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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리트펠트 슈뢰더 하위스 Rietveld Schröderhuis | 2010년 싱겔 운하 내 암스테르담의 17세기 원형 운하 지역 Grachtengordel van Amsterdam | 2014년 판넬레 공장 Van Nellefabriek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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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유산 | 2009년 바덴 해 Waddenzee | |||
* : 본래 정식 명칭은 『암스테르담 방어선(Defence Line of Amsterdam)』이었으나, 2021년에 유산의 경계가 상당히 확장되면서 유산 명칭이 『Dutch Water Defence Lines』로 변경되었다. 한국어 공식명칭에는 반영되지 않은 상태이나 영어 ・ 네덜란드어 공식 명칭을 따라 현재 명칭을 번역하여 적용한다. |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5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0000> | 유네스코 세계유산 UNESCO World Heritage | |
<colbgcolor=#000><colcolor=#FFF> 이름 | 한국어 | 리트펠트 슈뢰더 하위스 | |
네덜란드어 | Rietveld Schröderhuis | ||
영어 | Rietveld Schröderhuis (Rietveld Schröder House) | ||
프랑스어 | Rietveld Schröderhuis (Maison Schröder de Rietveld) | ||
국가·위치 | [[네덜란드| ]][[틀:국기| ]][[틀:국기| ]] 위트레흐트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지정번호 | 965 | ||
등재연도 | 2000년 | ||
등재기준 | (ⅰ)[1], (ⅱ)[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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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 1924년에 지어진 주택.건축주인 트루스 슈뢰더-슈레더(Truus Schröder-Schräder)는 변호사와 결혼해 평범하게 살던 약사였는데 33살에 젊은 미망인이 되었다. 그때까지 3명의 어린아이와 함께 1800년대에 지어진 큰 저택에 살고 있었던 그녀는, 그러나 몸집만 너무 클 뿐인 저택이 싫어져서 기능적이면서 작고 잘 짜여진 주택을 갖고 싶었다.
건축가 게리트 리트펠트(Gerrit Rietveld)와는 주택을 짓기 3년 전 주택 개축을 맡기면서 알게 되었다.
2. 건축가 리트펠트
게리트 리트펠트는 건축가보다는 가구디자이너로 유명하다. 피트 몬드리안이 일으킨 전위적인 예술운동 <더 스테일>에 참가한 그는 그 예술운동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적색과 청색의 의자>를 만들게 된다.기존의 개념을 뒤엎은 나머지 찬사와 함께 욕을 더럽게 얻어먹은(...) 작품이다. 그러나 80년 전 작품인 이 의자는 지금 봐도 세련되어 보인다. 감성 뿐만 아니라 탄탄한 이론적 토대를 갈고닦아가며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3. 건축
건축주인 슈뢰더 부인이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과 취향, 미학을 또렷하게 관철시켰기 때문에 당시 보기 드물게 아주 가사노동과 아이들의 생활이 편리한 주택이 되었다. 조망이 좋은 2층에 거실과 식당, 침실을 현대의 원룸처럼 한 공간에 통합했고, 밤이 되면 칸막이로 각자의 침실을 분리할 수 있었다. 최초의 가변적 건축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4]
현대의 주택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다!
동시에 미적인 측면에서 몬드리안의 회화와 같은 미니멀한 구성이 그대로 3차원으로 옮겨지는 것이 컨셉이었고, 성공적으로 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층과 2층을 합해도 40여 평인 아주 작은 이 주택은 유명한 근대건축가들의 주택답지 않게(...) 슈뢰더 부인은 이 집에 아주 만족해했다.
여담으로 리트펠트와 슈뢰더 부인은 이 집을 같이 설계한 것을 계기로 연인이 되어 1964년 리트벨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집에서 같이 살았으며 그 후로도 슈뢰더 부인은 1985년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집에서 계속 살았다.
4. 영향과 평가
미니멀리즘을 탄생시킨 작품들 중 하나로 예술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0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실내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이 건물을 그리고 만드는 것이 과제로 죽어라 나온다고 한다. 그만큼 현대 디자인과 건축의 기본 틀을 제시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