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 퍼디난드 2002-2014 | |
▲ 2002년 계약 당시 | |
소속팀 | <colbgcolor=#ffffff,#191919>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프리미어 리그) |
등번호 | 5 6 (2002-2003) |
기록 | |
312경기 7득점 6도움 | |
89경기 1득점 1도움 | |
2경기 | |
30경기 2도움 | |
14경기 1도움 | |
5경기 | |
1경기 | |
2경기 | |
합산 성적 | |
455경기 8득점 10도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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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리오 퍼디난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경력을 다룬 문서.2. 이적
리즈가 과도한 지출로 인해 재정난에 허덕이게 되자,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퍼디난드는 그해 이적 시장 최다 이적료인 2,900만 파운드에 하필이면 숙적인 맨유로 팔리게 되었다.[1]퍼디난드가 잉글랜드의 당대 월클 수비수로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잘 해왔고 많은 우승을 준 것은 사실이나 이 거래는 비싸게 주고 데리고 왔다는 의견도 많다.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의 "잉글랜드 프리미엄"(자국 선수의 몸값 뻥튀기)이 적용됐을 것이다. 명성과 현금박치기가 상대적으로 딸리는 당시의 맨유는 네스타 영입은 꿈도 꿀 수 없었다.[2]
다만 맨유와 리즈가 리버풀 못지 않은 앙숙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라이벌팀의 핵심 선수를 빼내오는 것이기에 좀 더 많은 이적료를 지불해야 했던 점도 있다. 실제로 아스날에서 로빈 반 페르시를 영입할 때도 벵거는 맨유가 상대라면 원래 책정해놓았던 20M 파운드보다 더 받아야겠다고 버텨서 옵션포함 24M 파운드의 금액으로 팔았다. 1M 달러로 리즈에서 맨유로 이동한 에릭 칸토나의 경우도 있지만 칸토나는 실력과 별개로 그 성깔 때문에 리즈측에서 감당하기 힘들어하던 찰나에 맨유가 지른 거라 적은 이적료로 거래가 성사된 것.
3. 2002-03 시즌 ~ 2004-05 시즌
나중에 수비진 파트너가 될 네마냐 비디치처럼, 맨유 시절 초반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호나우두가 맨유를 관광 보냈을 때 중앙수비수가 누구였는지를 기억해보자. 그래도 이적한 첫 시즌에 팀이 리그 우승과 2002-03 시즌 프리미어 리그 최소 실점에 크게 기여했다.2002-03 시즌: 46경기(선발 45경기) 1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프리미어 리그 | 28 | 27 | 1 | 0 | 1 |
챔피언스 리그 | 10 | 10 | 0 | 0 | 0 |
FA컵 | 3 | 3 | 0 | 0 | 0 |
워딩턴컵 | 4 | 4 | 0 | 0 | 0 |
챔피언스 리그 예선 | 1 | 1 | 0 | 0 | 0 |
합계 | 46 | 45 | 1 | 0 | 1 |
2003년 후반기, 퍼디난드는 의무적 약물 검사에 불참하여 징계를 받게 되었다. 퍼디난드는 이사하느라 까먹었다고 말했고,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퍼디난드에게 8개월 출장 정지를 받게 됐다. 자세한 내용은 사건 사고 문단 참조. 덕분에 맨유는 단단했던 수비가 흔들리며 후반기 리그 3위로 추락했으며, 유로 2004에서 잉글랜드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퍼디난드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3]
2003-04 시즌: 27경기(선발 27경기) 1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프리미어 리그 | 20 | 20 | 0 | 0 | 1 |
챔피언스 리그 | 6 | 6 | 0 | 0 | 0 |
커뮤니티 실드 | 1 | 1 | 0 | 0 | 0 |
