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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5 20:11:42

마라위 전투

마라위 전투
Pagkubkob sa Marawi
Siege of Marawi
파일:2163CC37594FC45728.jpg
공습으로 불타는 마라위의 건물
기간
2017년 5월 23일 ~ 10월 23일
장소
필리핀 민다나오섬 무슬림 자치주 마라위
교전 국가 및 세력

[[필리핀|]][[틀:국기|]][[틀:국기|]]
모로 민족 해방 전선
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틀:국기|]][[틀:국기|]]
아부 사야프
마우테 분파
방사모로 이슬람 자유전사
안사르 칼리파 필리핀
지원 국가

[[미국|]][[틀:국기|]][[틀:국기|]]

[[중국|]][[틀:국기|]][[틀:국기|]]

[[호주|]][[틀:국기|]][[틀:국기|]]

[[이스라엘|]][[틀:국기|]][[틀:국기|]]
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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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명칭
]][[틀:깃발|
깃발 명칭
]][[로드리고 두테르테|
로드리고 두테르테
]](군통수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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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델핀 로렌자나(국방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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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에두라르도 아뇨(군 참모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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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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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칼리토 갈베즈 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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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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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롤란도 바우티스타(육군참모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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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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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로널드 델라 로사(경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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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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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깃발|]] 조엘 가르시아(해안경비대 사령관)
ISIL
이스닐론 하필론(아부 사야프 지도자)
마흐무드 아마드(부사령관)
압둘라 마우테
오마르 마우테
병력
필리핀 육군: 9,500명
필리핀 공군: 500여 명
1,000명
피해
필리핀군
-168명 사망[1]
-1,400명 이상 부상
-민간인 87명 사망
978명 사망
12명 생포[2]
결과
필리핀군의 승리

1. 개요2. 배경3. 결과4. 기타
4.1. FA-50의 활약
5.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2017년 필리핀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이자 ISIL의 동아시아 지부를 자처한 마우테 그룹아부 사야프마라위를 점령해 벌어진 필리핀군ISIL 사이의 전투이다.

2. 배경

파일:1280px-Marawi_City_Skyline.jpg
마라위 전경

민다나오섬은 본토와 달리 이슬람교 신자들이 다수인 지역으로 이전부터 모로족의 독립국가 '방사모로'를 요구하는 분리주의 운동이 거셌다. 이 때문에 필리핀 정부에 대한 반감이 큰 지역으로 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MILF)라는 극단주의 반군이 활동했으며, 1989년에는 알카에다와 연계하여 활동하는 아부 사야프(ASG)라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이자 해적단이 활동하기 시작해 치안이 극도로 악화되었다.[3] 아부 사야프는 민간인까지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무차별 테러와 수박 겉핥기식 이슬람 해석, 누구보다 이득에 충실한 행실로 악명을 높이며 현지 민심은 물론 무슬림들의 지지까지 잃는 한편 정부와 협상하기 시작한 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과도 적대관계에 놓여 있었다.

지리적, 문화적으로 적대세력에게 십자포화당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자기들보다 큰 조직인 알카에다의 힘을 빌려 같이 행동하던 아부 사야프는 2013년 이후로 ISIL이 전 세계에 이슬람 칼리프 국가 건설을 논하며 발흥하기 시작하자 그 명성에 묻어가기 위해 2010년대 들어 영 세를 못 추던 알카에다를 뒤통수치고 ISIL과 가까워져 IS의 동아시아(필리핀) 지부를 자처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모로해방전선에서 갈라져 나온 조직인 방사모로 해방전선, 또는 방사모로 이슬람 자유전사단(BIFF)이 아부 사야프와 합동해 IS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들 BIFF 중에서도 마우테 분파는 이슬람 과격파 중 과격파 조직으로, MILF 게릴라 출신자와 국외에서 참가한 자들로 구성되었는데 그 지도자는 압둘라 마우테로 그는 동생인 오마르 마우테와 함께 2013년에 이 조직을 만들었는데 초기에는 소규모 조직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5년 마우테 형제는 타 무장조직과 IS에 충성을 맹세한 후, 'IS 라나오 지부'를 자처하며 서로간 지원과 연대를 강화했다. 필리핀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상급고문인 애쉴리 아세딜로는 IS가 마우테의 충성맹세를 받아들인 흔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3. 결과

파일:GettyImages-1145566753_edit.jpg

파일:41090069_905.jpg

필리핀군이 이겼다고 하지만 그야말로 상처뿐인 승리였다. 병력 수만 해도 처음에는 3,000명 정도 파병했다가 고전하여 2차례 증강을 이뤄 3배가 넘는 9,500여명이 파병되었으며 공군까지 합치자면 마우테 반군의 10배에 이르는 압도적인 병력 수였음에도 5달씩이나 전투를 벌였으며 필리핀군 장갑차와 차량들이 다수 파손당하는 큰 피해를 당해야 했다. 나중에는 필리핀 홀로 도저히 상대못하겠다고 국제적 지원까지 호소할 지경이었다.

1천 명 남짓하고 바주카와 수류탄 정도 화기에 일부 IED 자체 무기와 총기가 무장 대부분인 반군을 상대로 1,500명이 넘는 아군 사상자를 내야했으니 결코 피해가 적은 게 아니다. 국제적 호소로 미국러시아, 중국, 이스라엘의 군사적 지원을 비롯하여 한국튀르키예, 호주의 의료지원 및 싱가포르 공군 공중지원까지 그야말로 엄청난 다국적 지원을 받았음에도 추가지원도 없이 시가전을 벌이던 반군에게 고전했다.

