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마융둥(麻永东, Má Yŏngdōng) |
출생 | 1989년 1월 15일, 중화인민공화국 닝샤 후이족 자치구 |
범죄 유형 | 대량살인 |
사망 | 2014년 10월 16일 (향년 25세), 중화인민공화국 |
신체 | 165~168cm |
민족 | 후이족 |
사인 | 약물 주사형 |
1. 개요
2013년 10월 14일 저녁, 닝샤 후이족 자치구 펑양현의 한 농민인 란유부(兰油布)의 일가족 7명이 살해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공안은 란유부 일가족 살인사건의 용의자는 란유부의 사위인 마융둥임을 알게 되었으며 결국 10월 18일, 우충시 리통구 남문에서 용의자인 마융둥을 체포했다. 마융둥은 범행을 인정했으며 대량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 받아 사형에 처해졌다.2. 일생
마융둥은 1989년 1월 15일에 태어난 후이족으로 중학교 졸업 후, 2007년에 군대에 입대해서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있는 전투복 생산기지에서 2년간 복무했었다. 2009년 전역 후, 집에서 50km 떨어진 왕와(王洼) 석탄 광산에서 광부로 일을 했고 6만 위안을 대출해서 작은 집을 하나 샀다. 그리고 마융둥은 란슈잉(兰秀英)이라는 여자와 연애를 했는데 원래 둘은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같이 나온 동창으로 사귀다가 결혼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란슈잉은 결혼을 위해 다니던 전문대학까지 자퇴했으며 마융둥과 같이 광산 구역에서 같이 살며 1년후에는 아들을 낳았다. 그때까지 별일은 없었고 마융둥은 2013년 6~7월 쯤에는 광부 일을 관두고 부모님집에 돌아와서 아내랑 아들이랑 같이 거주하며 농부로 살기 시작했다.3. 발단
하지만 이때부터 마융둥은 아내와의 불화가 심해졌는데 마융둥의 부친인 마구이저우(麻贵周)에 따르면 마융둥의 아내랑 처가집 식구들이 씀씀이가 너무 커서 아들인 마융둥이 힘들어 했다고 한다. 특히 아들은 광산에서 월 3000 위안을 받았는데, 처가집 식구들이 워낙 씀씀이가 커서 그 돈으로는 자신의 가족 3명을 부양하기에도 벅찼다고 했다. 마융둥의 동생이 대학에 입학했을 때에도 마융둥은 어떻게든 동생의 학비를 대주려 했지만, 사정을 아는 동생은 형의 돈을 거절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자 마융둥은 동생에게 공부할 책을 사는데 보태쓰라며 돈을 주고 갔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도 아내와 처가집 식구들은 쇼핑을 하며 사치를 부리고 지냈다고 한다.(이것은 살인자와 그 가족의 주장이다)2013년 8월 19일, 마융둥 부부는 말싸움을 하기 시작했고 다시 마융둥 부친의 증언에 의하면 아들 마융둥은 일자리 근처에 집을 사려했는데 몇 천 위안이 부족했다고 한다.[1] 어쨌든 여차저차 몇 만 위안을 빌려서 결국 집을 사고 2만 위안은 아내에게 줬다. 그리고 남은 1만 위안으로 새끼 양 20마리를 사고 마융둥 자신은 욕망은 버린 채 생계에 힘 썼다. 란슈잉의 증언에 의하면 자기는 그 2만 위안 중 1만 위안은 남기고 5000위안씩 그녀의 부친인 란유부와 남편 마융둥에게 줬다고 한다. 또 하루는 마융둥은 돈을 찾았는데 현금 1만 위안과 은행카드가 없어진 것을 알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돈은 아내가 친정에 들릴 때 자기가 가져다 놨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한테 말도 안하고 아내가 독단으로 한터라 마융둥은 아내한테 화가났고 이런 것들이 계기가 되어 부부관계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2013년 8월 18일에 마융둥은 이 일로 아내와 대판 싸우고 장인어른인 란유부의 집에 찾아가서 그 돈을 갚으라고 했고 장인이 거부하자 결국 서로 싸우기까지 했으며 아내와도 관계가 더욱 나빠져 부부싸움까지 하고만다. 하루는 란유부의 딸이자 란슈잉이 아버지 란유부한테 찾아와 이런 상황에 힘들어 목 놓아 울고 그랬는데 란유부가 딸에게서 멍과 타상 흔적을 발견하여 마융둥이 아내와 싸우다가 화가 치밀어 아내를 때린것을 알게된다. 그래서 딸이 시댁으로 돌아갔을때 그날 밤 11시에 란유부는 마융둥에게 전화를 걸어 딸이 치료받을 수 있게 친정에 딸을 보내달라고 했다.