합계 | 27 | 27 | 0 | 0 | 1 |
2004-05 시즌: 42경기(선발 42경기) 3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프리미어 리그 | 31 | 31 | 0 | 0 | 2 |
챔피언스 리그 | 5 | 5 | 0 | 0 | 1 |
FA컵 | 5 | 5 | 0 | 0 | 0 |
칼링컵 | 1 | 1 | 0 | 0 | 0 |
합계 | 42 | 42 | 0 | 0 | 3 |
4. 2005-06 시즌
퍼디난드는 05-06 시즌부터 더욱 안정감을 찾아갔고, 출전 수도 자연스럽게 더욱 많아지고 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된다. 나이도 전성기일 나이인지라 더욱 팀의 중요한 선수가 되고 있다. 하지만 팀은 챔스 조별리그 4등으로 광탈하고 리그또한 첼시에 밀려 2위에 머물고 있으며 FA컵또한 탈락하고 만다. 그래도 시즌 후반기에 자신의 영원한 파트너인 네마냐 비디치가 영입되며 둘이서 호흡을 맞추는 시간이 늘었다. 파트리스 에브라도 영입되어 에인세와 경쟁에 들어갔다. 또한 시즌 시작전에는 에드윈 반 데 사르, 박지성 등이 영입되기도 했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팀이 전성기를 달릴 준비를 마친 것이다. 하지만 팀은 끝내 리그 우승 판도를 뒤집지 못 해 준우승에 그치고 아쉽게 리그컵 우승에 그쳤다.2005-06 시즌: 52경기(선발 50경기) 3골 2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프리미어 리그 | 37 | 37 | 0 | 3 | 0 |
챔피언스 리그 | 6 | 6 | 0 | 0 | 0 |
FA컵 | 2 | 1 | 1 | 0 | 1 |
칼링컵 | 5 | 4 | 1 | 0 | 1 |
챔피언스 리그 예선 | 2 | 2 | 0 | 0 | 0 |
합계 | 52 | 50 | 2 | 3 | 2 |
5. 2006-07 시즌
06-07 시즌에는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네마냐 비디치가 실베스트르를 밀어내고 프리미어리그에 적응을 하면서, 퍼디치 조합과 뒤에 받쳐주는 경험 많고 거대한 골키퍼 에드윈 반 데 사르는 수많은 팀들의 공격진을 좌절하게 만들었다. 팀이 수비적으로 안정되고 높이도 높아졌다. 또한 이 시즌부터 반니가 없었지만 호날두가 포텐이 터지고 마이클 캐릭이 영입되는 등 많은 보강이 이루어져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하고 있다. 리그에서 첼시,리버풀,아스날과 경쟁 중이며 간만의 우승이 보이고 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8강에서 1차전에는 2:1로 패했으나 2차전에서 무려 팀이 7골을 뽑아내며 7:1로 승리하여 4강에 진출했다. 4강에서 1차전 3:2 승리했으나 2차전에서 3:0으로 패하며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그래도 그의 활약과 많은 선수들에 힘입어 정말 간만의 리그우승을 거두었고 FA컵도 우승은 실패했으나 결승에 진출했었다. 퍼디난드는 본인의 전성기가 팀의 전성기와 겹쳤다.
2006-07 시즌: 49경기(선발 48경기) 1골 1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프리미어 리그 | 33 | 33 | 0 | 1 | 0 |
챔피언스 리그 | 9 | 8 | 1 | 0 | 0 |
FA컵 | 7 | 7 | 0 | 0 | 1 |
합계 | 49 | 48 | 1 | 1 | 1 |
6. 2007-08 시즌
네빌의 장기부상으로 주장 완장을 다는 날이 많아졌고 그의 활약또한 여전히 일취월장한다. 팀은 역대급 페이스를 달리고 있고 본인또한 정말 많이 출전하고 있다. 비디치 또한 지난 시즌보다도 더욱 좋은 경기력을 펼치며 철벽의 센터백 듀오를 유지 중이다. 테베스와 호날두 그리고 루니가 주전 공격수로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로테이션으로 활약하는 미드필더진, 그리고 에브라-비디치-퍼디난드-브라운의 포백에 반 데 사르가 수문장으로 활약하니 당연히 상대하는 팀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다.시즌 중반 리버풀과의 리그 경기에서는 비디치와 함께 철벽같은 경기력으로 무실점에 큰 기여를 했고 3:0 대승했다.
