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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흐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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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 개요2. 설명
2.1. 창작물에서2.2. 같이보기
3. 인명
3.1. 실존 인물

1. 개요

마흐디(아랍어: ٱلْمَهْدِيّ / al-mahdiyy, 페르시아어: مهدی / mahdi, 영어: Mahdi)는 이슬람교, 특히 시아파에서 말하는 미래에 올 구세주를 의미하는 표현이다.

2. 설명

문자적으로는 '올바르게 인도된 자'라는 의미이며, 심판의 날 직전 거짓 선지자가 지상에 도래할 때 그와 싸우는 사람으로 예언된다. 유대교메시아와 비슷한 느낌이다. 시아파 12이맘파 전승 기준으로 12번째 이맘무함마드 알마흐디[1]는 서기 874년(이슬람력 260~261년)에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12이맘파는 그가 죽지 않았으며 심판의 날에 재림한다고 믿는다. 순니파와 시아파의 마흐디 해석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시아파의 경우 이미 마흐디가 출생한 상태이고 심판의 날을 앞둔 시점에 다시 나타난다고 믿는 반면 순니파는 이런 견해를 공유하지 않는다.

순니파의 마흐디 해석은 이와는 상당히 다른데 그 이유는 쿠란에 마흐디에 대한 언급이 없을 뿐더러 순니파 6대 하디스 모음집 중 가장 권위있는 두 하디스 모음집인 사히 알 부하리나 사힛 무슬림에 "구세주 마흐디"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2][3]

이븐 카시르의 경우처럼 시아파들과 수피들의 마흐디 신앙 관점과 어느 정도 유사하게 해석한 사람도 있었고,[4] 반대로 심판의 날 직전에 마흐디라는 구세주가 나타난다는 전승이 원래 이슬람의 가르침에 없는 허구라고 주장하는 이슬람 학자들도 있으며, 마흐디가 예수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오늘날에는 수피들 이외에도 살라프파나 사우디 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와하브파는 마흐디 관련해서 대체로 이븐 카시르의 해석을 따르는 편이다.
"어느 시대의 무슬림이건 그들 모두는 말세가 다가오면 반드시 예언자 가문에서 한 사람이 출현하여 이슬람을 강화하고 정의의 승리를 이룩하리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무슬림들은 그를 따르고 그는 무슬림 지역을 모두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는 마흐디라고 불릴 것이다. 그의 뒤를 이어 적그리스도가 출현하고 최후 심판의 날의 모든 징조들이 뒤이어 나타날 것이다. 혹은 예수가 마흐디와 함께 세상에 내려와서 그를 도와 적그리스도를 죽일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종교 지도자들이 저술한 전승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비판받아 왔고 또 일부 전승들에 근거해서 반박을 받기도 했다. (중략) 최근에는 수피들이 마흐디에 관해서 또 다른 이론을 내놓으면서, 마흐디가 출현할 시점, 인물, 장소를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그러나 예견된 시간이 자나가지만 그런 징후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그 뒤에도 언어의 장난, 허구적 관념, 점성술적 판단 등에 기초한 새로운 제안들이 나왔는데, 그런 사람들은 인생을 그런 추측으로 허비해 버렸다.

우리와 동시대의 대부분의 수피들은 이슬람의 법규와 진리의 규범을 새롭게 해줄 어떤 사람이 출현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출현이 우리 시대에 매우 근접한 시기에 일어날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는 파티마의 후손일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보다 일반적인 의미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진실은 어떠한 종교적, 정치적 선전도 그와 같은 종교적, 정치적 목표를 지지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로부터 보호해줄만한 무력과 연대의식을 가지지 못한다면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역사서설 / 이븐 할둔

마흐디를 자처한 이슬람 지도자들도 있었는데, 중세에는 파티마 조의 창건자인 압둘라 알마흐디가 유명하다.

또한 19세기 말엽, 수단에서 이집트영국에 맞서 마흐디 운동을 일으킨 수단의 바까라족의 지도자인 압둘라 와드 토르샤인은 자신이 데리고 있는 이슬람 학자 무함마드 아흐마드가 마흐디라고 주장하며 신정 국가를 건설했다. 그는 무함마드 아흐마드와 함께 수단을 식민 지배하는 이교도 세력인 영국과 그들에 협조하는 거짓 무슬림인 이집트[5]를 몰아내자고 선동하여 수많은 수단인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아흐마드를 따르는 수단인들로 구성된 신정 국가 마흐디국은 이집트를 몰아내고 거의 30년 가까이 수단을 지배했다. 이 마흐디 교단의 신도들은 전쟁터에 나가 싸우다 죽으면 곧바로 천국으로 간다고 믿었던 열렬한 이슬람교 광신도들인 관계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열보병에게 정면 돌격하는 무모한 전술로 유명했다. 마흐디국 초창기에는 영국과 이집트의 연합군을 여러 차례나 패전시키고 영국 총독 찰스 고든을 처형할 정도로 선전했으며, 영국에서 고든의 복수를 벼렀던 무함마드 아흐마드는 자연사했다. 그러나 바까라족과 수단 북부의 아랍인들이 갈등하면서 분열하였으며, 영국에서 이들의 정면 돌격을 막기 위해 맥심 기관총을 도입하면서 압둘라가 이끌던 마흐디 신국은 1898년에 옴두르만 전투에서 대패하며 몰락했다.

