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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2 14:06:24

리바이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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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책 구성3. 내용4. 반응5. 여담

1. 개요

파일:attachment/리바이어던/LEVIATHANNIM.jpg파일:attachment/리바이어던/LEVIATHANNIM?.jpg
Abraham Bosse가 그린 표지. 확대판. 잘 보면 수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1651년 1월 런던에서 발표된 토머스 홉스의 저서. 제목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괴수 레비아탄에서 따 온 것으로, '리바이어던'은 괴수 레비아탄의 영어 발음이다. 원제는 'Leviathan or The Matter, Forme, and Power of a Commonwealth Ecclesiasticall and Civil'(리바이어던, 혹은 교회 및 세속적 공동체의 질료와 형상 및 권력)이다.

홉스는 이전부터 왕당파의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 의회파의 저항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왕당파와 의회파의 내전이 의회파의 승리로 굳어지자 이에 위협을 느낀 홉스가 프랑스로 11년간 망명을 가 있으면서 왕당파의 입장에서 '절대군주'를 옹호한 저술이 《리바이어던》이다. 하지만 그는 이 책에서 '절대 군주'의 정당성이 '백성들의 합의'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도리어 왕권신수설을 지지하는 다수의 왕당파들에게까지 비판을 받았으며 기독교계는 이 책이 무신론을 주장한다고 보아 그를 격렬하게 공격하였다. 찰스 2세왕정복고가 이루어진 후 홉스는 영국으로 다시 귀국하게 되었으나 그를 주로 공격하는 인물들은 의회파가 아닌 왕당파였다. 반면 의회파는 이렇게 공격받는 홉스의 사회계약설을 연구하여 자신들의 이론으로 흡수하는데 존 로크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핵심은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존재로 원시 사회에서는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1]으로 이어져 끊임없는 전쟁과 살육이 벌어졌으나 이 결과가 공멸임을 인지한 사람들은 서로간의 투쟁을 종식하고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를 받기위해 한 명의 주권자에게 자신의 권리를 양도하기로 서로간의 암묵적 계약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암묵적 계약이 '국가(state)'가 탄생한 배경이다.[2]

2. 책 구성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계몽주의 사상 연구에 매우 중요한 도서지만 한국에는 2008년 말에야 진석용 교수의 번역으로 나남출판에서 2권으로 나뉘어 출간되었다.

3. 내용

홉스는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인간은 본디 이기적 존재이며, 자기보호를 최우선시 한다"고 주장하며 더 나아가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자연적인 상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자기 보호를 위해 폭력적 성향을 드러내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라틴어: Bellum omnium contra omnes)[3]에 돌입할 수 밖에 없는데, 인간은 이기적이므로 역설적으로 이런 무질서를 피하려 하며, 그 때문에 인간은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이기적 본성에 따라 이를 실현할 강력한 힘의 형체를 형성한다"고 주장하고, 이러한 원리로 "사회 사람들의 계약을 통한 통치자의 권위가 성립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욥기에서는 리바이어던(레비아탄)을 혼돈과 무질서한 동물로 표현한다. 그런데 홉스는 이 리바이어던이 그 누구도 억누를 수 없고 항상 자기 맘대로 존재한다고 묘사되는 것에 주목했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이 '아무도 없앨 수 없는 무한한 혼돈과 무질서 상에서 역설적으로 항상 반드시 존재하는 질서'라고 생각하였고, 이러한 세상에서 통치와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 곧 사람들을 복종시킬 수 있는 존재인 '국가(state)'가 욥기에서 묘사된 리바이어던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홉스는 백성들이 자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4]를 통치자에게 양도함으로써 복종해야 한다고 보았으며, 그 사람은 국가의 통치자가 된다고 보았다.

사회구성원들은 스스로의 보호를 위해 서로 임차적 계약을 맺는데, 이것은 말 그대로 임차적 계약이라 확실한 구속권은 가지지 못한다. 그러기에 사회구성원은 계약을 불법적으로 이행하지 않을 때, 자신들이 가질 수 있는 이익보다 큰 처벌을 가하기 위해 강한 대리인을 세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리바이어던'이 된다. 이 강력한 괴수는 국가가 되며, 국가라는 울타리 안의 구성원들은 국가에 복종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모든 권리를 국가에 양도하면서 사회계약설에 의거한 국가가 탄생한다고 보았다.