이는 민다나오 주민들이 마우테를 추종해서가 아니라 필리핀 정부에 대한 증오로 인하여 반군을 지지한 현지인들도 많았기 때문. 아울러 필리핀군 장비 자체의 열악함같은 여러 문제도 드러났다.

장갑차도 3대나 파괴되었는데 특히 경전차의 손실이 컸기에 경전차에 방탄장갑이 아닌 나무판자와 철판 등을 2중장갑처럼 덕지덕지 매달고 나오는 상황을 보여줬다. 또한 FV101 스콜피온 경전차가 전부이며 시가전에 투입된 나머지 기갑차량들은 M113 장갑차 따위에 화력지원을 위해 25mm 기관포나 무반동포를 설치할 정도로 열악했다.

단, 시가전은 원래 방어자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고 공격자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한 전투인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마라위 전투는 도시를 먼저 점령해서 요새화하여 방어체계를 구축했던 반군을 필리핀군이 공격한 전투로서, 필리핀군이 선진국 군대 수준의 장비지원과 훈련을 받은것도 아닌 이상 피해가 반군보다 큰게 일반적이다. 특히 군사강국이었다면 공군과 포병화력을 잔뜩 동원해 도시를 방어하는 적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었겠지만 필리핀군은 그렇게 할 수 없으므로[4] 절대다수의 전투를 보병부대 스스로가 알아서 해야했다. 이 상황에서 필리핀군이 훨씬 큰 피해를 입는건 당연한 일로, 다른나라 군대가 같은 조건에서 싸웠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5] 비슷한 것이 2000년대 가자 지구에서 압도적인 이스라엘군조차도 시가전과 게릴라전을 벌이는 팔레스타인 저항군에게 고전해야 했으며 150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서 군 고위간부들이 책임지고 사임해야 했다.

그리고, 마라위 시는 그야말로 초토화가 되어버렸다. 피해 규모도 엄청나 5년이 지난 후에도 마라위 시 자체의 복구공사도 아직 다 못한 상태이다. 결국, 필리핀으로서는 피로스의 승리같은 결과만 낳았으며 또 이런 반군의 도시 점거가 있다면 필리핀의 경제적 몰락이 있을 것이라는 냉소적인 전망까지도 있다.

2022년 2월에 호주 internationalaffairs는 마라위 주민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아직까지도 마라위에 살던 수천여명 시민들은 실향민이 되어 보상 한푼조차 받지 못하여 대피소에서 살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럼에도, 두테르테 정권은 프로파간다로 마라위에 있는 모스크를 화려하게 재건하고 95% 도시 복구공사를 이뤘다고 자랑하고 있다. 정작, 겉만 복구했지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실향민들이 더더욱 두테르테 정권에 분노하고 있음에도.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이 전투에서 마우테 형제는 물론 행적이 오리무중이던 아부 사야프의 악명높은 두령 이스닐론 하필론까지 한 번에 사살당하면서 당시까지만 해도 ISIL이 아랍 본진에서 연합군들에게 연이어 대패하면서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던 ISIL의 중동에서 동남아시아로의 세력 이동이 저지당해 무산되었다는 점이다.

4. 기타

4.1. FA-50의 활약


이 당시 FA-50PH 전투기가 70여 회 출격해 반군 격퇴에 일조하면서 FA-50이 실전에 투입된 전투 중 가장 잘 알려진 전투가 되었다.[6]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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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분쟁 교전국
<colbgcolor=#CE1126> 필리핀 혁명
,1896 ~ 1898,
<colbgcolor=#f5f5f5,#191919> 파일:스페인 국기(1785–1873, 1875–1931).svg 스페인 제국
미국-필리핀 전쟁
,1899 ~ 1902,
파일:미국 국기(1896-1908).svg 미국
제2차 세계 대전
,1941 ~ 1945,
태평양 전쟁
,1941 ~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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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1950 ~ 1953,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베트남 전쟁
,1964 ~ 1969,
파일:베트남 국기.svg 북베트남 파일: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기.svg 베트콩
마라위 전투
,2017,
파일: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국기.svg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



[1] 이 중에서 12명이 아군의 오인 사격으로 사망했다.[2] 필리핀군측 발표[3] 이들이 극성을 부리는 바실란, 타위타위, 잠보앙가, 술루 제도 등은 대한민국 정부에서 여행금지로 지정한 지역이다.[4] FA-50을 비롯한 필리핀 공군이 열심히 CAS 등의 화력지원을 뛰었고 그 외에도 다른 나라의 지원을 받았다곤 하지만, 그 정도는 시가전에서 턱없이 부족한 화력이다. 사실 시가전에서 공격자에 대한 방어자의 우위를 상쇄하고 싶다면, 공격자에게 대규모 포병과 공군 전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가지에 대규모 포격과 공습을 가하겠다는 건 민간인이 대량으로 학살당한다는 뜻이기에 쉽사리 꺼낼 수도 없는 카드이다.[5] 이 경우 정답에 가까운 전략은 민간인들을 전부 대피시킨 후 반군만이 남은 도시를 공격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술돼있듯, 주민들이 필리핀 정부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큰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런 전략을 쓸 수 없었다.[6] 최초의 실전 투입은 2016년에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