득점왕이 된다.[3] 바더는 FC 바젤 원 클럽 플레이어이므로 팀 이름 기입은 생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