챔피언스리그는 8강에서 또 다시 로마를 상대로 쉽게 이기며 4강에 진출하여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1차전 0:0 무승부, 2차전은 스콜스의 골로 바르샤를 꺾으며 1999년 이후 첫 결승전에 진출했다. 사실 퍼디치의 이날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엄청났고 어쨌든 퍼디난드 개인 첫 챔스 결승. 리그 최종경기까지 가는 끝에 리그 우승이 확정되는데 최종전에서 2:0 승리를 거두며 첼시를 따돌리며 2시즌 연속 우승을 거둔다.
첼시를 꺾은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맨유의 주장을 맡은 건 퍼디난드였고 2008년 FIFA FIFPro 월드 XI에 들기도 했다. 팀은 리그,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더블을 달성했다.[4]
2007-08 시즌: 51경기(선발 51경기) 3골 1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프리미어 리그 | 35 | 35 | 0 | 2 | 1 |
챔피언스 리그 | 11 | 11 | 0 | 1 | 0 |
FA컵 | 4 | 4 | 0 | 0 | 0 |
커뮤니티 실드 | 1 | 1 | 0 | 0 | 0 |
합계 | 51 | 51 | 0 | 3 | 1 |
7. 2008-09 시즌
08-09 시즌 또한 비디치와 함께 주전으로 활약하게 되는데 잔부상으로 결장 수가 조금 늘었으나 중요 경기에는 빠지지 않고 출전 중이다. 비디치의 뚝배기 또한 강력해졌다. FIFA 클럽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나왔으며 결승에서 5:3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한다. 영국으로 돌아오자마자 펼쳐진 첼시와의 경기에서 비디치, 루니, 베르바토프의 골로 3:0 승리했다.이후 리그컵을 우승하며 트로피를 한 번 더 들어올렸고 리그에서 리버풀이 끝까지 쫓아오며 맨유가 흔들리기도 했지만 어린 선수들의 활약으로 극장골 등 꾸역승을 거두며 선두자리를 계속해서 지킨다.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는 아스날을 만나 홈에서 승리를 거두고 2차전에서도 박지성의 선제골과 호날두의 멋진 2골로 3:1승리하며 2연속 결승에 진출했다. 리그도 끝내 우승을 거두며 3연속 리그 우승을 성공했다. 특히 비디치와 함께 공중볼 싸움에서 정말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강했다.
로마에서 펼쳐진 챔스 결승에 선발 출전했으나 팀은 에투의 골과 메시의 헤딩골로 바르셀로나에 2:0으로 패배해 준우승에 그쳤다.
2008-09 시즌: 43경기(선발 43경기)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프리미어 리그 | 24 | 24 | 0 | 0 | 0 |
챔피언스 리그 | 11 | 11 | 0 | 0 | 0 |
FA컵 | 3 | 3 | 0 | 0 | 0 |
칼링컵 | 1 | 1 | 0 | 0 | 0 |
커뮤니티 실드 | 1 | 1 | 0 | 0 | 0 |
클럽 월드컵 | 2 | 2 | 0 | 0 | 0 |
슈퍼컵 | 1 | 1 | 0 | 0 | 0 |
합계 | 43 | 43 | 0 | 0 | 0 |
8. 2009-10 시즌
09-10 시즌부터 잔부상(특히 등부상)으로 인해 퍼디난드는 자주 결장을 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간간히 맡던 주장직도 내놓고 말았다. 원래 주장은 게리 네빌, 부주장은 라이언 긱스지만, 이 둘이 부상과 나이 때문에 꾸준히 출장을 할 수가 없었고, 따라서 퍼디난드가 주장 완장을 차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맨유에서 정식으로 주장으로 임명된 적은 없고, 네빌 이후 정식으로 맨유의 주장이 된 것도 파트너인 네마냐 비디치였는데 이는 과거 첼시 이적 문제로 시끄러웠던 때에 퍼거슨의 신임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또한 이 때부터 가끔씩 정신 놓은 플레이를 보이기도 하는데 특히 리그 경기 중 올드 트래포드에서 펼쳐진 맨체스터 더비에서의 패스미스로 인해 엄청난 욕을 먹었다.[5] 출전 수가 리그에서 20경기가 채 안될만큼 부상으로 인한 결장이 잦았으며 퍼디난드가 없는 맨유 수비진은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이 시즌에 팀은 리그컵을 우승하나 챔스 8강, 리그 2위에 그친다.