당연히 별거임을 알게된 마융둥이 거부하면서 아내랑 장인과 크게 싸우게되었으며 란씨 집안은 딸을 병원으로 데려다 놓으려 분투하고 마씨 집안은 이를 계속 막았다. 결국 란씨 집안과 친분이 있던 동네 파출소 공안이 사정을 듣고는 찾아와서 부부와 두 집안을 화해를 시키려 노력했고 결과는 양측 모두 란슈잉이 병원에 가서 진료 받는것에 동의했다. 이에 마융둥도 몇천 위안을 빌려 와 아내의 병원비를 마련했다. 하지만 문제는 란슈잉이 그 사이에 남편과 마씨 집안에 말도 안하고 친정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래서 이를 알게 된 마융둥은 격분하여 도끼를 들고 처갓집으로 가서 아내가 멋대로 친정에 간것에 화를 내며 장인에게 아내를 돌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란유부는 거부하였고 언쟁을 하면서 격해지다가 나중에는 삽을 들고 사위와 대치하며 싸우기 직전으로 갔다. 소란을 듣고는 이웃 마을 사람들이 와서 말렸기에 두 사람은 무기를 거두었지만 란유부가 마융둥의 요구를 거절하고 란슈잉도 가지 않겠다고 하여 마융둥이 격분하여 화를 내어 상황이 악화되었다. 장인이 아내를 돌려줄 생각이 없어보이자 마융둥은 곁에 있던 마을 촌장에게 돈을 쥐어가며 화해를 부탁했다. 이에 촌장도 승낙하고 중재를 하여 아내가 시댁에 돌아오게 하여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마융둥에게선 매일 매일이 전쟁이였으며 부부관계도 나아지지않고 악화되기만 했고 불화는 최고조에 달했다. 이는 나중에 비극으로 변하고 만다.
4. 사건 당일
2013년 10월 14일, 마융둥은 곧 겨울이 오므로 새끼 양들이 동사하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동굴집을 고치고 있었다가 나지막하게 아내 란슈잉에게 동굴집을 고칠 돈이 필요하니 장인에게 몇 천 위안만 빌려 와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이를 들은 란슈잉은 오히려 화를 내며 마융둥에게 욕을 퍼부었고 욕을 듣은 마융둥은 화가났지만 참으면서 말 없이 동굴집을 고쳤다. 하지만 아내가 화낸다고 아들한테 밥을 주지않아 아들이 울자 마융둥은 아내한테 밥을 주라고하여 아내는 아들에게 밥을 주는데 여기서 사단이 터지고 만다. 그날 2살도 안된 마융둥의 아들이 우유병을 쏟았는데 마융둥은 이를 치우면서 아내가 작은 우유병을 줘서 이 사단이 났다고 말하자 이를 들은 란슈잉은 마융둥에게 또 화를 내며 욕을 했다. 이에 마융둥은 폭발하여 아내와 언쟁하다가 아내에게서 또다시 욕을 듣자 결국 화가 치밀어 아내의 뺨을 때렸고 란슈잉은 방에 들어가 전화로 부친인 란유부에게 이를 알렸다. 란유부는 이를 경찰에 알렸고 파출소에서 마융둥 집으로 사람을 보냈다. 공안이 가보니 란슈잉은 울면서 이혼하기를 바랬고 마융둥은 아내가 자신에게 먼저 화를 내고 욕을 한데다 장인은 5,000위안, 작은 처남은 2,700위안을 자기에게서 빌려갔으면서 계속 갚지 않는다는 등 화를 내며 얘기했다. 공안은 마융둥의 가족들과 함께 두 사람을 진정시키며 중재를 해서 화해시키려 했으나 이번에는 란슈잉이 그들이 주선한 화해를 모두 거부하며 이혼을 취소하지 않겠다고 하여 총체적 난국이 따로 없었다.게다가 란슈잉의 모친이 딸의 연락을 받고는 찾아와서 마융둥한테 욕을 하면서 자기 딸을 친정에 데려갔으며, 마융둥에게 정식으로 이혼할것이며 법원에 이혼 소송을 넣을 거라고 했다. 이는 마융둥과 그의 가족들에게 큰 충격을 준다. 게다가 아내는 아들까지 놔두고 친정으로 간것이다. 결국 가정이 파탄났으며 아내 란슈잉이 떠나고나서 마융둥은 상심한채로 소파에 누워만 있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손자를 돌보던 마융둥의 모친은 아들을 걱정하며 국수를 해줬는데 마융둥은 대충 먹고는 오후 5시에, 부친 마구이저우에게 잠깐 처갓집 좀 갔다 온다고 하며 오토바이를 타고 가버렸다.