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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5 22:58:44

리차드 위트컴

리차드 시버리 위트컴
Richard Seabury Whitcomb
파일:1000126306.jpg
출생 1894년 12월 27일
미국 캔자스주 토피카
사망 1982년 7월 12일 (향년 87세)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기지
복무 미합중국 육군
최종 계급 준장
복무 기간 ?~1954
학력 와이오밍 대학교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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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군인.

2. 생애

미국 캔자스주 토피카에서 태어나 와이오밍 대학교 ROTC 출신으로 육군 소위에 임관해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령으로 아이슬란드에 있다가 영국, 프랑스에서 복무했다. 6.25 전쟁 당시 계급은 준장이였으며, 제2군수사령관 보직으로 1953년 대한민국에 부임했다.

1953년 11월 27일, 부산역전 대화재로 인해 2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3만여 명의 피란민이 집을 잃게 되자 위트컴은 군법을 어기고 피란민들에게 텐트와 먹을 것을 나눠준 것은 물론 학교, 병원, 이주주택, 고아원을 지어주었다. 이에 미국에서 군법을 어긴 것에 대한 청문회를 열었고, 위트컴은 청문회에 출석해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의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라고 말하며 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추가 군수품 지원까지 받아낸 것은 덤. 이후 1954년 준장으로 퇴역했다.

전후 환자가 넘쳐나자 AFAK(미군대한원조) 기금을 지원받아 160병상을 갖춘 3층짜리 건물을 지어 준 것이 메리놀병원이다. 건축비가 모자라자 휘하 장병에게 '한국사랑기금'이란 이름으로 월급의 1%를 기부하자고 호소했다. 부산 유엔평화기념관에는 "가장행렬을 해서라도 기금을 모으겠다"라며 군복 대신 갓과 도포 차림으로 거리를 누비던 위트컴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메리놀병원뿐만 아니라 성분도병원(현 부산성모병원), 복음병원(현 고신대학교 복음병원) 설립에도 큰 기여를 했다.

위트컴은 교육 인프라 구축에도 앞장섰다. 부산 남구 대연동에서 개교한 부산대학(현 부산대학교)이 수산과대학과 인문과대학의 내부 갈등 끝에 수산과대학은 다시 분리되어 부산수산대학(현 부경대학교)으로 재개교해 대연동에 남고, 부산대학은 갈 곳을 잃고 떠도는 신세가 되자 위트컴은 이승만 대통령경상남도지사에게 요청하여 새로운 캠퍼스 부지를 금정구 장전동(현 부산대학교 부산캠퍼스)에 마련해주었다. 그 외에도 당시 부산 대중교통의 시종점이었던 온천장(현 부산은행 온천동지점 자리)에서 부산대 구정문까지 도로가 없어 학생들이 통학에 불편을 겪었는데, 위트컴의 지시로 미군 제434공병부대가 온천장-부산대 구간 1.6km의 진입도로를 닦았다.

그 후로도 부산에 머물면서 재단을 세워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들의 유해 송환을 위해 노력하고 고아들을 돌보다가 1982년 용산기지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가 남긴 유언에 따라 시신은 부산의 재한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었다. 유엔기념공원에 있는 미군 매장자 32구중 유일한 장성급 장교이다.

2022년 11월 8일,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제1등급 국민훈장인 무궁화장을 수여받았다.

2023년 11월 11일, 부산 남구 평화공원에 그의 업적을 기리는 조형물이 세워졌다. 부산 시민 1만8300여 명이 3억6500만원을 모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3. 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