2009-10 시즌: 21경기(선발 20경기)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프리미어 리그 | 13 | 12 | 1 | 0 | 0 |
챔피언스 리그 | 6 | 6 | 0 | 0 | 0 |
칼링컵 | 1 | 1 | 0 | 0 | 0 |
커뮤니티 실드 | 1 | 1 | 0 | 0 | 0 |
합계 | 21 | 20 | 1 | 0 | 0 |
9. 2010-11 시즌
2010년 여름에 당한 무릎 부상 때문에 10-11 시즌 초반에 나오지 못했다. 확실히 퍼디난드가 다시 출전하기 시작한 후로는 수비진이 안정된 모습이 보인다.시즌 중후반기에는 다시 퍼디난드가 중용되면서 비디치의 부담도 줄어들었고 다시 탄탄해진 수비를 유지중이다. 리그는 경쟁팀들의 부진으로 승점 단 80점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챔스에서도 라울 곤살레스가 있는 샬케 04를 만나 4강 1차전 2:0, 2차전 4:1로 꺾으며 결승에 진출했다.
그리고 챔스 결승에 진출했고 바르셀로나와 다시 한 번 붙게 되었으나 3:1로 패배하여 리그 우승에 만족해야했다. 이제 퍼디난드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앞으로 고질적으로 겪게 될 등 부상을 어떻게 최소화시켜 나갈지가 가장 큰 숙제가 되었다.
2010-11 시즌: 29경기(선발 29경기)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프리미어 리그 | 19 | 19 | 0 | 0 | 0 |
챔피언스 리그 | 7 | 7 | 0 | 0 | 0 |
FA컵 | 2 | 2 | 0 | 0 | 0 |
칼링컵 | 1 | 1 | 0 | 0 | 0 |
합계 | 29 | 29 | 0 | 0 | 0 |
10. 2011-12 시즌
11-12시즌 시작 전 커뮤니티 실드에서 3대1로 승리하며 기분좋게 시작하나 리그 개막전부터 파트너인 비디치가 큰 부상을 당하며 나가리되었다. 결국 새로 온 필 존스가 중용되며 같이 활약하였다.그러나 06-07 시즌부터 올 시즌까지 봤을 때 가장 팀이 부진한 모습을 보였는데 아스날을 상대로 8대2로 승리하기도 하였으나 맨시티 를 상대로 6대1로 패하기도 하는 등 약간 행보가 퐁당퐁당의 면모를 보이며 전반적으로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특히 챔스에서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여 유로파리그로 내려간데다 거기서마저 16강에서 탈락하는 등 분위기가 썩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FA컵은 32강에서 리버풀을 만나 박지성이 득점을 기록했지만 1:2로 패하여 탈락, 리그컵 또한 탈락하며 리그만 남은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리그도 맨시티의 가세로 우승을 노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또한 주전의 노쇠화와 새로 입단한 선수들의 부진이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었다. 특히 수비진의 문제가 심각했는데 비디치가 리그에서만 10경기를 소화하지 못 했고 오른쪽 풀백도 확고한 주전 선수가 없었다.
리그에서 5경기가 남았을 때 맨시티를 8점차까지 따돌리며 우승에 가까워지는 듯 했으나 이후 4경기에서 1승 2무 1패를 기록하며 다시 2등으로 추락하였고 최종전에서 골득실 차이로 결국 준우승을 하고 만다. 하지만 퍼디난드 본인은 리그에서 30경기에 출전하는 등 부상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이며 다시 좋은 활약을 펼쳤다.