한편 19세기 말 영국령 인도에서는 수피 이슬람에서 파생된 온건 성향 종파인 아흐마디야파가 있는데, 최후의 심판의 날 영도자에 대한 예언 성취를 주장한 미르자 굴람 아흐마드(1835년 ~ 1908년)의 언행과 교리가 그 기원이다. 그는 자신이 이슬람을 14세기에 도래한 무자디드[6]이자 마흐디임을 주장하였다. 대다수 이슬람 종파에서는 이단으로 본다

또한 시아파에서도 마흐디를 참칭한 '바비교 사건'이 있었는데 19세기 페르시아 카자르 왕조 시절 상인 출신인 사이이드 알리 무함마드가 자신을 마흐디, 곧 새로운 시아파의 이맘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카자르 왕조의 폐단과 부정부패에 지쳐있던 사람들은 그 곁에 구름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이이드 알리 무함마드는 스스로를 아랍어로 '문'을 뜻하는 '바압'이라고 불렀으며 그의 추종자들은 '바비교도'들이라고 불렸다. 그는 페르시아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교리를 설파하고 완전히 새로운 사회 개혁을 제시했는데, 당연히 이런 그의 모습의 기존의 시아파 성직자들에게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성직자들은 사이이드 알리 무함마드를 하루빨리 감옥에 처넣으라고 탄원했고, 이를 견디다 못한 국왕 나세르 알딘 샤 카자르는 1848년 그를 체포한 뒤 감호소를 바꾸어가며 여러 곳에 수감했다. 다만 그를 따르는 신도들이 워낙 많았던 탓에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채찍형을 집행한 후 수감되었는데, 2년 후 일부 바비교도들이 나세르 알딘 샤의 암살을 시도하는 사건이 터지고, 사이이드 알리 무함마드의 신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가해졌고 수 만명이 끌려가거나 학살당했다. 사이이드 알리 무함마드는 타브리즈로 다시 끌려와 1850년 7월 9일 병영 뜰에서 수 십명의 병사들에게 총을 맞아 죽었다. 사이이드 알리 무함마드가 죽자 그의 추종자들은 두 분파로 나뉘어졌다. 첫 번째 무리인 아잘리파는 카자르 왕조에 대한 저항을 계속하다가 1905년 혁명에 동참했고, 두 번째 분파는 수피 지도자였던 바하올라를 추종하면서 지금의 바하이교로 변화하였다.

현재 신정국가인 이란의 헌법에는 마흐디가 등장하면 국가 통치권을 헌납한다는 규정이 있다.

2.1. 창작물에서

에서는 프레멘 토속신앙에서 구세주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며, 폴 아트레이데스가 리산 알 가입이자 마흐디로 여겨진다.

기동전사 건담 섬광의 하사웨이에서 하사웨이 노아가 사용하는 이명마프티 나비유 에린에서 '마프티'가 이 마흐디다.

2.2. 같이보기

3. 인명

마흐디(Mahdi)는 이슬람권의 이름이다.

3.1. 실존 인물



[1]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 무함마드 알 마흐디와는 다른 사람이다.[2] 사힛 무슬림에는 일반 인명 마흐디는 언급되어도 메시아를 의미하는 이른바 "Al-Mahdi"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3] 아부 다우드 하디스 모음집(Sunan Abu Dawud)에는 마흐디가 파티마의 자손일 것이라는 예언, 그리고 넓은 이마와 눈에 띄는 코를 가진 인물로서 그동안 세상이 억압과 폭정에 시달렸던 만큼 자신이 세상을 7년 통치하는 동안 평등과 정의로 세상을 체울 것이라는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4] 마흐디가 12번째 이맘 혹은 5,6번째 이맘이라는 시아파들의 주장은 배격하지만 대신 심판의 날 직전 마흐디가 출현하여 적그리스도의 무리와 맞서 싸운다는 종말론 해석을 공유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부 다우드 하디스 모음집, 이븐 한발의 하디스 모음집. 티르미디 하디스 모음집 등에 수록된 하디스들 중 마흐디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언급한 내용들을 취합하였다.[5] 당시 이집트는 형식적으로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으나, 사실상 독립된 왕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집트는 19세기 초부터 수단을 정복하여 지배하고 있었는데, 텔 엘 카비르 전투에서 영국군한테 패배한 이후로 영국에 의해 지배당하는 속국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은 영국군과 함께 이집트 군대를 동원하여 수단을 침략하고 있었으니, 결과적으로 수단은 영국과 이집트 두 나라한테 이중으로 착취당하고 있었다.[6] 원래는 알 가잘리같은 대학자에게 주어지는 칭호이다. 신앙 개혁자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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