즉, 쉽게 말하면 사회의 평화를 위해서는 위치를 보장받는 강력한 절대 권력자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다만 이는 동시대의 왕당파 정치인 로버트 필머가 주장했던 《가부장론》(왕권신수설)과는 차이가 있는데,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국가 및 국가권력의 존재는 인간 사이의 계약의 산물임을 강조한 것이고, 필머의 왕권신수설은 왕의 권력이란 백성들과는 상관없이 신에게 바로 부여받은 것이라는 주장이다.

홉스의 사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의회파에 속한 존 로크에게 영향을 준다. 로크의 사상은 훗날 미국식민지에서 벗어나 근대 국가 체제로 나아가는 이론적 시발점이 된다.

4. 반응

이것이 실행되어 다수의 사람들이 하나의 인격으로 결합되어 통일되었을 때 그것을 커먼웰스(Commonwealth), 라틴어로는 키비타스(Civitas)라고 한다. 이리하여 위대한 리바이어던(Leviathan)이 탄생한다. 아니, 좀 더 경건하게 말하자면 '영원 무궁한 하느님(immortal God)'의 가호 아래, 우리의 평화와 방위를 보장하는 '지상의 신(mortal God)'이 탄생하는 것이다.
리바이어던의 내용은 권력은 하느님이 사람을 지으신 섭리에 따라 생성되는 것이다라는 주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즉, 이는 권력이 하느님이 왕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5] 할당을 해 준 것도, 사람이 사람의 머리에 관을 올려[6] 할당을 해 준 것이 아니라 섭리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그 어느 세력의 편도 들어주지 않는 주장이었다. 결국 홉스는 회색분자로 받아들여젔다. 왕권신수설을 옹호하는 왕당파는 말할 것도 없고 교회[7]도 비난했으며, 심지어 홉스를 무신론[8]라고까지 불렸다. "교회에 의한 기름 부움"은 물론, "사람에 의한 관 씌움"까지 같이 부정했다는 것 때문에 심지어 의회파들까지도 그가 강력한 왕권을 옹호한다며 비난했다. 즉, 왕당파에겐 왕권을 약화시킨다고 까이고 의회파에겐 왕권을 옹호한다고 까이고, 교회 세력에게는 교회의 권한을 부정한다고 까였다.

이런 입장 문제는 이후 계몽주의가 대두되던 시기에도 이어졌다. 그 예로 존 로크는 자신의 사상의 기반을 홉스의 주장에서 상당 부분 가져왔음에도 홉스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실제로 두 사람의 주장은 골자에선 비슷하지만 사상 면에서는 차이가 크다.

5. 여담


[1] 모든 개개인은 서로 다른 개개인들에게 투쟁 상태였다는 것을 뜻한다.[2] 사회계약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회계약설이라는 단어는 홉스보다 후대 인물인 장 자크 루소가 창안한 것이다.[3] 영어로는 'the war of all against all'. 해석하면, '모두가 자기 생존과 이익만을 위해서 무한히 싸우는 극도의 무질서한 상태'.[4] 자연권(자기를 보전할 권리) 제외. 즉, 자연권이란 생명에 대한 권리를 말한다.[5] 왕권신수를 주장하는 파벌의 입장.[6] 의회파를 개 돼지 보듯 하던 절대군주의 입장이다.[7] 홉스는 권력이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존재하는 것이므로 당대 교회가 주장한 영적 권력, 곧 세속군주에게 기름 부울 권한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것이 오히려 하느님의 섭리에 반하는 혹세무민이라 비판했다. 이는 교회를 세속 권력자들을 지도하는 입장이 아니라, 제3자로써 지켜보는 입장으로 선을 긋는 것이었고, 당연히 주변 세속 군주들과 씨름하는게 일상이었던 당대 카톨릭 입장에선 용인하기 어려운 주장이었다.[8] 신앙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냥 비하적 표현이다. 홉스가 유물론적 관점이 강했던 인물이긴 하지만 평생 신자였고 예배, 미사를 비롯해 교회 행사들에 빠진 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