2011-12 시즌: 38경기(선발 37경기)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프리미어 리그 | 30 | 29 | 1 | 0 | 0 |
챔피언스 리그 | 4 | 4 | 0 | 0 | 0 |
유로파 리그 | 2 | 2 | 0 | 0 | 0 |
FA컵 | 1 | 1 | 0 | 0 | 0 |
커뮤니티 실드 | 1 | 1 | 0 | 0 | 0 |
합계 | 38 | 37 | 1 | 0 | 0 |
11. 2012-13 시즌
퍼거슨의 마지막 시즌이며 본인도 나이가 이제 많은지라 점차 맨유에서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주전으로 나와 활약 중이며 비디치도 부상에서 회복해 다시 주전으로 나오고 있다. 로빈 반 페르시가 영입되는 등 여러 영입이 이루어졌고 특유의 꾸역승으로 리그 선두 유지 중이다. 챔스는 16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만나 합산점수 2:3으로 탈락한다. 호날두와의 간만의 만남이었다.2012-13 시즌: 34경기(선발 31경기) 1골 1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프리미어 리그 | 28 | 26 | 2 | 1 | 1 |
챔피언스 리그 | 4 | 3 | 1 | 0 | 0 |
FA컵 | 2 | 2 | 0 | 0 | 0 |
합계 | 34 | 31 | 3 | 1 | 1 |
12. 2013-14 시즌
그러나 13-14 시즌 역시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다시 부상으로 시름시름 앓고 경기에 출전하는 횟수가 적어져 점차 주전에서 밀리는 중이다. 팀은 역대급 망 페이스다. 에브라-비디치-퍼디난드 중 파트리스 에브라만 꾸준히 나오고 있다. 또한 퍼디난드의 경기력도 급격히 떨어지면서 나올 때마다 불안불안하다. 결국 맨유는 퍼디난드와 계약 연장을 하지 않음을 내비쳤고, 2014년 여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계약이 만료되었다. 7월 4일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와 협상이 완료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현재 월드컵 중계차 브라질에 가 있는 퍼디난드가 복귀하면 바로 입단식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2013-14 시즌: 23경기(선발 21경기)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프리미어 리그 | 14 | 12 | 2 | 0 | 0 |
챔피언스 리그 | 7 | 7 | 0 | 0 | 0 |
FA컵 | 1 | 1 | 0 | 0 | 0 |
캐피탈 원 컵 | 1 | 1 | 0 | 0 | 0 |
합계 | 23 | 21 | 2 | 0 | 0 |
[1] 이는 당시 릴리앙 튀랑이 지니고 있던 역대 수비수 최다 이적료를 재차 경신한 금액이었다.[2] 2002년경 세계축구의 추세는 이탈리아 세리에 A였으며 자연스럽게 상위권 팀인 AC 밀란, 유벤투스 등이 세계 최고의 구단으로 꼽혔다. 당시 유벤투스는 수비진에 릴리앙 튀랑, 치로 페라라 등이 버티고 있어서 네스타나 스탐을 굳이 비싼돈 주고 영입할 필요가 없었다. 인테르의 경우엔 3인자 이미지가 강했지만 언제든지 우승 가능한 저력이 있던 팀이였다.[3] 아이러니하게도 당대 최고의 센터백으로 꼽히던 퍼디난드는 2004년 출장정지 징계와 2008년 잉글랜드의 유로 예선 조기 탈락과 같은 악재가 겹쳐 단 한번도 유로 본선 대회에서 뛰어본 적이 없다.[4] 여담으로 첼시와의 챔스 결승전 당시 승부차기에서 첼시의 7번째 키커였던 아넬카의 실축으로 맨유의 우승이 확정되었는데, 만약 아넬카가 성공했으면 그 다음 맨유의 8번째 키커는 자신이었다고 밝혔었다.[5] 이 때 마이클 오언의 극장골로 4:3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