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마구이저우는 아내와 함께 대충 불길한 느낌은 예상했지만 손을 못썼고, 걱정하며 아들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마융둥의 휴대전화가 방바닥에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마융둥이 처갓집으로 가서 란유부 일가족 7명을 모두 살해했는데 피해자는 란유부 부부[2]와 그들의 임산부인 딸[3], 그들의 부모[4], 그리고 2명의 손녀[5]였고 사인은 모두 칼에 의한 자상이였으며 사망한 사람들은 모두 목이 베여져 죽었다. 10월 15일, 한 이웃이 란유부 부부의 집에 물건을 주러 가다가 란유부 일가가 전부 살해당한것을 보고는 놀라며 공안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공안은 사건현장을 보고는 경악을 하였고 마을 사람들도 구경하면서 경악한다.
5. 판결
란씨 일가족이 전부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지자 놀란 공안은 시신들을 수습한다음 100명의 인력을 동원하여 이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는데 마융둥을 용의선상에 올렸으며 용의자인 마융둥은 살인 후 흰색 오토바이를 타고 현장을 떠난 것으로 파악했다. 그다음엔 마융둥 가족들과 동네 이웃들의 협조하에 수사를 하고 용의선상에 마융둥을 올렸다. 2013년 10월 18일, 마융둥을 현상수배에 올렸고 결국 18일 당일 저녁 8시 30분에 마융둥은 우충시 리통구 남문에서 공안들에게 체포되었으며, 간단한 심문을 거칠 때 마융둥이 순순히 범행을 인정함으로써 사건은 끝이났다. 재판에서 2014년 초에 법원은 1심과 2심 모두 마융둥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마융둥도 판결을 받아들면서 결국 2014년 10월 16일에 마융둥은 최고인민법원의 사형 심사를 거쳐서 약물 주사형으로 사형버스에서 사형에 처해졌다.6. 여담
사건이 벌어지고 다음날인 10월 15일에 공안은 조사를 위해 마융둥 부친인 마구이저우를 만나서 취재하고 돌아갔는데 그 날 새벽 2~3시쯤 마구이저우는 우연히 집에 있던 양 도축용 칼이 없어진걸 보았다. 알다시피 사건현장에 칼이 발견되어 마융둥이 그 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였다.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가족들과 지인들의 말로는 마융둥은 말수가 적었으나 이타적인 성격이라서 가족들과 지인들에게서 신뢰가 있었기에 그가 범행을 저지를것이라는것을 아무도 예상못해서 이 사건은 마융둥의 가족들과 지인들한테 큰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여기서 알아두어야 할 점은 비록 아내와 처갓집이 문제가 있었으나 마융둥 역시 올바른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이혼을 당한 것에 앙심을 품고 아내와 처갓집 식구들, 그중에서 어린 아이까지 잔혹하게 살해한것은 명백한 악행인데다 사망했을때 아내가 둘째를 임신하여 자신의 아이까지 살해했다. 마융둥의 범죄는 중국 전역에 큰 충격을 주며 여론의 공분을 크게 일으켰고 그가 처형되었을때 중국 내에서도 하나같이 기뻐하였다.
현재 마융둥의 아들은 마융둥의 집안에서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